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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나정은 마침내 문기당으로 돌아왔다. 전생에는 이 작은 승리조차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뒤흔들며 얻어낸 것이었다. 본래 그녀 것이었지만 되찾을 때에는 오히려 백지현이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는 식이 되어버렸고 그녀의 ‘예쁜’ 마음을 부각시켜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각인 덕분에 매사에 나정만 불리하게 궁지로 몰렸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조모 쪽에서 먼저 일용품을 보내왔고 물품을 들고 온 관사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녀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그날 밤, 나씨 부인이 문기당을 찾아왔다. 언제나처럼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마음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예전에 네가 쓰던 이급(二等) 몸종들을 다시 쓸 생각이 있느냐?”

나정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는 추화와 추란이 있습니다. 너무 잘 해주는 아이들이라 이급 몸종으로 올리려 합니다. 다른 몸종들은 지현이 익숙하게 부리고 있으니 빼앗을 수는 없지요.”

나씨 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얼굴에는 얕은 놀람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정을 덧입었다.

“정아, 네가 그리 선을 그어버리면 발 디딜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세상일이 어찌 네 뜻대로만 되겠느냐?”

그러나 나정은 아무 말도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하고 반쯤 덮인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롱도, 기쁨도 없었다. 그저 무관심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씨 부인의 말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굳이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넌 참 고집스럽구나. 그 은덕이 어디까지 갈 줄 알고 이러는 것이냐? 네가 무너질 때가 오면 누가 널 지켜줄 줄 알고...”

나씨 부인의 말에 나정은 잔잔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진남군 댁이 존재하는 이상 제 은덕도 바닥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씨 부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소리 없이 소매를 휘둘며 나가버렸다. 그날 밤, 조모 쪽에서 나정이 부탁했던 사람을 보내왔다. 눈앞에 있는 자는 바로 외원장부를 맡던 사람의 부인인데 사람들은 그녀를 공 아주머니라 불렀다. 전생에 그녀는 나정을 위해 목숨을 잃은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번 생에는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 외에도 두 명의 삼등 몸종들도 같이 보내왔다.

“공 아주머니께서는 저택의 조정을 맡아주세요. 그리고 추화는 장부를, 추란은 의복과 장신구를 관리하거라.”

나정은 짧고 간단하게 그들이 해야 할 임무를 지시해 주었다. 조용한 문기당에는 다섯 명이 머물렀고 같이 보내온 두 명의 몸종은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들은 말이 적고 손이 빠르며 나정의 말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문기당은 정방 네 칸, 좌우 곁채 각각 여섯 칸, 뒤뜰과 앞뜰은 모두 트여 있었고 뒤로는 정원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북각문이 있어 단독 출입도 가능했다. 문기당의 위치는 진남군 댁 내에서 손꼽힐 만큼 탁월했고 풍경은 조모의 서정당과 맞먹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정은 북각문의 열쇠를 요청했지만 나씨 부인은 당연히 내어주지 않았다.

“그 열쇠가 왜 필요한 것이냐? 아가씨가 제멋대로 문밖을 드나든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뿐만 아니라 북문에는 하인을 세워 나정을 감시하게 만들었다. 지금 나정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백지현이 진남군 댁에서 위세를 떨칠 수 있었던 건 나씨 부인의 지참금과 저택 밖 사람들의 재정적 뒷받침 덕분이었다. 나씨 부인은 나가의 재산을 쥐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녀를 견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택 밖에는 더 큰 손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백지현과 그녀를 도와주는 자들. 돈이 넘쳐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신분이었다. 하지만 나정은 그들과 달랐다. 그녀는 신분이 있으나 돈이 부족했다.

그날 밤 나정은 문기당을 정리한 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대비에게 염주를 돌려주기 위해 궁궐로 향했다.

“법화사에 다녀온 후에야 이 염주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감히 제가 가질만한 물건이 아닌 것 같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대비마마는 아무 말 없이 염주를 내려다보았다. 그 염주는 평생 그녀의 곁을 지켜준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나정에게 넘겨주었을 때 전혀 후회가 되지 않았다. 나정은 단순히 예의만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물러서야 되는지도 정확히 아는 똑똑한 여인이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대비마마가 물었다.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남쪽에 머무는 동안 어느 도인의 가르침을 조금 받았습니다. 하찮은 점술이지만 대비마마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거라.”

나정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대비의 미간이 점차 좁혀졌다. 무언가 꿰뚫는 듯한 말이었기에 듣고 지나치기 어려웠다. 바로 그때 내관이 들어와 대비에게 전했다.

“마마, 옹성대군께서 오셨습니다.”

나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옹성대군은 대비의 막내아들이자 팔 년 후 왕이 될 사람이었다. 그가 들어오기 전 검은 그림자가 먼저 방 안을 스쳤다. 큰 개 한 마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위풍당당하게 뛰어 들어왔다.

“장영 대장군께서 먼저 오셨군.”

대비마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곁에 있던 하인들은 모두 겁을 먹은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 개는 덩치가 산만했고 이빨은 날카로웠다. 주인의 명령 없이는 결코 함부로 사람을 물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정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검은 덩치와 익숙한 숨결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참깨...”

전생에 그녀가 귀신이 되었을 때 그녀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아봐 준 게 바로 참깨였다. 그 개는 밤마다 그녀 곁에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잠을 청했다. 그녀는 찹쌀떡처럼 붙어있는 그 아이를 참깨라고 부르며 이뻐했었다. 참깨는 나정에게로 다가와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나정의 발치에 몸을 뉘고는 그 자리에 퍽 하고 드러누웠다. 배를 드러내며 쓰다듬어 달라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 광경을 본 대비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옹성대군도 문지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곧장 바닥에 누워 있는 검은 개에게 닿았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낮고 묵직한 음성이 울렸다.

“장영.”

길게 몸을 뻗고 있던 개는 움찔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한 치 망설임 없이 곧장 남자의 발치로 뛰어갔다. 나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는 물빛 한 점 없었다. 남자는 수려한 이목구비를 지녔는데 높고 곧은 콧대며 얇게 그어진 입술까지 모두 세밀하게 조각된 듯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살얼음 같은 냉정함과 날 서린 잔혹함이 스며 있었다.

그는 나정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 시선은 마치 사냥감이라도 노리는 맹수 같았고 입가에는 작은 흠집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격함이 번졌다.

“어떤 술수를 쓴 것이냐? 내 개가 너한테 저리 붙게 만들다니.”

“옹성대군을 뵙습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섰다. 옹성대군은 향을 맡으려는 듯 코를 그녀 가까이에 들이댔다. 하지만 풍겨오는 것은 특별한 향료도 아니고 그저 흐릿한 화장 분 냄새였다. 그는 시시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대비가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나가의 장녀이다. 예전에 본 궁을 위해 대신 칼을 맞은 그 아이지.”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나정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 개는 옹성대군의 옆에 서 있었지만 계속해서 뭔가 아쉬운 듯 나정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대비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개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기가 예민한 녀석이야.”

그러고는 흘깃 아들을 바라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장영을 궁궐로 데리고 온 걸 보니 어사대에서 또 시비를 건 모양이구나.”

“욕은 벌써 질리게 들었습니다.”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정은 두 모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러서기 위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때 한 내관이 다급히 들어와 고했다.

“대비마마, 중전마마께서 문안인사 드리러 오셨습니다.”

그러자 대비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들이거라.”

잠시 후 전각으로 한 여인이 들어섰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햇살을 등에 지고 걸어오는 모습에는 찬란한 기운이 감돌았다. 중전 정 씨였다. 그녀는 이십이 막 넘은 나이였고 빛나는 눈동자에 검고 가늘게 뻗은 눈썹이 매력적이었다. 오뚝한 콧날과 붉은 입매, 눈부시게 희고 고운 피부 그리고 단아한 자태까지. 모든 것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덕에 단아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이 나라의 중전이었고 팔 년 뒤 새로운 왕이 즉위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중전으로써 그 자리를 지켰다.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대도 새로운 왕은 그녀를 선택했다. 나정은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

“중전마마를 뵙습니다.”

중전은 밝고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가의 아가씨인 것이냐? 낭자의 예쁜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얼른 고개를 들 거라.”

그녀의 음색에는 권위가 아닌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정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공기의 결이 묘하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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