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享

제2화

作者: 진이이
소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했다.

차 안에서는 휘성의 당부만 들렸다.

“결혼 후 가정의 재정권은 계속 배문교 대표에게 있었죠? 먼저 배 대표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휘성이 말했다.

“전에 한 IT 기업 대표가 연봉 만 원으로 일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배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닐 겁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사모님을 노렸을 리는 없겠죠.”

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볼게요. 우선 은행에 들러 주세요.”

하설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채아가 품에 유기견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교는 수건으로 끈적하고 더러운 털을 닦고 있었다.

개를 감싸고 있는 건 짙은 갈색 목도리였다.

지난해, 하설이 한 달 동안 손수 뜨개질을 해서 문교에게 새해 선물로 준 목도리였다.

두 사람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설을 본 채아는 문교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면서 그 뒤로 슬쩍 숨었다.

“언니 왔구나.”

문교는 수건을 내려놓았다.

“왔어?”

하설은 조용히 걸어갔다.

채아 품속의 개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짐승이 자리를 잘 찾아왔네.”

채아의 볼이 붉어지면서 억울한 듯 문교를 바라보았다.

문교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길에서 주웠어. 이렇게 눈이 오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이번 겨울을 못 넘길 거야. 우리 설이 예전엔 동물 좋아했잖아.]

하설은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도 변해. 잠깐 이리 와. 할 말이 있어.”

말을 마친 하설은 곧장 거실로 갔다.

채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문교에게 매달렸다.

“언니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나 봐. 계속 미워해. 차라리 강아지랑 호텔로 갈까? 나 때문에 언니랑 오빠가 싸우는 것도 싫고, 오빠가 곤란해지는 것도 싫어.”

문교는 채아의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가 해결할게.”

문교도 거실로 들어갔다.

하설은 눈을 들었다.

“내가 윤채아 싫어하는 거, 당신 몰라? 유준이 왜 병원에 누워 있는지 몰라?”

문교의 눈빛에 짜증의 기색이 스치더니, 이마를 문지른 뒤 수어로 답했다.

“그 일은 경찰도 조사를 끝냈어. 유준이 식물인간이 된 건 채아와 직접 관련이 없어.”

“채아가 유준이 여자친구든 그냥 친구든, 친구가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나서는 게 당연하잖아.”

“유준이 채아한테 숨어 있으라고 해서 채아가 창고에 들어간 거야.”

“유준이 뒤따라갔을 때 낡은 창고 문이 열리지 않았어. 그래서 유준이 맞은 거야. 채아도 피해자야.”

“너도 예전엔 채아를 친동생처럼 아끼면서 나한테 잘해 주라고 했잖아.”

“채아는 이웃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갈 곳도 없어. 경운시에서 아는 사람은 우리뿐이야. 근거 없는 미움에 눈이 멀면 안 돼.”

하설의 손끝이 싸늘해졌다. 웃으려고 했지만 입가에는 결국 우는 것보다도 못한 서글픈 미소만 걸려 있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해?”

문교는 하설 앞에 와서 무릎을 굽혔다.

“채아도 대가를 치렀어. 그때 유준이를 위해 빌겠다며, 눈 오는 절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기도하느라 다리가 다 얼 뻔했어.”

‘이게 무슨 말이야?!’

하설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동생 유준은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채아는 다리가 얼 뻔했단다.

하설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666번이나 외도했다.

마지막 한 달이 더해진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도 마음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썩은 살을 도려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겠지.’

문교는 하설의 손을 잡고 입술에 가져갔다.

“역시 우리 설이 세상에서 제일 착해!”

하설은 단호하게 문교를 밀어내고 돌아섰다.

문교는 니트를 입은 하설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설이... 왜 이렇게 말랐지?’

문교는 하설의 팔을 붙잡았다.

하설이 돌아보자, 문교는 시선을 맞추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밤 약속 잊지 마.”

그때 채아의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오빠, 오늘 밤 무슨 약속 있어? 강아지 검사하러 같이 가 주기로 했잖아.”

하설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문교의 손을 떼어 낸 뒤, 계단을 올라갔다.

하설의 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던 문교가 채아에게 말했다.

“내일 경운시에서 경매가 있어. 내 사촌동생 남희가 총괄 기획자거든. 오늘 밤에 남희가 다 같이 클럽에 모여서 응원해 달라고 했어.”

채아가 말했다.

“나도 갈래.”

문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곤란해.”

채아는 발을 굴렀다.

“그럼 나 혼자 클럽 가서 술 마실래!”

말을 마친 채아는 개를 안은 채 뛰쳐나갔다.

문교는 채아를 따라가는 대신에 거실에 앉아서 하설의 말과 행동을 되짚었다.

오늘 하설은 어딘가 이상했다.

‘혹시 나와 채아의 관계를 알게 된 걸까?’

‘아니야. 그랬다면 하설은 이미 난리를 쳤을 건데...’

문교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이마를 문질렀다.

‘아마 성묘에 같이 가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내일 경매에서 보석이나 몇 점 더 사 주면 될 일이다.

하설은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거실에 문교 혼자만 있는 걸 보자,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출발해도 돼?”

문교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까지 와서 하설을 부축한 뒤, 흰색 외투를 입혀 주었다.

“눈 오잖아. 밖이 많이 추워. 따뜻하게 입어야 감기 안 걸려.”

하설은 문교가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차에 올랐다.

클럽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설은 남희에게 인사한 뒤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스만 조금씩 마시면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남희는 할머니의 부탁을 떠올렸다.

조용히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스파클링 와인 잔에 떨어뜨렸다. 그런 뒤 잔을 하설에게 건넸다.

하설은 받았다.

남희가 서툰 수어로 말했다.

“새언니, 내일 경매 꼭 많이 도와줘요.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이건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이에요.”

하설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씨 집안 사람들 중 하설에게 잘해 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남희는 그중 한 명이라서, 하설은 남희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설은 잔을 부딪친 뒤 그대로 마셨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남희는 겨우 한숨을 놓았다. 적어도 할머니의 부탁을 망치지는 않은 셈이었다.

할머니가 증손주를 안게 된다면, 남희도 일등공신일 것이다.

그 자리에는 문교의 친구 오지훈도 있었다.

방금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지훈은 문교 옆에 털썩 앉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이야? 와이프 데려와 놓고 애인을 남의 품으로 내보내려는 거야? 방금 로비에서 누가 채아한테 집적거리던데.”

말을 마친 지훈이 하설 쪽을 힐끗 봤다.

문교는 얼굴에 별다른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말도 없었다.

하지만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훈이 다시 말했다.

“어차피 제수씨는 듣지도 못하잖아. 적당히 둘러대고 나가 봐. 네 애인 놓치겠다?”

잔을 내려놓은 문교가 하설을 바라보며 수화로 말했다.

“전화 한 통 하고 올게. 곧 돌아올 테니 얌전히 기다려.”

하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교가 급히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훈은 곧 카드판으로 끌려갔다.

늘 그랬듯 모두 하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하설이 룸을 나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시끄러운 음악이 고막을 때리자, 하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로비로 걸어갔다.

구경꾼들 뒤에 선 하설은, 채아에게 고백하는 남자의 이벤트를 문교가 발로 차 엎어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채아에게 고백하던 남자가 분노했다.

“당신 뭐야? 대체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

문교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말해. 내가 누구인지.”

채아는 고집스럽게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저분 모르는 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교가 채아의 팔을 잡고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양손으로 채아의 얼굴을 감싼 문교는, 마치 벌을 주듯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하설은 핸드폰을 꺼내 그 장면을 찍었다.

문교의 외도 상대가 채아만 아니었다면, 하설이 이토록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문교가 모든 것을 잃게 만들 것이다.

기업이 상장되면서 주식 시가 총액이 몇 배나 뛰고, 인생의 정점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배문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눈가의 눈물을 닦으면서 하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피어났다.

在 APP 繼續免費閱讀本書
掃碼下載 APP

最新章節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30화

    수술실 문이 다시 닫혔고 붉은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하설은 곁에 선 우건을 바라보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 감사합니다. 할머니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하설을 바라보는 우건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하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 먼저...”하지만 말이 중간에서 끊어졌다. 하설은 계속 가슴을 눌러 오던 뜨거운 뭔가를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며칠째 이어진 정신적 압박과 쌓인 감정에, 몸의 한계가 모두 피 속으로 몰려든 듯했다.“콜록, 콜록...”하설의 안색이 바뀌었다. 몸을 숙이고 격렬하게 기침을 하더니, 예고도 없이 검붉은 피가 입에서 튀어나왔다.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면서, 귀에 들리던 소리도 천천히 멀어졌다. 세상이 뒤집히는 듯하면서, 하설의 몸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아래로 무너졌다.하지만 바닥에 부딪치는 아픔은 전해지지 않았다.하설이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남자가 강한 팔로 몸을 받쳤다.두 눈을 꼭 감은 하설의 몸은 차가웠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가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우건이 하설을 안아 들고서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설아, 드디어 깼구나.”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하설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어떻게 당신이 있어?”문교는 조심스럽게 하설의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아직 수액 맞고 있잖아. 할머니 수술은 아직 안 끝났어. 별말이 없다는 건, 아직 괜찮다는 뜻이야.”“의사가 말하길, 너는 요즘 감정 기복도 크고 정신적 압박이 심해서, 스트레스로 위장의 혈관이 파열됐대. 푹 쉬어야 한다고 했어.”하설은 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문교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묻어났다.“할머니가 그렇게 심하게 다치신 줄 몰랐어. 그때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네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할머니가 깨어나시면 내가 직접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할게.”문교를 바라보는 하설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9화

    말을 마치자 문교는 전화를 끊었다.“여보세요, 여보세요...!!”핸드폰에서는 차가운 통화 종료음만 흘렀다.핸드폰을 든 하설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귀 안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렸다.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찬바람이 거침없이 밀려들면서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하지만 하설은 슬퍼할 시간도,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할머니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다. 하설이 버텨야 했다. 할머니를 살려야 했다.이 세상에서 하설에게 차고 따뜻한 것을 물어봐 줄 혈육은 할머니뿐이었다.‘누구를 찾아야 할까?’‘한소영 여사!’하설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소영에게 전화했다.“여사님, 제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셨어요.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병원에서는 도현민 선생님이 직접 집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소영 여사님,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한소영은 조금 놀란 듯했다.[널 도와주기 싫은 게 아니라, 도씨 집안은 대대로 진씨 집안을 배경으로 삼은 의료계 명문 집안이야.] [보통 사람이 친분을 만들 수 있는 집안이 아니야. 나도 도 선생 어머니를 한 번 본 게 전부야.]하설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폐를 끼쳤다고 말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도씨 집안은 진씨 집안을 배경으로 삼은 의료계 명문 집안...’‘진씨 집안...’‘진우건?!’한 손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하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 우건의 번호를 찾아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의 연결음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무너져 가는 신경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제발... 전화를 받아 주세요...’통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동으로 끊기기 직전에 비로소 전화가 연결됐다.나지막하고 안정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네.]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하설은 눈물이 다시 쏟아질 뻔했다.“회장님, 저예요. 심하설입니다. 죄송해요, 방해해서... 제 할머니가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데, 당장 수술이 필요해요...”“병원에서는 도현민 선생님만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8화

    쿵!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두개골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는 끔찍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할머니!”하설은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갔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축 늘어진 할머니를 끌어안았다.“할머니, 괜찮아요? 저 좀 봐요!!”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핸드폰!! 내 핸드폰이 어디 있지?!’당장 119에 신고해야 했다.주머니를 뒤진 하설은 핸드폰을 꺼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119를 눌렀다.“로온힐스 1단지예요. 어르신이 계단에서 떨어져 의식이 없어요. 제발 빨리 와 주세요. 빨리요...”채아의 몸이 굳어지면서 눈빛이 흔들렸다.두 손은 난간을 꽉 잡은 채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피어났다.‘저 늙은이, 설마 죽지는 않겠지?’극도의 혐오와 원망으로 가득찬 살기를 품은 시선이 채아에게 꽂혔다.그 눈빛을 마주하자 채아는 본능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하설은 잔뜩 쉰 목소리로 한 글자씩 씹듯이 내뱉었다.“윤채아! 우리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겠어!”...차가운 병원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하설은 혼자 복도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술 중’이라는 붉은 불빛이 눈을 뜨겁게 비췄다.성순이 하율을 데리고 도착했고, 하설의 보청기도 가져왔다.성순이 있기에 하설은 습관처럼 보청기를 꼈다.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짙은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나왔다.“주영숙 어르신 보호자분 계십니까?”하설은 튕겨 오르듯 일어났다.“저요. 제가 손녀예요. 우리 할머니 지금 어떠세요?”의사는 불필요한 말은 전혀 없이 간결하게 말했다.“어르신은 이송 당시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심장병 병력이 있다는 점은 알고 계시죠.” “이번 충격으로 급성 광범위 심근허혈과 심각한 부정맥이 발생했습니다. 쉽게 말해 급성 심근경색입니다.”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 송곳처럼 하설의 가슴에 박혔다.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의사 앞에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7화

    하설은 멍한 눈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인지 안 들려. 미쳤어? 놔.”채아는 풋 웃었다.“언니, 내가 방금 밖에서 봤어. 전화 받을 때 보청기도 안 끼고 있었잖아. 아직도 내 앞에서 연기해?” “청력이 돌아온 걸 왜 문교 오빠한테 숨겨? 무슨 떳떳하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거야?”눈을 내리깐 채 하설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면서,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다른 손으로 채아의 손을 떼어 내면서 하설이 말했다.“청각장애인 앞에서 혼자 떠들어 대는 걸 보니,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외로운가 보네.”채아는 하설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아직도 연기해?”하설은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채아를 쓱 훑어보고는,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화가 치민 채아가 다시 하설 앞을 막았다. 얼굴을 거의 붙이다시피 다가와서는, 마치 승자처럼 비웃었다.“그럼 내가 말해 줄게. 문교 오빠는 언니가 늙은 남자와 결혼했던 걸 더럽다고 여겨.” “결벽증이 있어서 차라리 한밤중에 차를 몰고 나를 찾아와 자더라도, 언니는 건드리고 싶지 않대.”“문교 오빠가 왜 언니랑 결혼했는지 알아? 첫째,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둘째, 언니 동생이 나를 구하다 식물인간이 됐으니까 불쌍해서.”“셋째, 한소영 여사가 문교 오빠 세력이 너무 커지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야. 언니처럼 배경도 없는 장애인과 결혼해야 한소영 여사가 안심할 수 있었거든.”말을 할수록 채아의 웃음은 더 커졌다.“언니, 솔직히 알려 줄까? 사실 언니 남편 욕구가 엄청 강해. 매일 밤 나를 원해. 너희 신혼 첫날 밤에도, 우리는 언니 방 발코니에서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했어.”짝!날카로운 손바닥이 바람을 가르며 채아의 뺨에 정확히 떨어졌다.채아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하얀 뺨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하지만 채아는 화를 내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기 전부터 크게 웃었다.“드디어 꼬리가 잡혔네.”채아는 타오르는 눈으로 하설을 바라보았다.“역시 들리는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6화

    “다만 사모님께서 그동안 맞지 않는 세팅을 오래 견뎌 오신 탓에, 오히려 정상 세팅이 낯설게 느껴지는 겁니다. 천천히 적응하셔야 합니다.”하설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군요.”이재훈은 하설 모자를 밖으로 배웅하며 말했다.“이건 배 대표님이 큰돈을 들여 사모님께 맞춘 제품입니다. 이것도 안 맞으면 시중의 어떤 보청기도 쓰기 어려울 겁니다.” “우선 적응해 보세요. 정말 견디기 힘들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네, 알겠습니다.”하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진료실 밖으로 나온 하설은 하율의 손을 잡았다.“감사합니다, 교수님.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잖아요. 교수님처럼 마음씨 좋으신 분은 하늘도 다 보고 있을 거예요. 언젠가 꼭 돌려받으실 겁니다.”이재훈의 눈가가 움찔하더니, 미소도 조금씩 어색해졌다.“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모님, 조심히 가십시오.”하설을 보낸 뒤, 이재훈은 진료실로 돌아가기도 전에 급히 핸드폰을 꺼내 은행 알림을 확인했다.계좌에 2천만 원이 입금됐다는 알림이었다....의사 면허가 날아갈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런 일을 도왔으니, 문교가 건넨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문교가 이만한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다는 건, 분명 드러나지 않은 자금줄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그 돈은 문교 명의가 아닌, 그가 믿는 누군가의 차명 계좌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배문교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수석비서 양현? 아니면 윤채아일까?’하설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켰다. 실타래처럼 엉켜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하설은 반쯤 넋이 나간 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차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푸는데, 거치대의 핸드폰이 울렸다.하설은 전화를 받은 뒤 하율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하율은 작은 손을 들어 눈송이를 받으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올해는 눈이 정말 많이 와요.”두 사람이 조각 장식이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간 뒤,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라즈베리 핑크색 벤츠 안에서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5화

    이재훈은 평가표를 여의사에게 건넸다.“됐습니다.”여의사는 서둘러 진료실을 나갔다.이재훈은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배 대표님. 사모님이 아이 인공와우 수술 전 검사 때문에 제 진료실에 오셨습니다.”이재훈이 문교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하설의 살짝 귀를 기울였다. 한 손으로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율과 수어로 대화를 이어 갔다.이재훈의 말이 그대로 귀에 들어왔다.“정말 저를 곤란하게 하십니다. 사모님 보청기 파라미터를 더 올리면 사모님 몸과 정신 건강에 악영향이 생깁니다.”“심하면 귓속이 계속 찌르는 듯 아프고, 고막에 천공까지 생길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인공와우 수술도 영영 못 합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닙니다!”“하하하, 역시 배 대표님은 통이 크시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하설의 손톱이 자신의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면서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알고 보니... 전부 거짓이었다.후천성 난청이라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말도 거짓이었다.체질이 특이해 보청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말도 거짓이었다.문교는 의사와 짜고, 하설을 평생 소리 없는 세상에 가둬 두려고 했다.‘짐승...’소리 없는 분노가 하설의 눈속 깊은 곳에서 타올랐다.하설은 속이 뒤집힐 듯하면서 창백해진 손끝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하설은 다시 보청기를 꼈다.이재훈은 곁눈질로 확인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사모님, 축하드립니다. 하율이는 한 달 뒤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보청기에 의지하지 않아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얼굴 표정을 필사적으로 조절해서, 하설은 겨우 기뻐하는 미소를 만들어 냈다.“정말 다행이네요. 교수님은 참 의사다운 분이세요.”이재훈은 웃으며 손짓했다.“사모님, 얼마 전 배 대표님을 뵈었는데, 사모님 보청기에서 전류음이 자주 난다고 하셨습니다. 집중도 잘 못 하실 정도라고요.” “아

更多章節
探索並免費閱讀 優質小說
GoodNovel APP 免費暢讀海量優秀小說,下載喜歡的書籍,隨時隨地閱讀。
在 APP 免費閱讀書籍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