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복도는 여전히 잔잔했고,
창문 밖 겨울밤의 바람은 그 너머에서 얇게 흐르는 것처럼 들렸다.
민영은 창문 아래 난 좁은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볼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 소리는
이 거리까지 닿지 못하고 단지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는 정도로만 존재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아버지의 말이 해리처럼 번졌다.
“여덟 달 동안 스스로를 증명해보게.”
그 문장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민영은 완벽히 알지 못했지만,
알아서는 안 되는 느낌도 같이 있었다.
“……그러니까요, 아버지… 왜 이런 선택을….”
민영은 이마에 손을 댄 채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에도 그녀의 귀에는
아버지의 발표 뒤로 퍼져 나가던
직원들의 웅성임이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정씨 성 가진 신입만 몇인데?’
‘우리 부서에도 두 명 있어.’
‘진짜라면… 인생 바뀌는 거 아냐?’
‘라오네트의 후계자라고?’
‘야, 그 신입 법무팀 정민영씨, 혹시…’
민영의 심장이 그 기억만으로도 살짝 조여드는 듯했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보면 그 순간 들킬 것만 같았다.
자신이 그들이 입에 올리는 ‘그 딸’이라는 사실을.
정 회장이 딸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정보를 숨겨왔는지
민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모든 사람 앞에서
갑자기 이토록 큰 ‘제안’을 할 줄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버지의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일까.
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민영의 눈가가 얇게 젖었다.
그러나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바로 그때였다.
복도 끝, 볼룸에서부터 들려오는 낮은 말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산.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도
그의 눈빛은 단정한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타고난 관찰자, 모든 것을 분석하려 드는 남자.
그는 복도에 서 있는 최강을 먼저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보안팀…?
그럼 저쪽 끝에 있는 사람은….
그의 시야 끝에 민영의 실루엣이 작게 걸려 있었다.
강산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는 단순한 호기심만이 아니었다.
정 회장의 말… 그리고 사라지듯 나간 여자…
법무팀 신입 정민영….
조각이 하나로 모여가는 순간이었다.
최강은 복도에 들어서는 강산을 발견하자
조용히 몸의 중심을 바로 세웠다.
경호 인력의 ‘각성’은
공격성 대신 중립적 긴장으로 표현됐다.
“직원분이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고 정제되어 있었다.
강산은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정돈된 얼굴이었다.
“네. 관리팀 강산입니다.”
“행사장은 저쪽입니다.”
최강은 짧게 방향을 가리켰다.
말투는 예의 바르지만
‘더 이상 접근시키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이 분명했다.
그러나 강산은 그 선 위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듯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 네. 행사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바람 좀 쐬려고요.”
그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민영이 있는 창가 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최강은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았다.
“…저쪽은 직원 분들이 쉬는 공간입니다.”
최강은 고요하게 단서를 붙였다.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다.”
강산의 미소가 아주 얇게 변했다.
“아… 그렇군요.”
그는 한 번 더 민영 쪽을 흘깃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반발심을 감춘 표정을 띠었다.
보안팀이… 굳이 저렇게 말릴 필요가 있을까?
그럼 더더욱…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지네.
강산의 눈빛 속에는 계산과 호기심이
고요하게 번지고 있었다.
민영은 두 남자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눈치챘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무언가 쓸데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에
급히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괜찮아요.”
그녀의 말은 너무 갑작스럽게 복도에 튀어나왔다.
최강과 강산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민영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아, 저는… 그냥 잠깐 좀… 생각 정리하려고 나왔던 거예요.
조금만 아니, 이젠 괜찮아요.”
말꼬리가 자꾸 꼬였지만
지금은 두 시선 사이에 서 있는 상황이 더 민망했다.
강산이 먼저 부드럽게 걸음을 옮겼다.
“정민영씨었군요.
저, 관리팀 강산이라고 합니다.
아까 행사장에서 살짝 뵈었죠?”
그는 마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미묘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걸
최강은 단번에 읽어냈다.
민영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예… 강 과장님… 맞죠?”
“오,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강산은 미소를 띠었지만
그 미소의 방향은 민영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강산은 조용히 최강을 흘겨보았다.
이 경호팀 직원… 정민영씨를 왜 이렇게 가까이서 지키고 있지?
그냥 신입 사원 하나 때문에 저 정도 태세를 갖추진 않을 텐데….
의심은 그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씨앗이 되었다.
민영은 두 남자 사이의 공기를 느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분, 저는 이제 그냥… 다시 들어갈게요.”
최강은 아주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가시죠. 앞쪽은 안전합니다.”
그 말은 일반적인 안내였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당신을 책임지겠다’는
조용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강산은 그 말투를 듣고
조용히 눈썹을 아주 약하게 찌푸렸다.
저건… 그냥 보안팀 직원의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 표정을
순식간에 다시 미소로 덮었다.
“정 민영씨, 연회장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혹시 자리 힘들면 저쪽에
괜찮은 공간 많이 있으니까요.”
그의 말은 어투로만 보면 친절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미묘하게 ‘접근’을 시도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민영은 예의상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강산은 마지막으로
최강과 아주 짧은 눈맞춤을 하고
볼룸 쪽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묘한 흥미와 계산이 섞여 있었다.
새로운 퍼즐 조각을 주운 사람의 걸음이었다.
강산이 사라지고 복도가 다시 조용해졌을 때,
민영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복잡한 하루가 된 거죠.”
그녀가 읊조리듯 말하자 최강은 아주 잠시,
정말 잠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풀었다.
그는 대답 대신 부드럽게 말했다.
“돌아가시죠. 차가운 곳에 오래 계시면 감기 듭니다.”
그 말은 평범하고 단단했다.
그렇지만 민영의 가슴 한쪽에서는
조용한 무언가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볼룸으로 돌아가는 복도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뒤를 동일한 속도로
조용히 따라오는 발소리.
최강.
그 발소리는 어쩐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민영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자꾸 흔들릴 것 같아서.
볼룸 문 앞에 다다르자 내부의 소란한 열기가
복도 쪽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문을 열자, 새로운 소문이
벌써 연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회장의 딸 찾는 게임 시작이래.”
“벌써 후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던데?”
“정씨 성 가진 애들은 지금 난리 났다더라.”
“야, 10월 입사자 중엔 누구누구 있지?”
민영은 그 소리들을 모두 듣지 못한 척
조용히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속에서는
방금 복도에서 일어난 세 사람의 시선이
아직도 가늘게 겹쳐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밤 라오네트의 겨울은, 더 깊은 파동을 품고 있었다.
복도 끝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처럼 밝은 조명이 내려앉아 있었지만오늘 민영에게 그 길은 어딘가 깊고 조용한 숲속을 걷는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듯했다.그 어둠은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똑같이 쓰고,그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열어젖히고,그 이름을 빌려 회사 안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그 사실은 민영의 발끝을 한층 더 조심스럽고 떨리게 만들었다.최강은 민영을 한 발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그의 등은 하나의 벽처럼 단단했고,민영은 그 뒤를 따르는 동안 자꾸만 심장이 가벼운 떨림과 무거운 압박 사이에서 흔들렸다.“…대리님.”그녀가 조심스레 불렀다.최강은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말씀하십시오.”“…저… 정말… 저 때문인가요? 제가 뭘 잘못해서…”그 말은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만이 내뱉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저항 같은 목소리였다.최강은 걸음을 멈추었다.민영도 함께 멈춰섰다.그가 고개를 돌려 민영을 바라본 순간,민영은 그의 눈빛 속에서 폭풍 같은 경계심과 말하지 못한 마음의 미묘한 온도를 동시에 느꼈다.“정 사원. 이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그 말이 너무 단단해서 민영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었다.“당신을 노린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을.”그 말은 민영의 심장을 서서히 조여오던 비명을 조용히 풀어내는 듯했다.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 큰 공포를 느꼈다.“…누가… 그런 짓을…”“그걸 밝히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법무팀 빈 회의실.문도 닫지 못한 채 나연은 홀로 앉아 있었다.손끝이 떨려 물병마저 제대로 잡지 못했고,목으로 삼킨 물은 식도에서 거칠게 내려가는 느낌만 남겼다.‘이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지,혹은 이 모든 걸 털어놓고 비난을 견딜 수 있는지 생각하려 했지만,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경쟁사에서의 메시지였다.
전사 보안등급 B로 상향된 이후 라오네트 본사 건물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엘리베이터는 더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고,직원들의 대화는 평소보다 낮아졌으며,모두가 무언가 ‘말하지 않은 진실’을 감지하는 듯한 하루.그 중심에서 민영은 자신의 이름이 계속해서 모니터 화면에 떠오르는 장면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왜…왜 자꾸 제 이름이…그녀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공포와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법무팀 긴급 소집“정민영 씨. 이쪽으로 와주세요.”팀장 박지현이 급히 민영을 불렀다.법무팀 회의실. 전원이 모인 자리에 이미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민영이 문을 열자 여러 시선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그 시선들 속엔 걱정, 동정, 불신, 혼란 등 서로 다른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앉아요, 민영 씨.”민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회색 조명 아래서 그녀의 긴 속눈썹이 떨리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만큼 선명했다.팀장이 말을 꺼냈다.“정민영 씨 계정에서 몇 분 전 또 외부 접근 시도가 있었습니다.그 중 한 번은 거의 실시간으로 내부 파일을 열려고 시도했어요.”민영은 숨을 놓쳤다.“…방금이요?”“네. 그래서 지금 더 이상 정 민영 씨 개인 문제로 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회의실 분위기는 민영의 심장 박동만큼 빠르게 굳어가고 있었다.“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보안팀과 법무팀이 합동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똑~회의실 벽면 모니터가 갑자기 켜졌다.[실시간 경고]ID: Legal-23내부 문서 ‘계약 4-17’ 열람 시도사용자 위치: 불명접속 중…민영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저… 저 지금 아무것도 안 했어요…”그 말이 겁에 찬 속삭임처럼 새어 나왔다.그러자 박 팀장이 바로 말했다.“우리가 압니다. 그래서 지금 그게 더 문제예요.”민영은 자신이 발화하지 않은 말들이자기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처음 보았다.‘나는… 누군가의 손에 잡혀서 움직이고 있는 걸
법무팀의 공기는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마치 사람들 사이의 거리마다 투명한 장막이 내려앉아 시간마저 조용히 주저앉은 듯한 분위기.그리고 그 장막의 중심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강산. 그리고 유나연.나연은 민영의 책상 앞에서 아직 손을 완전히 내리지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마치 그 손끝이 자신의 모든 잘못을 증명하는 증거라도 되는 듯 움직일 수 없었다.“…강…산 대리님…”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가늘고자신도 듣기 어려울 만큼 떨려 있었다. 강산은 그 떨림을 정확히 들었다.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오히려 조용히, 너무나 조용히 말을 꺼냈다.“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정민영 사원 자리에서.”질문은 짧았지만 그 뒤에 붙은 수많은 의심과 분석은 이미 그의 계산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나연은 손에 쥔 작은 USB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손바닥 안에 감추었다.“…아… 그냥… 정민영 씨 서류… 어제 좀 떨어뜨렸길래… 대신 정리해주려고…”거짓말.본인도 믿지 못하는 얇고 삐걱거리는 이유였다.강산은 그 거짓의 결을 한 번에 읽었다.그의 시선이 나연의 손끝으로 천천히 이동했다.“손을… 책상 위로 잠시 올려주시겠습니까.”“…네?”“부탁드립니다.”그 말투는 유난히 공손했지만 그 공손함이 더 무서웠다.나연은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을 올리려 했지만그때. 문이 열렸다.“나연 씨. 뭐 하세요?”문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목소리. 민영이었다.민영은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오는 길이었다.그리고, 자신의 자리 앞에서 강산과 나연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두 분… 무슨 일이에요?”민영의 눈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제 저녁부터 이어진 불안의 잔향이 담겨 있었다.그 잔향은 아주 조용한 공기 속에서도 늘 민영을 흔들어놓았다.‘또… 내 자리에서…’강산은 민영의 출현을 예상했던 듯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정 사원님, 좋은
본사 18층 복도에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그 침묵 자체가 사람들을 조용히 긴장시키는 듯한 순간.민영은 최강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그의 걸음은 빠르게 서두르지 않았지만한 걸음 한 걸음마다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단단히 묻어 있었다.민영은 그가 반 발짝 앞서 걷는 등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속으로 이렇게 중얼렀다.‘이 모든 게… 정말 나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그 두 문장은 서로 다른 감정이었지만 결국 같은 무게로 민영의 가슴을 눌렀다.나연은 엉겁결에 강산의 뒤를 따라 보안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발걸음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고 말을 하려 해도 목 안쪽이 마르는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저… 정말… 오해하시는 것 같아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강산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해라면 금방 풀 수 있습니다.”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투명한 검처럼 그녀의 마음을 베는 말이었다.‘오해면 금방 풀릴 것이다… 그러면… 내가 오해가 아니라는 건…’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자신의 휴대폰이 손 안에서 희미하게 진동했다.작고 은밀한 진동.나연은 몰래 화면을 살짝 확인했다.[익명]Step 6.내부 보안 강화 예상됨.상황 악화 시 ‘다른 대상’ 활용 가능.보고 바람.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연의 눈동자는 절망과 혼란으로 크게 흔들렸다.‘다른 대상…? 그게 뭐야… 정민영 씨 말하는 거야? 아니면… 나?’휴대폰을 움켜쥐는 손에 미세한 땀이 스며들었다.그녀는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와중에도 자신을 무너뜨리는 문장을 깨닫고 있었다.‘이제… 내가 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나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뜻…’그 생각은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공허를 만들었다.최강과 민영은 보안팀 복도 끝에 도착했다.문 앞에서 최강은 멈춰 서서 민영을 돌아보았다.그의 표정에는 싸
다음 날 아침의 라오네트는 눈부신 겨울 햇빛과는 다르게 공기 속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평소와 같은 출근 풍경,평소와 같은 인사,평소와 같은 복도 소리.그러나 민영은 그 익숙함이 더는 편안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사원증을 찍고 18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영은 조용히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어제… 정확히 무엇이… 시작된 걸까…’그 감각은 과장된 공포가 아니라 현실이 그녀를 향해 조용히 틈을 벌리며 다가오는 ‘전조’에 가까웠다.사무실 문을 열자 여느 때처럼 직원들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민영을 스칠 때 아주 잠시 멈추었다.어제 민영의 계정이 잠금 조치를 당했고보안팀으로 긴급 호출됐다는 소문은 벌써 팀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정민영 씨… 어제 괜찮았어요?”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업무 파트의 대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민영은 어깨를 가볍게 굳히며 미소 지었다.“…네. 보안팀에서 확인해주셨어요. 문제는 제가 아니라… 시스템 쪽이라고…”그 말은 정확한 사실이었지만 그 말투에는 자신도 모르게 얇은 흔들림이 스며 있었다.그 흔들림을 바로 옆자리에서 느낀 사람이 있었다.유나연.나연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민영의 목소리 끝을 귀로 분석하듯 훑었다.‘흔들렸어. 확실히 흔들렸어. 그렇다면…’나연은 책상 아래에서 몰래 휴대폰을 쥐었다. 그 순간 화면이 즉시 켜졌다.[익명]Step 5.기존 경로 차단.새로운 접근 필요.가능 여부 회신 바람.나연은 손끝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또…? 이대로면… 나… 정말로…’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민영도, 최강도 나연의 깊은 동요를 보지 못했다.오전 9시 40분. 보안팀.강산은 어제 새벽부터 이어진 패킷 자료를 밤새 정리한 보고서로 묶어 다시 시스템에 돌려보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정리된 40여 개의 접속 로그.그리고, 그 중 17개가 정민영 계정으로 향한 이상 접근이었다.“……이건 이제 우연이 아니군요.”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의 라오네트는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운 공기로 직원들을 맞이했다.복도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와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의 인사 나눔은언뜻 보면 평온했지만,그 속에서 민영이 느끼는 결은 확실히 달랐다.민영은 어제 밤의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채사원증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왔다.책상에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민영의 모니터가 ‘툭’ 하고 켜졌다.그리고..[경고]사용자 계정: Legal-23자동 잠금 조치됨보안팀 문의 요망“…뭐…?”민영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가 잠시 하얘졌다.곧이어 옆자리 직원이 놀란 듯 말했다.“어, 정민영 씨. 로그인 안 되는데요?”그러자 다른 직원까지 고개를 들어 말했다.“법무팀 서버가… 일부 계정 잠금 걸렸다는 메시지 떴어요. 민영 씨 이름도 있던데?”순식간에 주변의 시선들이 민영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민영의 손끝이 살짝 얼어붙었다.“…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그 말은 순간적으로 사무실 공기 안에 맴돌았다.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그 침묵은 어떤 말보다 더 무거웠다.‘…정말로 나를 노리는 누군가가…내 이름을 계속 쓰고 있어…’그때 법무팀 문이 열리며리더인 팀장이 급히 들어왔다.“정민영 씨!”민영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네…!”“보안팀에서 당신 계정 때문에 긴급 확인 요청 들어왔어요. 지금 당장 내려가야 합니다.”사무실 안의 시선이 민영을 향해 일제히 쏠렸다.누군가는 호기심을,누군가는 걱정을,누군가는 은근한 의심을 담은 눈으로.그리고, 나연은 그 순간만큼은 숨조차 고를 수 없었다.‘들켰어? 아니야… 아직… 아직 아니야…’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명백하게 떨리고 있었다.보안팀 – USB 최초 감지“정 사원님, 이쪽으로.”강산이 직접 문 앞에서 그녀를 맞았다.민영은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잘못은 아직 없습니다.”강산이 단정히 말했다.“그러나 누군가가 정 사원님의 계정을반복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건 사실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