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연을 그저 망령의 껍데기로 취급하며 비겁하게 안도감을 구걸했던, 스스로도 구역질 났던 이기적인 기만의 시간들.
‘나 같은 쓰레기 살인마의 끝이, 이 전장의 더러운 진흙탕 바닥이라면…….’
이헌은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히려 너무도 벅찬 구원이요, 과분한 자비가 아니겠는가.’
자신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기 방패가 되어 뒈지는 것.
이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내리는 마지막 징벌이자, 자신이 온전히 ‘서연’이라는 한 여인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속죄였다.그녀가 나를 평생 용서하지 않고 저주한다 해도 좋았다. 그녀가 그저 따뜻한 곳에서 살아 숨 쉴 수만 있다면.“서연아…… 부디…&h
“대군마마! 눈을 뜨십시오! 부인께서, 부인 마마께서 저 캄캄한 후방에서 살아서 전하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무영의 피 맺힌 처절한 절규가, 화살이 빗발치고 시체가 산처럼 쌓여가는 칠흑 같은 협곡의 아수라장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그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외침에.피투성이가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으려던, 죽음의 심연을 받아들이려던 이헌의 시뻘건 동공이 미친 듯이 기악하며 팽창했다.‘기다린다. 서연이가…… 얼어붙은 그 마차 안에서, 나를.’이헌의 흐릿하고 꺼져가던 뇌리에 그 기적 같은 한마디가 시퍼런 번개처럼 쾅, 하고 내리꽂혔다.하지만 이미 그의 육신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완벽하게 망가져 있었다.수십 개의 시퍼런 창칼과 시뻘건 불화살에 온몸을 무참하게 관통당한 그의 몸은, 그 찰나의 달콤한 안도감과 함께 완전히 끈이 끊어진 피 묻은 인형처럼. 눈밭 위로 푹, 고꾸라지며 깊은 기절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전하! 전하아악! 정신을 차리시옵소서!”무영은 기절하여 쓰러지는 이헌의 거대한 핏빛 몸을 다급히 받아 안으며 절규했다.하지만 슬퍼하고 오열할 시간 따위는 이 생지옥에서 단 1초도 허락되지 않았다.“쳐라! 저놈들도 모조리 다 찢어 죽여라! 모가지를 베어버려라!”무영과 오십 명의 흑위대 결사대가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왔지만, 사방을 겹겹이 시커멓게 에워싼 수천 명의 여진족 기병대는. 끊임없이 살기를 뿜으며 밀려드는 역겨운 굶주린 개미 떼와 같았다.“결사대는 내 뒤를 따르라! 전하를 모시고 무조건, 이 끔찍한 지옥 불을 뚫고 나간다!”무영은 기절한 이헌의 두꺼운 팔을 억센 악력으로 쥐어
서연을 그저 망령의 껍데기로 취급하며 비겁하게 안도감을 구걸했던, 스스로도 구역질 났던 이기적인 기만의 시간들.‘나 같은 쓰레기 살인마의 끝이, 이 전장의 더러운 진흙탕 바닥이라면…….’이헌은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오히려 너무도 벅찬 구원이요, 과분한 자비가 아니겠는가.’자신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기 방패가 되어 뒈지는 것.이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내리는 마지막 징벌이자, 자신이 온전히 ‘서연’이라는 한 여인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속죄였다.그녀가 나를 평생 용서하지 않고 저주한다 해도 좋았다. 그녀가 그저 따뜻한 곳에서 살아 숨 쉴 수만 있다면.“서연아…… 부디…… 나를 잊고 살아다오…….”이헌은 입가로 검붉은 피를 한 움큼 왈칵 토해내며, 마침내 지탱하던 장검을 놓쳐버렸다.그의 거대한 몸이 피투성이가 된 눈밭 위로 허물어지듯 쓰러지려 했다.“찔러라! 모가지를 베어라!”여진족 지휘관의 잔혹한 명령이 떨어졌다.수십 명의 적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쓰러지는 이헌을 향해 시퍼런 창날을 사정없이 쑤셔 넣기 위해 달려들었다.죽음의 창끝이 이헌의 눈앞까지 다가왔다.이헌은 원통함도, 살고자 하는 발악도 없이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모든 것이 끔찍할 정도로 평온했다.그런데.그가 죽음의 심연으로 완벽하게 추락하려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쿠구구궁-!“크아아아아아악!”협곡 전체를 뒤흔드는, 짐승의 끔찍
“저놈이다! 저 흰옷을 입은 놈이 도원수다!”“잡아라! 저놈의 목을 베는 자에게 천금을 내릴 것이다!”여진족의 지휘관이 악을 쓰며 병사들을 몰아붙였다.이헌은 얇디얇은 하얀 적삼 단 한 벌만 입은 채, 수백 명의 적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어 있었다.아니, 그의 적삼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었다.적들의 피와, 자신의 몸에서 터져 나온 검붉은 핏물이 뒤엉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 끼치는 시뻘건 핏빛으로 완벽하게 물들어 있었다.“하아…… 하아…… 컥!”이헌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해냈다.상황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아무리 그가 조선 팔도에서 으뜸가는 무력의 소유자이자 전쟁터의 귀신이라 한들.아무런 갑옷도 없이, 얇은 적삼 하나만 걸친 채 수백 명의 기병대와 창병들에게 둘러싸여 난도질당하는 상황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푹-!“으윽……!”어둠 속에서 날아온 긴 창 하나가 이헌의 옆구리를 깊숙이 뚫고 들어왔다.서어억!이헌은 고통스러운 신음조차 내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적병의 목통을 단칼에 썰어버렸다.“덤벼라……! 덤벼보란 말이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이헌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적들을 향해 피 묻은 장검을 휘둘렀다.그의 악귀 같은 기세와 끔찍한 살기에 압도된 여진족 병사들이 잠시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사방에서 끝없이 몰려드는 적의 수는 너무도 압도적이었다.슈우우욱-! 퍽! 퍽!&ld
덜컹! 우당탕!불타는 협곡을 빠져나온 거대한 참나무 마차가, 눈 덮인 산길을 미친 듯이 질주하여 후방의 본영에 처박히듯 도착했다.말들의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터져 나왔고, 마차의 바퀴는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정지! 정지하라!”마차를 몰던 흑위대장 무영이 피투성이가 된 고삐를 거칠게 잡아당겼다.말들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치켜들었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춰 섰다.“무슨 일이냐! 대장!”“적의 기습이냐! 전방의 본대는 어찌 되었는가!”본영에 남아있던 후방 부대의 장수들과 흑위대 병사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그들의 눈에 비친 무영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다.온몸이 적의 피로 시뻘겋게 떡이 되어 있었고, 어깨와 팔뚝에는 화살이 꽂힌 채 부러져 있었다.“본대가…… 전방의 협곡에서 여진족 대부대의 완벽한 매복에 걸렸다!”무영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적의 수가 너무 많아 진형이 반으로 갈라졌다! 전하께서 홀로 적진 한가운데서 미끼가 되시어, 간신히 부인 마마의 마차만을 빼내 온 것이다!”“뭐, 뭐라? 전하께서 사지에 홀로 남으셨단 말이냐!”“어찌 대군 마마를 버려두고 온 것이냐!”장수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무영은 그들의 멱살을 틀어쥐고 피 토하듯 호통을 쳤다.“닥쳐라! 내 목숨이 열 개라도 전하를 사지에 두고 오고 싶었겠느냐! 부인 마마를 살려 후방으로 빼내라는 것이, 전하의 지엄하신 마지막 어명이셨다!”무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차의 문을 쾅, 하고 열어젖혔다.
이헌은 쏟아지는 불화살을 검으로 쳐내며, 덜덜 떨며 막아서는 무영의 멱살을 피투성이 손으로 거칠게 틀어쥐었다.“똑똑히 들어라, 무영.”이헌의 쉰 목소리에는, 조선의 권력자로서의 오만함이나 위엄 따위는 전혀 없었다.오직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한 여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사내의 가장 처절하고 핏빛 어린 각오만이 서늘하게 서려 있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내 남은 목숨을 갈기갈기 찢어 바쳐서라도. 적들의 모든 시선과 불화살을 내가 이 앞으로 몽땅 끌어당길 것이다. 네놈들은 그 찰나의 틈을 타서 부인을 무조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무조건 살려서 후방으로 빼내라!”“전하……!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이리 뛰쳐나가시면 적들에게 포위되어 죽사옵니다!”“내 부인을 무사히 살려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본영으로 모시지 못하면!”이헌의 핏발 선 시뻘건 눈동자에서, 뜨거운 피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려 눈밭을 적셨다.“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놈의 목을 단칼에 쳐버릴 것이다! 알겠느냐!”그것은 지엄한 어명이나 명령이 결코 아니었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상의 유일한 빛인 여인을 제발 살려달라는. 한 사내의 피 끓는 유언이자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애원이었다.“전하아아악!”무영이 피눈물을 쏟으며 무릎 꿇고 절규했지만, 이헌은 매몰차게 마차를 등지고 몸을 홱 돌렸다.그는 바닥에 떨어져 타오르던 적군의 거대한 횃불 하나를 거칠게 집어 들고, 자신의 머리 위로 미친 듯이 빙빙 크게 휘두르기 시작했다.“이 오랑캐 버러지 새끼들아! 내 목을 원하느냐! 내가 바로 조선의 섭정이자 도
“서연아! 고개 숙여라! 제발 눈 감아! 제발 내 품에서 살아만 다오!”시뻘건 불길이 미친 듯이 치솟아 오르는 좁은 참나무 마차 안.이헌의 피 토하는 핏빛 절규가, 폭음처럼 서연의 굳게 닫힌 귓가에 쾅쾅 무자비하게 울려 퍼졌다.그의 거대한 몸집이 서연의 가녀리고 파랗게 질린 체구를 완벽하게 덮어 외부로부터 완전히 보호하고 있었기에. 마차 밖에서 맹우(猛雨)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여진족의 시뻘건 불화살들은, 얇은 적삼 하나만 걸친 이헌의 넓은 어깨와 등짝에 쉴 새 없이, 무자비하게 푹푹 박히고 있었다.푹-! 퍼억! 서걱!“으윽……! 커헉!”또다시 날카로운 화살촉이 살을 뚫고 뼈에 끔찍하게 박히는 파공음이 들릴 때마다. 이헌의 찢어진 입에서는 뜨거운 검붉은 핏물이 왈칵왈칵 짐승처럼 쏟아져 나와, 서연의 하얀 옥색 치맛자락을 시뻘겋고 처참하게 적시고 있었다.“이헌…… 너…… 대체…….”기절 직전의 서연의 눈동자가, 극도의 혼란으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자신을 그저 살인마의 더러운 속죄 껍데기로 삼았던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내.그가 대체 왜 지금, 자신의 목숨을 한낱 짚신짝처럼 던져가며 이 끔찍한 지옥 불 속에서 나를 살리려 이토록 발악하는가.‘지안’이라는 자신이 죽인 망령의 이름이 결코 아니었다.이헌은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서연의 이름을 또렷이 부르며 목숨을 걸고 절규하고 있었다.단단하게, 영원히 굳게 닫혀있다고 믿었던. 완벽히 잿더미로 얼어붙었다고 믿었던 서연의 심장 벽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듯한 뜨겁고 맹렬한 균열이 빠지직, 하고 가기 시작했다.&ld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