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어명, 뼛속 깊이 새겨 받드옵나이다…….”
깊은 밤, 한양 도성을 백 리 남짓 앞둔 거대한 토벌군의 중앙 지휘 막사 안.
조선군의 늙은 선봉장과 핵심 무장들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원통함과 비통함이 가득한 일그러진 얼굴로 하나둘씩 막사 밖으로 물러났다.그들의 굽은 등 뒤로는, 자신들의 주군을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뱀소굴 도성에 홀로 내버려 두고 가야만 한다는 뼈저린 죄책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이헌의 ‘십만 대군 북방 회군’이라는 지엄한 국방의 명분 앞에, 그 어떤 장수도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고 피눈물을 삼키며 물러선 것이다.하지만.
모든 무장들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막사를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여진족의 용맹한 추장이자 이제는 어엿한 조선군 부장(副將)의 관직그의 커다란 발걸음이 차가운 진흙탕을 밟을 때마다 막막하고 무거운 침묵이 야영지에 감돌았다.“너희들은.”이헌의 낮고 거칠게 갈라진 쇳소리가, 덜덜 떠는 부상병들의 귓가에 아주 무겁고 슬프게 울려 퍼졌다.“너희들은 저 지옥 같은 북방의 눈보라 속에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너희의 살을 찢기고 뼈를 베였다.”이헌이 그들의 잘려 나간 팔과, 피고름이 묻은 눈을 하나하나 애달프게 훑어보았다.“하지만 저 한양 궐 안의 썩어빠진 훈구파 쥐새끼들은.너희가 짐승처럼 흘린 그 고결한 피를 패전이라 비웃으며 조롱했고, 군량미를 끊어 너희를 눈밭의 개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백성의 고혈을 빨며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권력에 미쳐 날뛰고 있다.”부상병들의 퀭하게 파인 눈동자에, 억울함과 원통함의 피눈물이 시뻘겋게 맺히기 시작했다.“우리는 오늘, 이 압도적이고 두려운 무력을 포기하고 시퍼런 칼을 완벽하게 버린다.”이헌이 자신의 허리춤에서 마지막 남은 시퍼런 장검을 아주 거칠게 뽑아 들어, 바닥의 썩은 진흙탕 속에 쾅! 소리가 나도록 무자비하게 내리꽂아 버렸다.폭군 섭정이 스스로 칼을 버리는 그 파격적이고 끔찍한 행동에. 무영과 부상병들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대신!”이헌이 진흙탕에 꽂힌 칼을 발로 차버리며, 사자후를 터뜨렸다.“우리는 칼을 버리고 온몸의 흉터를 훈장 삼아 도성에 들어갈 것이다. 백성들이 우리의 진실을 보게 하라!”이헌의 피 토하는 듯한 절규.그것은 부상병들을 정치적 미끼나 소모품으로 버려 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의 그 고귀한 상처
새벽의 짙고 차가운 이슬안개가 서서히 걷히고.서늘하고 창백한 아침 햇살이, 한양 도성 밖 백 리 남짓 떨어진 광활한 평야를 비추기 시작했을 때.“하아…… 하아…….”홍문관 수찬 김태윤과 신진 실학파 핵심 관료들은, 밤새 서연의 끔찍한 구밀복검(口蜜腹劍) 계략을 짜느라 뜬눈으로 지새우다. 마침내 막사 밖으로 비틀비틀 짐승처럼 걸어 나왔다.그들은 도성을 향해 당장이라도 진격할 듯 웅장하게 도열해 있어야 할 십만 토벌군의 거대한 진영을 다시 한번 두 눈에 온전히 담으려 고개를 들었다.하지만.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너무도 텅 빈, 마치 거대한 환각 같은 껍데기만 남은 야영지의 광경에.그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대로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돌상처럼 완벽하게 굳어버렸다.“이, 이럴 수가…… 이것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김태윤의 덜덜 떨리는 갈라진 목소리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소름 끼치게 갈랐다.“정말로…… 하룻밤 새에 그 거대하고 시퍼런 무력을 자랑하던 십만 대군이! 단 한 놈의 훈구파 세작 눈에도 띄지 않고, 흔적도 없이 연기처럼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어젯밤까지만 해도 수만 마리의 군마가 내뿜는 거친 입김과, 칼을 갈며 으르렁거리는 병사들의 거친 코곯는 소리로 터질 듯 웅장하고 살벌했던 야영지였다.하지만 지금, 불 꺼진 수천 개의 빈 막사들 사이로 휑하게 불어오는 것은. 오직 차가운 흙먼지를 실은 쓸쓸하고 적막한 봄바람뿐이었다.조선군의 무장을 완벽하게 갖춘 정예 병력 수만 명도, 시퍼런 시미터 칼을 차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여진족 야루의 기병대 수만 명도.마치 처음부터 이
수만 명의 숨소리가 피로에 지쳐 잠든 줄로만 알았던, 한양 도성 백 리 밖의 거대한 토벌군 야영지.하지만 그 짙은 어둠의 장막 속에서는.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장 은밀하고 압도적인, 거대한 병력의 대이동이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말의 주둥이를 단단히 가죽 천으로 틀어막아라! 단 한 번의 말울음소리라도 새어 나간다면 그놈의 목을 그 자리에서 단칼에 칠 것이다!”“말발굽에 두꺼운 헝겊을 여러 겹 덧대어 묶어라! 발소리와 갑옷 부딪히는 소리를 완벽하게 죽여라!”조선군 정예 병력 수만 명과, 야루가 이끄는 여진족 기병대 수만 명.도합 십만에 달하는 이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무장 병력이.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진 칠흑 같은 그믐밤의 짙은 어둠을 틈타, 마치 형체 없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야영지의 북쪽 문을 통해 끝없이, 끝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그들은 행군을 알리는 횃불조차 단 하나 켜지 않았다.서로의 거친 숨소리와 희미한 별빛에만 의존한 채, 뱀이 숲을 미끄러지듯 험준한 산맥을 타기 시작했다.그것은 단순한 병력의 이동이나 후퇴가 결코 아니었다.자신들이 머물던 진영에는 불을 환하게 밝혀둔 빈 막사 수천 개를 그대로 세워두고. 마치 십만 대군이 여전히 도성을 포위하기 위해 무기를 쥐고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환영(幻影)을 만들어둔 채.알맹이인 진짜 무력만을 완벽하게 북방으로 빼돌리는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연막이었다.“움직여라. 뒤돌아보지 마라. 우리의 진짜 전장은 지금 한양이 아니라 저 먼 북방의 척박한 압록강이다.”야루의 소리 없는 짐승 같은 손짓에 따라, 수만 마리의 군마가 북쪽을 향해 소리 없는 핏빛 질주를 시작했다.이 수만 명의 정예 병력과 기병대가 소리 소문 없이
“네가 내 그 숨겨진 칼날이 된 것을 알았다 한들, 당장 무엇이 달라지느냐.너는 어찌 되었든 오늘 밤 이 십만 대군을 이끌고 도성을 완벽히 등진 채, 저 척박한 북방으로 기수를 돌려 떠나야만 하는 내 사냥개일 뿐이다. 불만이 있느냐.”그것은 이헌의 마지막 핏빛 시험이었다.권력의 중심부인 도성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불평할 것인지,아니면 주군의 뜻에 따라 기꺼이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숨어 칼을 갈 수 있는 진짜 맹목적인 충견(忠犬)인지 확인하려는 지독한 압박.하지만 야루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시미터를 거칠게 뽑아 바닥에 쨍그랑! 내던지고는.이마에서 시뻘건 피가 터지도록 차가운 바닥에 쾅쾅 머리를 찧으며 짐승의 사자후 같은 맹세를 터뜨렸다.“주군께서 부르시는 그날, 지옥 끝이라도 며칠 밤낮을 달려 도성 문을 부수겠습니다!”“……!!”“주군께서 저 먼 북방의 얼음장 밑에 저를 칼집처럼 숨겨두라 하시면, 기꺼이 뼈가 썩을 때까지 숨죽여 주군의 명령만을 기다리겠사옵니다!그리고 한양 궐 안의 훈구파 놈들이 오만방자하게 주군을 향해 시퍼런 칼을 들이대는 그 순간!주군의 봉화가 하늘로 오르고 제게 출정의 명이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이 야루, 수만 명의 굶주린 늑대 떼를 이끌고 험준한 산맥을 번개처럼 타고 내려와, 한양의 성문을 무자비하게 박살 내고 놈들의 심장에 제 이빨을 기어코 박아 넣겠사옵니다!”야루의 그 피 토하는 듯한, 거칠고 야만적이지만 그 어떤 충신의 맹세보다도 압도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적의 등 뒤에 꽂힐 가장 날카롭고 치명적인 비수(腹劍).그 완벽한 핏빛 역할에, 야루는 자신의 모든 영혼과 부족
“어명, 뼛속 깊이 새겨 받드옵나이다…….”깊은 밤, 한양 도성을 백 리 남짓 앞둔 거대한 토벌군의 중앙 지휘 막사 안.조선군의 늙은 선봉장과 핵심 무장들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원통함과 비통함이 가득한 일그러진 얼굴로 하나둘씩 막사 밖으로 물러났다.그들의 굽은 등 뒤로는, 자신들의 주군을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뱀소굴 도성에 홀로 내버려 두고 가야만 한다는 뼈저린 죄책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이헌의 ‘십만 대군 북방 회군’이라는 지엄한 국방의 명분 앞에, 그 어떤 장수도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고 피눈물을 삼키며 물러선 것이다.하지만.모든 무장들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막사를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여진족의 용맹한 추장이자 이제는 어엿한 조선군 부장(副將)의 관직을 하사받은 야루만큼은, 그 자리에 거대한 바위처럼 미동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야루는 무장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고, 막사의 두꺼운 가죽 천이 완전히 빈틈없이 닫힐 때까지 단 한 번의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오직 일렁이는 촛불의 붉은 그림자만이 야루의 웅크린 거대한 짐승 같은 등판 위에서 기괴하게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야루. 다른 조선의 장수들은 모두 어명을 받들어 당장 북방으로 출궁(出軍)할 채비를 하러 나갔거늘.”상석에 앉은 이헌이 뱀처럼 서늘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너는 어찌하여 아직도 내 발밑에 그 짐승 같은 대가리를 처박고 엎드려 있는 것이냐. 내가 선포한 그 지엄한 회군 명령이 우습게 들린 것이냐.”이헌의 그 매서운 질책.하지만 그 질책의 목소리
그것은 이 막사 밖에서 쥐새끼처럼 엿듣고 있을지도 모를 훈구파의 썩어빠진 세작들의 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기 위한, 서연이 짠 너무도 완벽하고 치밀한 대외적인 연기 그 자체였다.“치밀하게 이성을 붙잡고 생각해 보아라.야루, 네가 이끄는 수만 명의 여진족 전사들이 며칠 전 조선에 귀속을 맹세했다.허나 척박한 북방 압록강 이북에는 여전히, 굶주림에 미쳐 너희의 빈 영토를 약탈하고 노리려는 다른 수많은 북적 오랑캐 놈들이 짐승처럼 득실거리고 있지 않느냐.”“……그, 그것은…….”야루가 말문이 막힌 듯 주춤거렸다.“이제 봄이 오고 압록강의 두꺼운 얼음이 완벽하게 다 녹아내렸다.그 미쳐 날뛰는 다른 굶주린 오랑캐 놈들이 물살을 가르고 강을 건너, 우리 불쌍한 백성과 네 부족민들을 도륙하려 쳐들어오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다.”이헌의 목소리에 거대한 국방의 대의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실려 있었다.“내가 너희 십만 대군을 모조리 이끌고 한양 궐 안으로 무식하게 쳐들어가, 훈구파 놈들과 하찮고 지루한 권력 투쟁을 벌이는 그 틈을 타서.우리의 그 텅 빈 북방 국경이 속수무책으로 뚫려, 수많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하게 방치하란 말이냐!나는 내 알량한 권력욕에 눈이 멀어, 북방의 무고한 백성을 짐승들의 먹이로 내던지는 그런 더러운 폭군이 결코 아니다!”이헌의 그 폭포수 같은 국방의 질책에, 미친 듯이 반발하려던 조선군 무장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러니 너희는, 이 토벌군 정예 병력 전체를 이끌고 당장 오늘 밤 북방으로 기수를 돌려라.여진족의 완벽한 조선 귀속을 전 병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돕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