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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作者: 진이이
‘어젯밤 클럽에서 나를 구해 준 그 남자분이잖아!’

‘이분이... 진씨 가문 사람이었어?’

하설이 급히 다가서자 경호원들이 즉시 막아섰다.

하설이 다급하게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남자는 하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깊은 눈동자에는 낯선 차가움과 예리함이 섞여 있었다.

시선이 말없이 하설을 향했다.

남자가 손을 살짝 들자 경호원이 물러났다.

하설은 맑은 눈동자에 고마움을 담은 채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자, 하설은 눈앞의 남자가 문교보다도 키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말했다.

“어젯밤 저를 병원에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담담하게 하설을 훑었다.

“괜찮아.”

하설은 주먹을 꼭 쥐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입술을 꼭 다물고 있던 하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방금... 낙찰 받으신 그 목걸이, 제게 파실 수 있을까요?”

말이 떨어지는 내내 주먹을 쥔 손마디마저 하얗게 굳었다.

자신의 말을 무례하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됐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뜻밖에도 남자의 손에는 정교한 벨벳 상자가 들려 있었다.

남자는 손끝으로 상자 표면의 문양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상자를 하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하설은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원하던 물건이 손에 들어왔지만 감히 받을 수가 없었다.

남자가 옆에 있던 비서를 바라보았다.

윤재가 곧 명함을 건넸다.

“저희 회장님 명함입니다.”

하설은 명함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느낌의 검은색 특수 용지로 만든 명함은 손끝에 닿는 질감은 매끄럽지만 이상할 정도로 묵직했다.

금박이 새겨진 문양이 빛을 머금을 때마다 은은하게 반짝여서, 명함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남자의 이름이 단정하게 박혀 있었다.

‘진우건...!’

하설이 서둘러 말했다.

“회장님, 곧 연락을 드리고 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우건의 시선이 연약한 나비의 날개처럼 떨고 있는 하설의 속눈썹에 머물렀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렀다.

“심하설 씨.”

하설은 순간 얼어붙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이어 잔뜩 목이 잠긴 우건의 목소리가 조용히 하설의 귀에 전해졌다.

“서영준 씨는 제 형님입니다. 내일 오전에, 하율이를 데리고 명함 뒷면의 주소로 오세요. 하율의 양육권 문제를 이야기합시다.”

‘진 대표가... 서 회장님의 동생이라니.’

‘하율이 양육권을 두고 나와 다투려는 거야!’

하설은 곧바로 목걸이를 밀어냈다.

“하율이와 목걸이를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3번 룸의 문이 열렸다.

문교가 채아를 데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채아가 놀란 척 말했다.

“언니가 왜 여기 있어?”

문교도 여기서 하설을 볼 줄 몰랐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설과 우건을 번갈아 보다가, 보청기를 착용한 걸 확인한 문교가 입을 열었다.

“설아, 진 회장님께 무슨 볼일이 있어?”

하설은 굳어졌다.

문교가 채아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문교는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하는 걸 가장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때 문교가 그런 굴욕을 싫어했기 때문에, 하설은 자신의 결혼으로 문교가 배씨 집안에 당당히 들어갈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하설은 문교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이 진 회장님을 찾은 이유는... 똑같아.”

문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앞으로 나서면서 하설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설은 몸을 비키면서 피했다.

문교의 손은 허공만 움켜쥘 뿐이었다.

마침 우건의 조소 어린 시선과 마주쳤다.

문교는 등을 똑바로 세우고 넥타이를 정리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BY그룹의 배문교입니다.”

우건은 문교를 힐끗 보았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눈빛에서는 묵직한 위압감도 느껴졌다.

타고난 오만함과 고귀한 기운이 뼛속까지 배어 있었다.

우건이 대답하지 않자 문교가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 낙찰을 받으신 비취 목걸이를 돈을 더 드리고 사고 싶습니다. 혹시 양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건의 날카로운 시선이 가까이 붙어 있던 문교와 채아를 훑더니, 입꼬리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배 대표와 사모님 사이가 참 좋군요.”

문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해입니다. 채아는 제 동생이고, 이쪽이 제 아내입니다.”

문교가 하설을 가리켰다.

우건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미안합니다. 진씨 집안은 집안 교육이 엄해서 설사 남매라도 선을 지켜야 해서...”

문교의 안색이 붉그락푸르락 변했다.

그때 채아가 주제도 모르고 나섰다.

“회장님, 문교 오빠랑 저는 오는 길에...”

우건의 목소리가 매섭게 채아의 말을 잘랐다.

“내가 그쪽에게 말을 걸었어? 그쪽은 누군데?”

채아는 우건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체면을 구기게 만들 줄은 몰랐다.

입술을 꽉 깨물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계속 불쌍한 척 행동했다.

“회장님, 전 정말 그 목걸이가 좋아요...”

“좋다고?”

우건은 나지막하게 웃었지만 조롱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쉽지만 배 대표, 한발 늦었어요. 그 목걸이는 이미 심하설 씨가 샀어요.”

하설은 순간 멈칫했다가 곧바로 채아를 향해 손에 든 상자를 흔들며 웃었다.

채아는 분한 마음에 그저 입술만 꼭 깨문 채 옷자락만 움켜쥘 뿐이다.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우건은 차갑고 귀티 나는 모습으로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손에 넣는 게 능력이 아니고. 지키는 게 능력이지.”

말을 마치자 경호원들이 앞을 열었다.

우건은 앞만 바라보면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문교는 진씨 집안의 새 총수가 고고하고 차가운 데다가 누구도 눈에 두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늘 보니 소문 그대로였다.

눈을 감은 문교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우건 앞에서 연이어 당한 불쾌감을 눌렀다.

채아가 하설을 향해 말했다.

“언니, 그 목걸이 나한테 주면 안 돼?”

하설은 차갑게 웃었다.

“이젠 체면도 안 차리니?”

문교의 목소리는 지친 듯했다.

“설아, 왜 그렇게까지 날을 세워?”

고개를 든 하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가 채아에게 이걸 주길 원해?”

문교는 하설을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한 2년 동안 내가 준 선물이 수백 개야. 하나같이 이 목걸이보다 비싸.”

“남의 마음에 든 걸 빼앗는 건 좋은 일이 아니잖아. 채아가 저렇게 원하니 내 체면을 봐서 양보해 줘.”

하설은 천천히 눈을 들면서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했다.

한때 사랑으로 가득했던 눈에는 차가운 핏발과 죽은 잿빛만 남아 있었다.

“이 목걸이는 네가 14살에 고열 끝에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비가 없었던 우리 할머니가 전당포에 맡겼던 유일한 혼수였어. 윤채아는 이걸 볼 자격도 없어.”

하설은 더는 문교를 보지도 않고 바로 돌아섰다.

등을 곧게 세운 채 한 걸음씩 또박또박 걸으면서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문교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기억의 한 구석이 열리면서 비로소 진실이 드러났다.

채아는 이렇게 조용한 문교를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기에 조심스레 팔을 잡아당겼다.

“오빠, 괜찮아?”

문교는 채아의 손을 떼어 냈다.

“집에 가야겠어.”

채아는 질투가 치밀었다.

“오늘 밤에 나랑 새해맞이 보러 나올 거야?”

문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건조했다.

“나중에.”

채아는 문교의 품에 파고들면서 허리를 안았다.

“관심도 없다더니, 언니는 가 버렸는데 오빠는 계속 뒷모습만 보고 있네.”

문교는 가볍게 웃었다.

“착각이야.”

채아는 세게 콧소리를 냈다.

“몰라. 다음엔 아주 비싼 보석 사 줘.”

문교는 대답했다.

“그래.”

채아는 더 요구했다.

“회사 상장하고 나면 오로라 보러 같이 가고 싶어.”

문교는 말을 하지 않고 미간만 찌푸렸다.

아주 오래전, 문교는 회사가 상장되면 하설을 데리고 오로라를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문교의 가슴을 손끝으로 천천히 어루만지면서 쳐다보는 채아의 눈길은 애처로웠다.

“낮에는 숨어 있을 테니까 밤에만 몰래 와 줘. 오빠랑 오래 떨어지기 싫어.”

문교는 채아를 안았다.

“그래.”

...

하설이 집에 도착했을 때, 하율은 이미 장성미 여사 쪽 사람이 데려다 놓은 뒤였다.

배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하설과 하율 모자를 싫어했다.

하지만 장성미 여사는 좋은 사람이었다.

장 여사는 하설에게 잘해 주었고, 하율에게도 다정했다.

자주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며칠씩 재우기도 했다.

최근 반년 동안은 특히 잦았다.

하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증손주를 안고 싶은 장 여사가 일부러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다섯 살의 하율은 보청기를 끼고 수어로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잘해 줬어. 내일은 새해 첫날이니까 엄마랑 아저씨랑 같이 보내야 한다고 집에 보내 주셨어.”

하설은 쪼그리고 앉아서 하율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일 오전에 엄마가 누군가 만나게 해 줄게. 괜찮지?”

하율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설은 하율을 방으로 데려다 준 뒤 안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 서랍에서 이혼합의서와 혼전계약서 사본을 꺼내서 파일 폴더에 넣었다.

이것이 상장 발표회에서 문교에게 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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