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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에게 장작을 나르게 했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14:20:14

엘로디아는 잔을 내려놓고 정신없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느긋하게 물었다.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

“아주 중요하죠.”

“무슨 일인데?”

엘로디아는 잠깐 망설였다.

어차피 황궁 관리라면 내일 알게 될 일이었다.

“황태자비 선발전이요.”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황태자비?”

“네.”

“당신이?”

왜 저렇게 놀라지?

엘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르메르 남작가의 엘로디아 르메르예요.”

처음으로 이름을 밝혔다.

남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엘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웃으시는 거예요?”

“아니.”

“웃고 있는데요.”

“착각이야.”

“분명히—”

“그래서.”

남자가 말을 잘랐다.

눈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황태자비가 되고 싶나?”

“전혀요.”

대답은 즉시 나왔다.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엘로디아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췄다.

“저는 최대한 빨리 탈락할 생각이에요.”

“…왜?”

“황태자비가 되면 그릇을 마음대로 못 굽잖아요.”

이번에는 정말로 침묵이 흘렀다.

남자가 물었다.

“그게 이유인가?”

“그것보다 중요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엘로디아에게는 진심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러더니 아주 낮게 웃었다.

“없겠군.”

“그렇죠?”

“그래.”

엘로디아는 그제야 만족했다.

“아무튼 오늘 일은 비밀로 해주세요.”

“내가 왜?”

“장작도 같이 날랐잖아요.”

“…그게 이유가 되나?”

“공범이잖아요.”

남자의 금빛 눈이 가늘어졌다.

“공범.”

“네.”

그가 그 단어를 천천히 입안에서 굴렸다.

그리고 웃었다.

“좋아.”

엘로디아는 안도했다.

“그럼 저는 갈게요.”

앞치마를 벗어 걸어놓고 문으로 향하다가 뒤돌아봤다.

“아, 이름.”

“뭐?”

“저는 알려드렸는데 그쪽 이름은 안 알려주셨잖아요.”

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내일 알게 될 거다.”

“왜 내일—”

“늦었다며.”

맞다.

엘로디아는 벽시계를 보고 기겁했다.

“그럼 다음에 알려주세요!”

그녀가 문밖으로 사라졌다.

탁.

문이 닫혔다.

공방에 적막이 찾아왔다.

남자는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천천히 물레 앞으로 돌아왔다.

둘이 함께 만든 작은 잔.

그가 손끝으로 잔의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희미한 금빛이 다시 흙 속에서 피어났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오래 남았다.

남자의 눈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흥미롭군.”

그는 잔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조금 전 엘로디아가 사라진 문을 바라봤다.

황태자비가 되기 싫다.

최대한 빨리 탈락할 생각이다.

그런 여자가 황태자비 선발전에 참가한다.

남자의 입가에 다시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엘로디아 르메르.”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기억하지.”

⸻

다음 날 아침.

엘로디아는 죽을 것 같았다.

“아가씨.”

“응.”

“눈 뜨셔야 해요.”

“뜨고 있어.”

“감으셨는데요.”

“…마음의 눈은 떴어.”

시녀가 한숨을 쉬었다.

밤새 도요원에 갔다 왔다는 사실은 당연히 말하지 못했다.

엘로디아는 두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욕조에 들어갔고, 머리를 손질받았고, 코르셋을 조였고, 여러 겹의 드레스를 입었다.

‘이래서 황태자비가 되면 안 돼.’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가마 앞에서는 절대 못 입을 옷이었다.

오늘 그녀가 입은 것은 옅은 녹색 드레스였다. 르메르 가문의 형편을 생각하면 상당히 무리해서 마련한 옷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제법 귀족 영애처럼 보였다.

적어도 어젯밤 가마 앞에서 뺨에 흙을 묻히고 장작을 나르던 사람과 같은 여자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완벽해요.”

시녀가 감탄했다.

엘로디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문제네.”

“네?”

“아니야.”

오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눈에 띄지 않기.

가능하다면 첫 번째 심사에서 바로 탈락하기.

황태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엘로디아는 굳은 결심으로 대전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후보가 모여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

보석.

향수 냄새.

명문가의 영애들이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엘로디아는 조용히 가장 뒤쪽 자리를 선택했다.

‘좋아.’

완벽하다.

저 앞에는 공작가 영애도 있고 후작가 영애도 있었다.

고작 몰락한 남작가 영애에게 황태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순간 대전이 조용해졌다.

모든 영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로디아 역시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의 발소리.

그리고 가장 앞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

엘로디아는 별 관심 없이 바닥만 바라봤다.

황태자의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곧 탈락할 사람인데.

“고개를 들어도 좋다.”

낮은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엘로디아의 눈썹이 움직였다.

‘어?’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설마.

아니겠지.

세상에는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엘로디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대전 가장 높은 곳.

황금빛 황태자석.

그곳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금빛 눈.

어젯밤에는 없었던 화려한 황태자 제복.

하지만 얼굴은 분명했다.

장작 두 묶음을 날랐다.

물레 앞에 앉았다.

흙을 찌그러뜨렸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작은 잔 하나를 만들었다.

어젯밤의 그 남자.

엘로디아의 입술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남자 역시 그녀를 발견했다.

수십 명의 후보 사이에서 정확하게.

금빛 눈이 엘로디아에게 멈췄다.

그리고.

라시엘 폰 아르젠 황태자가 아주 천천히 웃었다.

“반갑군.”

그 시선은 명백하게 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르메르 영애.”

엘로디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젯밤 자신이 황태자에게 무슨 말을 했더라.

장작 좀 옮겨주세요.

조금 더 필요해요.

힘 빼세요.

그릇 만드는 데 손 말고 뭘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최대한 빨리 탈락할 생각이에요.

황태자 본인 앞에서.

황태자비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싶다고 말했다.

엘로디아는 눈을 감고 싶었다.

도망가고도 싶었다.

가능하다면 어젯밤으로 돌아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태자의 입가에는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엘로디아에게는 이제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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