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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에게 장작을 나르게 했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14:19:23

엘로디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 관리들이 생각보다 친절하네.”

그 말을 들은 남자의 발걸음이 잠깐 멈춘 것 같았지만, 엘로디아는 이미 가마 안을 살펴보느라 보지 못했다.

잠시 뒤 남자가 장작을 들고 돌아왔다.

엘로디아는 그가 내려놓은 장작을 확인했다.

“조금 더 필요해요.”

“…더?”

“네. 두 묶음 정도.”

남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엘로디아는 눈을 깜빡였다.

“무거워요?”

“…아니.”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는 다시 갔다.

두 번째로 돌아왔을 때 엘로디아는 작은 앞치마를 찾아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황태자비 후보들이 입는 값비싼 드레스 위에 낡은 앞치마.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

뺨에는 언제 묻었는지 흙 한 줄이 그어져 있었다.

“당신.”

남자가 불렀다.

“네?”

“도공인가?”

엘로디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영애냐고 묻지 않았다.

가문도 묻지 않았다.

도공이냐고 물었다.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질문이었다.

“네.”

엘로디아가 웃었다.

“도예가예요.”

그 순간 남자의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엘로디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보따리를 풀고 있었으니까.

축축한 천 안에서 회백색 흙이 드러났다.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건?”

“고향에서 가져온 흙이에요.”

“황궁에 흙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왜요?”

“…아니다.”

오늘 그가 몇 번째로 하는 말인지 몰랐다.

엘로디아는 물레 앞으로 갔다.

먼지를 닦아내고 앉았다.

발로 천천히 페달을 밟자 오래 멈춰 있던 물레가 삐걱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몇 번 돌자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엘로디아는 흙을 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감쌌다.

조금 전까지 장작을 나르라고 사람을 부려먹던 모습은 사라졌다.

눈빛부터 달라졌다.

손끝이 흙을 눌렀다.

물레가 돌았다.

둥글고 거친 흙덩이가 조금씩 중심을 잡았다.

남자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한참 뒤 그가 물었다.

“재미있나?”

“뭐가요?”

“흙을 만지는 것.”

엘로디아는 잠시 생각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손가락 사이에서 흙이 올라왔다.

“…좋아요.”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같은 흙으로도 어떤 사람은 접시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잔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못 만들어요.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찌그러지고, 중심이 흐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요.”

“귀찮은 일이군.”

“그렇죠.”

“그런데 좋다?”

엘로디아가 웃었다.

“마지막에 가마에서 나온 걸 보면 다 잊어버리거든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흙이 묻은 손.

귀족 영애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와 굳은살이 있었다.

“해보실래요?”

엘로디아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아까부터 계속 보고 계시잖아요.”

“…그랬나.”

“네.”

엘로디아가 몸을 옆으로 조금 옮겼다.

“앉으세요.”

남자는 잠시 물레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그녀 옆에 앉았다.

“손 주세요.”

남자의 눈썹이 움직였다.

“쉽게 하는 말이군.”

“흙 만지는데 손 말고 뭘 주세요?”

“…그렇군.”

엘로디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따끔.

손끝에서 작은 열기가 튀었다.

“아.”

엘로디아가 손을 떼었다.

남자 역시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러지?”

“정전기인가?”

“정전기?”

“아니면….”

엘로디아는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봤다.

이상했다.

방금 분명 따뜻한 무언가가 피부 아래로 스며든 것 같았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됐어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여기.”

두 사람의 손이 흙 위에서 겹쳤다.

엘로디아의 손이 아래.

남자의 손이 그 위.

“힘 빼세요.”

“빼고 있다.”

“전혀 아닌데요.”

“이 정도면 충분히—”

물레 위의 흙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찌그러졌다.

철퍽.

엘로디아가 눈을 감았다.

“…제가 뭐랬어요?”

남자가 찌그러진 흙을 바라봤다.

“…힘을 빼라고.”

“그런데요?”

“안 뺐군.”

“네.”

잠시 침묵.

남자가 낮게 웃었다.

엘로디아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이었다.

아까부터 무표정에 가까웠던 얼굴이 확실하게 웃은 것은.

그 웃음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해서 엘로디아는 잠시 말을 잊었다.

“다시 하지.”

남자가 말했다.

“뭐를요?”

“그릇.”

“…재미없다면서요.”

“생각이 바뀌었다.”

엘로디아는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제가 잡아드릴게요.”

그녀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여기 힘을 빼고.”

“이렇게?”

“네. 그리고 엄지로 천천히 눌러요.”

두 사람의 손 아래에서 흙이 다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았다.

둥근 벽이 천천히 올라왔다.

작은 잔이었다.

“됐다.”

엘로디아가 웃었다.

남자의 시선은 완성되어 가는 잔보다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엘로디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치고는 꽤 잘하셨어요.”

“당신이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그걸 아시면 다행이고요.”

“…칭찬이 짧군.”

“처음부터 너무 칭찬하면 사람이 자만해져요.”

“내가?”

“네.”

남자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물레가 천천히 멈췄다.

엘로디아가 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잔 표면에 아주 희미한 빛이 번졌다.

금빛이었다.

마치 가느다란 실 한 줄이 흙 속을 지나간 것처럼.

엘로디아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왜 그러지?”

그녀는 잔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평범한 회백색 흙.

“방금 뭔가….”

잘못 봤나?

엘로디아가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흙에 남은 마력의 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빛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가마에 들어가기 전의 흙에서.

남자가 손을 뻗었다.

“보여줘.”

“잠깐—”

그의 손끝이 잔에 닿았다.

순간.

금빛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엘로디아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빛은 너무 빨리 사라졌다.

남자 역시 잠시 잔을 바라봤다.

“…이건.”

“봤어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뎅—

엘로디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큰일 났다.”

“왜?”

“자정이에요.”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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