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누구냐!”모용란의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고통과 불굴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천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리쳤다.그 무리의 우두머리는 칼에 묻은 피를 천천히 닦아내며 말했다.“우리 주인의 성은 소씨이시다.”소...모용란은 그 순간 무엇인가를 떠올렸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너희들, 혹시 폐하의 은위병인 것이냐?”황제의 곁을 지키는 은밀한 경호대, 은위병.그래서, 황제가 이들을 보낸 것인가?아니, 그럴 리 없다.이들이 자신이 이곳으로 올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설마, 황제가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해둔 건가!그렇게 생각하자, 모용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녀는 마 대인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손이 없어진 그녀에게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사당.이 장군이 매일 식사를 준비해 사당에서 이리 떨어진 곳에 두면, 그 음식은 반란군이 가져갔다.황제가 갇힌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선성의 방어선은 붕괴되었고, 주국공은 비밀리에 선성으로 귀환했다.북연과 남제 사이에는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신방 안반란군의 감시를 받는 곳에서, 식사는 비빈들에게도 배급되었다.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태후가 직접 음식을 분배했는데, 원래라면 여기서 가장 신분이 높은 태황태후에게 우선적으로 배급되어야 했다.하지만, 태후가 음식을 건네자마자, 녕비가 그걸 낚아챘다.“고모님, 먼저 드세요! 남은 건 저와 언니가 나눠서 드리겠습니다!”태황태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태후는 태황태후를 잠시 바라보다가 길을 막으려는 장공주에게 말했다.“어머니, 이러다 정말 쓰러지십니다…”장공주와 녕비는 좌우에서 태후를 부축하며 한쪽으로 데려갔다.녕비는 돌아보며 태황태후를 힐끗 쏘아보았다.‘죽어버린 늙은 할망구! 왜 굶어 죽질 않는 거야!’“아무것도 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불평만 해대고, 그래도 먼저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생사가 걸린 일 앞에는 본래 모두가
“구원하려면 저 진천뢰를 먼저 해결해야 해. 특히 그 죽화총까지도…”이를 생각하며 이 장군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조묘안.마 대인이 갑자기 방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폐하, 폐하께서 저희를 전부 속이셨군요! 무슨 새 황제라니, 사실은 조정에 있는 반란군들을 끌어내려 하셨던 거죠?”방금 그는 소식을 들었다. 성 안에서 이미 다수의 대신들이 체포되었는데, 모두 태자를 옹립하려 했던 자들이었다.그리고 천옥의 내부 첩자들 역시 체포되었다.심지어는 그날 바로 참수된 자도 있었다.소욱은 냉혹한 눈빛으로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마 대인은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너무 저희를 얕보셨습니다.”“폐하께서 죽인 자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 교주가 북연군을 이끌고 남제를 공격할 것입니다!”“오늘 밤, 폐하께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물해드릴 것입니다. 폐하의 형제들과 비빈들을 하나하나 죽여버릴 것입니다!”“저희를 속인 대가가 어떤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말을 마치며 그는 명령을 내렸다. 왕자들과 후궁들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밤하늘 아래 칼날이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왕자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외쳤다.“폐하! 저희를 구해 주십시오! 제발요!”조묘 밖.이 장군은 정병들과 함께 근처 풀숲에 숨어 있었다.그는 오늘 밤 습격을 준비하며 먼저 문을 지키는 반란군을 기습해 기절시키고, 그 후 몰래 잠입해 반란군을 일망타진하려 했다.위험이 따르지만, 이렇게 해야만 했다.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이 장군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반란군도 이미 정보를 입수해 서둘러 움직이려는 듯했다.이로 인해 문을 지키던 반란군들까지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이 장군이 고민하고 있을 때, 한 호위가 낮은 목소리로 알렸다.“장군, 저쪽에서 누군가 옵니다.”이 장군은 즉시 손짓하며 명령했다.“숨어라!”그들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자, 달빛 아래 우아한 자태의 여인들이 허리를 살랑이며 천천히
“구안아… 아직 살아있구나!”소욱은 손가락을 떨며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몽롱했다.그동안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송장과도 같았다.비록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지만, 그는 자신이 뭘 지시했는지도 모를 때가 많았다.몸은 이곳에 있었으나, 마음은 이미 천지설산에 가 있었다.그런데 지금, 봉구안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그녀가 살아있다니!소욱은 갑작스런 감격에 등을 돌려 사람들에게서 눈물을 숨겼다. 눈가가 붉게 물들고 눈물이 차올랐다.역시 그의 소장군은 죽지 않았다!장공주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잘됐다! 소장군이 살아있다니!!”태황태후는 그동안 옥양산에 머물러 있었기에 사정을 몰랐다가 이제야 맹 소장군과 소환이 동일인임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녀가 예전에 보낸 자객이 소환을 암살하려 한 것은 결국 맹 소장군을 죽이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그녀는 하마터면 천추의 죄인이 될 뻔한 것이다.만약 소환이 단지 강호의 여인에 불과했다면, 죽었다 한들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맹성주였다니!북대영의 전신으로 불리며 전공을 쌓고 명성을 날린 맹 소장군이 바로 그녀였단 말인가!태황태후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나 모용란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기쁨이 아니라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그럴 리 없어! 그녀는 죽었다! 죽었다고! 너희는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소환, 곧 봉구안은 분명 눈사태에 휘말려 생매장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들은 모두 그녀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그녀는 믿지 않았다.아니, 믿을 수 없었다!소욱은 다른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봉구안을 만나기 위해 서둘렀다.직접 눈으로 그녀를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이번에는 결코 늦지 않으리라…소욱은 곧장 북대영의 여군들과 함께 동부 전장으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 소욱은 확실히 보았다.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는 바로 봉구안이었다!그가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소욱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옭아매던 눈밭에서 벗어났다.그를 잡아끌던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족쇄를 끊어내며 벗어났다.그는 낮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리고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이것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다그쳤다.동시에 봉구안 역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눈발이 휘몰아치는 한복판에서 서로를 향해 달렸다.마침내, 눈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서로를 끌어안는 그 순간에야 현실로 돌아왔다.소욱은 품 안의 사람을 꼭 껴안았다.눈보라가 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따스함을 느꼈다.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며, 그녀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숨결이 뒤엉켰다.귀에는 바람소리가 휘몰아쳤지만,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폐하…”소욱은 자신의 얼굴이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그녀가 다시 돌아와 주었음에 감사했다.하늘이 그리도 무심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그의 몸은 감각을 잃었지만, 그의 심장은 불타오르고 있었다.그 뜨거움이 그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그대로 쓰러졌다.…소욱은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했다.두 시진 후,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따뜻한 장막 안이었다.눈을 뜨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구안아!”혹여나 이것이 꿈이었을까 두려워 그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그때 조용히 들려오는 한 마디.“여기 있습니다.”그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봉구안임을 확인했다!그녀 곁에는 맹 부인이 있었다
태황태후는 결국 천옥에 갇히고 말았다. 겉으로는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를 지켜보는 왕자들은 입이 떡 벌어질 뿐이었다.태황태후도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니…왕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이 크게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혹시 자신들도 정말 태황태후를 따라 반역에 가담한 게 아닐까?절망스러운 탄식과 함께 왕자들의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이 노망난 노인이 왕자들의 인생을 모조리 망친 것이다.왕자들은 뒤늦게 이를 갈며 속으로 분노했다.바로 그때, 천옥 밖에서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가 들렸다. 새해를 맞아 터진 폭죽 소리였지만, 그들에게는 차라리 통곡 소리처럼 들렸다."좋은 섣달그믐밤에, 우리는 여기서 지내야 하다니. 정말 이게 무슨 꼴이람!"태황태후는 천옥에 갇히자마자 감옥 구석에서 기댄 채 희미한 숨소리만 내뱉고 있는 모용란과 그의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태황태후가 뒤를 돌아보자, 은위의 비웃음 섞인 시선과 마주쳤다."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사시다니, 태황태후마마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그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말하는 동안 손에 쥔 강아지풀을 흔들며, 대놓고 도발의 뜻을 내비쳤다.태황태후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모용란은 심하게 다친 상태로 감옥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겨우 숨을 쉬고 있었으며, 의식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그 아이는 태황태후에게 다가와 그녀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며 매달렸다."할마마마, 여긴 대체 어디죠? 너무 무서워요…”아이는 태황태후의 다리를 붙잡고 울며 매달렸다. 그러나 태황태후는 아이의 울음에도 불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리를 뿌리쳤다."아가야, 나는 네 할머니가 아니다."태황태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이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모용란은 이미 중상을 입어, 감옥 구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태황태후는 이 모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현재의 천옥에는 반란군들이 이미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다.더 이상 모용란을 구할 자는 없
주요 장막 안에서는 각 장군들이 하나씩 보고를 올렸다.“폐하, 북연군의 병력은 20만 명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비밀리에 선성 일대 방어선을 돌파하여 원군의 경로를 차단했으며, 자칫하면 황성을 위태롭게 할 뻔했습니다.”“맹 소장군의 전략이 빼어나고, 주국공이 신속히 귀환하여 대군을 이끌고 선성을 지켜낸 덕분에 북연군의 계략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 며칠 동안, 저희는 이미 북연군을 동방 너머로 몰아냈습니다.”“폐하, 겉보기에는 북연군이 동방 밖으로 물러가 남제에 당장 위협은 없어 보이나, 실상은 다릅니다. 여기 보십시오…”그 장군이 모래판 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선성 일대의 중부 방어선은 선성, 묵성, 감주, 조유관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연결된 방어선입니다. 북연군이 이전에 조유관을 돌파했으며, 이곳 방어는 이미 붕괴된 상태입니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조유관은 필시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주 전장이 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거의 방어 불가 지역이라 보시면 됩니다.”소욱은 모래판 위에 작은 깃발을 조유관 위치에 꽂으며 말했다.“어찌 됐든 간주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더는 방어선을 뚫리게 해선 안 된다. 조유관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폐하, 맹 소장군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동부군은 이미 군심이 흩어져 북연군과 다시 싸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렇다면 다시 모아라. 모으지 못하겠거든 모두 물러나게 하거라!”“남제의 병사들이 싸우고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동부의 주장 관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공손히 아뢰었다.“폐하, 북연군의 이번 심리전으로 인해 병사들이 전투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재난은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신 등은 맹 소장군과 여러 날 의논했지만, 합당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관래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한길이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폐하, 소장군의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소욱은 그 말을
봉구안은 담담히 소욱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고, 그저 한결같이 맑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창백한 얼굴은 이전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폐하께서 이 일을 마음에 두신다면,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그는 몇 번이고 황자를 원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에게 그 바람을 채워줄 수 없을지도 몰랐다.이 사실은 명확히 이야기해야 했다. 그의 선택이 어떻든, 그녀는 원망하지 않을 작정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붙이며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무엇을 마음에 두겠느냐?”“내가 마음에 두는 건 오직 네가 내 곁에 있느냐 뿐이다.”“구안아, 내가 바라는 건 너뿐이다.”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기댄 채 가볍게 비비며, 마치 길 잃은 외로운 늑대가 연인을 찾은 것처럼, 혹은 황폐한 땅에서 방황하던 사자가 가족을 발견한 것처럼, 거칠고 불안하던 기운이 순종적이고 평온하게 바뀌었다.그는 계속해서 반복했다.“내가 바라는 건 너뿐이다…”그녀가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그녀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그의 아내이며,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그가 인정한 황후였다.그는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녀가 고통받는 것이 마음이 아팠으며, 그녀를 잃을 뻔했다가 되찾은 기쁨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녀를 나무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녀가 몸을 다쳐버린 건, 소욱의 동생인 소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위험에 내몰았기 때문이다.그녀를 거의 잃을 뻔했는데, 그에게 다른 것을 더 바랄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구안아, 북연군을 물리치고 나면 우리 돌아가서 혼인하자. 무슨 길일 같은 건 상관없다. 난 당장이라도 너와 혼인하고 싶다.”그는 단 한 순간도 더 그녀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봉구안은 그의 품에 안겨 있으니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그녀는 고개를 그의 가슴에 기대어 올리고, 잠이 쏟아졌다.귀에는 그의
맹 부인이 나오는 것을 본 후, 완부옥이 곧바로 다가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사모님, 그 천한… 아니, 그 폐하께서 소환을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몇 번이나 맹 부인이 그녀를 타일렀지만, 여전히 ‘사모님’이라 부르는 것을 고집했다.맹 부인은 황제가 밤새지 못하고 지친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래.”완부옥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그럼 폐하께서 소환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나요?”맹 부인은 그녀를 곁눈질하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완전히 불가능한 게 아니라 어려운 것뿐이다.”완부옥은 마치 구실을 찾은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사모님 말씀 맞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나요?”맹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황제에게 소환이 이 사실을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황실은 자손을 중시한다. 황후가 아이를 갖기 어렵다면 이는 큰 문제였다.완부옥은 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럼 내가 황제에게 알려야겠군! 황제만 없어지면 소환은 내 것이 될 거야…’다음 날 아침.소욱은 아침 일찍 세수를 마치고 곧장 본진으로 향해 장군들과 함께 적을 맞설 전략을 논의했다.“폐하, 지난 밤에 북연군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이미 정찰병을 보냈습니다.”“폐하, 맹 소장군의 몸 상태는 어떠하십니까?”모두 이미 맹 소장군이 여인이고, 앞으로 황후가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폐하, 지난번 맹 소장군이 경량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을 급습하지 않았다면 시간을 벌 수 없었을 겁니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전투에 나섰단 말인가?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소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바로 봉구안이 있는 장막으로 돌아갔다.그런데 완부옥이 안에 앉아 그녀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약을 직접 먹이겠다고 고집하고 있었다.“제가 직접 먹여줄 테니 입 벌리십시오! 어서 마시란 말입니다!”봉구안은 손을 쓸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