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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일지 한 줄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09:08:37

「렌즈가 돌 때마다 흰 빛이 계단 벽을 한 칸씩 쓸고 내려갔다.

12초가 지나면 그 자리가 다시 밝아졌다.」

군복 남자가 렌즈실 문턱에 올라섰다.

키가 컸다. 문틀에 닿지 않으려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검은 머리는 짧았고, 눈은 짙은 청색이었다. 계단 142칸을 올라왔는데 숨소리가 고르지 않은 데가 없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어젯밤 비스 백작저 창가 기둥 옆. 샴페인 대신 시계를 들고 있던 사람이었다.

“왕립 해군 제2함대 제독 유리안 하그입니다.”

그는 모자를 벗어 옆구리에 끼웠다.

“회색곶은 함대 항로의 첫 등대입니다. 오늘 점등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일지를 보여 주십시오.”

‘제독이 직접 등대 계단을 오른다고?’

도리가 내 소매를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아이는 제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렌즈 뒤로 반쯤 숨었다.

제독의 시선이 렌즈로 갔다. 닦인 유리 면과, 받침대 아래 쌓인 검은 천 더미를 차례로 보았다. 그러고는 렌즈 뒤를 보았다.

“거기 있는 사람은.”

도리가 렌즈 뒤에서 굳었다. 나는 아이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 대신 대답했다.

“도리입니다. 오늘 이 아이가 렌즈 절반을 닦았습니다.”

“도리.”

제독이 아이 이름을 한 번 불렀다. 그게 다였다. 도리는 렌즈 뒤에서 나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앞머리가 눈을 덮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을음 묻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는 게 보였다.

“일지는 아래 관리실에 있습니다. 내려가시지요, 하그 제독님.”

“예.”

그는 길을 비켜섰다. 내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군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왔다. 중간쯤에서 벽에 붙어 서 있던 마게가 고개를 숙였다. 제독은 마게 앞에서 걸음을 한 번 늦췄다. 마게는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

관리실 램프에 불을 붙였다.

나는 책상 서랍에 열쇠를 꽂았다. 다섯 번째 열쇠였다. 서랍 안에 두꺼운 가죽 표지 일지가 누워 있었다. 표지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쓰던 일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을 찾으려고 뒤에서부터 넘겼다. 빈 장. 빈 장. 빈 장.

그리고 손가락이 멈췄다.

글씨가 끝나는 자리에 장이 없었다. 제본 실밥 사이에 종이 밑동만 손톱만큼 남아 있었다. 누군가 마지막 장을 뜯어 갔다. 가위로 자른 자리가 아니었다. 손으로 찢은 자리였다.

그 앞 장 마지막 줄은 지난겨울 어느 저녁의 점등 기록이었다. 일몰과 점등 시각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바람 북서. 이상 없음. 아버지의 글씨였다.

그 뒤 장에 아버지는 글을 더 썼다. 그리고 그 장이 없었다.

나는 서랍 안쪽을 손으로 더듬었다. 떨어진 종이는 없었다. 서랍 바닥에는 마른 펜촉 두 개와 연필 토막만 굴러다녔다. 선반에는 마게가 지난 1년 동안 쓴 얇은 일지가 따로 꽂혀 있었다. 아버지의 책은 이 장에서 멈춰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에 무엇을 쓰셨을까.’

일지를 쓰다 쓰러지셨다고 들었다. 그때 펜을 쥐고 계셨다고. 그 장을 누가 가져갔는지, 아버지가 직접 뜯으셨는지 나는 몰랐다.

제독은 책상 맞은편에 서 있었다. 그는 일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내 손가락이 찢긴 자리에 멈춘 것을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종이 밑동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지금은 오늘 일을 할 차례였다.

“오늘 기록은 다음 장부터 쓰겠습니다. 먼저 물으실 것부터 물으십시오.”

“일몰은 19시 4분이었습니다. 점등은 19시 15분입니다. 11분 차이가 납니다. 사유를 듣겠습니다.”

나는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냈다. 렌즈를 닦는 틈틈이 연필로 시각을 적어 두었다. 글씨가 그을음에 번져 있었다.

“렌즈 그을음이 몇 달 치 쌓여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닦았습니다. 마지막 면을 닦기 시작한 게 18시 41분입니다. 끝난 게 19시 13분입니다. 그사이 기름관 손잡이가 녹슬어 돌지 않았습니다. 손잡이가 돌아간 게 19시 12분. 심지를 다시 자르고 불을 붙인 게 19시 15분입니다.”

제독이 쪽지를 내려다봤다. 시각마다 줄이 그어져 있었다.

“렌즈를 닦지 않고 불을 붙였다면 일몰에 맞출 수 있었습니까?”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빛은 곶 앞 암초까지도 못 나갔을 겁니다.”

“그럼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다시 오늘이 된다면.”

“늦게 켜더라도 바다까지 닿는 불을 고르겠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쪽지에서 일지 빈 장으로 옮겼다.

“쓰십시오.”

나는 펜에 잉크를 찍었다. 아버지의 마른 잉크병 대신 내 가방에서 꺼낸 병이었다. 찢긴 장 바로 다음, 빈 장 첫 줄에 펜촉을 댔다.

변명을 쓸 칸은 많았다. 렌즈, 녹슨 손잡이, 마른 심지.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감독청은 이 일지를 30일에 펼칠 것이다. 아이삭 백작은 그날 이 줄을 손가락으로 짚을 것이다. 거기 사유가 길게 적혀 있으면, 그는 사유를 짚고 웃을 것이다. 핑계라고.

나는 사유를 쓰지 않기로 했다.

[9월 2일. 일몰 19시 4분. 점등 19시 15분. 11분 늦음. 바람 서. 관리인 노엘라 페른.]

또박또박 썼다. 펜을 내려놓자 손끝이 조금 떨렸다. 잉크가 마르는 동안 나는 그 줄을 끝까지 읽었다.

“사유는 적지 않으셨습니다.”

“늦은 건 사실입니다. 일지에는 사실만 씁니다. 사유는 묻는 분께 제 입으로 답하겠습니다. 오늘 하그 제독님께 답한 그대로요.”

나는 쪽지를 접어 작업복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일지에는 끼우지 않았다. 그을음 묻은 쪽지 한 장이 일지 안에 들어가면,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읽힐 터였다.

제독이 펜을 들었다. 내 줄 아래 빈칸에 펜촉을 댔다. 그러고는 한 번 멈췄다.

“아래에 적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을요?”

“제가 본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썼다. 글씨가 작고 곧았다.

[19시 15분 점등을 곶 아래 길에서 확인. 19시 16분 렌즈 회전 정상 확인. 확인자 유리안 하그.]

나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지적하는 줄이 아니었다. 늦었다는 말도 없었다. 본 것만 있었다.

“점검자라고 쓰지 않으셨네요.”

“제게는 등대를 점검할 직권이 없습니다. 함대는 항로의 불을 확인할 뿐입니다. 그래서 확인자라고 썼습니다.”

단어 하나까지 고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줄 옆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잉크가 아직 덜 말라 손끝에 검은 점이 묻었다.

“하그 제독님은 곶 아래 길에 계셨습니까. 불이 켜지기 전부터요?”

“18시 50분부터 있었습니다.”

“왜요?”

“어젯밤 해 지기 전에 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저 말고도 사백 명이었습니다. 확인하러 온 사람은 몇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일지를 덮었다.

덮는 손과 다른 손이 함께 움직였다. 왼손은 표지를 눌렀고, 오른손은 주머니 속 황동 시계 뚜껑을 닫았다. 짧은 쇳소리가 났다. 어젯밤 백작저 계단에서 들은 소리였다.

“어젯밤에도 그 시계를 계속 여닫으셨지요.”

“보셨습니까.”

“홀에서 샴페인 잔 대신 시계를 든 분은 하그 제독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시계를 꺼내 보이지도 않았다.

“버릇입니다.”

그 이상은 없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버릇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낮았다.

*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나는 덮인 일지 위에 손을 올렸다.

“어젯밤 비스 백작저에는 왜 계셨습니까. 하그 제독님은 야회를 즐기시는 얼굴이 아니셨습니다.”

“비스 해운이 함대에 기름을 댑니다. 백작이 초대했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22시 40분에 나왔습니다.”

“제가 나간 직후군요.”

“그렇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얼굴에 가까웠다. 시각까지 분 단위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비스 해운이 이 등대를 원한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백작이 이관 신청서를 감독청에 낸 것은 압니다. 30일에 임명 확인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나는 덮인 일지를 내려다봤다.

이제야 분명해졌다. 내가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막으려는 사람.

“9월 30일까지 이 일지에 빈 날이 하루도 없게 하겠습니다. 감독청이 이 일지를 펼쳤을 때 페른 가가 이 등대를 지켰다는 게 줄마다 보이게 하겠습니다. 비스 해운이 무엇을 들고 오든, 저는 이 일지로 답하겠습니다.”

제독이 나를 보았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말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오늘 11분은 그날 백작이 가장 먼저 짚을 줄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숨기지 않았습니다. 숨긴 줄은 찾아내면 끝이지만, 적어 둔 줄은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칭찬도 걱정도 덧붙이지 않았다.

“30일까지 남은 날은 28일입니다.”

“하그 제독님도 세고 계셨습니까?”

“날짜는 셉니다. 버릇입니다.”

“그럼 저는 밤을 세겠습니다. 28번의 일몰입니다. 한 번도 늦지 않겠습니다.”

“렌즈는 매일 닦으십시오. 오늘처럼 쌓이면 다시 늦습니다.”

그 말은 꾸중이 아니었다. 그는 내일 할 일을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쪽지 뒷면에 받아 적었다.

창밖에서 렌즈 빛이 관리실 유리창을 지나갔다. 12초 뒤에 다시 지나갔다. 마당 우물가에 마게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노인은 장갑 낀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빛이 지날 때마다 그 손이 하얗게 드러났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제독도 창밖을 보았다. 마게 쪽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스 해운 마차가 내려가는 것도 보셨겠지요.”

“19시 17분에 곶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11분이 감독청 서류에 들어갈 겁니다.”

“그 서류에는 렌즈 이야기가 없겠군요.”

“없을 겁니다.”

“그럼 제 일지가 그 서류 옆에 놓이면 됩니다. 한 장이 아니라 28장이 놓이면 됩니다.”

그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창에서 눈을 떼고 나를 한 번 보았다. 그 눈이 내 손에 잠깐 머물렀다. 식초에 불고 쓸린 손바닥이었다. 나는 손을 등 뒤로 감추지 않았다.

“저 노인은 오래 이 등대에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압니다.”

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찢긴 장, 여덟 번째 열쇠 구멍, 백작저의 시계, 이 사람이 18시 50분부터 곶 아래 길에 서 있었던 이유.

도리가 문틈으로 얼굴을 반쯤 내밀었다.

“관리인님, 렌즈 기름 더 올려요?”

“지금 올릴 시간이야. 함께 가자.”

“제가 혼자 할 수 있어요.”

도리는 제독 쪽을 힐끔 보고 사라졌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제독이 모자를 다시 썼다. 관리실 문을 열었다. 밤바람이 들어와 램프 불꽃을 기울였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는 문턱에서 돌아섰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가, 뚜껑을 열지 않은 채 다시 넣었다.

“페른 관리인.”

“네.”

“……내일도 확인하러 오겠습니다. 불이 켜지는 걸 보면 잠이 옵니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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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를 돈 빛이 유리 벽에 푸르게 번졌다.아래에서 타는 심지 소리가 낮게 올라왔다.」마게는 렌즈 아래에 놓인 청소포를 펴고 있었다.한쪽 끝이 접혀 있었다. 마게는 손끝으로 천을 밀어 접힌 자리를 바로잡았다. 모서리를 맞춘 뒤 손바닥으로 눌렀다.나는 렌즈를 살피다 그를 돌아봤다.“그건 제가 할게요.”“됐소, 관리인님. 손이 아직 움직일 때 해 두면 되오.”“천을 개키는 일은 손가락이 불편하잖아요.”“불편하다고 못 하는 건 아니오.”마게는 청소포를 한 번 더 가지런히 접었다. 오른손 장갑의 손가락 끝에서 반쪽만 남은 가운뎃손가락이 보였다.“렌즈는 괜찮습니까?”“괜찮아요. 닦인 자리도 깨끗하고요.”“그러면 됐소.”마게는 천을 들어 빛에 비춰 봤다. 가느다란 먼지가 붙어 있었다. 그는 천을 다시 펼쳐 먼지를 털었다. 손목에 힘을 주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만 잡았다.“마게 씨.”“말씀하시오.”“아까 하신 말, 정말로 등대국에 직접 알리실 생각이에요?”그는 청소포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가지런히 접어 선반 위에 올렸다. 천의 모서리가 선반 끝과 나란했다.“그렇소.”“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실 수 있어요.”“바꾸지 않겠소.”“청문에서 이미 말씀하셨잖아요.”“내가 한 일과, 내가 숨긴 일은 따로 적어야 하오.”나는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유리 벽을 지나갔다. 마게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제가 켈러 감사관님께 말씀드릴게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달라고요.”“그럴 필요 없소.”“마게 씨가 혼자 가서 말씀하실 수 있다는 건 알아요. 그래도 등대국에 알릴 내용은 정확해야 해요.”“그래서 관리인님께 말하는 거요.”마게는 장갑 낀 손을 내려다봤다.“그날 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왜 입을 다물었는지. 빠뜨리지 않고 말하겠소.”“마게 씨가 받은 지시도요?”“그것도 말하겠소.”“그리고 그 지시를 따랐다는 것도요.”“그것도.”마게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접은 청소포 위에

  • 파혼당한 영애가 등대지기가 되었더니 제독이 밤마다 불을 확인하러 온다   75화. 겨울 휴가

    「눈발이 해안 돌담에 붙었다가 바람에 떨어졌다.등대의 불은 낮빛에 가려졌고, 곶 아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그 말은 일지에 적어도 되겠네요.”내가 대답하자 유리안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어떤 말입니까?”“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는 말이요.”“적으셔도 됩니다.”“오늘은 밤이 아닌데요.”“오늘 밤에도 켜질 겁니다.”유리안은 그렇게 말한 뒤 눈밭을 내려다봤다. 그 앞에 쌓인 눈은 아직 눈사람 모양이 아니었다. 도리가 바닥에 굴린 눈덩이가 두 팔 사이에 들어갈 만큼 커져 있었다.“유리안, 불을 확인하러 오신 거예요?”“오늘은 눈사람을 만들러 왔습니다.”“제독님이 눈사람을요?”도리가 눈덩이를 굴리다가 고개를 들었다.“그렇습니다.”“눈사람 만들어 본 적 있어요?”“없습니다.”“그럼 제가 알려 드릴게요. 여기서 더 굴리면 돼요.”도리는 손바닥으로 눈덩이 옆을 밀었다. 눈이 뭉친 면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몸집이 조금씩 커졌다. 도리의 구멍 난 장화가 눈 속으로 들어갔다가 빠졌다. 발자국마다 눈이 부서졌다.“손이 시리지 않습니까?”유리안이 물었다.“조금요. 그래도 이건 거의 다 됐어요.”“장갑을 쓰십시오.”“장갑 끼면 잘 안 굴러가요.”“손이 얼면 멈춰야 합니다.”“그럴게요.”도리는 대답은 했지만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마게가 그 모습을 보고 짧게 혀를 찼다.“관리인님, 저 아이는 손이 시린 줄도 잊었소.”“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했어요.”“조금만 더가 길어지는 법이지.”마게는 장갑을 낀 손으로 눈덩이의 기울어진 곳을 눌렀다. 반쪽인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 장갑 끝에서 드러나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다져 둥근 면을 고쳤다.“이쪽은 낮춰야겠소. 위에 얹을 눈덩이가 기울겠구려.”“제가 밀다가 한쪽을 많이 눌렀어요.”“다시 굴리면 됩니다.”도리가 눈덩이 뒤로 돌아가려 하자 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잠깐. 아래쪽은 바위에 걸렸어. 그쪽 말고 이쪽으로 굴리자.”“여기요?”“응. 셋이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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