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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폭군의 장군 황후: Chapter 1241 - Chapter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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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1화

북연의 새 황제는 간사한 계략에 휘말려 당황한 나머지, 즉시 문무백관을 소집해 적을 물리칠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 안팎은 원망의 목소리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황제가 직접 묻자,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황제는 분노를 터뜨렸다.“황제의 녹을 먹는 자라면, 당연히 황제의 근심을 덜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들을 거느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모두 물러가라!”대신들은 궁을 떠나며 서로 불만을 토로했다.“폐하께선 우리더러 대책을 내놓으라 하시지만, 지금 이 판국에 도대체 어떤 출구가 있다는 말이오?”“그렇소! 남제가 우리의 동부와 남부를 포위했고, 서여국은 서쪽에서 위협하고 있소. 북쪽은 험한 지형 탓에 돌파가 불가능하니, 우리는 이제 궁지에 몰린 짐승이 된 셈이오!”“이런 사태를 누가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오. 폐하께서는 간신을 믿고 충신을 죽이셨으며, 심지어 친형제까지 멸하셨소. 칠황자는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있었건만, 폐하께서는 그를 참혹하게 죽이셨지 않소!”칠황자를 떠올리자 군신들은 아쉬움에 잠겼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동산국상장군 원담은 조서를 받들고 입궁했다. 풍파에 시달린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고, 몇 살은 더 들어 보였다. 그는 준수한 용모에 은빛 갑옷을 걸치고 붉은 술이 달린 투구를 쓴 모습으로 위풍당당한 장수의 기개를 보였다.동산국 황제는 그를 보자마자 다급히 물었다.“남제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해야 하겠는가?”이전에는 남제 황제가 실종된 틈을 타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출병을 논의했었다. 그러나 원담은 신중하게 상황을 보아 지금이 동산국의 결정적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양측이 한 걸음씩 물러나자고 권하며, 직접 남제로 가 실상을 확인한 뒤에 판단하겠다고 했다.그는 공손히 예를 올리며,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신은 원래 계획대로 정예 병력을 기르며,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무슨 이유인가? 남제 황제의 실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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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2화

황궁.효현궁 안.녕비는 두 황자를 품에 안고 돌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방울 장난감이 들려 있었고, 그녀의 눈빛엔 친모는 아니지만 친모보다 더 깊은 자애가 담겨 있었다.그때, 한 궁녀가 다급히 뛰어들며 외쳤다.“마마! 마마!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돌아오셨습니다!”팟!녕비의 손에서 방울 장난감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의 얼굴에 머금어 있던 미소 또한 굳어졌다.그녀는 눈앞의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고, 이별의 슬픔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녕비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짧은 석 달 동안의 교류였지만, 그녀는 이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했고, 때로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정말 이 아이들을 내 아이로 삼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곧장 생각을 바꾸었다. 황제와 황후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남제의 국정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잠시라도 이 아이들을 품에 안았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녕비는 재빨리 감정을 다잡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은 채 지시를 내렸다.“옷을 갈아입혀라. 황자와 함께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를 맞이하러 가야지!”“예, 마마!”……자녕궁.태후 역시 황제와 황후가 귀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기쁨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있었다.불쌍한 녕비는 또다시 아이들과의 인연이 끊기게 되는 듯해 내심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옆에 있던 계 상궁이 말을 참지 못하고 나섰다.“태후 마마, 쌍둥이 황자에 관한 일은 궁중에서도 큰 금기이지 않사옵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이 점을 염려하실 테니, 차라리 두 황자를 따로 기르게 하시고, 그중 작은 황자를 녕비 마마의 슬하로 양자로 들이신다면...”태후는 즉시 나무랐다.“그 입 다물어라.”계 상궁이 요즘 부쩍 말이 많아진 듯했다.황제가 어떤 사람인데. 그는 황후보다도 고집이 센 인물이다. 만일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겼다면, 애초에 지금의 황후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겉으로는 무정하고 냉철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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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3화

황궁, 효현궁.소욱은 며칠동안 쌍둥이 아이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그러나 둘째 황자에게 ‘소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때문에, 봉구안은 다시금 그를 대놓고 무시했다.그녀는 첫째 황자를 품에 안고는 바로 눈을 흘기더니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녕비, 나와 함께 영화궁으로 가자.”“예, 황후 마마.”녕비는 황제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마치 어둠에 짙게 덮인 듯 침울했고,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소사? 이게 무슨 이름이람!훗날 누군가 둘째 황자에게 “이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둘째 황자가 뭐라고 답할까?‘처음 아바마마를 뵌 날, 아바마마의 품에서 오줌을 싸서, 아바마마께서 “잘 싸는구나” 하시며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라고?녕비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간신히 참았다.둘째 황자는 옷이 젖은 상태였기에, 유모가 그를 씻기러 데려갔다.봉구안은 첫째 황자를 안고 녕비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정말 고맙다.”녕비는 그런 인사에 깜짝 놀라 손을 저었다.“황후 마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첩의 본분… 신첩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옵니다. 결코 분수를 넘는 마음은 품은 적 없습니다.”첫째 황자는 몇 달 동안 생모와 떨어져 지냈지만,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봉구안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는 옹알거리며 그것을 입에 넣으려 했다.녕비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황자마마, 안 됩니다…”그러다 문득 멈췄다.이 아이들에게는 이미 친어머니가 있는데…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자격으로 말릴 수 있는가…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봉구안은 녕비의 그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예전의 녕비는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한 치의 허물도 용납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이렇게 조심스럽고 민감해졌는가.봉구안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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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4화

소욱이 실종된 후, 그의 형제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마다 기회를 노리며 움직였지만, 봉구안이 황자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오자, 그들의 야심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그 직후, 소동이 임시로 황위를 계승했다.형제들이 어찌 어린 후배가 자신들을 제치고 황좌에 오르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몰래 모의를 거듭했고, 결국 소동을 제거하고 자신들 중 누군가가 황제가 되려 했다.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소욱이 돌아온 것이다.그날 밤 낙심한 여러 왕들은 황성을 떠나며, 하늘조차 자신들에게 등을 돌렸다며 좌절했다.……그날 밤, 영화궁.소욱은 영화궁에 머물렀다.그는 어떻게든 아내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자고 싶었다. 하지만 작은 아들을 보는 순간, 낮에 있었던 '사건'이 떠올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결국 그는 작은 아들을 요람에 내려놓았다.“으앙…”아이는 내려놓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방금 전까지 어머니와 놀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떼어놓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봉구안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이를 다시 안아주세요.”소욱은 작은 아들의 속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안아도 울고, 안지 않아도 우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그래도 친자식인데, 달래는 것도 나쁘진 않지...소욱은 조심스레 아이를 안아 머리를 받쳐주었고,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그리 어렵지는 않군.”봉구안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두 아이 모두 유모가 재우고 있어요. 큰아이는 얌전하지만, 작은 아이는 까다로워서 항상 늦게까지 보채죠.”소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짐의 아들답군. 기력이 넘치니.”봉구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되물었다.“그런가요?”……하지만 한밤중.소욱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두 아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다른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는 봉구안을 안고 있었지만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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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5화

영화궁.궁녀들은 분주한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조용히 나누고 있었다.“어젯밤에도 황제 폐하께서 또 둘째 황자마마에게 변을 당하셨대요!”“아이고, 황자 마마니까 그렇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목이 날아갔을걸요.”“그런데 폐하께서는 화를 내시기는커녕 오히려 다시 태의를 불러 황자마마를 진찰하게 하셨대요.”“이것 좀 봐요, 황제 폐하께서 조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오셨잖아요. 정말 두 황자마마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 수 있어요.”……전각 안.소욱은 큰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고, 둘째 황자에게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낮의 ‘사건’ 때문이었다.하지만 이후, 둘째 황자가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재빨리 유모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몸이 이렇게 약해서야, 앞으로 어떻게 형을 도와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그의 목소리는 이내 엄한 부왕의 톤에서,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바뀌었다.“이 작은 얼굴 좀 봐라. 혈색도 없구나. 먹는 건 적고, 나오는 건 많으니… 이래서야 어찌 자라겠느냐?”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른 채, 다만 움직이는 입만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자기 주먹을 소욱의 입에 밀어 넣었다.“……”그 모습을 본 봉구안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아이들과 한참을 장난치고 놀다가, 소욱은 그들을 유모에게 맡기고 봉구안과 함께 정사를 나누기 시작했다.하지만 정작 다룰 정사라고 해봐야 별로 중요치 않은 이야기였다.“서왕이 아이를 갖고 싶다고 휴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넌 어찌 생각하느냐?”봉구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폐하께서 최근 서왕을 너무 혹사시키셨어요. 여러 번이나 감국을 맡겼잖아요. 특히 이번에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사람이 휴가를 원하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욱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봉구안은 반사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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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6화

서왕부.서왕이 목욕을 마치고 명정당으로 돌아왔을 때, 하인들이 다가와 전했다.“왕비 마마께서 저택을 나가셨습니다.”그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깊어졌다. 그는 곧바로 어둠 속에 대기 중이던 호위병을 불렀다.“전하,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갈십칠’이라는 자가 다시 왕비마마를 찾아왔습니다.”호위는 방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왕비가 나온 후 얼굴이 썩 좋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했다.서왕은 갈십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사람을 시켜 그를 잡아오도록 지시했다.갈십칠이 평소에 머무는 곳은 대략 파악되어 있었기에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서왕이 그를 마주하자, 갈십칠은 활짝 웃으며 외쳤다.“형부!”서왕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그는 억지로 눌러 참았다.“왕비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갈십칠은 해맑게 웃으며 천진난만한 말투로 대답했다.“형부, 사저께서 말씀 안 하셨나요? 저는 두 분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는 줄 알았는데요?”서왕의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졌고, 그 안에는 날 선 기운이 서려 있었다. 평소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뼛속 깊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냉기가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갈십칠은 그 미세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순한 듯해도, 서왕은 남제 황제의 잔혹함과는 결이 다른, 깊게 숨겨진 광기를 지닌 자였다.갈십칠은 더 이상 웃고만 있을 수 없다는 걸 느꼈고,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저는 사저에게… 사부님이 남제로 오신다고 알려주러 왔을 뿐입니다.”서왕은 완부옥의 배경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녀가 남강의 독왕에게서 사사받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스승은 남강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로, 국가 제사를 주관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그분이 남제에 오시는 이유가 뭐지? 제자들을 보러 오는 건가?” 서왕이 물었다.그러자 갈십칠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은 서왕의 무지를 조롱하는 듯한 냉소가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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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7화

봉구안은 서왕보다 완부옥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물론 그녀가 일부러 파헤친 것은 아니었다. 완부옥이 마치 대나무통에서 콩 쏟아지듯, 스스로 그녀에게 술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남강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남제 출신이었어요. 당시 남강은 혈통과 전통을 중시해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기시했죠. 그래서 두 분의 혼인은 사방에서 방해를 받았다고 해요.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저를 거두어 키운 분이 바로 지금의 사부님이세요.”“사부님은 문파를 세우신 분은 아니에요. 그저 ‘독왕’이라는 직책으로 황실을 위해 봉사하며, 제사와 독술의 전승을 맡았죠.”“독왕과 제자들은 모두 황실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했어요. 그리고 역대 독왕은 결국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했죠. 하늘과의 계약을 통해 황제의 건강과 나라의 풍요를 기원하는 희생이었어요.”소욱은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제물로 바친다는 건, 결국 자기 몸을 해치는 거 아닌가?”그는 이전에도 이런 관습에 대해 들은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봉구안은 담담히 덧붙였다.“전해지는 바로는, 독수에 몸을 담그며 점차 독에 면역이 되는 체질을 만들어 가는데, 결국엔 온몸이 썩기 시작한다고 해요.”소욱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그런 식의 면역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결국 황실을 위한 희생이군.”“맞아요. 하지만 실상은 황실 사람들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상징적인 행위일 뿐이죠.”이제야 소욱은 완부옥이 왜 독왕의 자리를 잇고 싶어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자신이라도 거부했을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말했다.“어쨌든 이건 두 사부와 제자 간의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완부옥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소욱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다.”그 순간, 궁녀가 다급히 뛰어들어왔다.“폐하, 마마! 둘째 황자님께서 계속 울고 계십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질 않으십니다!”봉구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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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8화

정원.붉은 비단옷을 입고 면사 모자를 쓴 여인이 정원 높은 곳에서 천천히 내려왔다.그녀의 얼굴은 면사에 가려져 있었지만, 주변의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눈빛 하나 발걸음 하나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살기는 보는 이들의 숨을 막히게 했다.완부옥은 단번에 그 존재가 자신의 사부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가 절을 올렸다.“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서왕 역시 분위기를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함께 인사를 올렸다.그러나 여인의 시선은 오직 완부옥에게만 고정돼 있었다.면사 너머로 느껴지는 차디찬 눈빛은 그녀를 꿰뚫고 있었다.“참으로 내 착한 제자구나.”그 말은 명백한 비꼼이었다.완부옥은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다. 평소엔 당차고 고고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사부 앞에서 순한 토끼처럼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사부가 서서히 다가오는 걸 보며, 완부옥은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 순간, 서왕이 그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이미 저와 결혼한 제 왕비입니다. 왕비의 거취는 저와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붉은 옷의 여인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냉담하게 물었다.“이 자객들, 네가 보낸 것이냐?”그녀가 손짓한 방향에는, 이미 내공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자객들이 있었다.서왕은 부정하지 않았다.“모두 제 단독 행동입니다. 왕비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여인은 싸늘하게 웃었다.“제법 결단력 있군.”그러고는 다시 완부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내 제자야. 너는 정말 몰랐느냐?”완부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사부님,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여인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부옥아, 너도 알다시피 이 사부는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결정해라. 네가 자진해서 나를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를 묶어 데려가야겠느냐?”완부옥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왜 하필 나인가…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부에게는 제자가 많다. 그런데 왜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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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9화

황궁.영화궁 내부.황후 봉구안은 직접 남강 사신을 접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오래전부터 완부옥의 사부인 유성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유성은 남강왕의 깊은 신임을 받는 인물로, 그녀의 문하에 적어도 백 명이 넘는 제자가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도 굳이 완부옥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의도가 석연치 않았다.유성이 영화궁에 들어섰을 때도, 여전히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얇은 천 너머로 황후가 앉아 있는 높은 자리를 바라보았다.진정한 사신을 만나는 자리라면, 왜 남제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인가?그녀는 이 접견이 단지 자신을 입궁시키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겉으로는 고요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날카로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봉구안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앉으시오.”유성은 앉기는 했지만 말없이 황후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봉구안은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나는 서왕비와 친구 사이입니다. 왕비의 요청을 받아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그러자 유성은 싸늘한 말투로 날을 세웠다.“친구라니요? 황후 마마께서는 배은망덕한 분 아니십니까?”궁녀 만추가 미간을 찌푸리자, 봉구안은 손짓으로 주변 궁녀들을 모두 물리쳤다.전각 안에는 둘만이 남았다.유성은 여유롭다는 듯이 비꼬며 말했다.“황후 마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사람들을 내보내신 겁니까? 사람들 몰래 하려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남제 황제께서는 마마와 완부옥 사이의 과거를 알고 계십니까?”“만약 그 사실을 아신다면, 마마께서 지금처럼 그 아이를 품으실 수 있을까요?”봉구안의 표정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저와 서왕비 사이는 그 어떤 의심도 없는, 맑고 깨끗한 관계입니다. 완부옥이 어디에 머물지는 그 자가 스스로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이제 그 자는 남제의 서왕비입니다. 누구든 그 자에게 억압을 가하려 한다면… 신중히 판단하셔야 할 것입니다.”유성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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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0화

오월 중하순, 북연에서 사신을 파견해 남제에 항서를 바쳤다.당시 소욱은 문무백관과 함께 북연 사신을 접견하였고, 그 위엄은 자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북연 사신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두 손으로 항서를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제발, 황제 폐하께서 넓은 아량으로 살펴 주시기를...”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남제가 북연을 용서하지 않으면, 북연의 수많은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망국의 노예가 될 수도 있었다.용좌에 앉은 황제 소욱은 차디찬 눈빛으로 물었다.“항서뿐인가.”사신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폐하께서 군사를 물려주신다면, 저희 왕께서는 반드시 황제 폐하의 큰 은혜를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그는 ‘우리 왕’이라 했지, ‘우리 황제’라 하지 않았다. 이는 북연 스스로 신분을 낮추고 항복 의사를 보였다는 뜻이었다.소욱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이야말로 듣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서늘해지게 만들었다.이윽고 그는 유사양을 보았고, 유사양은 곧 국서를 꺼내 북연 사신에게 건넸다.소욱은 군림하는 음성으로 말했다.“이걸 가져가라. 북연 황제가 직접 확인하도록. 짐은 그와 마주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사신은 순간 멍해졌다. 국서를 펼쳐 읽고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남제 황제는 단순히 북연의 항복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북연 황제가 친히 남제에 와서 국새를 바쳐야만 비로소 항복을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이건... 너무한 처사였다.그러나 사신은 결국 그 울분을 삼켜야만 했다.......영화궁.사신을 접견한 후, 소욱은 곧장 봉구안을 찾아왔다.궁녀가 말했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는 군영 시찰을 나가셨습니다.”최근 봉구안은 자주 성 외곽의 군영에 다녀왔다. 소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는 과거 비응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고, 별도로 만 명의 신병까지 맡겼다. 그러나 이후 여러 사건이 겹치며 훈련은 잠시 중단되었었다.이제 그녀가 다시 군권을 쥐고 훈련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간 많은 일을 겪은 탓에, 문무백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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