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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진이이
소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했다.

차 안에서는 휘성의 당부만 들렸다.

“결혼 후 가정의 재정권은 계속 배문교 대표에게 있었죠? 먼저 배 대표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휘성이 말했다.

“전에 한 IT 기업 대표가 연봉 만 원으로 일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배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닐 겁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사모님을 노렸을 리는 없겠죠.”

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볼게요. 우선 은행에 들러 주세요.”

하설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채아가 품에 유기견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교는 수건으로 끈적하고 더러운 털을 닦고 있었다.

개를 감싸고 있는 건 짙은 갈색 목도리였다.

지난해, 하설이 한 달 동안 손수 뜨개질을 해서 문교에게 새해 선물로 준 목도리였다.

두 사람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설을 본 채아는 문교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면서 그 뒤로 슬쩍 숨었다.

“언니 왔구나.”

문교는 수건을 내려놓았다.

“왔어?”

하설은 조용히 걸어갔다.

채아 품속의 개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짐승이 자리를 잘 찾아왔네.”

채아의 볼이 붉어지면서 억울한 듯 문교를 바라보았다.

문교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길에서 주웠어. 이렇게 눈이 오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이번 겨울을 못 넘길 거야. 우리 설이 예전엔 동물 좋아했잖아.]

하설은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도 변해. 잠깐 이리 와. 할 말이 있어.”

말을 마친 하설은 곧장 거실로 갔다.

채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문교에게 매달렸다.

“언니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나 봐. 계속 미워해. 차라리 강아지랑 호텔로 갈까? 나 때문에 언니랑 오빠가 싸우는 것도 싫고, 오빠가 곤란해지는 것도 싫어.”

문교는 채아의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가 해결할게.”

문교도 거실로 들어갔다.

하설은 눈을 들었다.

“내가 윤채아 싫어하는 거, 당신 몰라? 유준이 왜 병원에 누워 있는지 몰라?”

문교의 눈빛에 짜증의 기색이 스치더니, 이마를 문지른 뒤 수어로 답했다.

“그 일은 경찰도 조사를 끝냈어. 유준이 식물인간이 된 건 채아와 직접 관련이 없어.”

“채아가 유준이 여자친구든 그냥 친구든, 친구가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나서는 게 당연하잖아.”

“유준이 채아한테 숨어 있으라고 해서 채아가 창고에 들어간 거야.”

“유준이 뒤따라갔을 때 낡은 창고 문이 열리지 않았어. 그래서 유준이 맞은 거야. 채아도 피해자야.”

“너도 예전엔 채아를 친동생처럼 아끼면서 나한테 잘해 주라고 했잖아.”

“채아는 이웃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갈 곳도 없어. 경운시에서 아는 사람은 우리뿐이야. 근거 없는 미움에 눈이 멀면 안 돼.”

하설의 손끝이 싸늘해졌다. 웃으려고 했지만 입가에는 결국 우는 것보다도 못한 서글픈 미소만 걸려 있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해?”

문교는 하설 앞에 와서 무릎을 굽혔다.

“채아도 대가를 치렀어. 그때 유준이를 위해 빌겠다며, 눈 오는 절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기도하느라 다리가 다 얼 뻔했어.”

‘이게 무슨 말이야?!’

하설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동생 유준은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채아는 다리가 얼 뻔했단다.

하설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666번이나 외도했다.

마지막 한 달이 더해진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도 마음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썩은 살을 도려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겠지.’

문교는 하설의 손을 잡고 입술에 가져갔다.

“역시 우리 설이 세상에서 제일 착해!”

하설은 단호하게 문교를 밀어내고 돌아섰다.

문교는 니트를 입은 하설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하설이... 왜 이렇게 말랐지?’

문교는 하설의 팔을 붙잡았다.

하설이 돌아보자, 문교는 시선을 맞추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밤 약속 잊지 마.”

그때 채아의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오빠, 오늘 밤 무슨 약속 있어? 강아지 검사하러 같이 가 주기로 했잖아.”

하설은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문교의 손을 떼어 낸 뒤, 계단을 올라갔다.

하설의 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던 문교가 채아에게 말했다.

“내일 경운시에서 경매가 있어. 내 사촌동생 남희가 총괄 기획자거든. 오늘 밤에 남희가 다 같이 클럽에 모여서 응원해 달라고 했어.”

채아가 말했다.

“나도 갈래.”

문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곤란해.”

채아는 발을 굴렀다.

“그럼 나 혼자 클럽 가서 술 마실래!”

말을 마친 채아는 개를 안은 채 뛰쳐나갔다.

문교는 채아를 따라가는 대신에 거실에 앉아서 하설의 말과 행동을 되짚었다.

오늘 하설은 어딘가 이상했다.

‘혹시 나와 채아의 관계를 알게 된 걸까?’

‘아니야. 그랬다면 하설은 이미 난리를 쳤을 건데...’

문교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이마를 문질렀다.

‘아마 성묘에 같이 가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내일 경매에서 보석이나 몇 점 더 사 주면 될 일이다.

하설은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거실에 문교 혼자만 있는 걸 보자,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출발해도 돼?”

문교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까지 와서 하설을 부축한 뒤, 흰색 외투를 입혀 주었다.

“눈 오잖아. 밖이 많이 추워. 따뜻하게 입어야 감기 안 걸려.”

하설은 문교가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차에 올랐다.

클럽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설은 남희에게 인사한 뒤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스만 조금씩 마시면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남희는 할머니의 부탁을 떠올렸다.

조용히 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스파클링 와인 잔에 떨어뜨렸다. 그런 뒤 잔을 하설에게 건넸다.

하설은 받았다.

남희가 서툰 수어로 말했다.

“새언니, 내일 경매 꼭 많이 도와줘요. 제가 한 잔 드릴게요. 이건 도수가 낮은 스파클링 와인이에요.”

하설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씨 집안 사람들 중 하설에게 잘해 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남희는 그중 한 명이라서, 하설은 남희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설은 잔을 부딪친 뒤 그대로 마셨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남희는 겨우 한숨을 놓았다. 적어도 할머니의 부탁을 망치지는 않은 셈이었다.

할머니가 증손주를 안게 된다면, 남희도 일등공신일 것이다.

그 자리에는 문교의 친구 오지훈도 있었다.

방금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지훈은 문교 옆에 털썩 앉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이야? 와이프 데려와 놓고 애인을 남의 품으로 내보내려는 거야? 방금 로비에서 누가 채아한테 집적거리던데.”

말을 마친 지훈이 하설 쪽을 힐끗 봤다.

문교는 얼굴에 별다른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말도 없었다.

하지만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훈이 다시 말했다.

“어차피 제수씨는 듣지도 못하잖아. 적당히 둘러대고 나가 봐. 네 애인 놓치겠다?”

잔을 내려놓은 문교가 하설을 바라보며 수화로 말했다.

“전화 한 통 하고 올게. 곧 돌아올 테니 얌전히 기다려.”

하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교가 급히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훈은 곧 카드판으로 끌려갔다.

늘 그랬듯 모두 하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하설이 룸을 나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시끄러운 음악이 고막을 때리자, 하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로비로 걸어갔다.

구경꾼들 뒤에 선 하설은, 채아에게 고백하는 남자의 이벤트를 문교가 발로 차 엎어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채아에게 고백하던 남자가 분노했다.

“당신 뭐야? 대체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

문교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

“말해. 내가 누구인지.”

채아는 고집스럽게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저분 모르는 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교가 채아의 팔을 잡고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겼다.

양손으로 채아의 얼굴을 감싼 문교는, 마치 벌을 주듯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하설은 핸드폰을 꺼내 그 장면을 찍었다.

문교의 외도 상대가 채아만 아니었다면, 하설이 이토록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문교가 모든 것을 잃게 만들 것이다.

기업이 상장되면서 주식 시가 총액이 몇 배나 뛰고, 인생의 정점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배문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눈가의 눈물을 닦으면서 하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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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설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돌아섰다.발끝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나오는 듯한 열기와 갈증, 공허감이 함께 몰려왔다.하설은 곧바로 남희가 건넸던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렸다.술에 약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아마도... 할머니가 시킨 일이겠지.’깊이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룸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룸으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문교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하설은 문교가 더럽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곧장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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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오빠, 하설 언니가 알까?”달뜬 목소리가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심하설은 온몸의 피가 식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배문교의 사무실을 찾았다 드디어 자신의 귀가 들린다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었다.하지만 하설이 듣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상대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다.남편의 명목상의 여동생.하설의 남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이었던 윤채아였다.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안쪽에서는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6화

    하설은 밥을 지었다.하율과 저녁을 먹은 뒤, 하율은 창가에 엎드려 하늘을 올려다봤다.“엄마, 엄마 회사 불꽃놀이가 오늘 밤에 올라가는 거죠?”하설은 불꽃 디자이너였다. BY그룹 산하에서 작은 불꽃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석 달 전에는 도심 광장의 불꽃놀이 디자인 입찰을 따냈다.하설과 팀원들은 석 달 동안 수없이 테스트했다.그렇게 ‘별빛을 너에게’라는 불꽃을 완성했다.그 불꽃은 오늘 밤, 새해 전야에 처음 하늘로 오를 예정이었다.하설은 하율 앞에 쪼그려 앉았다.“우리 하율이 광장에 가서 불꽃놀이 보고 싶어?”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5화

    ‘어젯밤 클럽에서 나를 구해 준 그 남자분이잖아!’‘이분이... 진씨 가문 사람이었어?’하설이 급히 다가서자 경호원들이 즉시 막아섰다.하설이 다급하게 불렀다.“저기요... 잠시만요!”남자는 하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깊은 눈동자에는 낯선 차가움과 예리함이 섞여 있었다. 시선이 말없이 하설을 향했다.남자가 손을 살짝 들자 경호원이 물러났다.하설은 맑은 눈동자에 고마움을 담은 채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자, 하설은 눈앞의 남자가 문교보다도 키가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하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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