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서연의 눈동자가 치솟는 분노와 뼈를 녹이는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눈시울이 뜨거웠지만 비참한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죽은 지안을 떠올렸을 그 가증스러운 남자.
자신에게 뜨겁게 입을 맞추며, 지안에게 용서를 구했을 그 더러운 남자.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빌려, 자신이 죽인 여인의 환상 속에서 완벽한 평온을 누렸을 그 이기적인 미치광이.그녀의 내면에서 그동안 아름답고 견고하게 피어나고 있던 따뜻한 로맨스와 구원의 서사는, 이 끔찍한 진실 앞에서 일순간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름다운 꽃이 무참히 꺾여나간 그 흉측한 폐허 위에는.이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배신감’과, 자신을 껍데기로 내어주었다는 끔찍한 ‘수치심’이라는 맹독이 바짝 오른 두 마리의 독사가, 스멀스멀 똬리를 틀며 사납게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방 안.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특제 독주의 술 냄새와, 짐승처럼 처절하게 오열하는 사내의 쉰 목소리만이 끔찍하고 무거운 공기를 꽉 채우고 있었다.“내가…… 내가 권력에 눈이 멀어, 지안이를 그 차가운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게 만들었습니다……!”서연의 옥색 치맛자락을 꽉 쥔 채, 그녀의 푹신한 무릎을 베고 누운 이헌의 찢어진 입에서 기어이 터져 나온. 그 소름 끼치도록 적나라하고 완벽한 살인의 자백.“하아…….”서연은 가쁜 숨을 컥 삼키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온몸의 붉은 핏기가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 하얀 손끝이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숨이 멎을 듯한 거대하고 파괴적인 충격이었다.자신이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며 피눈물을 흘렸던 그 끔찍했던 가설.그저 제발 나의 과도한 망상이기를, 작은 의심이 만들어낸 한 줌의 오해이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마지막 희망.그 얇고 위태로운 동아줄이, 방금 이헌 스스로 토해낸 기괴한 고해성사로 인해 완벽하고 처참하게 끊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살인자.’서연의 맑았던 눈동자가 한겨울 빙판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 위에서 눈물을 쏟는 이헌의 정수리를 텅 빈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이 남자는 살인자다. 사람의 목숨을 벼랑 끝으로 몬 짐승이다.그리고 나는, 그 더러운 살인자가 자신이 찢어 죽인 여자의 환영을 억지로 덮어씌워 놓은 불쌍하고 비참한 껍데기다.그 완벽하고 소름 끼치는 확신이 뇌리를 벼락처럼 강타하자, 서연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지독한 구역질과 혐오감을 억누르느라
방 안의 공기가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술에 취해 바보처럼 풀려있던 이헌의 입가 미소가 일순간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감겨 있던 그의 두 눈꺼풀이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당신이 죽였습니까.”서연이 심장에 쐐기를 박듯 다시 한번 집요하고 차갑게 파고들었다.“나와 끔찍할 정도로 똑같이 생긴 그 불쌍하고 가여운 껍데기의 주인을. 대군 당신이 무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까.”평소 제정신일 때 같았다면, 기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핏대를 세우며 변명하고 도망쳤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무릎 위의 이헌은, 서연이 작정하고 먹인 독주에 이성과 얄팍한 방어 기제가 완벽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거짓을 꾸며낼 지능조차 마비되었다.서연의 무릎이라는 그 맹목적이고 유일한 안식처 위에서.수십 년간 그의 무의식 가장 깊은 심연에 억눌려 있던 끔찍한 진실의 거대한 둑이, 그 낯선 이름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아…… 아아…….”이헌의 꽉 감긴 두 눈에서, 순식간에 붉고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그의 굵고 처절한 눈물이 서연의 옥색 치맛자락을 시커멓고 축축하게 적시기 시작했다.“내가…… 흐으…… 내가 죽였습니다.”마치 상처 입은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처절하고도 끔찍한 살인의 자백이 마침내 이헌의 찢어진 입술을 뚫고 터져 나왔다.“내가…… 내가 지안이를 죽였습니다.”서연의 턱관절에 꾹, 피가 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심장이 아득한 나락으로 곤두
서연의 맑았던 눈동자가 깊은 밤의 서늘한 어둠 속에서 차갑고 예리하게 가라앉았다.그녀는 더 이상 배신감에 피눈물을 흘리며 방구석에 웅크려 벌벌 떨고 있는 유약한 여인이 아니었다.자신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죽은 여자의 껍데기로 취급하여 능멸한 그 끔찍하고 가증스러운 사내의 입에서. 기어이 직접 살인의 진실을 토해내게 만들 완벽하고 잔혹한 덫을 놓아야만 했다.며칠 뒤 저녁.궐의 무거운 정무를 마치고 피로한 기색으로 대군저로 돌아온 이헌의 앞에는, 평소와 달리 몹시도 화려하고 진수성찬이 차려진 주안상이 마루에 놓여 있었다.“부인, 이 야밤에 어찌 이리 거나하고 화려한 술상을 보셨습니까. 무슨 경사라도 있습니까.”이헌이 의아한 듯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도, 서연이 친히 차려준 술상에 한껏 들뜨고 감격한 기색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요 며칠 궐의 일이 몹시 고되시고 밤잠도 잘 이루지 못하시는 듯하여, 서방님의 피로를 덜어드릴까 하고 제 손으로 직접 준비했습니다.”서연이 나긋나긋하고 한없이 다정한, 완벽한 현모양처의 목소리로 웃으며. 이헌의 옥잔에 맑고 독한 술을 가득 채워 올렸다.“이 술은 도성에서 파는 평범하고 탁한 곡주가 아닙니다. 제가 특별히 내의원 어의에게 몰래 일러, 아주 독하고 향이 깊은 진귀한 약주를 빚어 오라 하였습니다. 한 잔만 드셔도 온몸의 굳은 긴장이 눈 녹듯 풀리실 겝니다.”“부인께서 이리 저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시니, 이것이 사약이나 맹독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달게 마시겠습니다.”이헌은 자신을 향한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서늘한 독기를 한 치도 의심하지 못한 채, 서연이 건넨 술잔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비워냈다.“크아. 과연 목이 타들어 가는 듯 독하긴 몹시
이헌이 걱정스러운 듯 사색이 되어 서연의 뺨을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서연은 그의 소름 끼치는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불안하게 내려다보는 그의 핏발 선 눈동자 가장 깊은 곳의 심연을 아주 집요하고 날카롭게 관찰했다.자, 껍데기인 나를 똑바로 보아라.당신은 지금 내 얼굴에서 대체 누구를 겹쳐 보고 있는가.“…….”찰나의 순간이었다.서연의 고운 턱선을 애틋하게 쓸어내리던 이헌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허공으로 흩어지며 초점을 잃었다.그의 텅 빈 눈동자 속에는, 명백하게 눈앞의 ‘서연’이 아닌, 전혀 다른 누군가의 환영이 기괴하게 덧씌워져 겹쳐 있었다.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과거.자신이 단 한 번도 알지 못하는, 그가 죽였다던 그 가여운 정인 송지안의 모습.그 기만적이고 텅 빈, 소름 끼치게 이질적인 눈빛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서연은 스스로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들어, 자신의 심장을 갈기갈기 난도질하는 듯한 끔찍한 고통과 자괴감을 느꼈다.‘당신은 지금 나를 만지고 쓰다듬고 있으면서도, 단 한 순간도 온전한 나를 보고 있지 않구나.’서연은 파르르 떨리는 붉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고, 억지로 짐승의 구역질을 꿀꺽 씹어 삼켰다.“아닙니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저 찬 바람을 쐬었더니 조금 피곤할 뿐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서연이 이헌의 손을 잡아끌며 다정하게, 완벽한 아내의 얼굴로 방 안으로 이끌었다.그녀는 너무도 완벽하게 웃고 있었고, 너무도 완벽하게 그의 알량한 연극에 속아 넘어간 척 가증스럽게 연기하고 있었다.그날
서연의 눈동자가 치솟는 분노와 뼈를 녹이는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눈시울이 뜨거웠지만 비참한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자신의 몸을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죽은 지안을 떠올렸을 그 가증스러운 남자.자신에게 뜨겁게 입을 맞추며, 지안에게 용서를 구했을 그 더러운 남자.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빌려, 자신이 죽인 여인의 환상 속에서 완벽한 평온을 누렸을 그 이기적인 미치광이.그녀의 내면에서 그동안 아름답고 견고하게 피어나고 있던 따뜻한 로맨스와 구원의 서사는, 이 끔찍한 진실 앞에서 일순간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아름다운 꽃이 무참히 꺾여나간 그 흉측한 폐허 위에는.이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배신감’과, 자신을 껍데기로 내어주었다는 끔찍한 ‘수치심’이라는 맹독이 바짝 오른 두 마리의 독사가, 스멀스멀 똬리를 틀며 사납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가만두지 않겠다.”어둠 속에서, 서연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처절한 독기가 뱀의 쉿쉿거림처럼 새어 나왔다.자신을 이렇게 비참한 껍데기이자 위안거리로 취급한 오만한 권력자.자신의 순결한 사랑과 맹목적인 신뢰를, 고작 제 살인마의 죄책감을 덜어낼 더러운 쓰레기통으로 사용한 비겁한 사내.서연의 날 선 시선이, 침상 위에서 식은땀에 젖어 웅크리고 있는 이헌의 등을 섬뜩하게 향했다.방금 전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워 모든 것을 내어주려 했던 사내의 듬직한 등이.이제는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가장 역겨운 원수의 고깃덩어리로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당신은 결코 이 알량하고 달콤한 지옥에서 평안하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헌이 땀범벅이 된 채 얇은 명주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짐승처럼 거친 숨을 헐떡이며 과거의 끔찍한 악몽의 잔재와 처절하게 싸우는 동안.서연은 차가운 방구석 벽에 등을 꼿꼿하게 기댄 채, 어둠 속에서 핏발 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녀의 시선은 침상 위의 이헌을 향해 날카롭게 꽂혀 있었다.그녀의 비상하고 차가운 머릿속에서는 이헌이 대군저에서 보였던 지난 모든 기괴하고 병적이었던 행동들이. 마치 누군가 잔혹한 의도를 가지고 흩뿌려놓은 완벽한 퍼즐 조각처럼, 오차 하나 없이 하나의 거대한 핏빛 그림으로 꿰맞춰지고 있었다.“……하아.”서연의 파란 입술 사이로, 얼음장처럼 서늘하고 날 선 헛숨이 새어 나왔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폐부가 날카로운 칼날에 베이는 듯 쓰라렸다.처음, 형조의 그 차갑고 더러운 지하 옥사에서 그를 마주쳤던 날.선왕을 모시던 대역죄인의 핏줄인 자신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고문하러 왔을 거라 생각했던,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진안대군은.어두운 감옥의 창살 너머로 횃불 아래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마치 거대한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사람처럼 사색이 되어 기악하며 경악했었다. 눈을 까뒤집으며 제대로 된 숨조차 쉬지 못했었다.『아, 아아……!』그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곁에 무릎을 꿇고, 감히 손도 대지 못한 채 떨리는 두 손을 허공에서 헤매며 낯선 이름을 울부짖었다.『지안아…… 지안아…….』그 기괴하고 소름 끼치던 기행.조선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두 손에 쥔 폭군이, 한낱 사노비를 보고 드러냈던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괴한 경악과 처절한 오열.‘나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