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진범의 2차 살인 예고 영상이 방금 수신되었습니다!”
사이버수사팀 형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대형 브리핑 모니터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기괴하게 변조된 음성과 어두컴컴한 배경 화면. 권도현은 실추된 자문위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화면 뒤편의 타일 구조와 콘크리트 마감으로 보아 폐공장 지하입니다. 즉시 북부 산업단지로 수사력을 집중해야……”
“아닙니다.”
수안의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도현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영상 14초 지점의 미세한 환풍기 마찰음, 그리고 젖은 벽면에 반사된 주황색 고압 증기 배관. 저곳은 한성대병원 본관 지하 3층 폐기물 처리장입니다.”
현장 감식반의 즉각적인 교차 검증이 이어졌고, 결과는 이번에도 수안의 완벽한 승리였다.
수사본부장이 지체 없이 결단을 내렸다.
“현 시간부로 현장 진입 작전의 모든 지휘권은 윤수안 경위에게 일임한다. 권도현 교수는 자문위원으로서 후방 대기하도록.”
“서장님! 제가 그 병원의 내부 구조를 가장 잘 압니다!”
도현이 격분해 항의했지만, 이미 신뢰를 완전히 잃은 그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수안은 현장 도면을 내려다보다가 짧게 지시를 보탰다. “출입구는 두 곳으로 나누고, 환풍기 쪽은 소리를 줄여 진입하세요. 범인이 영상을 보낸 목적은 시간을 버는 데 있을 겁니다.” 지휘실의 공기가 곧바로 움직였다. 누군가는 장비를 챙겼고, 누군가는 통신 채널을 확인했다. 수안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을 믿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그 판단대로 발을 옮기는 일이었다.
수안의 손은 무전기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짧은 준비 시간에도 그녀는 도현의 반박보다 현장 안에 남아 있을 사람의 공포를 먼저 계산했다. 복도에 나온 뒤에도 도현의 시선은 등 뒤에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출동 직전, 인적이 드문 복도 비상구.
도현이 앞서 걸어가던 수안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윤수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날 이렇게까지 짓밟고 무시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이성을 잃은 도현의 눈에 핏발이 곤두서 있었다.
“너…… 나 좋아했잖아. 내 인정 하나 받으려고 밤새 연구실 바닥을 닦으며 기어 다니던 계집이었잖아!”
자신의 손아귀에 쥐여 있던 전생의 통제를 되살리려는 비참한 절규. 수안은 낚아채인 손목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도현의 눈을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하수구에 버려진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노골적인 혐오와 무관심이었다.
“손 치우시죠, 권도현 씨.”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도현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때의 난 당신의 가스라이팅에 뇌가 절여진 피해자였을 뿐이고, 지금의 당신은 통제욕에 눈이 멀어 환각을 보는 잠재적 소시오패스 환자일 뿐입니다.”
수안이 손목을 가볍게 털어내자, 도현은 지탱할 힘을 잃고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우욱……!”
도현이 헛구역질을 하며 가슴을 쥐어뜯는 사이, 수안의 무전기에서 작전 개시 신호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
폐쇄병동 401호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도 경건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스테인리스스틸 간이 테이블 위에는 보건복지부, 법무부, 대한정신의학회의 삼중 붉은색 관인이 찍힌 [장기 치료감호 관리 계획 및 의료용 식별 등록서]가 놓여 있었다.법원이 선고한 무기한 치료감호를 집행하되, 연례 외부 심사와 공동 주치의 검토 아래 장기 격리를 유지한다는 문건이었다. 윤수안은 총괄 책임자로 기록됐지만, 처치 변경에는 독립 전문의의 서명이 필요했다.덜컥-!오전 10시 정각, 독립 담당의와 간호사가 의료용 인식 태그를 들고 401호로 들어섰다. 윤수안은 등록 서류를 든 채 황색 안전선 밖에 머물렀다. 도현은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를 대고 그들의 발소리를 들었다.“고개를 드세요, 401호.”독립 담당의의 안내에 도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독립 담당의가 식별 목적과 제거 기준을 설명한 뒤, 간호사가 착용 동의를 확인하고 검은색 밴드를 채웠다. 수안은 선 밖에서 등록 문구와 관리 기준만 확인했다.딸깍-!버클이 단단히 맞물리는 서늘한 금속음이 독방의 적막을 갈랐다.[피험자 401 - 장기관리 책임팀 / 총괄 윤수안]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의료용 인식표였다.도현은 그 행정 표지를 자신과 수안을 묶는 증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서에 적힌 것은 소유가 아니라 관리 책임과 심사 주기였다. 그는 목을 감싼 가죽 밴드의 차가운 감촉에 전율하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흐윽…… 흑, 감사합니다…… 주치의님!”도현은 수안의 구두 코 바로 앞 바닥에 이마를 짓이기듯 비벼대며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이 목걸이야말로 제 평생의 훈장이자 유일한 구원입니다. 당신의 손아귀 안에서만 영원히 숨 쉬겠
국제정신의학회(WPA) 추계 학술대회 메인 세션.‘윤수안 범죄심리 및 외상후스트레스 치유 센터’의 센터장이자 경찰청 총괄 프로파일러인 윤수안의 특별 기조강연이 전 세계 수천 명의 석학들을 압도하고 있었다.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논문의 제목은 [가스라이팅 범죄 이후의 장기 관리와 피해 기록 보호]이었다.“가해자를 격리했다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 기록은 재범을 막고 책임을 확인하는 데만 사용해야 합니다. 자료 사용 범위도 계속 심사받아야 합니다.”윤리위원회가 승인한 비식별 자료에는 401호의 영상과 음성이 빠져 있었다. 수안은 장기 격리 과정의 위험 신호와 독립 심사 기록만 화면에 띄웠다. 강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자료 이용 범위와 치료자의 이해충돌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한 연구자는 환각이 줄었다는 수치만으로 회복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안은 마지막 추적표를 띄웠다. “증상이 줄어든 것과 선택 능력을 되찾은 것은 다릅니다. 이 사례는 성공 판정이 아니라 장기 감독이 필요한 위험 사례입니다.” 다른 질문자는 피해자의 진술이 발표에 포함됐는지 확인했다.수안은 별도 동의를 받지 못한 진술과 사진은 한 건도 싣지 않았다고 답했다.같은 시각, 한성대병원 폐쇄병동 401호. 정규 교육 방송으로 강연을 보던 권도현은 화면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과 영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그는 발표 속 사례가 자신을 가리킨다고 믿으며 눈물을 흘렸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을 혼자 끼워 넣는 오래된 집착이었다.그는 책임을 다루는 강연마저 자신과 수안만의 관계로 바꾸려 했다.“윤 주치의님…… 전 당신의 표본입니다. 네 승리의 디딤돌이고, 네 영원한 포획물이야…….”
폐쇄병동 401호의 아침은 권도현이 바닥을 닦는 정해진 일과로 시작됐다. 결박 침대에서 일어난 도현은 얇은 면 걸레를 두 손으로 쥐고 황색 안전선 안쪽 바닥을 닦았다.그는 여전히 윤수안이 밟고 지나갈 길을 정돈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붙이려 했지만, 병동 일정표에는 운동 기능과 일상 수행 능력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적혀 있었다.덜컥-!오전 9시 정각, 윤수안과 공동 담당의가 함께 독방 앞에 섰다. 도현은 걸레를 정해진 통에 넣고 황색선 뒤에 앉았다. 수안의 구두 소리에 시선이 쏠렸지만, 공동 담당의가 먼저 날짜와 신체 상태를 확인했다.“보고하세요, 401호.”수안의 건조하고 서늘한 명령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도현은 시선을 바닥 45도로 고정한 채,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24시간 동안의 생체 반응을 보고하기 시작했다.“수면 6시간, 심박수 평균 64회. 자정에 올가미 환각이 나타났고, 녹음된 호흡 안내를 세 번 따라 했습니다. 공황 발작은 없었지만 12분 동안 잠들지 못했습니다.”도현은 끝에 붙이려던 ‘이상 없음’이라는 말을 삼켰다. 공동 담당의가 직접 경험한 증상을 빼지 말라고 전날 설명했기 때문이다.수안은 도현의 맥박을 짚고 태블릿에 체크 표시를 남기며 서늘하게 물었다.“오늘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 선택해 수행한 일은 무엇입니까?”도현은 가슴팍에 두 손을 모아 쥐며 황홀경에 젖은 목소리로 답했다.“6시에 일어났고, 물을 요청했습니다. 그다음 바닥을 닦았습니다. 주치의님이 오실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시작하라는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수안은 마지막 문장보다 물을 스스로 요청했다는 대목에 표시했다. 공동 담당의도 같은 항목에 시간을 적었
전날 면담이 중단된 뒤 공동 담당의의 야간 평가가 이어진 다음 날 오전 11시.지잉-!전동 블라인드가 서서히 올라가며 푸르스름한 관찰실 조명이 독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야간 평가와 정해진 급수를 받은 권도현은, 관찰실 조명이 밝아지자 반사적으로 바닥에 이마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덜컥-!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윤수안이 하얀 의사 가운을 펄럭이며 독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현은 황색 안전선 뒤편 콘크리트 바닥을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짚은 채,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어제 면담에서 어떤 반응을 경험했습니까?”수안의 서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차갑게 내리꽂혔다.도현은 쉰 목소리를 쥐어짜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조렸다.“전…… 과거의 권도현 교수가 아니며, 주치의 윤수안 님에게 그 어떤 사적인 감정이나 과거의 기억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 401호 피험자일 뿐입니다. 제 유일한 본분은 주치의님의 처분에 오직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규정집에서 외운 표현과 도현 자신의 말이 뒤섞인 답변이었다.수안은 도현의 가슴팍에 차가운 청진기 판을 밀착시켰다.쿵, 쿵, 쿵. 청진기 너머의 심장박동은 분당 65회로 일정했다. 수안은 한 번의 수치만으로 안정 상태를 단정하지 않고 전날 기록과 대조했다. 차트에는 [피험자 401호: 사적 요구 감소, 타율적 순응 심화. 독립 평가 필요]라고 적었다.공동 담당의는 면담 전후 맥박과 답변 지연 시간을 별도 칸에 기록했다. 밤사이 급수량과 수면 시간도 같은 표에 붙었다. 어느 한 수치도 단독으로 회복을 뜻하지 않았다. 새벽 관찰 기록도 함께 보존됐다.“답변은 기록했습니다. 이후 평가는 독립 담당의와 함께 진행합니다.”수안의 건조한
오전 11시, 폐쇄병동 401호의 정기 심리 면담이 시작됐다.방탄 강화유리 너머에는 윤수안과 독립 담당의가 나란히 앉았고, 환자 대리인은 별도의 기록 화면을 열었다.“401호. 오늘 아침 7시 기상 직후 어떤 반응을 경험했습니까?”결박 침대 옆 황색선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권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눈을 뜨자마자…… 주치의님이 오늘 몇 시에 올지 생각했습니다. 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수안은 답변 시간을 표시했다. 규정표를 외운 흔적과 불안이 한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그 반응이 올라왔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바닥을 보고 숨을 셌습니다. 그런데도 수안아…….”도현은 말을 멈추지 못했다. “날 실험 기록으로만 보지 말고, 아주 조금이라도 과거의 날 기억해 주면 안 될까?”관찰실에서 펜 끝이 멎었다. 수안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의존 반응 증가와 경계 혼동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면담은 여기서 끝내고, 독립 담당의 평가로 전환합니다.”“아니야. 방금 말은 취소할게. 기록에서 빼 줘.”“이미 기록됐습니다. 삭제하지 않습니다.”수안은 마이크에서 손을 떼고 자리를 비켰다. 블라인드는 내려오지 않았고 조명도 그대로였다. 독립 담당의가 자리를 옮겨 인터폰 앞에 앉자 도현은 유리 너머 빈 의자를 보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윤수안 선생이 없는 상태에서도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도현은 대답하려 했지만 이름만 목 안에서 맴돌았다. 담당의는 재촉하지 않고 물컵과 활력 징후 확인 시각을
독립 교대 72시간이 끝난 날 오후 3시 정각, 폐쇄병동 401호의 철문이 열렸다.지난 면회에서 종료를 요청했던 권도현은 황색 안전선 뒤편 바닥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윤수안은 차트 바인더를 든 채 선 밖에 멈췄고, 독립 담당의와 환자 대리인이 먼저 독방 안으로 들어갔다.“고개를 드세요, 401호.”도현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유리창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의 시선은 수안에게만 붙들렸다.“지난 면회에서 보인 거부 반응은 자발적 선택으로 판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72시간 기록과 함께 독립 담당의가 계속 평가할 겁니다.”수안의 말이 끝나자 공동 담당의가 체온계를 들었다. 그는 측정 목적을 설명하고 도현의 동의를 확인한 뒤, 체온계를 이마에 3초간 댔다. 차가운 측정부가 닿는 순간 도현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주치의님이…… 허락한 겁니까?”“체온 측정입니다. 면회 반응과는 관계없습니다.”수안은 황색선 밖에서 대답했다. 도현은 그 말을 듣고도 체온계가 떨어진 자리를 두 손으로 감싸려 했다. 공동 담당의가 손을 멈추게 하자 그는 곧바로 손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면회를 거부하면 수안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연결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환자 대리인이 질문했다. “송민우 씨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본인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도현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 사람이 오면 주치의님이…… 저를 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대리인은 답변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보호나 충성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는 의존 반응이었다. 수안은 평가란에 ‘외부 면회 거부를 관계 보상과 연결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