LOGIN아침에 눈을 뜬 서하는 도윤의 팔 안에 갇혀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쪽 다리는 그의 허벅지 위에 걸쳐져 있었고, 손바닥 아래에서는 맨가슴의 단단한 근육이 느리게 오르내렸다.
더 곤란한 건 그 아래였다.
얇은 잠옷 바지가 말려 올라간 허벅지 사이로, 잠에서 깬 남자의 열기가 너무도 선명하게 닿아 있었다.
서하가 숨을 멈추자 머리 위에서 잠긴 목소리가 떨어졌다.
“자는 척해도 상황은 안 달라집니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
“당신 무릎이 위험한 곳에 닿았을 때부터.”
그녀가 황급히 다리를 내리려 하자 도윤의 팔이 허리를 감았다. 몸이 다시 끌려가며 그의 단단한 상태가 속옷 너머로 더 깊게 맞닿았다.
서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이건…… 아침이라 그런 거죠?”
“그렇게 믿고 싶습니까?”
도윤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
서하는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끝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복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던 손이 잠옷 허리선 앞에서 멈췄다.
도윤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윤서하.”
경고였지만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왜요. 닿으면 안 되는 조항도 있었어요?”
그녀는 잡힌 채로 손바닥을 한 번 눌렀다. 천 아래에서 뜨겁게 팽팽해진 윤곽이 손바닥에 그대로 잡혔다.
도윤의 숨이 거칠어졌다.
다음 순간 그가 몸을 뒤집었다. 서하의 등이 매트리스에 닿고, 그의 무릎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손목을 누른 힘은 강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지금 그 손, 호기심입니까. 허락입니까?”
서하는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놓으면 알게 될 텐데요.”
도윤이 손목을 놓았다.
서하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선 안쪽으로 손가락을 조금 밀어 넣었다. 맨살의 열기가 닿자 도윤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술이 거칠게 내려왔다.
첫 키스는 짧지 않았다. 혀가 닿고 숨이 섞이자 서하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도윤의 손이 잠옷 상의 아래로 들어와 허리와 갈비뼈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엄지가 가슴 아래의 민감한 살을 스치자 그녀의 허리가 저절로 들렸다.
“도윤 씨…….”
그가 입술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멈출까요?”
서하는 대답 대신 그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윤의 손이 조금 더 올라가려던 순간, 침대 옆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하는 숨을 몰아쉬며 화면을 봤다. 회사 정보보안팀이었다.
도윤은 이마를 그녀의 어깨에 대고 낮게 욕설을 삼켰다.
“받아요.”
“이 상태로요?”
“안 받으면 내가 대신 받을 것 같으니까.”
서하는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숨을 흘리며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통화 내용은 순식간에 욕망을 식혔다.
지난 삼 년간의 연구자료가 회사 계정에서 전부 삭제돼 있었다. 개인 저장소에 백업한 초기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다온뷰티에서 완성한 실험 결과와 결재 문서는 사라졌다.
“윤성호 대표 지시로 계정이 폐쇄됐습니다.”
“퇴사 처리도 안 됐고 제 개인 자료도 포함돼 있어요.”
“저희는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도윤은 이미 침대에서 내려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흐트러져 있던 남자가 단추를 채울 때마다 낯설 만큼 냉정해졌다.
“서버 로그가 필요합니까?”
“있으면 누가 삭제했는지 증명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는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유리문 너머로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온뷰티 서버 보존명령부터 넣으세요. 세림의 인수금융도 즉시 멈추고.”
서하는 문을 열었다.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거예요?”
도윤은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끊었다.
“우리 회사 법무 담당자입니다.”
“심사역이 다른 회사 인수금융을 멈춰요?”
“담당 안건이라서요.”
“아르덴투자라는 회사, 검색해도 직원이 열 명밖에 안 나오던데.”
“직원이 적다고 돈까지 적은 건 아닙니다.”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어제의 운전기사가 새 정장을 들고 서 있었다. 복도 끝에는 번호판이 낯선 검은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주총 자료입니다.”
운전기사는 서하를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도윤이 그를 차갑게 바라봤다.
“회사에서는 다들 심사역을 대표라고 부르나 봐요?”
서하가 묻자 도윤은 정장을 받아 들었다.
“작은 프로젝트 대표도 대표니까요.”
“거짓말은 아닌데 진실도 아니네요.”
서하는 그의 손목을 잡아 소매를 걷었다.
밤에는 보지 못했던 시계가 드러났다. 기사에서 한정판이라는 설명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아파트 한 채 가격이었다.
“현재의 거짓말이 들키면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이혼하기로 했죠.”
“기억합니다.”
“겁 안 나요?”
도윤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웠다. 조금 전 침대 위의 열기가 아직 눈에 남아 있었다.
“이혼이 겁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가 손등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당신이 내 침대에서 사라지는 건 싫군요.”
도윤이 집을 나간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표정은 완전히 식었다.
운전기사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강태성 부회장이 도련님의 혼인신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회장님께서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도윤은 화면 속 서하의 신상조사 보고서를 닫았다.
“내 아내에 관한 보고는 여기서 끝내.”
“하지만 신탁과 후계 절차가…….”
“강태성이 그녀에게 접근하면 먼저 나한테 보고해.”
차가 해원그룹 본사로 향했다.
평범한 월급쟁이 강도윤은 뒷좌석에서 그룹의 의결권 지도를 펼쳤다.
차 문이 닫히자 세상과 분리된 것처럼 조용해졌다.칸막이가 완전히 올라가기도 전에 도윤이 서하의 입술을 삼켰다.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채 넥타이를 풀어 버렸다. 셔츠 단추 사이로 손을 밀어 넣자 단단한 가슴이 손바닥 아래에서 긴장했다.“후회할 얼굴인지 확인한다더니요.”“확인 끝났습니다.”“결론은요?”도윤이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당겼다.바지 아래로 팽팽해진 열기가 다리 사이에 정확히 맞닿았다.“오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을 자신이 없다는 것.”그가 허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옷을 사이에 둔 채였지만 서하의 입에서 숨이 터졌다. 도윤은 같은 동작을 다시 했다. 마찰이 젖은 속옷 위를 누를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 열기가 빠르게 살아났다.“그럼 참지 마요.”“차 안에서 처음을 끝내고 싶습니까?”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도윤의 손이 원피스 안으로 들어왔다. 속옷 옆을 밀어내고 맨살을 만졌다.“대답해요.”손가락 하나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서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집에 가요. 대신 가는 동안…… 멈추지 마요.”도윤이 낮게 웃었다.“욕심이 많군요, 윤서하 씨.”손가락이 깊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차가 출발했다.서하는 흔들림을 핑계로 그의 몸에 더 밀착했다. 도윤의 엄지가 가장 민감한 곳을 문지르고, 안에 든 손가락이 일정한 속도로 굽혀질 때마다 목에서 신음이 새었다.그녀는 참지 말라는 그의 말을 기억했다. 손으로 입을 막는 대신 도윤의 목을 끌어안고 소리를 삼키게 했다.쾌감이 끝까지 차오르기 직전, 도윤이 손을 멈췄다.“왜…….”“아까 끝까지 책임지라고 했죠.”그가 젖은 손끝을 그녀에게 보여 주듯 천천히 입술에 댔다.“침대에서.”서하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의 벨트 버클을 풀었다.“그럼 당신도 참아요.”지퍼를 내리고 속옷 안으로 손을 넣자 도윤의 몸이 크게 굳었다. 손안에 잡힌 그는 생각보다 뜨겁고 단단했다.“서하야.”처음으로 이름을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싫으면 말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윤이 현관문을 닫았다.잠금장치가 내려가는 소리와 동시에 서하의 등이 문에 닿았다.“아까 한 말, 기억합니까?”“어떤 말이요?”“끝까지 책임지라고 한 말.”도윤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서하는 대답 대신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입술이 맞부딪쳤다.엘리베이터에서 참았던 만큼 거친 키스였다. 도윤은 재킷을 벗어 던지고 그녀를 안아 현관 수납장 위에 앉혔다. 원피스 자락이 허벅지까지 밀려 올라갔다.“지금도 멈추지 말까요?”“묻지 말고…….”“말해야 합니다.”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안쪽을 느리게 쓸었다. 속옷 가까이에서 멈춘 채 기다렸다.서하는 그의 셔츠 단추를 두 개 풀고 맨가슴에 입을 맞췄다.“계속해요.”그제야 손이 속옷 안으로 들어왔다.젖은 중심을 손끝이 가르자 서하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도윤은 그녀의 목을 입술로 누르며 천천히 문질렀다. 한 손가락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곧 두 번째가 더해졌다.“도윤 씨…… 너무…….”“아픕니까?”“아니, 더.”그녀가 그의 어깨를 긁었다.도윤의 눈빛이 어둡게 타올랐다. 손가락은 더 깊어졌고 엄지는 같은 자리를 집요하게 눌렀다. 서하는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그의 몸이 사이를 막고 있었다.쾌감이 빠르게 올라왔다.그 순간 현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와 벌어진 입술, 목에 남은 붉은 흔적.그리고 한지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너는 언제나 안전한 것만 골라.서하는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있게 해 줘요.”도윤의 손이 즉시 멈췄다.뜨거웠던 공기가 단숨에 식었다.그는 손을 빼고 원피스 자락을 내려 주었다.“무슨 짓이에요?”“나를 복수에 쓰지 마.”처음 듣는 반말이었다.서하가 굳었다.도윤은 한 걸음 물러섰다. 욕망이 아직 선명한 얼굴로, 그러나 손은 더 이상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당신이 나를 원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습니다.”“그게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아니.”“뭐가 다른데요?”“한지훈을
다온가의 저녁 식사는 서하를 환영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긴 테이블 끝에 앉은 윤성호 대표는 사위를 위아래로 훑었다. 도윤이 입은 정장과 손목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한 얼굴이었다.“듣도 보도 못한 투자회사 심사역이라지?”도윤은 와인잔도 들지 않았다.“맞습니다.”“서하는 감정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네. 조용히 정리하면 자네한테도 사례하지.”서하가 입을 열기 전에 도윤의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그녀의 무릎을 감쌌다.손바닥의 열이 얇은 원피스 천을 통과했다.“제 아내의 결혼을 장인께서 정리할 수 있습니까?”“아내?”윤성호가 비웃었다.“며칠이나 봤다고.”도윤의 엄지가 서하의 무릎 안쪽을 한 번 쓸었다.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아침의 기억이 되살아나기에 충분했다.서하는 다리를 모았다. 도윤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시간보다 선택이 중요하죠. 적어도 저는 식장에 사람을 세워 두고 사라지진 않습니다.”맞은편에 앉은 한지훈의 얼굴이 굳었다.그 옆에는 서하의 이복언니 윤채린이 앉아 있었다. 약혼반지를 끼운 손이 와인잔을 꽉 쥐었다.“언니도 참 대단해. 버림받은 날 아무 남자나 주워 결혼하고.”서하는 웃었다.“아무 남자나 아니야. 네가 탐내도 못 가질 남자.”테이블 아래에서 도윤의 손가락이 멈췄다.채린이 입술을 일그러뜨렸다.“가진 것도 없는 남자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도윤이 재킷 안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다온뷰티 지분 7.2퍼센트.”윤성호의 표정이 바뀌었다.“그게 왜 자네 손에 있어?”“정확히는 제가 관리하는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부로 대표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주주연합에도 참여했고요.”한지훈이 의자를 밀었다.“아르덴이 세림 인수금융을 막은 것도 당신입니까?”“질문할 위치가 아닐 텐데.”도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안을 눌렀다.“내 아내의 연구자료를 돌려놓으십시오. 내일까지 서버 원본과 접속기록을 넘기지 않으면 횡령, 영업비밀 침해, 증거인멸을 함께 묻겠습니다.”“협박이야?”“선택지를 드리는
아침에 눈을 뜬 서하는 도윤의 팔 안에 갇혀 있었다.정확히는 자신이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쪽 다리는 그의 허벅지 위에 걸쳐져 있었고, 손바닥 아래에서는 맨가슴의 단단한 근육이 느리게 오르내렸다.더 곤란한 건 그 아래였다.얇은 잠옷 바지가 말려 올라간 허벅지 사이로, 잠에서 깬 남자의 열기가 너무도 선명하게 닿아 있었다.서하가 숨을 멈추자 머리 위에서 잠긴 목소리가 떨어졌다.“자는 척해도 상황은 안 달라집니다.”“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당신 무릎이 위험한 곳에 닿았을 때부터.”그녀가 황급히 다리를 내리려 하자 도윤의 팔이 허리를 감았다. 몸이 다시 끌려가며 그의 단단한 상태가 속옷 너머로 더 깊게 맞닿았다.서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이건…… 아침이라 그런 거죠?”“그렇게 믿고 싶습니까?”도윤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서하는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끝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복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던 손이 잠옷 허리선 앞에서 멈췄다.도윤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윤서하.”경고였지만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왜요. 닿으면 안 되는 조항도 있었어요?”그녀는 잡힌 채로 손바닥을 한 번 눌렀다. 천 아래에서 뜨겁게 팽팽해진 윤곽이 손바닥에 그대로 잡혔다.도윤의 숨이 거칠어졌다.다음 순간 그가 몸을 뒤집었다. 서하의 등이 매트리스에 닿고, 그의 무릎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손목을 누른 힘은 강했지만 아프지 않았다.“지금 그 손, 호기심입니까. 허락입니까?”서하는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놓으면 알게 될 텐데요.”도윤이 손목을 놓았다.서하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선 안쪽으로 손가락을 조금 밀어 넣었다. 맨살의 열기가 닿자 도윤이 이를 악물었다.그의 입술이 거칠게 내려왔다.첫 키스는 짧지 않았다. 혀가 닿고 숨이 섞이자 서하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도윤의 손이 잠옷 상의 아래로 들어와 허리와 갈비뼈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엄지가 가슴 아래의 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오피스텔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서하는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낯선 침대와 낯선 집, 문밖 소파에 누워 있을 낯선 남편.세 번째로 눈을 떴을 때 거실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서하는 침실 문을 열었다.도윤은 소파 옆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손으로 옆구리를 누른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어디 아파요?”“괜찮습니다.”“안 괜찮아 보여요.”셔츠 아래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 어제 성호의 손목을 막을 때 벌어진 상처였다. 오래된 흉터 위에 새 상처가 겹쳐 있었다.서하는 구급상자를 찾아 그를 침대에 앉혔다.“셔츠 벗어요.”도윤이 그녀를 올려다봤다.“그 말의 의미를 알고 합니까?”“상처 소독하겠다는 의미예요.”“아쉽군요.”농담을 할 여유는 있는 모양이었다.도윤이 단추를 풀었다. 단단한 가슴과 복부 위로 크고 작은 흉터가 이어져 있었다. 회사원이 출근하다 생길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서하가 소독약을 묻힌 솜을 가져가자 그의 근육이 순간적으로 긴장했다.“아프면 말해요.”“아픈 건 참을 만합니다.”“그럼 뭐가 문제인데요?”도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서하는 그제야 자신이 그의 다리 사이 가까이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얇은 잠옷 아래 맨다리가 그의 무릎에 스쳤다.도윤의 손이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당신이 너무 가깝습니다.”서하의 손끝이 멈췄다.도윤은 피하지 않았다. 서하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빗소리 사이로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가까이 있으면 안 돼요?”“안 되는 게 아니라.”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서하의 허리 옆에서 멈췄다.“한 번 손대면 소독만 받고 끝낼 자신이 없습니다.”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어제까지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 했던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윤의 맨몸을 보고 있는 지금, 죄책감보다 욕망이 먼저 올라왔다.“그럼 참아요.”서하는 일부러 그의 상처 위에 새 거즈를 천천히 붙였다.“아직 계약 일주일도 안 됐잖아요.”도
다음 날 아침, 서하의 이메일로 손해배상 청구서가 도착했다.결혼식 취소 비용 삼억 원. 다온뷰티와 세림홀딩스의 협약 파기 손실 십칠억 원. 발신자는 한지훈의 변호사였다.도윤은 식탁 맞은편에서 편의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놀라지 않습니까?”“금액이 작아서요.”“이십억이 작은 돈이에요?”“청구 근거가 약하다는 뜻입니다.”도윤이 서류를 훑었다.“예식 취소 원인을 신부에게 돌렸군요. 영상 원본과 호텔 출입 기록은 확보했습니까?”“영상은 있어요. 출입 기록은 호텔이 지훈 씨 집안 소유라 내주지 않을 거예요.”“내주게 만들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도와주겠다는 말이라면 거절할게요.”서하는 노트북을 열었다.“제 싸움은 제가 해요.”도윤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서류를 돌려주었다.“좋습니다. 필요할 때 방해만 치워 드리죠.”오후 두 시, 서하는 세림호텔 회의실에 들어갔다. 지훈과 그의 부모, 윤성호, 회사 법무팀이 기다리고 있었다.도윤은 평범한 검은 셔츠 차림으로 그녀 옆에 앉았다.지훈의 어머니가 코웃음을 쳤다.“고작 이런 남자 때문에 양가를 망신시켰니?”서하는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먼저 예식장 복도 영상입니다. 한지훈 실장과 윤채린 씨가 오후 세 시 사십 분에 같은 객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지훈이 벌떡 일어났다.“그 영상을 어떻게 구했어?”“호텔이 삭제하기 전에 하객 한 분이 촬영했습니다.”사실이었다. 영상을 보낸 사람은 채린에게 광고를 빼앗긴 인플루언서였다.서하는 다음 문서를 넘겼다.“협약서 제17조. 혼인을 전제로 한 공동사업에서 귀책 당사자가 신뢰를 훼손하면 상대방은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을 만든 사람도 접니다.”지훈의 아버지가 법무팀을 노려봤다.변호사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리고 다온뷰티 신제품 처방 세 건은 제 개인 연구노트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늘부로 사용 중단을 통보합니다.”윤성호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회사에서 만든 걸 네 거라고 우길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