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두 사람은 인파를 헤치며 축제의 중심지인 광장 중앙을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서는 광대들이 화려한 불 쇼를 선보였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윽고 간 길거리 상점. 엘로라는 그곳에서 파는 노란 설탕 과자를 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황궁의 일류 요리사가 만든 정교한 디저트보다 훨씬 거친 맛이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했다. “맛이 어떠냐?” “최고예요! 칼리안도 한 입 드셔보실래요?” 엘로라가 과자를 그의 입가로 내밀자 칼리안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가락이두 사람은 인파를 헤치며 축제의 중심지인 광장 중앙을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서는 광대들이 화려한 불 쇼를 선보였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윽고 간 길거리 상점. 엘로라는 그곳에서 파는 노란 설탕 과자를 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황궁의 일류 요리사가 만든 정교한 디저트보다 훨씬 거친 맛이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했다. “맛이 어떠냐?” “최고예요! 칼리안도 한 입 드셔보실래요?” 엘로라가 과자를 그의 입가로 내밀자 칼리안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손가락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과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군.” “후후, 축제 음식은 원래 이 달콤한 맛에 먹는 거라고요.” 엘로라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자 칼리안의 눈동자에도 아주 희미한 만족감이 머물렀다. 칼리안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제국 전체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이 순간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칼리안, 저기 불꽃놀이가 시작되려나 봐요!” 밤하늘 위로 첫 번째 불꽃이 굉음과 함께 힘차게 쏘아 올려졌다. 어두운 하늘은 순식간에 오색빛깔의 찬란한 빛으로 화려하게 물들어갔다. 엘로라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불꽃을 응시했다.
제국의 수도 에테르노의 밤.그곳은 평소보다 훨씬 소란스럽고 생동감이 넘쳐흘렀다.일 년 중 가장 성대하게 열리는 제국 최대의 축제.‘에테르노의 밤’이 마침내 시작된 덕분이었다.높디높은 황궁의 육중한 담벼락 너머.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들뜬 함성과 노래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경쾌한 선율.그것은 성벽을 타고 넘어와 집무실의 무거운 정적을 가볍게 두드렸다.“우와…”엘로라는 집무실 창가에 바짝 붙어 서서 멍하니 그 황홀한 풍경을 바라보았다.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금빛과 붉은 빛의 등불로 넘실거리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황궁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는 대조적으로, 그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와 따스한 온기가 가득했다.“그렇게나 저 바깥세상이 좋은 것이냐.”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온 칼리안이 그녀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물었다.등 뒤에서 전해지는 그의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체온에 엘로라는 깜짝 놀라 몸을 잘게 떨었다.“아, 칼리안. 언제 오셨어요?”“네가 저 시끄러운 소음과 불빛들에 정신을 완전히 빼앗겨 있을 때부터 줄곧 여기 서 있었다.”칼리안의 붉은 눈동자가 창밖의 북적이는 저자거리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그의 눈빛은 여전히 맹수처럼 날카로웠지만, 엘로라를 담는 시선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유순했다.“그토록 가보고 싶은 것인가.”“네? 하지만 저는 제국의 황후인걸요. 제가 함부로 나갈 수는 없잖아요.”엘로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처지를 되새겼다.“제가 직접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축제는커녕 온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 거예요.”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얹혀살던 시절부
황궁의 집무실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책상 너머로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칼리안은 펜을 쥔 채 엘로라를 뚫어지게 쳐다봤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정무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시선이 너무 뜨거웠다.엘로라는 결국 고개를 들었다.“칼리안, 일 안 하세요?”“하고 있다.”“나만 보고 계시잖아요.”“너를 보는 게 내 일이다.”칼리안이 뻔뻔하게 대꾸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커다란 그림자가 엘로라를 덮쳤다.칼리안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로이센의 잔당들이 아직 수도에 숨어 있다.”“기사들이 잡고 있잖아요.”“부족해. 내 눈앞에 없으면 불안하단 말이다.”그의 손가락이 엘로라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지독한 소유욕이 느껴졌다.엘로라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가슴에 기댔다.“저 도망 안 가요. 이제 제 집은 여기니까요.”“입으로만 하는 약속은 믿지 않아.”칼리안이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차라리 너를 내 몸에 묶어두고 싶군.”말뿐이 아니었다.그의 눈에는 정말로 그럴 것 같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엘로라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심장 위에 올렸다.“느껴져요? 뛰고 있잖아요. 당신 곁에서.”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삼켰다.숨이 막힐 듯한 입맞춤이었다.*다음 날, 황궁 정원은 연회 준비로 분주했다.엘로라가 정식 황후로 인
회의가 끝난 뒤, 집무실에는 다시 두 사람만의 시간이 찾아왔다.칼리안은 의자를 당겨 엘로라에게 바짝 다가앉았다.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엘로라는 피하는 대신 그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어 숨을 골랐다.“엘로라.”“네?”“이제 아무도 너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그가 이어서 말했다.“가짜니, 뻐꾸기니 하는 그따위 상스러운 말들은 내 제국에서 영원히 지워버렸으니까.”칼리안의 적안이 형형하게 빛났다.그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건 맹세였다.엘로라는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저도 이제 제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아니까요.”그녀는 더 이상 뱁새의 알을 밀어내는 비정한 새가 아니었다.어머니 헬레네가 남긴 힘으로 제국을 지키고, 칼리안의 곁에서 당당히 빛나는 태양의 반려였다.칼리안은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미소를 지었다.*오후에는 황궁 대정원을 산책했다.봄기운이 완연한 정원에는 엘로라가 좋아하는 은방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칼리안은 그녀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칼리안, 저기 봐요.”“올해는 유난히 꽃이 빨리 폈네요.”“네가 좋아하니 꽃들도 서두른 모양이지.”칼리안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엘로라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울 때마다, 칼리안은 기꺼이 다시 한번 폭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이 평화를 깨뜨리는 자가 있다면, 제국 전체를 불태워서라도 그녀를 지키고 말 거야.’휘이잉-그때 바람이 한 차례 세게 불었다.그는 잠시 멈춰 서더니 엘로라의 머리카락에 붙은 작은 꽃잎을 떼어내 주었다.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그러자 엘로라의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칼리안은 엘로라의 앞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전쟁을 하시려는 건가요?” 엘로라가 묻자 칼리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제 쪽으로 당겼다. 그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들이 너를 가짜라고 불렀어.” “저는 신경 안 써요. 당신만 옆에 있다면요.” “나는 신경 쓰이는데 어떡하지. 너를 모욕하는 모든 혀를 잘라내고, 너를 부정하는 모든 땅을 불태울 거다.” 그는 엘로라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의 집착은 이제 제국을 삼킬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엘로라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등 뒤로 손을 뻗어 그를 마주 안았다. “그럼 제가 보는 앞에서만 하세요. 당신이 괴물이 되는 걸 저만 볼 수 있게.” 칼리안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서늘하면서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너는 참으로 잔인하구나.”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폭군은 황후를 위해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황후는 폭군을 제 둥지 안에 가두려 했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칼리안은 그녀의 체온을 온전히 느끼며 생각했다. 이 손에 쥔 세계가 부서진다 한들 그녀가 제 곁에 머문다면 그 어떤 파멸조차 두렵지 않았다. *
황궁으로 돌아온 뒤. 칼리안의 집착은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정무를 볼 때도 엘로라를 제 집무실 소파에 앉혀두었다. 시야에서 한순간이라도 사라지면 그는 폭주했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시종의 소리에도 칼리안은 검자루를 잡았다. 그의 예민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엘로라는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는 척했다. 하지만 페이지는 한참 전부터 넘기지 못했다. 칼리안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서류를 보다가도 수시로 고개를 들어 엘로라를 확인했다. 그녀가 그곳에 있는지. 자신을 떠나지 않았는지. “칼리안, 저기 있어요.” 엘로라가 결국 책을 덮으며 말했다. 칼리안은 펜을 내려놓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은 여전히 핏빛으로 젖어 있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계속 보세요? 정무에 집중하셔야죠.” “네가 숨을 쉬는 소리를 들어야 집중이 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로라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황제가 한낱 사생아 출신 황녀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하지만 칼리안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엘로라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 “너를 로이센에서 데려온 뒤로, 잠을 잘 수가 없어.” “…….” “눈을 감으면 다시 그 푸른 안개가 나타날 것 같아서.” 칼리안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