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너야.”서하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진 뒤에도, 건우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부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었고, 지금 들은 말이 말이 안 된다는 판단도 동시에 올라왔는데, 그 둘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작은 잡히는데 그 다음이 계속 미끄러졌다. 틀렸다고 말하려면 근거가 필요했고, 그 근거는 분명히 어딘가에 있어야 했는데, 막상 꺼내려는 순간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말이 안 되잖아.”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짧게 끊지 않고 이어가려고 했지만, 숨이 한 번 어긋났다.“내가 거기 있었으면… 기억을 못 할 리가”또 끊겼다.이번에는 더 분명했다.문장을 끝까지 밀고 가려는 의지가 있었는데도, 그 문장이 중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서하는 그걸 끝까지 보고 있었다.“그래서 아까 말했잖아.”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없던 게 생기는 게 아니라, 있던 게 빠지는 거라고.”건우는 고개를 저었다.그 동작이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다.부정하는 건데, 그 부정이 끝까지 밀리지 않았다.“그럼 내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는 뭐야.”그가 물었다.문장을 이번에는 끝까지 이어가려고 더 천천히 말했다.“지금 네가 하는 말 말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거.”서하는 그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이미 충분히 가까운 거리였는데, 그걸 한 번 더 줄였다.이제는 숨이 닿는 게 아니라, 거의 겹치는 느낌이었다.“증거 없어.”그녀가 말했다.“너한테는.”건우의 눈이 좁혀졌다.“그럼 어떻게 믿어.”그는 말을 이어 붙였다.“기억도 없고, 남은 것도 없고, 지금 네 말 하나인데.”서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그래서 네가 이상한 거야.”그녀가 말했다.“다 없는데, 여기까지 왔잖아.”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그건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었다.기억이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증거를 찾은 것도
서하의 고개가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안,건우는 그 짧은 동작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어떤 말을 듣고그 다음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는데,지금은 그보다 먼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이 미세한 움직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감각이더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건우야.”서하가 이름을 불렀다.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고,바로 이어지는 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끊기지 않았다.“아까 말한 거, 어디까지 기억해.”
건우가 다시 거리를 좁혀 들어갔을 때,이번에는 멈추겠다는 선택 자체를 애초에 머릿속에두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감각은 분명히 남아 있었고,방금 전까지의 대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지만,그걸 이유로 발을 멈추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어긋난 상태였다.멈춘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모를까,지금은 오히려 멈추는 쪽이 더 많은 걸 잃게 될 것 같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서하는 그 움직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피하려는 기색이 없었고, 그렇다고 먼저 더 다가오지도 않았다.건우가 들어온 만큼만 거리를 허용한 채, 시선을 놓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그 시선 안에는 여전히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그중에서
건우는 서하를 바라본 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방금 전까지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끌어내고,그걸 다시 의심하는 흐름이 분명히 이어지고 있었는데,지금은 그 흐름이 어딘가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채 멈춰 있었다.멈췄다는 표현이 정확한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이어진 결과만 남아 있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어야 할감각이 희미하게 빠져 있었다.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말하려던 내용이 있었는데,그 문장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잡히지 않았다.질문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막상 꺼내려는 순간 그 질문의 앞부분이&nb
건우는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몸이 멈춘 게 아니라, 움직이려고 하면 먼저 머릿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생각이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잘리는 게 아니라,이어지기 직전에 누가 한 번 끊어버리는 것처럼, 다음이 나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거기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지금은 그 문장을 다시 꺼내려고 하면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나… 거기 없었어.”그가 다시 말했다.이번에는 확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문장이었다.서하는 그걸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건우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조용해졌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서하가 고개를 들었을 때, 건우는 이미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말을 꺼내기 전부터, 이 대화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확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빈틈이 있었고,의심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조각이 맞아떨어져 있었다.그래서 더 불안정했다. 하나로 결론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이미 결론에 가까워진 감각이 먼저 몸을 붙잡고 있었다.“서하야.”그가 먼저 불렀다.이름을 부르는 순간, 말이 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그날 밤.”
시신을 실은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건우는 비를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경광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형은 그렇게 떠났다.설명도, 변명도 없이.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필요한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참고인 조사 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말은 또렷했지만, 건우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저녁 8시 전후.그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나왔다.비는 여전히 세게 내리고 있었고,그녀의 코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
회의실 창밖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잔잔했지만, 오래 갈 비였다.유림은 앉지 않았다. 테이블 끝에 서서, 파일을 내려다보는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이 어제 저녁,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그녀의 말투는 단정했다.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건우는 파일을 덮지 않았다.통화 기록의 숫자들이 시야에 남아 있었다.저녁 7시 12분.“오늘로 끝내자고 하셨다고요.”그가 되물었다.“네.”“무엇을.”유림은 잠시 침묵했다.답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상대를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업무 관계를요.”
아침은 비가 그친 뒤에야 찾아왔다.창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사라지자,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해졌다.어젯밤의 대화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건우는 한동안 확신하지 못했다.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익숙한 소리였다.누군가 이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하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어제 젖었던 코트는 의자에 걸려 있었다.“일어났어?”목소리가 차분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