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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0 09:10:22

한편, 오두막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숲의 외곽.

“대공 전하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습니다.”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빗물에 젖은 숲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북부 대공가의 문장인 ‘포효하는 늑대’가 새겨져 있었다.

기사단장 ‘발렌’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닥을 살폈다.

마수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갈기갈기 찢겨 죽은 마수들. 그리고 주변의 나무들이 흉폭한 힘에 의해 꺾여 있었다.

분명 대공의 폭주 흔적이었다.

“마기 반응이 이쪽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사라졌어.”

발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공의 폭주는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마기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대공이 죽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대공을 제압했거나.

“단장님! 저쪽을 보십시오!”

부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발렌의 시선이 부관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숲의 안개가 걷히고, 기이할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처럼 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빛이 감도는 구역.

하지만 발렌은 본능적으로 검자루를 쥐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서, 소드마스터인 자신조차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포심(Fear)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곳은…… 금지된 구역, ‘마녀의 정원’입니다.”

병사들이 동요했다.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다는 전설의 마굴.

대공의 흔적이 저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하께서 저곳에 계신다.”

발렌이 비장하게 말했다.

“설령 마녀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군을 구출한다. 전원, 돌격 준비!”

“와아아아-!”

북부의 정예 기사단이 결의에 찬 함성을 지르며 ‘마녀의 정원’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들이 구하러 가는 주군이, 지금 그 마녀의 침대 위에서 배를 까고 꿀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상대하러 가는 마녀가, 그들을 ‘새로운 손님(혹은 장난감)’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나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깼다.

“으음…… 뭐야?”

밖이 시끄러웠다.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고, 꽹과리 소리 같기도 하고.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뽀삐가 먼저 깬 모양이다.

“뽀삐야?”

나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 저편, 숲의 입구에 웬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코스프레 동호회인가?

[시스템: ‘북부 기사단(Lv.50~70)’이 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시스템: 대규모 퀘스트 ‘우리 집을 지켜라’가 발생했습니다.]

아하, 이벤트구나!

게임에서 가끔 발생하는 ‘영지 방어전’ 같은 건가 보다.

나는 신이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저번에는 취객 한 명이라 시시했는데, 이번에는 꽤 많네?

“좋아, 뽀삐랑 같이 몸 좀 풀어볼까?”

나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나갔다.

마당에는 이미 뽀삐가 나와 있었다.

녀석은 대문 앞을 막아서고, 몰려오는 은색 무리를 향해 무시무시하게(내 눈엔 귀엽게) 짖고 있었다.

“멍! 멍! 컹!”

마치 ‘우리 주인님 자니까 조용히 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특한 녀석.

그때, 은색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사악한 마녀여! 우리 주군을 내놓아라!”

주군?

무슨 컨셉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는 나의 모습. (기사들 눈에는 칠흑의 로브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마왕처럼 보였겠지만.)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웬 소란이세요?”

내가 웃으며 묻자, 기사들이 일제히 뒷걸음질 쳤다.

왜 저래? 내가 안 씻어서 냄새나나?

“저, 저 여자가 대공 전하를……!”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다리 옆에 있는 뽀삐를 보고 경악했다.

아, 우리 뽀삐가 너무 귀여워서 놀랐나 보구나.

“네, 이 아이가 제 반려견 뽀삐예요. 귀엽죠?”

나는 뽀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순간, 숲 전체에 정적이 감돌았다.

“……반려견?”

“뽀삐?”

기사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들은 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모셔온,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인 칼리드 대공이.

분홍색 리본을 목에 매고, 여자의 손길에 맞춰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칼리드(뽀삐)는 기사들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잠시,

‘죽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대환장 착각 파티에 새로운 희생양들이 입장한 것이다.

*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feat. 기사단 농노화 계획)

정적.

숨 막히는 침묵이 숲의 입구를 감돌았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은색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내 다리 밑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는 뽀삐를.

그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치 지구 종말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대공, 전하?”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뽀삐의 목에 묶인 ‘분홍색 리본’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반응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펫 자랑은 만국 공통인가? 우리 뽀삐가 좀 잘생기긴 했지. 리본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강아지는 흔치 않으니까.

“알아보시겠어요? 우리 뽀삐가 인물이 좀 훤하죠?”

내가 환하게 웃으며 묻자, 기사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는 검을 쥔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을 주며 소리쳤다.

“네 이년! 감히 제국의 태양이신 대공 전하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칭찬을 해줘도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대사는 또 왜 저렇게 올드해? ‘네 이년’이라니, 요즘 사극 드라마도 저런 대사는 안 쓰겠다.

[시스템: 퀘스트 ‘우리 집을 지켜라’ 진행 중]

[적대 세력의 ‘선제공격’이 예상됩니다.]

시스템 창이 반짝였다.

아하, 이거 그거구나.

진상 손님 퇴치 퀘스트.

가끔 게임에서 ‘가게 평판’을 떨어뜨리러 오는 불량배 NPC들이 있는데, 딱 그 패턴이다.

컨셉이 ‘광신도 기사단’인가? 자기들이 모시는 ‘대공’이라는 존재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는 설정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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