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한편, 오두막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숲의 외곽.
“대공 전하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습니다.”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빗물에 젖은 숲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북부 대공가의 문장인 ‘포효하는 늑대’가 새겨져 있었다.
기사단장 ‘발렌’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닥을 살폈다.
마수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갈기갈기 찢겨 죽은 마수들. 그리고 주변의 나무들이 흉폭한 힘에 의해 꺾여 있었다.
분명 대공의 폭주 흔적이었다.
“마기 반응이 이쪽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사라졌어.”
발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공의 폭주는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마기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대공이 죽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대공을 제압했거나.
“단장님! 저쪽을 보십시오!”
부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발렌의 시선이 부관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숲의 안개가 걷히고, 기이할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처럼 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빛이 감도는 구역.
하지만 발렌은 본능적으로 검자루를 쥐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서, 소드마스터인 자신조차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포심(Fear)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곳은…… 금지된 구역, ‘마녀의 정원’입니다.”
병사들이 동요했다.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다는 전설의 마굴.
대공의 흔적이 저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하께서 저곳에 계신다.”
발렌이 비장하게 말했다.
“설령 마녀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군을 구출한다. 전원, 돌격 준비!”
“와아아아-!”
북부의 정예 기사단이 결의에 찬 함성을 지르며 ‘마녀의 정원’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들이 구하러 가는 주군이, 지금 그 마녀의 침대 위에서 배를 까고 꿀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상대하러 가는 마녀가, 그들을 ‘새로운 손님(혹은 장난감)’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나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깼다.
“으음…… 뭐야?”
밖이 시끄러웠다.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고, 꽹과리 소리 같기도 하고.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뽀삐가 먼저 깬 모양이다.
“뽀삐야?”
나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 저편, 숲의 입구에 웬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코스프레 동호회인가?
[시스템: ‘북부 기사단(Lv.50~70)’이 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시스템: 대규모 퀘스트 ‘우리 집을 지켜라’가 발생했습니다.]
아하, 이벤트구나!
게임에서 가끔 발생하는 ‘영지 방어전’ 같은 건가 보다.
나는 신이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저번에는 취객 한 명이라 시시했는데, 이번에는 꽤 많네?
“좋아, 뽀삐랑 같이 몸 좀 풀어볼까?”
나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나갔다.
마당에는 이미 뽀삐가 나와 있었다.
녀석은 대문 앞을 막아서고, 몰려오는 은색 무리를 향해 무시무시하게(내 눈엔 귀엽게) 짖고 있었다.
“멍! 멍! 컹!”
마치 ‘우리 주인님 자니까 조용히 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특한 녀석.
그때, 은색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사악한 마녀여! 우리 주군을 내놓아라!”
주군?
무슨 컨셉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는 나의 모습. (기사들 눈에는 칠흑의 로브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마왕처럼 보였겠지만.)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웬 소란이세요?”
내가 웃으며 묻자, 기사들이 일제히 뒷걸음질 쳤다.
왜 저래? 내가 안 씻어서 냄새나나?
“저, 저 여자가 대공 전하를……!”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다리 옆에 있는 뽀삐를 보고 경악했다.
아, 우리 뽀삐가 너무 귀여워서 놀랐나 보구나.
“네, 이 아이가 제 반려견 뽀삐예요. 귀엽죠?”
나는 뽀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순간, 숲 전체에 정적이 감돌았다.
“……반려견?”
“뽀삐?”
기사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들은 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모셔온,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인 칼리드 대공이.
분홍색 리본을 목에 매고, 여자의 손길에 맞춰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칼리드(뽀삐)는 기사들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잠시,
‘죽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대환장 착각 파티에 새로운 희생양들이 입장한 것이다.
*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feat. 기사단 농노화 계획)
정적.
숨 막히는 침묵이 숲의 입구를 감돌았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은색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내 다리 밑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는 뽀삐를.
그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치 지구 종말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대공, 전하?”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뽀삐의 목에 묶인 ‘분홍색 리본’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반응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펫 자랑은 만국 공통인가? 우리 뽀삐가 좀 잘생기긴 했지. 리본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강아지는 흔치 않으니까.
“알아보시겠어요? 우리 뽀삐가 인물이 좀 훤하죠?”
내가 환하게 웃으며 묻자, 기사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는 검을 쥔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을 주며 소리쳤다.
“네 이년! 감히 제국의 태양이신 대공 전하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칭찬을 해줘도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대사는 또 왜 저렇게 올드해? ‘네 이년’이라니, 요즘 사극 드라마도 저런 대사는 안 쓰겠다.
[시스템: 퀘스트 ‘우리 집을 지켜라’ 진행 중]
[적대 세력의 ‘선제공격’이 예상됩니다.]
시스템 창이 반짝였다.
아하, 이거 그거구나.
진상 손님 퇴치 퀘스트.
가끔 게임에서 ‘가게 평판’을 떨어뜨리러 오는 불량배 NPC들이 있는데, 딱 그 패턴이다.
컨셉이 ‘광신도 기사단’인가? 자기들이 모시는 ‘대공’이라는 존재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설정인 모양이다.
발렌 기사단장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들어봤어도, 진짜로 배를 산으로 옮기라니.“가능합니다.”로드릭(마탑주)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나섰다.“저희 마탑의 ‘반중력(Anti-Gravity)’ 마법과, 한스의 ‘부스터 엔진’을 결합하면…… 배를 띄워서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오! 역시 로드릭 아저씨! 똑똑해!”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결국 우리는 오두막 앞마당을 ‘조선소’로 개조했다.숲속에서 거대한 강철 선박을 건조하는, 전대미문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건조 10일 차]오두막 앞마당은 거대한 공사판이 되었다.밭갈이 1호와 2호(새로 만든 로봇)가 크레인처럼 자재를 날랐고, 오크들은 철판을 두드렸다.“영차! 영차! 밥 먹고 힘내라!”오크 대장 가르카가 확성기를 들고 지휘했다.오크들은 이제 건설 현장의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안전모(바가지)를 쓰고 작업복(조끼)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제법 전문적이었다.나는 현장 식당(함바집)을 운영했다.메뉴는 ‘고봉밥’과 ‘제육볶음’, 그리고 시원한 ‘오이냉국’.
그렇게 나의 사업을 방해하던 세력은 사라졌고, ‘에델린 맘마’는 제국 황실 납품 공식 인증을 받게 되었다.돈방석에 앉게 된 건 덤이었다.* 아기의 첫 던전 탐험 (feat. 지하의 비밀)레온이 3살이 되었다.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고, 뛰어다니는 속도가 치타 수준이었다.그리고 사고 치는 스케일도 커졌다.어느 날, 레온은 한스가 만들어준 ‘드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오두막 지하실 구석에서 땅파기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두두두두! 땅 파기 재밌다!”레온이 드릴을 바닥에 꽂았다.그런데 이 장난감, 사실은 실제 채굴용 드릴의 축소판이었다. (한스의 안전 불감증이 또……)우르릉-!바닥이 무너져 내렸다.레온은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 속으로 쏙 빠졌다.“레온아!”나는 놀라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다행히 레온은 푹신한 흙더미 위에 떨어져서 멀쩡해 보였다.하지만 그곳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오두막 지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고대 유적’의 입구였다.[시스템: 히든 던전 ‘잊혀진 왕의 무덤(Lv. ???)’을 발견했습니다.]&ld
나는 눈을 의심했다.그것은 유모차가 아니었다. 소형 전차였다.바퀴는 험지 돌파용 광폭 타이어였고, 프레임은 오리할콘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햇빛 가리개에는 ‘자동 방어막 생성 장치’가 달려 있었고, 손잡이에는 ‘부스터 가속 레버’가 있었다.심지어 컵홀더 옆에는 ‘미니 미사일(마법탄) 발사 버튼’까지.“안전이 최우선이지! 5서클 마법까지 방어 가능하고, 유사시에는 비행 모드로 변신해서 탈출도 가능하다네!”한스는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나는 한숨을 쉬었다.동네 마실 나가는데 이런 전차가 필요할까?“멋지군.”하지만 칼리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역시 한스야. 이 정도는 돼야 안심하고 산책을 시키지.”남자들의 감성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결국 우리는 그 ‘전차 유모차’에 레온을 태우고 산책을 나갔다.레온은 유모차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폭신한 시트(슬라임 쿠션)에 앉아 핸들을 잡고 “부우웅!” 소리를 냈다.“자, 출발한다!”칼리드가 유모차를 밀었다.아니, 밀었다기보다는 ‘운전’했다.오두막 앞의 울퉁불퉁한 숲길도 이 유모차 앞에서는 아스팔트 도로와 다름없었다.서스펜션 기능이 탁월해서 레온은 흔들림 하
내 눈에는 레온이 그냥 ‘꿈틀이 젤리’를 먹다가 뱉은 거로 보였다.하지만 발렌과 기사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S급 마수를 간식처럼 씹어먹는 1살짜리 아기라니.이 아이는…… 북부의 미래이자 재앙이었다.오후에는 기저귀 소동이 일어났다.레온이 큰일(?)을 본 것이다.“누가 기저귀 좀 갈아줘요!”내 외침에 이번에는 엘프 이릴이 나섰다.“제가 하겠습니다. 숲의 아이들은 엘프가 전문이죠.”이릴은 우아하게 다가와 기저귀를 열었다.그리고 표정이 굳었다.아기의 배설물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레온이 먹은 게 ‘드래곤 분유(용의 젖)’와 ‘만드라고라 이유식’이다 보니, 나오는 것도 평범할 리 없었다.이건 똥이 아니라 ‘고농축 마력 덩어리’였다.“이, 이건……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위험합니다.”이릴은 떨리는 손으로 기저귀를 봉인했다.마치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폭발물 처리반 같았다.“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데 왜 그래요?”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결국 그날 나온
“응애!”레온이 울음을 터뜨리자, 펑! 소리와 함께 아이가 변신했다.작고 하얀…… 강아지로.그것도 뽀삐보다 더 작은, 솜뭉치 같은 강아지였다.“어머!”나는 놀라서 입을 막았다.유전자의 힘은 위대했다.칼리드의 ‘수인화 저주(사실은 축복)’가 아이에게도 유전된 것이다.하지만 칼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그는 강아지로 변한 아들을 능숙하게 안아 올렸다.“괜찮다. 아빠도 그랬으니까.”그는 아들에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레온. 네 엄마는 강아지를 아주 좋아한단다. 너는 사랑받으며 자랄 거야.”나는 웃음을 터뜨렸다.맞다. 나는 펫샵 사장이니까.이제 우리 집에는 큰 강아지(남편)와 작은 강아지(아들)가 함께하게 되었다.“여보, 산책 갈까요?”“좋다.”칼리드가 한 손에는 레온(강아지)을 안고,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우리는 봄꽃이 만발한 오두막 정원을 걸었다.뒤에는 기사단, 엘프, 드워프, 오크들이 졸졸 따라오며 호들갑을 떨었다.“도련님! 꼬리 흔드시는 것 좀 봐!”“심장 아파! 너무 귀
* 마왕님, 저희 가게 VIP 되실래요?소문은 빨랐다.인간들이 절망의 협곡에 들어와서 용암 웅덩이를 개조하고, 케르베로스를 애완견으로 부리며, 임프들을 직원으로 쓴다는 소문이 마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마계 2호점 오픈 3일 차]“어서 오세요~ 물 좋습니다!”임프들이 입구에서 수건을 나눠주며 호객 행위를 했다.손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호기심에 찾아온 하급 마족들이었지만, 한 번 맛을 본 뒤로는 단골이 되었다.“크아아, 좋다. 역시 물은 뜨거워야 제맛이지.”오크 워리어들이 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서큐버스 언니들은 냉탕에서 피부 관리를 했다.“어머, 이 물 뭐니? 피부가 탱탱해졌어.”나는 카운터(바위 위에 판자 깐 것)에 앉아 입장료를 받았다.마계의 화폐인 ‘마석’이나 희귀한 ‘약초’ 등을 받았다.짭짤했다.이대로라면 본점 매출을 넘어서겠는걸?하지만 장사가 잘되면 꼭 꼬이는 게 있는 법.이번에는 급이 달랐다.쿠구구궁!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내리꽂혔다.탕에 있던 마족들이 기겁하며 튀어 나갔다.“마, 마왕성에서 오셨다!”“군단장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