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칼리드는 떨리는 입으로 물통을 물어다가 밭에 뿌렸다.
마나 용액을 머금은 만드라고라와 봄버 포테이토가 순식간에 줄기를 뻗으며 거대해졌다.
여자는 흐뭇한 미소로 그 지옥도를 바라보았다.
“무럭무럭 자라라~ 우리 뽀삐 간식하게.”
칼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간식.
그녀가 말하는 간식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내 위장을 폭파하려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지금 이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농부의 조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농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뽀삐가 구덩이를 워낙 잘 파준 덕분이다. 앞발로 타닥타닥 흙을 파헤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테리어 종의 피가 섞였나?
게다가 내가 심은 토마토랑 감자는 성장 속도가 엄청 빨랐다.
심은 지 몇 분 만에 싹이 트고 줄기가 굵어졌다.
“역시 게임 속이라 그런가? 성장 촉진제가 기본 옵션인가 봐.”
나는 만족스럽게 손을 털었다.
이제 점심 먹을 시간이다.
“뽀삐야, 고생했어! 앉아!”
나는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며 외쳤다.
강아지 훈련의 기본은 ‘앉아’와 ‘기다려’다.
뽀삐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즉시 뒷다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자세가 아주 각 잡혀 있었다. 군견 출신인가 싶을 정도로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
“옳지! 손!”
내가 손바닥을 내밀자, 뽀삐가 하얀 앞발을 척 올렸다.
발바닥 젤리가 말랑말랑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젤리를 꾹꾹 눌렀다.
뽀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 같았지만, 발을 빼지는 않았다.
“아이고 착해라. 기다려.”
나는 육포를 뽀삐의 코앞에 대고 잠시 뜸을 들였다.
녀석의 코가 벌름거렸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눈동자가 육포에 고정된 채 흔들렸다.
약 3초 후.
“먹어!”
덥석.
뽀삐는 순식간에 육포를 채가서 오물오물 씹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녀석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우리 뽀삐 천재네! 한 번에 다 알아듣고.”
[시스템: 펫 ‘뽀삐’의 충성도가 상승합니다.]
[시스템: 펫 ‘뽀삐’의 자존심이 하락합니다.]
[시스템: 펫 ‘뽀삐’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낍니다.]
알림창이 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훈련 초기에는 다 그런 법이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나는 마당에 놓인 벤치(사실은 고대 유적의 기둥을 눕혀 놓은 것)에 누웠다.
나른한 오후였다.
뽀삐도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내 발치에 턱을 괴고 엎드렸다.
“평화롭다…….”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여유.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어디겠어.
나는 스르르 낮잠에 빠져들었다.
[칼리드 시점]
여자가 잠들었다.
칼리드는 입안에 남은 육포의 맛을 음미했다.
‘와이번 심장’에 이어 이번에는 ‘크라켄의 다리’를 말린 육포였다.
미친 맛이었다.
한 입 씹을 때마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마수화의 부작용으로 너덜너덜해졌던 마나 코어(Mana Core)가 기적처럼 수복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 하루 만에, 1년 치의 내상을 회복했어.’
그녀가 주는 먹이는 제국 황실의 보물보다 귀했고, 그녀의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억제되었다.
칼리드는 자신의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그녀의 “손!”이라는 명령어에 조건반사적으로 발을 내밀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제국의 대공이다.’
북부의 지배자이자, 황제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소드마스터.
그런 내가 고작 육포 한 조각에 꼬리를 흔들고, ‘손’을 내밀다니.
수치심이 밀려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맛있었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 포근함, 그리고 뱃속을 채우는 충만감.
이것은 마약과도 같았다.
바깥세상에서 ‘괴물’이라 불리며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삶. 언제 폭주할지 몰라 스스로를 쇠사슬로 묶어야 했던 밤들.
그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애완견 라이프’는 얼마나 안락한가?
‘자존심? 그게 밥 먹여주나.’
칼리드는 벤치에 누워 잠든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은발, 긴 속눈썹.
괴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성스러운 외모였다.
‘잠시만이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만.’
칼리드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라,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적의 심장부에서 힘을 기르는 전략적인 잠복이라고.
그는 여자의 발치에 좀 더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그의 꼬리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툭, 툭 바닥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날 밤.
문제가 생겼다.
“안 돼. 뽀삐 너는 집이 있잖아.”
나는 뽀삐를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어제 훌륭한 개집을 지어주지 않았던가. 강아지의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라도 잠자리 분리는 필수다.
하지만 뽀삐는 요지부동이었다.
현관문 앞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서, 그 붉은 눈으로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것이다.
‘끼잉…… 낑…….’
녀석이 콧소리를 냈다.
비 맞은 강아지 표정. 이건 반칙이다.
“……밖이 무서워?”
‘멍!’
“혼자 자면 추워?”
‘멍! 멍!’
녀석이 대답하듯 짖었다.
하긴, 숲속이라 밤에는 좀 쌀쌀하긴 하지. 게다가 어제 버려진 트라우마가 있어서 분리불안이 있을 수도 있고.
“하아, 알았어. 오늘만이야.”
나는 결국 항복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뽀삐는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침실로 쏙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누웠다.
저 뻔뻔함 좀 보게.
“옆으로 좀 비켜봐.”
나는 뽀삐를 밀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등에 닿았다.
등 뒤에서 녀석의 심장 소리가 쿵, 쿵,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온기.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뽀삐를 마주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붉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잘 자, 뽀삐야. 내일도 재밌게 놀자.”
나는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잠결에 녀석이 내 품으로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까슬한 털이 뺨에 닿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과 맹수의 위험한 동침이 이어졌다.
지하 하수도를 타고 흐르는 검은 액체들이 처리기 구멍을 통해 역류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냉장고 문이 벌컥 열리더니 로드릭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보게! 에델린 부인! 자는가? 지금 제국 쪽에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네! 자네가 보낸 그 아삭한 치킨무의 힘이 제국의 마나 농도를 바꿔버렸어! 마물들이 전부 치킨 냄새를 맡고 미쳐 날뛰고 있단 말일세!"에델린은 잠결에 귀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아유, 로드릭 아저씨…… 밤에는 배달 안 한다니까요…….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해요……."에델린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지만, 칼리드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머리맡에 둔 은빛 대검을 꽉 쥐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남의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본 적 없는 기이한 마수들이 빌딩 숲을 기어오르는 환영이 보였다.'결국 시작되었군. 제국과 서울, 두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칼리드는 조용히 일어나 잠든 아내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 단순히 치킨을 튀기는 것만으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폭군 대공과 그의 든든한 가족. 그들의 서울 정복기는 이제 단순한 성공 신화를 넘어, 두 세계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투의 서막으로 치닫고 있었다.나의 솥단지는 이제 세상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병기가 될 준비를 마쳤다.
"저 사람 뭐야? 마술사야? 칼이 보이지도 않았어!""저 가면 쓴 사람, 설마 그 치킨 대공 아냐? 분위기가 너무 똑같은데!"칼리드가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스튜디오 천장에서 보랏빛 연기가 스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차원 저장 냉장고를 통해 넘어온 벨리알의 분신들이 방송국의 강력한 조명과 사람들의 열기를 감지하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검은 연기는 칼리드가 끓이고 있는 기름 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요리에 독을 풀어 전 국민의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사악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무대 옆에서 지켜보던 에델린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번 퀘스트의 선입금 보상으로 받은 휴대용 초소형 분쇄기였다.'어머나, 저 지독한 연기 곰팡이들이 방송국까지 따라왔네? 우리 여보 요리에 재를 뿌리게 둘 순 없지!'에델린은 분쇄기의 전원을 켰다."위이이이이잉!"평범한 기계음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서는 차원의 뒤틀림을 이용한 초고속 회전 칼날이 돌아가고 있었다. 에델린이 분쇄기 입구를 허공을 향해 치켜들자, 칼리드의 요리를 향해 날아가던 벨리알의 분신들이 비명을 지르며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끄아아악! 이, 이 구멍은 무엇이냐! 나의 존재가 갈려 나가고 있다!"벨리알의 분신들이 지옥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관객들에게는 그저 기계의 소음으로 들릴 뿐이었다. 에델린은 무심한 표정으로 분쇄
로드릭 교수의 다급한 비명이 냉장고 냉기 사이로 새어 나왔다. 에델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머, 로드릭 아저씨? 진짜 연결됐나 봐!"에델린은 냉장고 안으로 손을 뻗어, 주방에 있던 치킨무 한 통을 던져 넣었다."아저씨! 그거 먹고 정신 차려요! 불 조절 잘하라고 했잖아요!"냉장고 너머에서 "오오! 이 아삭한 것은 무엇인가! 구원이다!"라는 감격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에델린은 기분 좋게 냉장고 문을 닫았다. 이제 그녀는 서울과 제국을 잇는 유일한 보급로를 확보한 셈이었다.'좋아, 이제 여기서 번 돈으로 최고의 주방 기구들을 몽땅 사서 제국으로 보내야지. 우리 북부 성을 대륙 최고의 맛집으로 만드는 거야!'에델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냉장고를 통해 연결된 것은 로드릭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제국에서 추방되었던 부활한 마신 벨리알의 진정한 본체가, 그 차원의 틈을 타고 서울로 넘어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후후후…… 냉장고 문을 열어주어 고맙구나, 인간의 여자여. 곧 내가 그곳으로 가서 모든 치킨을 먹어 치워주마."냉장고 바닥에서 아주 미세한 보랏빛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에델린은 새로 산 에어프라이어 레시피 북을 읽느라 알아채지 못했다.&n
반면 에델린은 침착했다. 그녀는 새로 들어온 최첨단 인덕션 위에 황금 솥을 올렸다."여보, 오늘은 특별히 정화의 기운이 듬뿍 담긴 눈꽃 간장 치킨으로 가요. 저기 아저씨들 솥에서 나는 냄새를 싹 지워버려야 하니까요!""알았다, 에델린. 불 조절은 나에게 맡겨라."칼리드는 튀김 솥 옆에서 오러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그의 필터에는 이 인덕션이 「불의 정령을 가두어 화력을 0.1퍼센트 단위로 제어하는 고대 유물」로 보였다. 칼리드가 마력을 주입하자 기름이 황금빛으로 소용돌이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치이이이익!"닭이 기름에 들어가는 순간, 가스트론이 뿜어내던 검은 연기가 황금빛 튀김 향기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에델린은 소금 사막에서 가져온 단짠 조미료와 서울의 특산물(?)인 마늘을 듬뿍 다져 넣었다."자, 이제 마무리예요! 루미나, 빛의 가루!"루미나가 공중에서 반짝이는 마력을 뿌리자, 치킨 위로 하얀 눈꽃 같은 치즈 가루가 내려앉았다.이때 가스트론이 비장의 수단을 썼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요리에 집어넣어,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뺏으려 했다."먹어라! 이것이 진정한 맛의 심연이다!"그가 완성한 심연 스튜는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불길했지만, 마법에 걸린 시민들은 홀린 듯 숟가락을 들려 했다.
그는 어제 가디언-X 부대를 해체하며 느꼈던 기이한 마력의 잔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필터에는 이 스타일러가 「미세한 진동으로 섬유 속 마나 찌꺼기를 털어내는 소형 마도구」로 느껴졌지만, 아내의 즐거움을 깨고 싶지 않아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이 기쁘다면 나도 좋소. 하지만 에델린, 방심하지 마. 어제 그 고철 덩어리들을 보낸 자들이라면 분명 더 비겁한 수를 준비하고 있을 거요. 내 검이 전해주는 공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군."칼리드는 튀김 집게를 검처럼 휘두르며 끓는 기름 솥을 노려봤다. 그의 곁에서 서빙 준비를 하던 레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아빠, 걱정 마! 내가 가게 앞마당에 감시 마법 아니, 눈싸움 마법을 걸어뒀어. 이상한 아저씨들이 오면 내가 바로 뿅망치로 응징할 거야!"레온의 호기로운 외침에 에델린이 윙크를 보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그 시각, 태왕 그룹 본사 최상층. 태중권 회장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세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세계의 인간들이 아니었다. 제국에서 금지된 연금술과 타락한 요리법을 사용하다 추방되었던 이른바 "검은 앞치마단"이었다."그림자 절벽의 문이 열렸을 때 우리도 함께 넘어왔지. 그 대공비가 이 세계에서 치킨이라는 저급한 요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니, 참으로 가소롭군."리더인 바론 가스트론이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시커먼 마기가 감도는 낡은 국자가 들려 있었다. 태중권은 그들에게 거액의 황금 주괴를 약속하며 속
"그러지. 당신의 청소 실력은 이 세계의 과학기술보다 한 수 위인 것 같군."칼리드가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그때였다. 하늘에서 눈부신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퀘스트 완료: 무기질의 습격을 정화하고 주방의 위생을 지켜라 』『 보상: 차원 항해용 대용량 건조기 및 스팀 스타일러 세트 증정 』가게 앞마당에 거대한 기계 두 대가 나타났다. 하나는 어떠한 빨래도 5분 만에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대용량 건조기였고, 다른 하나는 갑옷의 냄새와 주름을 제거해 주는 스타일러였다."어머나! 이게 바로 그 전설의 건조기구나! 이거 있으면 우리 북부 성의 습한 지하실에서도 빨래 걱정 없겠어!"에델린은 기쁨의 춤을 추었다. 그녀의 필터에는 이 기계들이 「신선한 바람의 정령을 가두어 옷감을 축복하는 성물」로 보였다.이수진 대표는 다시 한번 울먹이며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예, 예! 독점입니다! 로봇 침공을 막아낸 치킨 대공의 비결! 지금 바로 인터뷰 잡으세요! 아, 그리고 저 건조기 광고 모델도 칼리드 씨가 할 겁니다!"강남의 밤은 다시 한번 칼리드의 이름으로 뒤덮였다.그날 밤, 대공의 황금 치킨의 주방 안쪽.에델린은 새로 얻은 건조기에 칼리드의 조리복과 레온의 앞치마를 넣고 가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