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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ผู้เขียน: 최은솔
나정은 내심 옹성대군과 중전 사이 관계가 궁금했으나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자리임을 알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중전은 고개를 숙인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이끌며 함께 자리에 앉혔다.

“이 개... 제법 위협적이네요.”

중전은 대전 한편에 엎드려 있는 검은 개를 곁눈질하며 말했지만 옹성대군은 그녀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검은 개는 중전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가 주인의 매서운 눈빛에 금세 움찔하며 머리를 떨구더니 불편한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그러자 중전은 검은 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정을 향해 웃어 보였다.

“대비마마를 위해 몸을 던졌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더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점차 떨렸고 눈가에는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대비는 미소를 띠며 그녀의 손을 쓸어내렸다. 옹성대군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차를 들이키고 있었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중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비마마, 낭자의 혼처는 정해졌습니까?”

대비는 바로 고개를 돌려 나정에게 물었다.

“정아, 약조된 혼처가 있느냐?”

나정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중전이 곱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좋은 인연을 찾아줘도 되겠구나.”

그 말에 대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봐둔 사람이 있느냐?”

중전은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아 있는 옹성대군을 슬쩍 바라보았다.

“사람은 많지요.”

대비 또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정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깊은 감색의 의복 속에 짙은 기운을 내뿜는 그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그의 냉랭한 모습에 나정은 옹성대군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대비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돌렸다.

“혼사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나정이가 부끄러워할 수도 있잖니.”

그제야 중전도 입꼬리를 내리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고 보니 진남군 댁에 유명한 낭자가 있다던데. 재주도 빼어나고 용모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

중전은 더 할 말이 없어 백지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진남군은 작위를 얻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집안이다. 그러기에 한양의 거대한 문벌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은 미약했다. 그러나 백지현의 이름만큼은 한양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동안 백지현이 돈으로 신분을 원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 진남군을 짓밟고 백씨 가문을 명문가로 올리는 것이었다. 나정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저도 이제 막 돌아온지라 그런 소식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현이는 다정하고 총명하여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뒤로도 한양의 유명한 집 아가씨들의 이야기가 이어졌고 화사하면서도 평온한 말들이 오고 갔다. 시간이 꽤 흘렀을 무렵, 나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비는 위 내관에게 나정이를 배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중전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정과 함께 입구까지 걸어갔다.

“궁궐에 자주 오거라. 너를 만나면 어머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한단다. 나는 할 일이 많아 대비마마를 자주 살펴볼 여유가 없으니 너라도 그 빈자리를 채워주면 좋겠구나.”

나정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중전은 그녀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 나정은 높은 출신의 규수가 아니었고 나씨 집안은 이제 막 작위를 얻은 신흥 가문에 불과했기에 중전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전에게 있어 나정은 대비가 곁에서 길들이는 조용한 애완동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경계할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웃으며 먹을 것을 던져주고 몇 마디 칭찬만 해준다면 대비의 기분을 맞춰주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중전의 호의란 그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낭자는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나?”

“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은 채찍을 다룹니다.”

“채찍이라니?”

중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문과 무를 다 안다는 것이냐? 대단하구나.”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장난삼아 휘두를 뿐이지요.

그렇게 반나절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한편, 수성궁 내에서는 대비가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올해 스무 살이지. 이제는 슬슬 혼처를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사대는 예전부터 너의 혼인을 문제 삼았고 예부에서도 계속 재촉하니 전하도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어.”

“아직은 이릅니다.”

“나정이는 어떠냐?”

대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품도 있다. 중전의 곁에 있어도 뒤처지는 것 하나 없더구나. 참 보기 드문 아이지.”

옹성대군은 눈썹을 더 깊게 찌푸렸다.

“과찬이십니다, 어머니.”

대비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결코 과장하여 나정이를 높이 세운 것은 아니었다. 중전의 미모야 혼인 전부터 한양 귀족 가문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으니 여느 동년배 여인 중 그녀와 견줄 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정이는 달랐다. 검소한 옷차림에 옅은 화장을 했을 뿐인데도 빛이 났다. 눈을 내리깐 순간조차 어딘가 형용할 수 없는 기품이 그 안에 담겨있었다.

“그럼 그 백 낭자는 어떠냐? 소문이 자자하던데.”

대비가 묻자 옹성대군은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만큼 야심이 큰 사람이겠죠. 욕망이 크니 소문도 자자한 것입니다. 그 소문도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요.”

그렇게 말하고 보니 차라리 나정이 훨씬 나았다.

“네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전하께 아뢰어 혼인을 명하게 하겠다.”

대비가 단호하게 말하자 옹성대군은 차가운 얼굴로 되받아쳤다.

“안타깝지만 이번 생은 틀렸습니다. 나 낭자가 다시 태어나는 게 제가 혼인을 올리는 것보다 더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대비는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버릇없게 굴지 말거라. 그 아이는 네 어미인 나의 목숨을 건진 은인이다. 그러니 말을 가려 하는 게 좋겠다.”

그러나 옹성대군은 눈빛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한테 시집보내면 안 되겠지요. 제가 그 낭자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더니 냉기가 서린 어투로 말을 이었다.

“진정한 은인이라면서 어찌 그리 인색하게 구시는 겁니까? 입고 있는 옷은 해 바랜 듯 낡았고 장신구라고는 보이지도 않더군요.”

대비는 조용히 반박했다.

“이미 진남군 댁에 여러 차례 하사품을 내렸지 않느냐? 그 이상은 어려운 일이다.”

“그 하사품이 과연 그 낭자의 손에 제대로 닿기나 했겠습니까?”

대비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숨은 분노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며 있었다.

“나 낭자는 진남군 댁의 정실 장녀이지요. 또한 어머니의 생명을 구한 아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가 궁에 들어올 때조차 멀끔한 옷 하나 없이 나타났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비는 그제야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옹성대군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정실 장녀라면 부귀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그녀는 두 번이나 궁궐에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조모나 어머니를 동반하지 않았다. 대비의 마음속에서도 의심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혼사를 논하기 전에 설 명절을 빌미로 실속 있는 상이나 내려주시지요.”

옹성대군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자 검은 개가 그의 뒤를 따라 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가 떠난 뒤에도 대비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정은 미혼이다. 그녀의 체면은 곧 그녀가 속한 가문의 품격에서 나온다. 따라서 어떤 상을 내릴지라도 형식상 진남군 가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주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형편이나 속 사정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대비는 조용히 내관을 불렀다.

“사람을 준비시켜라. 금 백 냥, 은 삼천 냥, 그리고 시절감에 맞는 비단과 장신구를 더하여 진남군 댁 나 아가씨에게 하사하거라.”

내관은 공손히 예를 올리며 자리에서 물러서려 했다. 그러자 대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남쪽에서 들여온 부광옥금(浮光玉錦) 두 필을 꺼내어 함께 보내거라. 대비의 뜻이 담긴 특별한 하사품으로 정이에게 별도로 전한다고 꼭 말하고.”

부광옥금은 굉장히 귀한 비단이었다. 대비는 총 열두 필을 받았는데 두 필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중전과 귀빈, 그리고 외명부의 공신가에 분배했다. 심지어 대비의 조카딸마저 그것을 달라고 철없이 졸라댔지만 대비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지금 그 귀하고 소중한 비단을 나정에게 하사하려는 것이다. 나정이 진남군 댁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그 비단이 증명해 줄 것이다. 대비는 말없이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겨울 햇살이 비단처럼 길게 바닥에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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