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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맞닿은 맨살, 폭우 속의 위로

Author: 오필리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2 15:58:52

언제나 서늘한 얼굴로 밑단이 좁은 교복 바지만을 고집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달칵,

철문이 열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시은이는 얇은 검정 끈나시에 몹시 짧은 회색 돌핀 팬츠 차림을 한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가녀린 어깨선과 깊게 파인 쇄골,

그리고 짧은 바지 아래로 길게 뻗은 하얗고 매끄러운 맨살이 형광등 불빛 아래 완벽하게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차마 시선을 두지 못하고 허공만 허둥지둥 맴돌았다.

시선을 애써 바닥으로 내렸던 나는 또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의 맑은 맨발에는, 끔찍한 피멍이 약도 발라지지 않은 채 생생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시은아, 너… 발에 약도 안 발랐어?!"

"어제 바르고 잤어. 오늘은 귀찮아서 냅뒀고. 안 죽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 근데 네 품에 그 털뭉치는 뭐야."

강아지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시은이에게, 나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오, 오다가 골목에서... 다리를 다친 것 같아서 도저히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어. 미안, 내가 화장실에서 핏자국만 닦아주고 갈게. 진짜 금방 할게!"

지레 겁을 먹은 내 변명에도, 그녀는 깽깽이를 짚으며 의외로 현관길을 터주었다.

"빨리 들어오기나 해. 바닥에 비 뚝뚝 떨어지잖아."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이시은의 자취방에 발을 들였다.

솔직히 매일 애들을 패고 다니는 일진의 방이라 담배 냄새가 나거나 옷가지가 굴러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방 안에서는 은은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고, 물건들은 무서울 정도로 각이 잡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리 줘봐."

시은이는 절뚝거리며 비좁은 욕실로 들어가더니, 세면대 위에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내, 내가 할게. 너 발도 아프면서."

"됐어. 손목에 힘도 없는 새끼가 애 떨어뜨리려고."

따뜻한 물을 틀고 세면대 쪽으로 허리를 깊게 숙인 그녀의 얇은 끈나시가 아래로 살짝 파이며 아찔한 굴곡이 드러났다.

강아지가 파르르 몸을 털며 물기를 튕겨내자,

물에 젖은 끈나시와 돌핀 팬츠의 얇은 천이 그녀의 뽀얀 살갗에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비좁은 욕실 안,

훅 끼쳐오는 습기와 그녀의 맨살에서 풍기는 짙은 바디워시 향기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욕실 문지방에 바짝 붙어 얼어붙어 있어야만 했다.

시은이는 말끔해진 강아지를 수건으로 말려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치료는 내가 할게, 시은아."

나는 약국에서 사 온 식염수를 꺼내 강아지의 뒷다리를 조심스럽게 소독하고, 거즈를 덧대어 붕대를 감아주었다.

상처 처치를 마친 강아지가 따뜻한 방바닥에 엎드려 새근새근 눈을 감았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편의점 봉투에서 삼각김밥을 꺼냈다.

쾅-!!

그때, 창밖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한 벼락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윗집인지 옆집인지 모를 얇은 벽 너머로 묵직한 가구가 박살 나는 파열음과 함께 남자의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 씨발년이 진짜 돌았나!!'

"끼이잉...!"

깜짝 놀란 강아지가 바들바들 떨며 좁은 소파 밑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시은이의 어깨가 움찔, 하고 튀어 올랐다.

"……!"

그녀의 호흡이 눈에 띄게 가빠졌다.

시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양팔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무릎을 가슴팍까지 당겨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짧은 돌핀 팬츠 탓에 무방비하게 드러난 맨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린 채 파르르 떨리며, 강아지를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때려…. 숨어있으면 돼…. 소리 안 내면 안 때려……."

"시, 시은아…?"

내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른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든 시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시선이 얽힌 찰나, 공포로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황급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평소보다 훨씬 더 표독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뭘 봐."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목소리였다.

"눈 안 깔아? 뒈지고 싶어?"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억지로 악을 쓰는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가파른 흉곽은 여전히 불규칙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대로 뒤돌아설 수는 없었다.

나는 약국 봉투에서 새로 사 온 연고를 꺼내 들고, 소파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발치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뭐 하냐."

"귀찮아도 약은 바르자… 응? 내가 금방 바를게. 안 바르면 계속 덧나서 내내 아플 거잖아."

조심스럽게 달래듯 묻자, 방어적으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시은이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더 이상 발을 뒤로 빼진 않았다.

나는 돌핀 팬츠 아래로 곧게 뻗은 그녀의 얇은 종아리를 두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감싸 쥐어 내 허벅지 위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읏…."

짧은 바지 탓에 가릴 곳 하나 없는 하얀 맨살이 내 체온과 맞닿는 순간, 귓바퀴가 터질 듯 뜨거워졌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시뻘겋게 부어오른 발바닥에만 고정했다.

나는 튜브에서 연고를 듬뿍 짜내어 그녀의 발바닥 한가운데에 묻혔다.

그리고 내 검지손가락으로 상처로 열이 펄펄 끓는 그녀의 발아치를 따라 아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좁은 방안을 채우는 빗소리 속에서, 차갑고 매끄러운 연고가 스며들며 맞닿은 피부 사이로 짙고 나른한 온기가 번져갔다.

"하아…."

연고가 깊숙이 스며들며 묘한 통증과 간지러움이 교차하는지, 웅크린 시은이의 입술 사이로 나른한 숨결이 새어 나왔다.

내 엄지손가락이 발꿈치에서부터 발가락 밑동까지 지그시 누르며 미끄러져 올라가자, 벼락 소리에 놀라 잔뜩 곤두서 있던 그녀의 굳은 어깨가 스르르 풀려 내렸다.

불안하게 오르내리던 가파른 흉곽도, 내 손길이 발바닥을 부드럽게 쓰다듬을 때마다 점차 안정적인 호흡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곧이어 민감해진 그녀의 맑은 발가락들이 파르르 떨리며, 내 손등을 포근하게 감싸듯 오므라들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하얀 허벅지와 땀에 젖은 끈나시 위로 편안하게 오르내리는 숨결, 그리고 내 손길에 완전히 몸을 맡긴 채 안도하는 맨발.

나는 행여나 내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박동이 맨살을 쥔 두 손을 통해 그녀에게 전해질까 봐,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느릿하고 정성스레 약을 펴 바르는 것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폭우가 쏟아지는 주말 오후.

어둡고 좁은 자취방 안에는 차가운 빗소리를 뚫고, 얽혀드는 두 사람의 얕은 숨소리만이 아찔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

.

그로부터 사흘 뒤.

우리는 인터넷 입양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이 닿은 아주머니를 만나기 위해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이미 늙은 개를 키우고 있다는 좋은 가족이었다.

"어머, 사진보다 훨씬 예쁘네. 상처는 우리 단골 병원 데려가면 되니까 걱정 말아요. 학생들 참 착하네."

아주머니가 가져온 이동장 안으로 까만 강아지를 조심스레 옮겨 넣었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꾸벅거렸지만, 곁에 선 시은이는 모자 챙 아래로 시선을 깐 채 묵묵부답이었다.

아주머니가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저기요."

시은이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퉁명스럽게 툭 내뱉었다.

"애가 겁이 많아요. 큰 소리 나면 구석에 숨으니까… 억지로 끄집어내지 말고 그냥 냅두세요. 그리고."

최대한 무심한 척 뱉은 말이었지만, 이동장 안을 응시하는 그녀의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때리지 마세요. 밥 잘 챙겨 주시고요."

"그럼요, 걱정 말아요."

아주머니가 자상하게 웃으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시은이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

비가 그치고 맑게 갠 골목길, 우리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야, 빵셔틀. 빨리 안 쫓아오고 뭐 해."

몇 걸음 앞서 걷던 시은이가 멈춰 서서 신경질적으로 나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어, 지금 가."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내 앞을 걷는 저 등이 오늘따라 전처럼 두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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