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절대로…… 절대로 이 여자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뽀삐는 맹세했다.
앞으로 그녀가 손을 달라고 하면 손을 주고, 구르라고 하면 구르겠다고.
그것만이 이 괴물 같은 여자 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임을, 짐승의 본능이 짖어대고 있었으니까.
“뽀삐야, 들어가자. 저 아저씨 일어나면 가겠지.”
여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젠장, 꼬리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등 뒤로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뒷모습이, 그 어떤 악마보다 거대해 보였다.
* 우리 집 강아지는 농사도 잘 짓지
마당에 쓰러져 있던 ‘수상한 아저씨’는 한참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곤히 잠든(기절한) 그를 내려다보았다.
“거참, 낮술이라도 드셨나. 남의 집 앞마당에서 이렇게 푹 주무시면 곤란한데.”
[시스템: ‘기절한 흑마법사(Lv.15)’는 상태 이상 [뇌진탕/영구적 마력 회로 손상] 상태입니다.]
시스템 창이 떴지만, 내 눈에는 그저 [상태: 숙취 / 떡실신] 정도로만 보였다.
이대로 두면 미관상 좋지 않다. 우리 집은 힐링 펫샵을 지향하는데, 입구에 취객이 널브러져 있어서야 원.
“뽀삐야, 잠깐 비켜볼래?”
나는 뽀삐를 뒤로 물러나게 한 뒤, 아저씨의 다리 한 짝을 잡았다.
질질질.
아저씨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는 그를 오두막 울타리 밖, ‘퇴비 보관함’이라고 써진 구덩이 근처로 끌고 갔다.
“여기서 주무시다가 정신 드시면 가세요~”
나는 그를 숲의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뉘어주었다.
물론 내 눈에는 부드러운 풀밭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곳은 ‘식인 개미’들의 이동 경로였다. 뭐, 자연 친화적인 곳이니까 알아서 잘 일어나시겠지.
나는 손을 탁탁 털고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다.
오늘 할 일은 많았다.
어제 주워 온 씨앗들을 심어 텃밭을 가꿔야 했다. 귀농 라이프의 꽃은 자급자족 아니겠는가.
“자, 뽀삐야! 이제 밥값 하러 가자!”
나는 창고에서 호미와 물뿌리개를 챙겨 들었다.
뽀삐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녀석, 벌써 나랑 노는 게 좋은가 보다.
[칼리드 드 에페르토 시점]
칼리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자가 흑마법사를 처리하는 방식은 잔혹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제국의 1급 수배자인 흑마법사를 마치 쓰레기봉투처럼 질질 끌고 가더니, ‘아귀(Hungry Ghost)의 늪’ 입구에 던져버렸다.
‘살려 보낼 생각이 없군.’
기절한 흑마법사의 몸 위로 검붉은 개미 떼가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놈은 아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뼈만 남게 될 것이다.
칼리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여자의 ‘친절’은 오로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존재에게만 적용된다. 울타리 밖의 존재는 그저 ‘배경’이나 ‘거름’ 취급이다.
‘나는…… 울타리 안이라서 다행인 건가.’
안도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때, 여자가 호미를 들고 그를 불렀다.
“자, 뽀삐야! 이제 밥값 하러 가자!”
밥값.
칼리드의 귀가 쫑긋 섰다.
그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그녀가 나에게 최고급 마수 고기를 먹이고, 드래곤 가죽 목줄(리본)을 채워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투 훈련인가? 아니면 마수 토벌?
제국의 대공으로서 무력에는 자신 있었다. 그녀의 기대에 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데려간 곳은 마수들의 전장이 아니라, 오두막 옆의 공터였다.
“여기 땅 좀 파줄래? 호미질하기가 힘드네.”
여자가 흙바닥을 가리켰다.
땅을 파라고?
칼리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깨달았다.
이것도 훈련의 일종이다. 단순한 삽질이 아니라, 오러(Aura)를 이용해 지반을 다지는 정교한 마력 컨트롤 훈련일 것이다.
‘보여주지. 내 능력을.’
칼리드는 앞발에 마나를 집중했다.
은색의 발톱이 날카롭게 빛났다. 바위도 두부처럼 자르는 소드마스터의 검기(Sword Aura)가 발톱 끝에 맺혔다.
콰아앙-!
칼리드가 앞발을 내리꽂자, 땅이 폭발하듯 파헤쳐졌다.
단단한 동토의 땅이 순식간에 갈려 나가며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완벽하다.
이 정도면 그녀도 나의 힘을 인정하고…….
“어머, 우리 뽀삐 힘도 좋네! 트랙터가 따로 없어!”
여자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트랙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파놓은 구덩이에 무언가를 심기 시작했다.
‘……잠깐. 저건?’
칼리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평범한 씨앗이 아니었다.
보랏빛 독기를 뿜어내는, 사람 얼굴 모양의 뿌리.
비명을 지르면 듣는 사람의 고막을 터뜨려 죽인다는 전설의 마물, ‘만드라고라’였다.
“으에에앵! 꺄아악!”
심지어 그 만드라고라는 살아 있었다. 흙 속에 묻히기 싫어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소리를 듣자마자 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만드라고라의 머리통을 딱밤으로 쥐어박았다.
“쓰읍! 조용히 해. 맘마 먹고 쑥쑥 커야지.”
딱!
만드라고라가 ‘헉’ 하고 숨을 멈추더니 기절했다.
여자는 기절한 만드라고라를 흙 속에 쑤셔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흙을 덮었다.
“토마토 심었으니까, 이쪽에는 감자 심어야지.”
그녀가 ‘감자’라고 부른 것은, 폭발성 포자를 품고 있는 ‘봄버 포테이토(Bomber Potato)’였다. 건드리면 터지는 지뢰 같은 식물을 그녀는 맨손으로 조물딱 거리며 심었다.
칼리드는 뒷걸음질 쳤다.
이 밭은 텃밭이 아니다.
이곳은 제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생화학 무기 저장소다.
“뽀삐야, 물 좀 줄래? 저기 물통에 있는 거.”
여자가 가리킨 물통.
그 안에서 출렁이는 액체는 투명한 물이 아니었다.
은은하게 푸른 빛을 내는, 고농축 마나 용액(Mana Liquid).
마법사들이 평생 한 병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그 귀한 것을, 그녀는 농업용수로 쓰고 있었다.
‘이 밭에서 자란 작물들은…… 대체 어떤 괴물이 되는 거지?’
발렌 기사단장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들어봤어도, 진짜로 배를 산으로 옮기라니.“가능합니다.”로드릭(마탑주)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섰다.“저희 마탑의 ‘반중력(Anti-Gravity)’ 마법과, 한스의 ‘부스터 엔진’을 결합하면…… 배를 띄워서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오! 역시 로드릭 아저씨! 똑똑해!”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결국 우리는 오두막 앞마당을 ‘조선소’로 개조했다.숲속에서 거대한 강철 선박을 건조하는, 전대미문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건조 10일 차]오두막 앞마당은 거대한 공사판이 되었다.밭갈이 1호와 2호(새로 만든 로봇)가 크레인처럼 자재를 날랐고, 오크들은 철판을 두드렸다.“영차! 영차! 밥 먹고 힘내라!”오크 대장 가르카가 확성기를 들고 지휘했다.오크들은 이제 건설 현장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안전모(바가지)를 쓰고 작업복(조끼)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제법 전문적이었다.나는 현장 식당(함바집)을 운영했다.메뉴는 ‘고봉밥’과 ‘제육볶음’, 그리고 시원한 ‘오이냉국’.
그렇게 나의 사업을 방해하던 세력은 사라졌고, ‘에델린 맘마’는 제국 황실 납품 공식 인증을 받게 되었다.돈방석에 앉게 된 건 덤이었다.* 아기의 첫 던전 탐험 (feat. 지하의 비밀)레온이 3살이 되었다.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고, 뛰어다니는 속도가 치타 수준이었다.그리고 사고 치는 스케일도 커졌다.어느 날, 레온은 한스가 만들어준 ‘드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오두막 지하실 구석에서 땅파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두두두두! 땅 파기 재밌다!”레온이 드릴을 바닥에 꽂았다.그런데 이 장난감, 사실은 실제 채굴용 드릴의 축소판이었다. (한스의 안전 불감증이 또……)우르릉-!바닥이 무너져 내렸다.레온은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 속으로 쏙 빠졌다.“레온아!”나는 놀라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다행히 레온은 푹신한 흙더미 위에 떨어져서 멀쩡해 보였다.하지만 그곳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오두막 지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고대 유적’의 입구였다.[시스템: 히든 던전 ‘잊혀진 왕의 무덤(Lv. ???)’을 발견했습니다.]&ld
나는 눈을 의심했다.그것은 유모차가 아니었다. 소형 전차였다.바퀴는 험지 돌파용 광폭 타이어였고, 프레임은 오리할콘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햇빛 가리개에는 ‘자동 방어막 생성 장치’가 달려 있었고, 손잡이에는 ‘부스터 가속 레버’가 있었다.심지어 컵홀더 옆에는 ‘미니 미사일(마법탄) 발사 버튼’까지.“안전이 최우선이지! 5서클 마법까지 방어 가능하고, 유사시에는 비행 모드로 변신해서 탈출도 가능하다네!”한스는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나는 한숨을 쉬었다.동네 마실 나가는데 이런 전차가 필요할까?“멋지군.”하지만 칼리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역시 한스야. 이 정도는 돼야 안심하고 산책을 시키지.”남자들의 감성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결국 우리는 그 ‘전차 유모차’에 레온을 태우고 산책을 나갔다.레온은 유모차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폭신한 시트(슬라임 쿠션)에 앉아 핸들을 잡고 “부우웅!” 소리를 냈다.“자, 출발한다!”칼리드가 유모차를 밀었다.아니, 밀었다기보다는 ‘운전’했다.오두막 앞의 울퉁불퉁한 숲길도 이 유모차 앞에서는 아스팔트 도로와 다름없었다.서스펜션 기능이 탁월해서 레온은 흔들림 하
내 눈에는 레온이 그냥 ‘꿈틀이 젤리’를 먹다가 뱉은 거로 보였다.하지만 발렌과 기사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S급 마수를 간식처럼 씹어먹는 1살짜리 아기라니.이 아이는…… 북부의 미래이자 재앙이었다.오후에는 기저귀 소동이 일어났다.레온이 큰일(?)을 본 것이다.“누가 기저귀 좀 갈아줘요!”내 외침에 이번에는 엘프 이릴이 나섰다.“제가 하겠습니다. 숲의 아이들은 엘프가 전문이죠.”이릴은 우아하게 다가와 기저귀를 열었다.그리고 표정이 굳었다.아기의 배설물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레온이 먹은 게 ‘드래곤 분유(용의 젖)’와 ‘만드라고라 이유식’이다 보니, 나오는 것도 평범할 리 없었다.이건 똥이 아니라 ‘고농축 마력 덩어리’였다.“이, 이건……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위험합니다.”이릴은 떨리는 손으로 기저귀를 봉인했다.마치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폭발물 처리반 같았다.“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데 왜 그래요?”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결국 그날 나온
“응애!”레온이 울음을 터뜨리자, 펑! 소리와 함께 아이가 변신했다.작고 하얀…… 강아지로.그것도 뽀삐보다 더 작은, 솜뭉치 같은 강아지였다.“어머!”나는 놀라서 입을 막았다.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칼리드의 ‘수인화 저주(사실은 축복)’가 아이에게도 유전된 것이다.하지만 칼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그는 강아지로 변한 아들을 능숙하게 안아 올렸다.“괜찮다. 아빠도 그랬으니까.”그는 아들에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레온. 네 엄마는 강아지를 아주 좋아한단다. 너는 사랑받으며 자랄 거야.”나는 웃음을 터뜨렸다.맞다. 나는 펫샵 사장이니까.이제 우리 집에는 큰 강아지(남편)와 작은 강아지(아들)가 함께하게 되었다.“여보, 산책 갈까요?”“좋다.”칼리드가 한 손에는 레온(강아지)을 안고,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우리는 봄꽃이 만발한 오두막 정원을 걸었다.뒤에는 기사단, 엘프, 드워프, 오크들이 졸졸 따라오며 호들갑을 떨었다.“도련님! 꼬리 흔드시는 것 좀 봐!”“심장 아파! 너무 귀
* 마왕님, 저희 가게 VIP 되실래요?소문은 빨랐다.인간들이 절망의 협곡에 들어와서 용암 웅덩이를 개조하고, 케르베로스를 애완견으로 부리며, 임프들을 직원으로 쓴다는 소문이 마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마계 2호점 오픈 3일 차]“어서 오세요~ 물 좋습니다!”임프들이 입구에서 수건을 나눠주며 호객 행위를 했다.손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호기심에 찾아온 하급 마족들이었지만, 한 번 맛을 본 뒤로는 단골이 되었다.“크아아, 좋다. 역시 물은 뜨거워야 제맛이지.”오크 워리어들이 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서큐버스 언니들은 냉탕에서 피부 관리를 했다.“어머, 이 물 뭐니? 피부가 탱탱해졌어.”나는 카운터(바위 위에 판자 깐 것)에 앉아 입장료를 받았다.마계의 화폐인 ‘마석’이나 희귀한 ‘약초’ 등을 받았다.짭짤했다.이대로라면 본점 매출을 넘어서겠는걸?하지만 장사가 잘되면 꼭 꼬이는 게 있는 법.이번에는 급이 달랐다.쿠구구궁!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내리꽂혔다.탕에 있던 마족들이 기겁하며 튀어 나갔다.“마, 마왕성에서 오셨다!”“군단장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