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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ผู้เขียน: 잿빛은하수
다음 날, 은하는 약속된 로펌을 찾아 변호사와 면담했다.

그리고 반나절을 꼬박 들여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양육권은 포기하고, 위자료로 60억 원.

이 정도면 은하도 깨끗하게, 아주 말끔하게 떠날 수 있었다.

‘60억... 유정후한테는 그리 큰돈도 아니야.’

‘결혼 7년 동안 내가 감당한 것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받아야 해.’

은하가 합의서를 가방안에 넣은 채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관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모, 이모!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배우고 싶어!”

석진은 채원 품에 파묻히듯 안겨 있었고,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모는 진짜 멋져! 마술도 할 줄 알고!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해!”

정후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널 낳고 키웠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예의도 없니?”

문을 밀려던 은하의 손이 잠시 멈췄다.

‘저 말... 처음도 아니잖아. 남채원이랑 조금만 놀다 오면, 석진은 꼭 나랑 비교해서 깎아내리곤 했지.’

처음엔 은하도 참 많이 속상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식히며 밤을 새웠던 날들, 미운 투정도 다 받아주며 견뎌낸 그 시간이, 고작 그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은하는 그런 석진의 말이 마음에 걸려, 조심스레 정후에게 말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무심한 한숨이었다.

“애가 뭘 안다고? 당신도 왜 그런 걸로 아이한테 감정 소비를 해?”

그 말에, 은하는 처음으로 ‘이 사람은 내 편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은하는 코웃음을 치며 문을 열었다.

거실 한가운데, 채원이 정후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부드럽지만 나무라는 어투로 말했다.

“석진이는 아직 어리잖아요! 애가 한 말 가지고 왜 그렇게 진지해요? 애가 무서워하잖아요!”

그 말투, 그 표정, 그 태도.

마치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정후는 근엄한 아버지, 채원은 다정한 어머니... 어쩐지... 잘 어울리긴 했다.

은하가 들어서는 걸 본 채원은 잠깐 표정을 굳혔지만, 곧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언니, 잘 오셨어요. 내가 석진이랑 형부 먹이려고 쿠키를 좀 구웠거든요. 둘 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언니도 한 입 드셔보세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석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안 돼! 그건 이모가 나 주려고 만든 거야! 엄마한텐 안 줄 거야!”

“석진!”

정후가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를 나무랐다.

‘웃기지 마, 유정후. 당신이 뭘 가르쳤다고, 이제 와서 예의 타령이야?’

‘이 집에서 누구 하나, 나한테 진심인 적 있었나?’

은하의 가방 안에 든 서류봉투는 아직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정후의 목소리에 살짝 힘이 들어가자, 석진은 금세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내 거야! 난 이모가 좋아! 이모가 나한테 준 건 다 좋아! 난 엄마가 싫어! 이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

그때, 은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아.”

그 말은 너무 담담해서, 순간 거실이 조용해졌다.

석진은 울음을 멈춘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하를 바라봤다.

‘설마 진짜로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어.’

정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석진이가 말실수한 거야. 어린애가 잘 몰라서 그런 건데, 당신까지 왜 아이 말에 휘둘려?”

하지만 은하는 더 이상 그런 말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가방에서 준비해 둔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사인했으니까 확인해 봐요. 문제없으면 바로 도장 찍으면 되고, 이견 있으면 이혼 협의하면 돼요.”

정후는 그 서류를 받아보지도 않고 여전히 인상을 쓴 채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은하는 조용히 그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석진은 궁금한 듯 성큼 다가와 서류를 집어 들었다. 작은 손으로 종이를 넘기며 물었다.

“엄마... 엄마, 진짜 아빠랑 이혼하는 거야...?”

그때, 채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급하게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오해예요. 나랑 형부 사이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어젯밤에도... 석진이가 자꾸 나한테 안기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형부랑 같이 잔 것뿐이에요. 언니, 진짜 오해하지 말아요...”

은하는 살짝 웃었지만, 그 눈엔 온기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너도 네 행동이 오해받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구나.”

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은하는 시선을 떼지 않고 이어 말했다.

“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더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애를 못 낳아서 남의 애 데려다 키우는 줄 알겠어.”

“언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 진짜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채원이 뭔가 더 말하려다 말을 잇지 못한 순간, 정후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채원, 넌 먼저 가 있어.”

명백한 ‘퇴장 명령’이었다.

딱 한 마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채원의 눈엔 서운함이 번졌다.

‘정후 오빠는... 왜 항상 남은하 앞에선 이런 식일까?!’

하지만 그 말을 삼킨 채원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

‘지금 더 버티면 오빠가 나를 귀찮아하게 될 거야.’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상책이야.’

채원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얌전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형부, 언니랑 잘 얘기해 보세요. 그래도 일곱 해를 함께한 사이인데... 서로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석진이를 위해선 조금만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말끝에 슬쩍 담긴 의도가 있었다.

바로 ‘아이 마음은 이미 나에게 기울어 있으니, 잘 판단하라’는 메시지.

하지만 정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석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도 올라가 있어. 아빠는 엄마랑 얘기 좀 해야겠다.”

당사자인 은하는 그 말에 전혀 응할 마음이 없었다.

“이혼이 아닌 다른 얘기면, 꺼내지도 마요.”

은하의 말투는 무덤덤했고 차가웠다.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으니까.”

정후는 은하를 향해 깊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눈빛엔 짜증과 미묘한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

“처제는 이미 갔으니까 그만 좀 해. 나랑 처제 사이에 뭐 있는 거 아니야.”

은하는 그 말을 듣고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그러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사람... 끝까지 자기중심적이네.’

은하가 대꾸 없이 침묵하자, 정후는 목소리를 한결 누그러뜨렸다.

“어제 처제랑 놀이공원에 간 건... 석진이가 처제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그런 거야. 당신이 늘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나도 열 받아서... 그냥 말 안 하고 간 거였어.”

정후로선 나름 설명이자 변명이었지만, 은하에겐 그 어떤 말보다 씁쓸하고, 무의미했다.

‘이 사람은 끝까지... 자기 잘못은 없다고 믿는구나.’

“그래요.”

은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이제 그만하자'는 무언의 신호 같았다.

“빨리 서류에 사인해요. 시간은 아직 남았으니까 가정법원 퇴근 전까진 접수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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