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그날 밤은 유난히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하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건우는 한참 동안 거실에 남아 있었다. 스탠드 조명 아래 놓인 소파와 식탁, 반쯤 비워둔 머그컵,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텔레비전 화면까지 전부 제자리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집 안 공기만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낮 동안 하나가 건넨 시선과, 그 시선 속에 섞여 있던 미세한 서운함,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사실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눌러앉은 밤이었다.건우는 소파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낮의 하나를 마주하고도, 자꾸만 밤의 서하가 떠올랐다. 그건 단순히 얼굴이 같아서 생기는 혼란이 아니었다. 이제는 시선이 먼저 분리되고 있었다. 하나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릴 때마다 서하의 차가운 눈빛이 겹쳐졌고, 서하가 짧고 단정하게 문장을 끊을 때마다 하나의 조심스럽고 망설이는 말투가 뒤늦게 따라왔다. 그는 지금 한 사람을 두 개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그걸 더는 전처럼 무시할 수 없는 지점까지 와 있었다.그 사실이 자신을 가장 먼저 불편하게 만들었다.건우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적어도 이렇게 나뉘어야 하는 종류의 감정은 아니다, 서하는 결국 하나 안에서 밤에만 나오는 또 다른 얼굴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머리로 잘라내려 할수록, 오히려 더 분명해지는 감각이 있었다. 서하는 더 이상 단순한 증상도, 사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생긴 예외도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 밤을 같이 버텼고, 이미 수없이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았고, 이미 서로의 가장 나쁜 표정과 가장 약한 순간까지 본 사람이었다. 그런 관계를 이제 와서 이름 없는 그림자로 돌려세우는 건, 오히려 더 비겁한 일처럼 느껴졌다.그는 한숨처럼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물을 마시려고 주방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이 깊어졌고, 움직이면 오히려 더 선
그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아주 분명하게 깨달았다.이제는 단순히 밤과 낮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서하와 보낸 밤이 낮의 하나를 침범하기 시작했고, 하나와 마주하는 낮이 다시 밤의 서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침식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는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일지도 몰랐다.낮 동안에도 그 감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건우는 오전 내내 집 안을 맴돌았다.거실 식탁 위에는 윤신우 사건 자료가 반쯤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며칠 전부터 다시 들춰보기 시작한 형법 총론 책과 판례집이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자료를 넘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뭘 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됐다. 활자들은 눈에 들어오는데 뜻은 바로 흘러내렸고, 종이 위에 적힌 시간과 이름들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다른 얼굴과 겹쳐졌다.사람은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지만, 오늘의 건우는 단순히 피곤한 수준이 아니었다.머릿속 어딘가가 계속 다른 시간에 걸려 있는 사람처럼,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하나가 커피를 건네던 손,서하가 컵을 쥐던 손.하나가 웃으며 농담을 던지던 얼굴,서하가 무표정한 척 시선을 오래 두던 얼굴.똑같은 입술과 똑같은 눈인데, 왜 그렇게 전혀 다르게 기억에 남는 건지.건우는 자료 위에 올려둔 펜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미간을 눌렀다.윤신우 사건을 쫓기 시작한 뒤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버텨왔다. 자료를 뒤지고, 기록을 맞춰보고, 경찰 진술과 병원 기록과 그날의 동선을 자기 식대로 다시 이어붙이는 일.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면, 형법책이나 판례집을 꺼내 앉았다. 한때 거의 손에 닿았던 자리였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붙잡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보는 자리였다.하지만 오늘은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형의 죽음도,하나의
아침은 생각보다 더 멀쩡하게 시작됐다.그게 오히려 건우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어젯밤 서하가 남기고 간 말은 아직도 머릿속 어딘가에 눌린 채 남아 있었고,그 말들은 밤새 제대로 잠들지도 못한 사람처럼 그의 몸 여기저기에 얇은 피로로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침이 되자 집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고, 부엌에서는 익숙한 생활 소리가 났다. 컵이 부딪히는 소리, 전기포트가 끓는 소리, 서랍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전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건우는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가 부엌 앞에 선 하나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하나는 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채 머그컵 두 개를 꺼내고 있었다. 한쪽 소매가 손등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었고, 아직 덜 깬 사람처럼 동작이 조금 느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세한 긴장이 남아 있던 얼굴인데, 지금은 의외로 담백했다.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 아침만큼은 스스로를 겨우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의 얼굴이었다.그런데 건우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유 없이 시선이 멈췄다.하나가 물을 따르는 손의 각도 때문이었다.그건 아주 사소한 차이였다. 손목을 살짝 꺾는 습관, 컵을 잡는 방식, 물이 넘치지 않도록 잠깐 멈추는 타이밍 같은 것. 하나는 원래 더 급한 편이었다. 대충 따르고, 조금 넘치면 휴지로 닦으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정리되어 있고, 무엇보다 익숙한 어떤 결이 있었다.건우는 그걸 보는 순간, 서하를 떠올렸다.그리고 바로 그 생각이 든 자기 자신이 너무 싫었다.하나는 아직 건우가 나온 걸 못 본 듯했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했고, 그제야 하나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건우를 보자 아주 작게 웃었다.“일어났어?”그 목소리는 완전히 하나였다.서하와는 다르게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따뜻하고, 말 끝에 힘이 덜 들어간 목소리. 건우는 그걸 듣고 나서야 자기가 방금 전까지
서하는 손끝으로 컵 가장자리를 한 번 쓸듯이 만졌다. 거기에 컵은 없었지만, 예전 습관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네가 옆에 있어.”그 말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건우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서하는 이번엔 조금 더 또렷하게 말했다.“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고치려고도 하지 말고.”그녀의 눈이 건우를 똑바로 향했다.“그냥 네가 먼저 무너지지 마.”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안쪽이 아주 둔하게 내려앉는 걸 느꼈다.그건 위로가 아니었다.부탁에 가까웠다.아니, 어쩌면 경고이자 부탁이었다. 지금까지 서하가 해온 말 중에서 가장 다정한데, 동시에 가장 잔인한 종류의 말. 네가 해줄 수 있는 건 진실을 밝혀주는 게 아니라, 그 진실이 닿기 전까지 버텨주는 거라는 뜻이었으니까.건우는 한참 뒤에야 낮게 물었다.“너는.”서하는 가만히 그를 봤다.“넌 왜 그렇게까지 하나를 지키는데?”이번 질문은 이전과 조금 달랐다.단순한 의심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거의 본능처럼 튀어나온 질문. 왜 하필 그 정도까지. 왜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소모하면서 서하는 그 질문 앞에서 아주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그리고 정말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용히 말했다.“걔는.”그 한 단어가 유난히 느리게 떨어졌다.“내가 망가지면 안 되는 쪽이니까.”건우는 숨을 멈췄다.그 문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박혔다.설명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충분했다. 서하에게 하나는 단순히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인격' 같은 설명으로 정리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훨씬 더 본능적이고, 훨씬 더 절대적인 무언가. 자기를 갈아 넣어서라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어떤 중심 같은 것.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서하를 향한 감정이 또 한 번 이상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이 사람은 차갑고, 늘 사람을 밀어내고, 중요한 말은 끝까지 숨기는데도, 정작 가장 깊은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더 망가질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너무 선명하게
짧은 침묵이 흘렀다.그리고 그 정적 한가운데서, 서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 말이 언젠가는 나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들으니 생각보다 더 아프다는 듯한 호흡이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그래서.”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모르는 게 나아.”건우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문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했고, 그래서 더 무겁게 떨어졌다. 설득하려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막아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 오래 혼자 알고 있었던 사람의 목소리. 그 안에는 설명보다 피로가 먼저 들어 있었다.건우는 미간을 아주 조금 좁혔다.“왜.”서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기억하면.”그녀가 낮게 말했다.“버티기 힘들거야.”그건 사실상 처음으로 나온 직접적인 말이었다.하지만 그 문장조차 끝까지 열려 있지는 않았다. 무엇을 기억하면, 무엇을 버티기 힘들어지는지, 왜 그 기억이 하나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한지. 서하는 여전히 결정적인 층은 끝까지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건우는 이상하게 그 말을 쉽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그건 단순한 추측이나 보호 본능의 과장이 아니었다.마치 이미 한 번, 혹은 여러 번,그 무너짐을 아주 가까이서 본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건우는 천천히 물었다.“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서하는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조명 아래 드러난 눈빛은 차갑다기보다 피곤했고, 피곤하다기보다 오래 참아온 사람 같았다. 건우는 그 얼굴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진실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진실의 대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른다고. 서하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하나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아.”그 말은 건우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이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서하는 아주 천천히, 한 단어씩 고르듯 말을 이었다.“버틸 수 있는 것도 많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편이야.
서하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손을 펴지 못했다.방금 전까지 그 안에 남아 있던 차가운 체온이 아직도 손바닥 안쪽에 얇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손목을 붙잡았을 때마다 늘 비슷한 감각이 남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오래 갔다. 차갑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종류의 온도였다. 열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오래 식지 못한 무언가가 천천히 굳어버린 듯한 감촉. 건우는 소파에 앉은 채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가,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뒤로 기댔다.스탠드 조명 아래 드리운 그림자가 천장 가까이 길게 번져 있었다.시간은 이미 새벽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고, 집 안은 다시 아주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밤의 정적은 끝났다는 느낌보다, 아직 어딘가가 덜 닫혔다는 쪽에 가까웠다. 방금 끝난 대화 역시 그랬다. 말은 분명 오갔는데, 정작 중요한 건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열리지 않은 게 아니라 열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닫혀 있는 건지도 몰랐다.건우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대화의 내용보다 서하의 말투였다.“넌 항상 나중에 알아.”“늦게 와.”“네가 와야 했던 곳.”짧은 문장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에 붙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말하는 방식. 그 익숙함이 자꾸만 건우의 신경을 긁었다.그는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가,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켰다.물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너무 선명해져서, 오히려 더 피곤해질 것 같았다.그가 식탁 쪽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복도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건우는 그대로 멈췄다.그 소리는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도, 발소리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방 안에서 잠깐 움직였다가 멈춘 정도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비는 오지 않았는데도,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건우는 창문을 열어두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걸 느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숫자가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9:129:189:37그 아래, 어젯밤 그가 덧붙인 한 줄.‘조용했다.’그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어보았다.조용했다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움직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하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건우는 문득 물었다.“그날… 진동 느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