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쉼터 밖으로 차량 두 대가 들어온 것은 협박 전화가 끊긴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최은경이 창문 너머를 확인했다.“관할 아동보호기관입니다.”엄마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아이를 안은 여자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진짜… 애 데려가러 온 거 아니죠?”서아가 대답했다.“제가 먼저 확인할게요.”현관문은 열지 않았다.최은경이 인터폰으로 신분과 방문 목적부터 확인했다.“방임 신고가 접수돼 현장 확인을 나왔습니다.”“대상 아동은요?”잠시 침묵.“신고서에는 특정되지 않았습니다.”한재욱이 서아를 바라봤다.역시.강도현 쪽은 누구인지 몰랐다.그저 쉼터 전체를 신고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최은경이 단호하게 말했다.“독립 변호사 입회 조건으로 점검을 허용하겠습니다. 실명 확인, 가족관계 조회, 개별 면담은 당사자 동의 없이 불가합니다.”담당자는 잠시 상부와 통화한 뒤 동의했다.문이 열렸다.두 명의 공무원이 들어왔다.그들은 예상과 달리 아이부터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시설 상태를 확인하고, 식품과 난방, 의료 지원 여부를 살폈다.그 모습을 보던 임산부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희 이름… 안 적어도 돼요?”담당자는 최은경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신고 내용 확인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그 한마디에 여자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서아는 알았다.강도현이 휘두른 가장 큰 무기는 제도가 아니었다.제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두려움이었다.그는 엄마들이 ‘아이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이름을 적게 만들려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 옆에서 말해주고 있었다.무엇을 거절할 수 있는지.어디까지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지.점검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담당자가 말했다.“현재 확인되는 즉각적인 방임이나 위험 징후는 없습니다.”쉼터 직원이 눈물을 훔쳤다.그 순간 한재욱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법원이었다.그가 통화를 마친 뒤 서아를 보았다.“긴급 결정 나왔습니다.”모두가 숨을 죽였다.“D-01 Spec
쉼터 직원이 창백한 얼굴로 다가왔다.“방금 전화가 왔습니다.”서아가 고개를 들었다.“누구한테요?”직원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화면에는 짧은 문자가 떠 있었다.D-01 Special Executor Office비협조 쉼터는 지원 종료 및 법적 책임 검토 대상입니다.금일 18:00까지 산모 명단 및 아동 동반 여부 제출.미제출 시 후원금 지급 중단, 시설 계약 해지, 아동 안전 점검 요청.방 안의 공기가 그대로 깨졌다.“아동 안전 점검…?”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엄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게 뭐예요? 애 데려간다는 뜻이에요?”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다른 임산부가 배를 감싸 쥐었다.“후원금 끊기면 우리 여기 못 있는 거잖아요.”“계약 해지면 오늘 나가야 하는 거예요?”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쉼터 안은 순식간에 무너졌다.방금 전까지 닫아도 된다고 말했던 문이, 다시 뒤에서 잠기기 시작했다.서아는 휴대폰 화면을 똑바로 보았다.강도현은 기다리지 않았다.그는 협박을 천천히 보내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문틀째 부수려 했다.한재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저건 법적 효력 없습니다.”지연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그걸 여기 엄마들이 어떻게 알아요?”한재욱은 입을 다물었다.맞았다.법적 효력이 없어도 공포는 효력을 가졌다.태준이 바로 말했다.“시설 계약서 확인해요.”직원이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한재욱이 빠르게 넘기다 멈췄다.“해지 조항이 있습니다. 후원기관이 위험 관리상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즉시 지원 중단 가능.”최은경의 얼굴이 굳었다.“그 조항도 잘못됐습니다.”한재욱은 낮게 말했다.“제가 만든 양식입니다.”그 한마디에 직원의 눈빛이 흔들렸다.엄마들 중 한 명이 물었다.“그럼 결국 당신들이 만든 거잖아요.”한재욱은 고개를 숙였다.“맞습니다.”짧은 침묵.그는 도망치지 않았다.“제가 만든 문장 때문에 지금 여러분이 협박받고 있습니다.”젊은 엄마가 아이를 안고 뒤로
Founding Legal Advisor: Han Jae-wook그 이름이 화면에 떠 있는 동안, 회의실 안에서는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한재욱은 창백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남의 이름을 보는 사람처럼.아니, 지워버렸다고 믿었던 자기 이름을 다시 마주한 사람처럼.서아가 낮게 물었다.“설명하세요.”한재욱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태준의 시선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지연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봤다.“한 이사장님.”서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이번엔 ‘몰랐다’고 하면 안 됩니다.”그 말에 한재욱의 눈가가 흔들렸다.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기억납니다.”회의실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그때 이름은 달랐습니다. ‘위기 산모 회복지원 네트워크’. 태성 법무재단에서 외부 복지기관 설립을 자문했습니다.”지연이 차갑게 물었다.“아이랑 엄마 찾는 콜센터 만든 거네요?”“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 말, 지금 제일 듣기 싫은 말인 거 아시죠?”한재욱은 고개를 숙였다.“압니다.”서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계속하세요.”한재욱은 화면 속 업체 소개 문구를 바라봤다.위기 산모와 아동의 안전한 회복을 지원합니다.아름다운 말이었다.그래서 더 끔찍했다.“문서상 목적은 위기 산모 긴급 숙소, 의료 연계, 상담 지원이었습니다. 저는 비영리기관 설립 절차, 개인정보 처리 동의서, 의료기관 협약서, 후원금 관리 규정을 만들었습니다.”태준이 낮게 말했다.“그 안에 추적 조항도 있었겠지.”한재욱은 입술을 깨물었다.“있었습니다.”짧은 침묵.이번에는 변명하지 않았다.“12조. 안전 확인을 위한 관계기관 정보 조회 동의. 18조. 산모 위험 발생 시 후원기관 통보. 21조. 아동 보호 이력의 연속성 확인.”도윤이 조항을 화면에 띄웠다.Clause 12. Safety Confirmation AccessClause 18. Emergency Maternal Risk Notifi
태성이 만든 절차의 버릇을, 강도현은 아직도 읽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회의실에 뜬 이름 하나가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Mothers First Care ServiceFounding Legal Advisor: Han Jae-wookLegacy contact restored by D-01 emergency network.도윤의 화면에 그 문장이 떠오른 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강도현.그는 구치소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아직 밖을 걷고 있었다.병원 접수대. 약국. 보호 숙소.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문 앞까지.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CP-02 보호자는요?”최은경이 바로 답했다.“이동했습니다. 병원 진료는 끝났고, 약은 받았습니다. 숙소도 바꿨습니다. 위치는 저만 알고 있습니다.”태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병원 쪽에서 이름을 넘겼을 가능성은?”“아직 없습니다.”도윤이 기록을 빠르게 넘겼다.“문의는 병원 대표번호로 들어왔습니다. ‘태성 복지회복 연락관’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미성년 보호 대상자의 보호자명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접수 직원이 이상하게 여겨서 답하지 않았고요.”지연이 이를 악물었다.“그 직원 아니었으면 바로 뚫렸겠네.”“맞아요.”도윤의 목소리도 낮았다.“이번엔 운이 좋았습니다.”운.서아는 그 단어가 싫었다.아이 하나가 이름을 빼앗기지 않은 이유가 절차가 아니라 운이어서는 안 됐다.최강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태성 복지회복 연락관이라는 부서는 현재 없습니다. 과거 복지재단, 의료지원팀, 법무 리스크팀이 같이 쓰던 외부 연락 명칭입니다.”한재욱이 낮게 덧붙였다.“피해자를 돕는 척 접근할 때 쓰던 이름입니다.”민유라가 화면 너머에서 작게 말했다.“그 이름으로 나한테도 왔었어.”서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민유라는 오래된 기억을 꺼내듯 천천히 말했다.“도와주겠다고 했어. 병원비, 숙소, 서류. 그런데 마지막엔 늘 이름을 물었지.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누구
돈은 공개한다. 아이는 보호한다.서아의 말은 다음 날 아침 모든 기사 제목이 되었다.누군가는 명문장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감성 정치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가처분은 기각됐고, 아이의 자리 기금은 멈추지 않았다.문제는 바로 그다음에 왔다.도윤이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왔다.“2호 신청 건, 지급이 막혔습니다.”서아가 고개를 들었다.“왜요?”“은행 확인 단계에서 수령자 실명과 보호자 관계 증빙을 요구했습니다. 지급 목적이 ‘미성년 피해자 회복 지원’으로 잡히면서 내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에 걸렸습니다.”지연이 헛웃음을 쳤다.“그러니까 법원은 이름을 가리라고 했는데, 은행은 이름을 내놓으라는 거네.”최강우가 바로 자료를 확인했다.“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틀린 요구가 아닙니다. 실제 지급을 하려면 수취인 확인이 필요합니다.”서아는 조용히 물었다.“그럼 결국 돈이 지나가려면 아이 이름이 필요하다는 뜻인가요?”회의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최강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답이었다.태성은 병원과 재단과 법으로 이름을 붙잡았다. 이제는 은행이, 규정이, 지급 시스템이 이름을 요구하고 있었다.악의가 없어도 사람은 벗겨질 수 있었다.한재욱이 낮게 말했다.“직접 현금 지급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목적 제한 지급은 가능합니다. 병원, 약국, 보호 숙소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수령자 실명 노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최은경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동권리 신탁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의 실명은 독립 수탁자와 법원 비공개 기록에만 두고, 기금 위원회에는 비식별 번호만 공유하는 방식입니다.”도윤이 빠르게 정리했다.직접 지급 중단보호 목적별 대납 전환법원 비공개 신탁번호 발급위원회 열람 정보: 집행번호, 항목, 금액, 검증자서아는 화면을 바라봤다.“좋아요. 그런데 오늘 지급이 필요한 거죠?”도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네.”그가 2호 신청인의 비식별 메시지를 띄웠다.아이가 열이 있습니다.병원에는 갔지만, 이
법원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임시 심문실 앞 복도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소액주주 연합 측 변호인단은 이미 두꺼운 서류철을 쌓아두고 있었다.서아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태준이 낮게 물었다.“괜찮아?”서아는 대답 대신 손에 든 파일을 내려다봤다.아이의 자리 기금 1호 집행 보고서수령자명: 비공개검증: 독립 아동권리 변호사, 회계감시인 이중 확인권리 포기 조항: 없음비밀유지 조항: 없음이 문서에는 이름이 없었다.그래서 상대는 공격할 것이다.이름 없는 지급. 검증 없는 보상. 강서아 측의 사적 기금 운용.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괜찮아야지.”심문실 문이 열렸다.안에는 이미 소액주주 연합 측 대리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아가 들어오자마자 노골적으로 시선을 보냈다.동정도, 분노도 아니었다.계산이었다.재판장이 들어오자 모두가 일어섰다.“사건번호 2026카합… 태성그룹 임시 책임 구조 관련 보상기금 익명 지급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을 시작하겠습니다.”재판장의 목소리는 건조했다.“신청인 측, 주장하십시오.”소액주주 연합 측 대표 변호사 고태섭이 일어났다.“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건은 감정적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닙니다. 태성그룹 자산에서 분리된 보상기금이라 하더라도, 그 재원은 궁극적으로 회사 가치와 주주 재산권에 영향을 미칩니다.”그는 화면에 표를 띄웠다.익명 지급 구조수령자 신원 비공개피해 사실 세부 비공개보호자 관계 비공개사용처 일부 비공개고태섭은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눌렀다.“이 구조에서는 누구에게 돈이 나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자인지, 실제 미성년자인지, 보호자가 정당한지, 금액이 적정한지 알 수 없습니다. 신청인 측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그는 서아 쪽을 힐끗 보았다.“강서아 씨 측은 ‘아이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신원 확인 없는 지급은 횡령과 사적 유용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익명 지급은 즉시 중지되어야 합니다.”심문실 안이 조용
문이 잠긴 소리가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철컥.그 짧은 금속음이—이 방을 완전히 밀실로 바꿔버렸다.윤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눈앞.한수민을 닮은 여자.하지만—전혀 다른 존재.“…엄마 아니야.”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도윤이 먼저 움직였다.문으로 달려갔다.손잡이를 잡았다.철컥.돌아가지 않았다.“잠겼습니다.”낮고 짧은 보고.서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당황하지 마.”도윤이 뒤를 돌아봤다.“상대가 유도했습니다.”“알아.”짧은 침묵.서아의 시선이 방 안을 훑었다.문. 창문. 가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차창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윤서아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손에는—반지.피가 말라붙은 채 남아 있는 반지.“…이상해요.”강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아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뭐가.”“당신 어머니.”짧은 침묵.“죽은 기록이 없습니다.”서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뭐?”도윤이 말을 이었다.“사망 신고.”“없습니다.”정적.“장례 기록도 없고.”“화장 기록도 없습니다.”차 안 공기가 멎었다.“…그럼 뭐야 그게.”
어둠 속에서 소리가 먼저 떠올랐다.삐— 삐— 삐—규칙적인 기계음.그 다음에야 감각이 돌아왔다.차가운 공기. 무거운 몸. 그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윤서아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흐릿한 천장. 형광등 불빛이 번져 보였다.“…여기…”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그때였다.“환자분! 눈 뜨셨어요?”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고, 곧 의사가 따라 들어왔다.서아의 시야에 여러 얼굴이 겹쳐 보였다.“의식 돌아왔습니다. 동공 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윤서아는 비를 맞은 채 서 있었다.숨이 가빴다.“…태준.”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눈앞.강태준.그리고—그 옆에 서 있는 윤지연.“왜 여기 있어…”짧은 침묵.지연이 먼저 웃었다.“언니.”한 걸음 다가왔다.“죽은 줄 알았는데, 끈질기네.”공기가 식었다.서아의 시선이 태준에게 향했다.“…너.”입술이 떨렸다.“설마…”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서아를 보고 있었다.감정 없는 얼굴.“…말해.”“아니라고 해.”정적.하지만—그는 끝내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