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번에는 공개 행사에서 실제로 두 사람이 정해둔 선이 흔들리는 상황을 넣었습니다. 특히 태혁은 서율 대신 바로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참습니다. 단순히 ‘예전보다 착해졌다’가 아니라,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가 서율이 상처받을까 두렵다는 감정까지 드러내면서 태혁이 왜 늘 먼저 해결하려 했는지도 연결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누가 더 맞춰주는가’가 아니라, 매 순간 누가 말하고 누가 기다릴지를 다시 선택하는 관계로 가고 있습니다.
행사 당일.대기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밖에서는 음악 소리와 스태프들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마치 다른 공간 같았다.서율은 거울 앞에 앉아 귀걸이를 고쳐 끼웠다.최태혁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서율이 거울 너머로 그를 봤다.“또 봐?”“마지막 확인.”“아까 차에서 했잖아.”“했지.”“그 전에도 했고.”“네.”“질문지가 도망가?”최태혁이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아니.”“그럼 놔.”최태혁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잠시.그는 태블릿을 껐다.서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잘했어.”“요즘 그 말 자주 하네.”“잘하니까.”“내가 원래 잘합니다.”“내 말 듣는 건 요즘 좀 잘해.”“은서율.”“왜.”최태혁이 태블릿을 옆에 내려놓았다.서율은 다시 거울을 봤다.화장은 끝났다.머리도.옷도.이제 나가기만 하면 됐다.그런데.최태혁은 서율이 평소보다 말이 조금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긴장돼?”서율이 바로 대답했다.“아니.”“거짓말.”“조금 귀찮은 거야.”“그게 긴장 아니고?”“달라.”최태혁이 일어나 서율 쪽으로 걸어왔다.“싫으면 지금이라도—”“그 말 하지 마.”최태혁이 멈췄다.서율이 거울 속 그를 봤다.“내가 하겠다고 했잖아.”“알아.”“근데 자꾸 빠질 방법부터 주면.”서율이 몸을 돌렸다.“내가 불안해하는 사람 같잖아.”최태혁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그런 뜻 아니었습니다.”“알아.”“그럼.”“그냥.”서율이 손을 내밀었다.“같이 가.”최태혁은 그 손을 내려다봤다.그리고 잡았다.“알겠습니다.”*포토월은 예상보다 훨씬 정신없었다.플래시.목소리.카메라 셔터.“두 분 이쪽 봐주세요!”“조금만 가까이!”“최 대표님, 은 대표님 쪽으로!”서율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최태혁이 낮게 물었다.“괜찮아?”“응.”“가까이 가도 돼?”서율이 그를 봤다.이 상황에서도 묻는 사람이 조금 웃겼다.“응.”
월요일 아침. 최태혁은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봤다. 두꺼웠다. 표지에 붙은 메모만 세 장. 수정 요청. 추가 검토. 그리고— 긴급. 최태혁의 손이 자연스럽게 보고서로 향했다. 그 순간. 멈췄다. 주말 저녁이 떠올랐다. 닫아둔 노트북. 내일 넘기겠다고 했던 메일. 그리고. 서율의 말. 혼자 하지 말라고. 최태혁은 보고서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인터폰을 눌렀다. “담당 팀장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대표님.” 최태혁이 보고서를 밀었다. “이거.” 팀장의 표정이 바로 긴장했다. “네. 어젯밤에 이슈가 하나 생겨서—” “내가 볼 부분이 어디까지입니까.” 팀장이 잠깐 멈췄다. 평소라면. 대표가 먼저 전부 읽고. 문제점을 짚고. 수정 방향까지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질문이 달랐다. “최종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은 세 군데입니다.” “나머지는?” “실무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리하세요.” “네?” 최태혁이 그를 봤다. “내가 전부 볼 필요 없다는 뜻이잖아.” “아, 네.” “세 군데만 표시해서 다시 주세요.” 팀장이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바로 나가지 않았다. 최태혁이 눈썹을 올렸다. “왜.” “아닙니다.” “표정은 아닌데.”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이 보통은 전부 직접 보셔서요.” 최태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러게.” 짧게 대답했다. 팀장이 나간 뒤. 최태혁은 의자에 기대었다.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 보고서를 남에게 맡겼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조금 불안했다. 분명. ‘내가 보면 더 빨리 찾을 텐데.’ 그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 생각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반드시 해야 하나. 최태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다른 파일을 열었다. * 오전 열한 시. 서율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
집에 돌아온 뒤에도.서율은 이상하게 조용했다.최태혁이 현관에 차 키를 내려놓고 돌아봤다.“왜.”서율은 신발을 벗다가 멈췄다.“뭐가.”“아까부터.”“아무것도 아닌데.”“그 표정은 아닌데.”서율이 고개를 들었다.“내 표정이 뭔데.”“생각 많을 때 표정.”“그런 것도 알아?”“네.”“언제부터.”“오래됐습니다.”서율이 피식 웃었다.그런데 금방 다시 조용해졌다.최태혁은 재촉하지 않았다.겉옷을 벗고 거실로 먼저 들어갔다.그리고 소파에 앉으면서도.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아마.그 편지 이야기.중학생 때 썼던 것.십 년 뒤의 자신에게.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누구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아까 그 글을 서율에게 보여줄 때는 별생각이 없는 척했다.오래된 종이였고.어릴 때 쓴 글이었고.이미 잊고 지낸 것이었다.그런데 지금은.이상하게 자꾸 문장이 떠올랐다.그리고.그 문장을 읽던 서율의 표정도.“태혁아.”역시.“네.”“그 편지.”최태혁은 시선을 내렸다.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이 한 번 맞물렸다.“응.”“계속 생각나.”“왜.”“그냥.”“또 그냥.”“진짜 그냥인데.”서율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를 봤다.“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왜 했나 싶어서.”“뭐가.”“혼자 해야 된다는 거.”최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왜였을까.그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누가 혼자 하라고 한 적도 없었다.가족이 무심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이상하게.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문제를 만들지 않는 게 더 편했다.아프면 참는 쪽.힘들면 끝낸 뒤 말하는 쪽.아니.끝나고 나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쪽.그게 익숙했다.“누가 시킨 건 아닙니다.”“응.”“그냥.”최태혁이 숨을 짧게 내쉬었다.“잘하면 아무도 신경 안 써도 되잖아.”말하고 나서.자기 귀에도 이상했다.서율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신경 쓰게 하기 싫었어?
“긴장돼?” 이번에는 서율이 먼저 물었다. 차가 신호에 멈춘 순간. 최태혁이 옆을 돌아봤다. “내가 왜.” “지난번에는 긴장했다며.” “그건 당신 집이었고.” “오늘은 네 집이잖아.” “그러니까 안 하지.” 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만만하네.” “내가 살던 집인데 뭘 긴장합니까.” “그럼 나만?” 최태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긴장돼?” “조금.” 즉답이었다. 지난주에는 반대였다. 자기가 오래 살았던 집 앞에서 서율이 멈췄고. 최태혁이 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최태혁이 자랐던 집으로 서율이 들어간다. 결혼까지 한 사이인데도. 아직 처음 보는 공간이 있다는 게 묘했다. “왜 긴장해.” “몰라.” “우리 가족 여러 번 봤잖아.” “집은 다르다며.” 최태혁이 잠깐 말이 없어졌다. 서율이 바로 웃었다. “네가 한 말.” “그걸 기억하네.” “당연하지.” “그럼 같이 긴장해줄까.” “넌 안 한다며.” “지금부터 하면 되지.” “억지로 하지 마.” 최태혁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서율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태혁아.” “네.” “너 어릴 때 방 아직 있어?” “아마.” 서율이 바로 돌아봤다. “아마?” “오래 안 들어가 봤으니까.” “왜?” “갈 일이 없었지.”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서율은 더 묻지 않았다. * 현관문이 열리자 음식 냄새가 먼저 났다. “왔어?” “네.” 최태혁이 너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서율은 그 옆에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돌아온 말은 더 자연스러웠다. “서율이 왔어?” 순간. 서율이 눈을 깜빡였다. 최태혁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먼저였다. “네.” “들어와. 음식 거의 다 됐어.” 최태혁이 옆에서 작게 말했다. “나는?” 가족이 안쪽에서 대답했다. “넌 신발 벗고 들어오면 되지.” 서율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네.” “뭐가.” “너 원
다음 모임 날짜가 정해진 뒤부터 서율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최태혁은 그 이유를 이틀 만에 알아챘다. “신경 쓰이지?” 서율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손을 멈췄다. “뭐가.” “이번 주말.” “왜.” “네 집 가는 거.” 서율이 그를 바라봤다. “내 집인데?” “그러니까.” 최태혁은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집에 가족들 오는 건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네 가족 공간으로 가는 거잖아.” 서율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정확히 짚혔다. “조금.” “왜.” “그냥.” 서율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우리 집이랑은 다르잖아.” “뭐가.” “우리 집은 둘이 만든 집이고.” 잠깐. “거기는 내가 오래 살았던 집이야.” 최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이를 이해했다. 그 집에는 서율이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물건도 있고, 가족들이 기억하는 모습도 남아 있을 것이다. 작가가 된 지금의 서율. 결혼한 지금의 서율. 그리고 가족들만 아는 예전의 서율이 한 공간에 있는 곳. “그래서 긴장돼?” 서율이 작게 웃었다. “네가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괜찮은데.” “왜.” “당신 가족이 나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서율이 피식 웃었다. “자신감 봐.” “사실이잖아.” “그건 맞아.” 최태혁이 눈썹을 올렸다. “인정?” “응.” “좋네.” 서율은 그를 잠시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가족에게 남자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가족들은 이미 최태혁을 알고 있었다. 결혼식도 두 번 함께했고. 둘의 집에도 다녀갔다. 이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을 오가는 단계가 된 것 같았다. “근데.” 최태혁이 물었다. “응.” “내가 뭘 하면 돼?” 서율이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네 집 가는 거 처음이잖아.” “그냥 오면 되지.” “뭐 좋아하셔?” “누가?” “가족분들.” 서율은 잠시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과일 좋아하고.
서율이 눈을 뜬 건 오전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늦었다.그리고 두 번째.아.오늘 쉬는 날이지.서율은 다시 눈을 감았다.정확히 삼 초 뒤.“안 일어나?”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서율이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싫어.”“열한 시 십칠 분입니다.”“그래서.”“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럼 왜 말해.”“일어난 줄 알았으니까.”서율이 천천히 눈을 떴다.최태혁은 이미 씻은 뒤였다.침대 옆 협탁에는 물이 놓여 있었고.그 옆에는 서율이 아침마다 먹는 영양제까지 있었다.서율은 한참 그걸 바라보다가 말했다.“너.”“네.”“멀쩡하네.”최태혁이 눈썹을 올렸다.“멀쩡하면 안 됩니까.”“어제 그렇게 해놓고?”잠깐.둘의 시선이 마주쳤다.어젯밤.오랜만에 완전히 주도권을 넘겼고.한 번 쉬었다가.다시 시작했고.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둘 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기억이 이어지자 서율이 이불을 조금 끌어올렸다.최태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왜 갑자기 숨습니까.”“안 숨었어.”“얼굴 빨개졌는데.”“더워.”“에어컨 켜져 있습니다.”“최태혁.”“네.”“조용히 해.”“알겠습니다.”대답은 잘했다.그런데 웃고 있었다.서율이 베개를 집어 던졌다.최태혁이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아침부터 폭력적이네.”“누구 때문인데.”“어제는 좋다고 했잖습니까.”서율이 굳었다.“야.”“왜.”“그걸 아침부터 말해?”“사실인데.”“너 진짜.”이번에는 두 번째 베개가 날아갔다.*결국 서율이 침대에서 나온 건 십 분 뒤였다.발을 바닥에 내딛고.일어났다.그리고 멈췄다.최태혁이 바로 돌아봤다.“왜.”“아무것도 아니야.”“서율아.”“괜찮아.”“어디 불편해?”어젯밤과 같은 질문이었다.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장난기가 사라졌다.서율이 잠시 몸 상태를 확인했다.“그냥 좀 피곤해.”“다른 데는.”“괜찮아.”“확실해?”“응.”최태혁은 몇 초 더 서율을 살폈다.서율이 말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