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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여자의 글씨

Author: POT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6 10:46:43

두루마리의 글씨는 아름다웠고 혜주의 글씨는 아니었다.

“누가 썼습니까?”

“태후전 서기가 썼겠지요. 남자 글씨입니다.”

서련이 획을 짚었다. 붓을 누르는 힘이 고르고 꺾임이 매끄러웠다. 궁의 문서를 쓰는 손이었다.

“제가 읽으면 제 말이 됩니까?”

“읽는 사람의 말이 됩니다. 궁은 그렇습니다.”

혜주는 두루마리를 끝까지 읽었다. 태후의 덕, 태후의 자애, 태후의 선견. 마지막 줄에 후보의 이름을 적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여기 제 이름을 쓰면 이 글이 제 것이 되는군요.”

“예.”

“안 쓰겠습니다.”

“그럼 무엇을 읽으실 겁니까?”

혜주가 붓을 들었다.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굵게 썼다. 세 줄이었다. 글씨는 아름답지 않았다. 빠르고 곧았다.

“이걸 읽겠습니다.”

서련은 세 줄을 읽었다. 하나. 황후가 폐하와 다른 말을 해도 처소를 옮기지 않는다. 둘. 황후가 가져온 재산은 황후의 것으로 남는다. 셋. 황후의 서신은 황후가 먼저 읽는다.

“왜 이 셋입니까?”

“시녀가 회수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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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는 황제 앞에서 절을 하고, 일어나서 물었다.“황후가 폐하와 다른 의견을 말해도 처소와 재산을 지킬 수 있습니까?”편전은 조용했다. 내관 둘이 벽 쪽으로 물러섰다. 서련은 문가에 서 있었다. 교육 담당으로 입회하라는 것이 황제의 조건이었다. 이겸은 그 조건을 붙이며 서련의 얼굴을 보지 않았고, 지금은 혜주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누가 그런 것을 묻느냐.”“제가 묻습니다.”“후보는 절을 하고 물러가는 자리다.”“절은 했습니다.”“황후 후보가 황제에게 처소를 담보 잡듯 묻는 것이냐.”“담보가 아니라 조건입니다. 조항에 처소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못 읽었지만요.”이겸이 처음으로 혜주를 똑바로 보았다. 굳은살 박인 손, 무명 소매, 곧은 등. 태후가 고른 사람이었다. 그는 태후가 무엇을 골랐는지 이제야 보고 있었다.“서련이 시켰느냐.”“서련 님은 ‘묻지 말라’고는 안 하셨습니다. 그것뿐입니다.”“그것뿐이라.”“예. 예법과 문서와 돈을 배웠습니다. 질문은 안 배웠습니다. 원래 있던 겁니다.”“원래 있던 것을 왜 이제 꺼내느냐.”“이제야 물을 사람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태후마마께 물었더니 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위로 왔습니다.”“짐이 태후의 위냐.”“문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문서가 틀렸으면 그것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내관 하나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이겸의 눈이 문가로 갔다. 서련은 그 눈을 받았다. 피하지 않았고, 숙이지도 않았다.여섯 해 전, 옛 중궁의 첫날에 서련은 묻지 않았다. 처소를 지킬 수 있느냐고. 재산이 제 것으로 남느냐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물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배웠다.그래서 여섯 해 뒤에 흰 혼례비단에 제 이름을 적어야 했다. 이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서련.”“예, 폐하.”“너는 그때—”“저는 입회인입니다, 폐하. 오늘의 질문은 후보의 것입니다.”이겸의 입이 다물렸다. 혜주가 한 걸음 나섰다.“폐하. 답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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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비는 누이가 아니라 누이의 스승에게 거래를 제안했다.정현우는 백연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문 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말했다. 이현은 담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았다.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정현우도 그것을 알았다. 그는 이현 쪽을 한 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다고 안 들릴 거리는 아니었다.“누이는 서련 님 말은 듣소.”“제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제 말을 확인합니다. 다릅니다.”“무엇이 다르오.”“듣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고, 확인하는 사람은 틀린 걸 찾아냅니다. 낭자는 벌써 셋을 찾았습니다.”“무엇이든 좋소. 혼인만 성립되면 되오.”정현우가 목소리를 낮췄다.“성립되고 나면 서련 님께도 자리가 생기오. 황후의 스승이었던 분을 그냥 두겠소? 중궁의 살림, 내수고, 원하시는 자리를 아버님께서 폐하께 청하실 거요.”“지금 그 자리를 저한테 파시는 겁니까?”“약속하는 거요.”“약속은 문서로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낭자께 보여 드리기 편합니다.”정현우가 잠시 말을 잃었다.“서련 님은 이 궁에서 아무 자리도 없이 사시오. 객사 손님으로. 그게 언제까지 가겠소.”“객사 값은 제가 냅니다. 그러니 제가 나갈 때까지 갑니다.”“서련 님도 자리가 필요하지 않소?”“필요합니다. 그래서 남의 혼인으로 사지 않습니다.”느티나무 잎이 흔들렸다. 정현우는 서련의 얼굴에서 값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물러섰다.“누이에게는 말하지 마시오.”“지금 가서 말할 겁니다.”“서련 님.”“오라버니가 누이 몰래 스승을 사려 했다는 말을 누이가 남에게서 들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제가 먼저 말하는 게 낫습니다. 낭자께도, 나리께도요.”정현우는 말에 올랐다. 말이 몇 걸음 가다가 멈췄다. 그가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서련에게 내밀었다.“그럼 이것만 전해 주시오. 그 사람 추천서요. 아버님께서 다시 쓰셨소. 경력을 적어서.”서련은 종이를 받았다. 받은 것을 낭자에게 전하는 것은 교육 밖의 일이 아니었다.담 모퉁이에서 이현이 걸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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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서에는 신부의 이름보다 병사의 수가 먼저 적혀 있었다.혜주는 부속 문서를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 그녀가 종이를 뒤집어 여백에 적었다. 병사 이천. 교대 두 번. 이름 하나.“이름 하나는 뭡니까?”단비가 물었다.“접니다.”“이천 명이 제 동의에 매여 있군요.”“매여 있다고 적힌 겁니다. 정말 매여 있는지는 다른 문제고요.”서련이 말했다.“무슨 차이입니까?”“병사의 교대는 병부가 정합니다. 낭자가 동의하든 안 하든 교대는 됩니다. 다만 이 종이가 있으면, 안 될 때 낭자 탓이 되지요.”혜주가 종이를 내려놓았다.“그럼 이 줄을 지우라고 하겠습니다. 병사 일은 병부가 하고, 제 동의는 제가 합니다. 둘을 한 종이에 적지 말라고요.”“종친 자리에서 하셔야 합니다. 부속 문서는 종친부가 보관하니까요.”“가겠습니다.”“종친 자리에는 영의정이 오십니다. 태후마마의 동생이고, 웃으면서 값을 매기는 분입니다.”“활터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과녁을 옮기는 사람이요.”“어찌하셨습니까?”“옮긴 자리를 쐈습니다.”종친 자리는 이틀 뒤였다. 태후는 발 너머에 앉았고 조윤식이 그 옆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영의정은 살이 조금 붙었고 눈은 그대로였다. 명선이 왼쪽, 이현이 오른쪽. 서련은 교육 담당의 자리인 문가에 섰다.혜주가 부속 문서를 탁자에 놓았다.“마지막 줄을 지워 주십시오. 병사 이야기와 제 혼인을 한 종이에 적지 마십시오.”“후보는 군무를 모르오.”조윤식이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모릅니다. 그래서 대신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동의를 값으로 적지 마십시오. 값이 되면 저는 신부가 아니라 대금입니다.”“말이 세군.”“글씨가 셉니다. 말은 그 다음이고요.”조윤식이 웃었다. 부채 없이 웃는 얼굴이 윤태선과 닮아 있었다. 계산이 끝나면 나오는 웃음이었다.명선이 소리 없이 웃었다. 발 너머에서 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으로 조윤식에게 자리를 넘기는 침묵이었다. 조윤식의 눈

  • 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   제127화. 훈육의 값

    딸의 밥값을 스승에게 청구하는 아버지가 있었다.“안 냅니다.”서련이 말했다. 집사가 절한 자세 그대로 굳었다.“서련 님, 아가씨는 곧 황후가—”“그럼 황후의 밥값을 전 황후가 내는 거군요. 궁이 들으면 좋아하겠습니다.”“어르신께서는 훈육의 값이라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분이 먹이는 것이 도리라고요.”“가르치는 값은 폐하께서 정하셨습니다. 먹이는 값은 없습니다. 어르신께 그리 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 더.”서련이 종이를 한 장 밀었다.“객사에서 일한 시녀 둘의 열흘 치 품삯입니다. 정씨 집안 앞으로 청구합니다. 데려오신 분이 내셔야지요.”집사가 종이를 받아 들고 나갔다. 단비가 문틈으로 그 등을 보며 속삭였다.“밥값을 스승한테 받으라는 집이 어디 있어요.”“여기 있네.”혜주가 말했다. 단비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혜주는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문이 닫히자 그녀가 물었다.“객사의 손님은 무엇을 받습니까?”“기본 생활비는 궁에서 나옵니다. 방, 불, 하루 두 끼. 후보의 자리에 딸린 것이라 집안이 끊을 수 없습니다.”“나머지는요?”“나머지는 낭자의 돈입니다.”혜주는 허리춤의 주머니를 풀었다. 은자 몇 개가 나왔다. 많지 않았다.“이걸로 얼마나 갑니까?”“먹는 것만이면 한 달. 옷과 품삯까지면 열흘.”“그럼 줄이겠습니다. 끼니는 두 끼면 됩니다. 활터에서는 하루 한 끼 먹었습니다.”“여긴 활터가 아닙니다.”“그래서 두 끼로 늘렸습니다.”서련은 그 말에 처음으로 입가가 풀렸다. 혜주는 보지 못했다. 그녀는 벽에 세워 둔 활을 보고 있었다.“활을 팔겠습니다.”“활은 남기십시오. 나중에 필요할 겁니다.”“무엇에요?”“과녁에요.”혜주가 서련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활을 벽에서 내렸다.오래 쓴 물건이었다. 손잡이의 가죽이 손 모양대로 닳아 있었다. 혜주는 그것을 한 번 당겨 보았다. 시위 없는 활이 소리 없이 휘었다가 돌아왔다.“그래도 팔겠습니다. 과녁은 활이 없어도 있습니다.”서련은 더 말리지 않았다. 단비를

  • 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   제126화. 여자의 글씨

    두루마리의 글씨는 아름다웠고 혜주의 글씨는 아니었다.“누가 썼습니까?”“태후전 서기가 썼겠지요. 남자 글씨입니다.”서련이 획을 짚었다. 붓을 누르는 힘이 고르고 꺾임이 매끄러웠다. 궁의 문서를 쓰는 손이었다.“제가 읽으면 제 말이 됩니까?”“읽는 사람의 말이 됩니다. 궁은 그렇습니다.”혜주는 두루마리를 끝까지 읽었다. 태후의 덕, 태후의 자애, 태후의 선견. 마지막 줄에 후보의 이름을 적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여기 제 이름을 쓰면 이 글이 제 것이 되는군요.”“예.”“안 쓰겠습니다.”“그럼 무엇을 읽으실 겁니까?”혜주가 붓을 들었다.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굵게 썼다. 세 줄이었다. 글씨는 아름답지 않았다. 빠르고 곧았다.“이걸 읽겠습니다.”서련은 세 줄을 읽었다. 하나. 황후가 폐하와 다른 말을 해도 처소를 옮기지 않는다. 둘. 황후가 가져온 재산은 황후의 것으로 남는다. 셋. 황후의 서신은 황후가 먼저 읽는다.“왜 이 셋입니까?”“시녀가 회수될 때 처소가 남의 것인 걸 봤습니다. 옷장이 빌 때 재산이 남의 것인 걸 봤습니다. 서신은 오라버니가 말해 줬고요.”“보신 것만 적으셨군요.”“안 본 건 못 씁니다. 활도 안 보이는 건 못 쏩니다.”“읽으시면 태후전이 답을 하셔야 합니다.”“그러라고 읽는 겁니다.”“답을 안 하실 수도 있습니다.”“그것도 답입니다.”서련은 말리지 않았다. 다만 종이를 접는 법을 가르쳤다. 두루마리와 같은 크기로 접으면 소매 안에서 구분이 가지 않았다.“말리지 않으십니까?”“말릴 이유를 못 찾았습니다. 낭자가 읽을 글을 낭자가 썼으니까요.”“태후마마께서 서련 님을 탓하실 겁니다.”“그건 마마의 몫입니다. 제 몫은 여기까지고요.”문안 자리는 지난번보다 조용했다. 후궁들은 부채를 들지 않았다. 태후가 발 너머에서 말했다.“후보는 읽으라.”혜주가 두 걸음 나섰다.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 두루마리가 아니었다. 태후전 상궁의 눈이 먼저 알아챘고 입이 늦었다.“후보, 두루마리는—”“읽고

  • 폐위된 황후가 새 황제를 고른다   제125화. 혼자 고른 옷

    혜주에게 남은 옷은 활 쏠 때 입던 것뿐이었다.서련은 그 옷을 탁자에 펼쳤다. 소매가 좁고 옷자락이 짧았다. 말을 탈 때 걸리지 않게 만든 옷이었다. 채운이 손끝으로 솔기를 짚어 갔다.“바탕은 좋습니다. 무명이지만 촘촘합니다.”“문안복으로 되겠습니까?”“문안복 규격이 뭡니까. 소매 길이, 옷자락 길이, 깃 폭. 그것만 맞으면 됩니다. 비단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서련이 치수를 외웠다. 여섯 해 동안 입던 옷의 치수였다. 채운이 그 숫자를 들으며 천을 쟀다.“소매는 덧대면 됩니다. 옷자락은 무명 한 필이면 되고요. 밤은 안 새웁니다.”“교대로 하지요. 옥분과 소례를 부르겠습니다.”“품삯은요?”혜주가 물었다. 시녀들의 품삯을 묻던 목소리 그대로였다.“정당하게 계산합니다. 밤일은 낮일의 곱절로.”“제가 냅니다.”“지금은 제가 대고 장부에 적겠습니다. 갚으실 때 갚으십시오.”혜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빚이라는 말을 서련이 쓰지 않아서였다.밤이 되자 옥분과 소례가 왔다. 옥분은 눈이 침침해 불을 두 개 켰고, 소례는 말없이 실을 골랐다. 혜주가 바늘을 집었다.“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활 쏘는 손이 바늘을 잡습니까?”채운이 물었다.“잡습니다. 시위보다 가늘어서 잘 안 보일 뿐이지요.”채운이 잠시 보다가 옷자락의 시침을 맡겼다. 바늘땀이 굵고 곧았다. 글씨와 같았다.“품삯에 들어갑니까?”“제 옷이니 안 들어갑니다.”“그럼 좋습니다.”새벽까지 세 사람이 번갈아 바느질했다. 태후전 시녀 둘은 문가에 앉아 그것을 다 보았다. 서련은 그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보라고 두었다. 채운이 마지막 솔기 안쪽에 둥근 매듭을 세 번 지었다.“이건 뭡니까?”“제 표시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옷은 압니다.”새벽에 옥분이 돌아가며 서련에게 말했다.“밤일 곱절, 잊지 마십시오.”“적었습니다.”“전 황후가 적으면 믿습니다. 전에는 안 믿었고요.”옥분은 그 말을 남기고 갔다. 서련은 장부에 세 이름을 적고 그 아래 제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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