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381 - Chapter 390

510 Chapters

제381화

임서율은 모양새 없이 바닥에 거칠게 쓰러졌다. 하이힐을 신은 탓에 충격은 더 컸고 손목과 손등 뼈마디 곳곳이 까지고 긁혔다.양지우는 달려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막혀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지라 그저 속만 태우며 바라볼 뿐이었다.뒤쪽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하나같이 비아냥을 쏟아냈다.“꼴 좋다! 이게 바로 인과응보야. 회장님을 협박해서 유언장에 서명하게 만들고 임씨 가문 재산을 혼자 꿀꺽하려 했잖아.”“누가 민 건지는 몰라도 속 시원하네!”“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두꺼울 수가 있냐. 나 같으면 여기 남아 있는 것도 창피해서 못 하겠다.”“어서 꺼져라! 해성그룹은 널 환영하지 않아!”임서율은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천천히 몸을 지탱해 일어서려는 순간, 눈앞에 두 손이 불쑥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차주헌의 짙은 눈동자가 곧장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뭐라고 했어? 이런 건 내가 다 처리해 줄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서율아,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 안 나? 때로는 네 지나친 집착이 너한테 득이 안 된다고.”임서율의 눈빛은 다쳤음에도 여전히 맑고 단단했다.“차 대표, 신경 꺼.”차주헌의 가슴속 온기가 얼음물에 빠지듯 차갑게 식어갔다.“임서율,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그의 목소리는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한기 어린 날카로움이 번졌다.임서율의 완강한 태도는 해성그룹 직원들의 눈에도 거슬렸다.“정말 못 봐주겠네. 차 대표님이 과거 부부 인연까지 생각해서 손 내밀었는데, 저렇게 잘난 척하면서 뿌리치네.”“맞아! 진짜 해성그룹 주인이라도 된 줄 아나 봐.”그 순간, 임서율은 마치 모두에게 짓밟히는 기분이었다.사람들은 그녀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즐기는 듯했다.그녀는 온몸이 떨리도록 아팠지만 똑바로 허리를 펴고 일어섰고 맑은 눈동자에는 단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차주헌의 가슴속에서 불길 같은 분노가 치솟았다.“이런 상황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겠다고? 말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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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내가 뭐랬어? 갑자기 돌아온 데엔 분명히 꿍꿍이가 있다니까!”“다들 좀 생각해 봐. 5년 동안이나 종적도 없이 사라졌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와서는 병든 아버지 보러 왔다고? 그게 말이 돼?”“그 5년 동안은 왜 효도 한 번 안 했는데?”“그러니까 말이야. 가식적이긴. 살아계실 땐 곁에 있지도 않다가 이제 사람 숨이 끊어질 지경이 되니까 그제야 양아버지 생각이 난 거지. 정말 아버지를 보러 왔다면야 우리가 뭐라 하겠어?”“근데 결국 임씨 가문 재산 때문이라니!”임유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꼈다.“맞아, 언니. 아무리 그래도 아빠를 몰아붙여서 재산을 달라고 하면 안 되지.”“정말 돈이 필요했으면 우리한테 말하지, 예전에 한집에 살았던 정이 있는데 우리가 안 도와주겠어? 이렇게까지 일 크게 만들 필요 없잖아.”정설아 역시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숨이 넘어갈 듯 흐느꼈다.“그래, 서율아. 너 너무 매정하다. 네 아버지, 아프기 전에도 늘 널 걱정하셨잖아. 솔직히 지난 몇 년 동안 몸이 이렇게 망가진 것도 다 네 걱정 때문이었어.”“넌 5년 동안이나 사라졌지. 5년 전 네가 식물인간 상태였다는 걸 알고 아버지는 매일 네 곁에 지키지 못한 걸 미안해하셨어. 그래서 늘 가슴에 한이 있었는데, 누가 알았겠니 네가 이렇게...”임서율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원래라면 임유나와 정설아가 이렇게 모함해도 다른 방법으로 진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 차주헌이 어디서 주워 왔는지도 모를 황당한 영상을 내밀어, 임규한의 격한 반응만 가지고 마치 자신이 오래전부터 준비한 유언장에 서명을 강요한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었다.명백한 모함이었다.“영상 속에 있는 건 확실히 저랑 아빠지만 서명한 건 유언장이 아니라 아버지 명의의 기부 계약서예요. 게다가 영상엔 대화 소리조차 없잖아요. 이걸로 결론 내리는 건 너무 무리 아닌가요?”“그걸 굳이 들어봐야 알아? 네가 강요하지 않았으면 회장님이 그렇게 흥분했겠어?”주주 중 한 명이 비아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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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순간, 모든 시선이 회의실 문 쪽으로 쏠렸다.하도원은 맞춤 검은 수트에 하얀 셔츠 차림으로, 차갑고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각진 잘생긴 얼굴, 날카로운 눈매, 얇게 다문 입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하고 고고한 기운이 사람을 압도했다.그가 한 발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다.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차주헌이었고 그의 목소리 속에 미묘한 긴장기가 묻어났다.“하 대표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도원은 길고 뚜렷한 손가락으로 휴대를 굴리며 장난하듯 만지작거렸다. 밖에 있던 여직원들의 시선이 그의 손에 꽂혔는데 바라보는 눈빛이 별빛이 튀듯 반짝였다.“하 대표님 어떻게 저렇게 잘생길 수 있지?”“손만 봐도 눈이 호강한다니까.”“그러게, 그런데 위압감이 장난 아니야. 방금 들어올 때 그 아우라 봤어?”임서율의 눈빛이 잠시 멍해졌다.그가 여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도원은 원래 이런 시끄러운 자리에 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설령 옆에서 누가 싸움을 벌이더라도, 태연히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부류였으니까.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사람들을 스윽 훑어보더니, 회의실 의자를 끌어다 마치 주인처럼 앉았다.“나이 드니까 이런 구경도 해보고 싶어서 말이에요. 겸사겸사, 한 무리 사람들이 여자 한명을 어떻게 몰아붙이는지도 보려고요.”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하도원은 그야말로 기죽을 줄 모르는 사람, 한종서조차도 인정한 유일한 ‘배짱왕’이었다. 누구의 체면이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내뱉는 사람이었다.그가 이렇게 대놓고 진실을 꺼내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숨 죽인 듯 고요해졌다.하도원은 길게 뻗은 다리를 회의 테이블 위에 툭 올리고, 몸을 느슨하게 젖힌 채 의자에 기댔다.“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얘기 계속 하세요.”주주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이건...”“이제 뭘 더 말하냐고...”“대체 누가 불렀어?”“내가 어떻게 알아!”임유나는 하도원을 보자마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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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너, 예전엔 성운그룹의 그냥 작은 팀장 아니었나? 듣자 하니 5년 전엔 큰 사고도 쳤다던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해성그룹을 이끌겠어?”임서율은 입꼬리를 느릿하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차 대표가 진행하던 해외 프로젝트를 제가 해성그룹 쪽으로 따낸 건 인정해 주시려나 모르겠네요?”그 말을 듣자 하도원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는 정말 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었다.임서율의 말에 주주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설마, 차 대표가 줄곧 추진하던 그 해외 대형 프로젝트 말하는 건가?”“말도 안 돼. 해성그룹이 전에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잖아. 그 프로젝트는 원래부터 성사시키기 어려웠어.”“들었어? 그건 경쟁자가 엄청 많았대. 게다가 재호그룹 하 대표 쪽은 해외 프로젝트가 이미 포화 상태라 아니었으면 진작 그쪽으로 갔을 거라더군.”“맞아, 재호그룹 말고는 성운그룹 정도나 그 경쟁력이 있지. 그런데 성사 직전까지 갔다던데?”“에이, 저 여자 혼자 힘으로? 우리 해성그룹에서 지원 인력 하나 안 보냈는데, 어떻게 그걸 해냈다는 거야.”“그러니까. 그냥 자기 능력 과시하려고 허풍 떠는 거지.”임유나와 정설아가 눈빛을 주고받으며 임서율이 망신당하길 기다렸다.그때 하도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차 대표가 그 건을 날린 걸로 아는데요? 이유는 차 사모님의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이 났고 거기에 성운그룹 스캔들까지 겹쳐서 다수의 협력사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더군요.”다음 순간, 임서율은 사인된 계약서를 그대로 회의 테이블 위에 던졌다.“주주 여러분, 눈이 멀지 않았다면 읽으실 수 있겠죠.”주주들이 서둘러 계약서를 집어 들고 확인했다.“진짜네... 도장까지 다 찍혔어. 어떻게 우리만 몰랐지?”“그럼 이제 반년 실적 걱정은 없겠군. 이 해외 프로젝트는 완전 대박이지.”“잘 됐다. 회장님 입원으로 실적이 불안했는데, 이게 바로 단비네.”임서율은 이 변덕스러운 얼굴들을 보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여러분, 얼굴 바꾸는 솜씨가 국극 배우보다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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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경찰은 잠시 멈춰 섰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 굳어졌다.차주헌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복잡하고 무거운 시선으로 하도원을 바라보고 말했다.“하 대표님, 이건 임씨 가문의 집안일입니다. 외부 사람이 끼어드는 건 좀...”하도원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회의 테이블에 등을 기대었다. 그의 눈꼬리는 살짝 올라갔고 온몸에서 묵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는데 그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그럼 차 대표는 여기서 뭐 합니까? 전처랑 재결합이라도 하러 온 건가?”차주헌은 그 말에 한동안 말문이 막혔고 얼굴빛은 파랗다가 보랏빛으로 변했다.강수진이 조심스럽게 나섰다.“하 대표님이 임 사모님과 인연이 있는 건 알아요. 서율 씨를 돕고 싶으신 건 알겠지만 법적으로도 이미 정해진 일이에요. 서율 씨는 임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니, 원칙적으로 재산 상속 자격이 없어요.”“누가 서율 씨가 임씨 가문과 상관없다고 했죠?”하도원의 반문은 마치 벼락처럼 회의실 공기를 갈랐다.임유나가 더는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섰다.“하 대표님, 지금 장난하세요? 언니... 아니, 임서율은 저희 가문에 입양됐어요. 어떻게 친딸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되죠.”“그리고 정말 돈이 필요하다면 가족이었던 정은 있으니 우리도 도와줄 거예요.”하도원은 전화를 걸었다.“진 비서, 들어와.”곧 진승윤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한 서류를 하도원에게 건넸고 하도원은 한 손으로 봉투를 열고 안의 문서를 꺼냈다.“직접 보시죠.”멀리서 글씨는 또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임서율은 그 종이가 어딘가 낯익게 느껴졌다.사람들이 몰려와 확인하더니 회의실은 순식간에 술렁였다.“이게 뭐야, 설마...!”“이 문서 가짜 아냐? 말도 안 돼!”주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임유나와 정설아도 불안해졌다.임유나는 서둘러 앞으로 나와 서류를 집어 들었고 내용을 확인한 순간 얼굴빛이 확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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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하지만 그때 했던 친자 검사는 임유나 씨와 강 선생님 두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거였어요.”“회장님이 왜 이 많은 세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당신도 잘 알 거라 생각해요.”하도원이 무심한 듯,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정설아 쪽으로 시선을 흘겼다.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겠지만 임서율은 누구보다도 정설아를 잘 알고 있었다.겉으로는 대범한 척하며 임씨 집안의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달랐다.그녀는 일부러 임유나를 버릇없이 키우면서도 예의범절은 가르치지 않았다.덕분에 고급 연회 같은 자리에 나가면 어김없이 허점을 드러냈고 심지어 망신을 당하기 일쑤였다.그래서 지금껏 사교계의 아가씨들 사이에서는 임유나는 늘 뒷담화 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임서율의 손가락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움켜쥐며 하얗게 질렸다. 심장은 무언가에 세차게 얻어맞은 듯 쿵쿵거리며 아파왔다.순식간에 머릿속에 장면들이 영화처럼 흘러갔다.임규한이 왜 그녀가 할아버지에게 내쫓긴 뒤에도 여전히 자신을 아꼈는지. 왜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하루하루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걱정하며 마음의 병까지 앓게 되었는지.그리고 왜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끝내 유언장을 남기며, 혹여 자신이 세상에 없더라도 일부 재산을 그녀의 이름으로 기부하도록 했는지.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이 세상에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순간, 콧끝이 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달은 이상,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임유나와 정설아 같은 자들이 원하는 대로 두게 할 수는 없었다.임서율은 곧 등을 곧추세우며 앉았다.눈빛 속에 다시금 불빛 같은 기운이 떠올랐지만 그 시선은 전보다 훨씬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여러분, 만약 이 친자 검사가 가짜라고 생각한다면 전 언제든 아빠와 다시 검사할 수 있어요. 그리고...”임서율은 곧장 임유나 앞으로 걸어갔다.그 기세는 한 줄기 거센 바람처럼 임유나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게 압박했다.이유 없는 공포가 가슴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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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임유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하도원의 손을 붙잡았다.“안 돼요...”하도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애매하게 미소 짓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진실이 뭔지는 굳이 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겁니다.”방금 임유나가 보인 반응만으로도 모든 게 드러난 셈이었다.정설아는 무너질 듯한 심정으로 다가가, 철없게 굴기만 하는 딸을 붙잡으며 낮게 속삭였다.“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임유나는 이미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엄마, 하도원이 녹음까지 갖고 있어요. 그걸 틀어버리면 우린 끝장이에요!”정설아는 그녀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가 이내 놓아버렸다.“그렇다 해도 이렇게 허둥대면 어떻게 하니!”하도원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방 안을 훑었다.“이 유언장에 대해 아직 이견이 있다면 제가 직접 병상에 누워 계신 임 회장님을 모셔올까요?”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무게는 천근만근처럼 짓눌러왔다.누구든 감히 ‘네’ 하고 대답하는 순간, 어떤 화를 입을지 뻔히 알 수 있었다.순간, 방 안은 숨죽인 듯 고요해졌다.임서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서, 임규한이 미리 건네주었던 유언장을 꺼내 들며 차분히 말했다.“문제가 없다면 이 위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혹여 이의가 있다면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직접 말씀하셔도 되겠죠.”그 말은 분명했다.하도원이 방금 은근한 압박과 함께 남긴 경고는 정설아와 임유나에게 더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였다. 아니면 곧 누군가가 직접 그 대가를 치르게 할 터였다.결국 두 사람은 꼼짝도 못 한 채, 다른 주주들이 차례대로 유언장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잠시 후, 임서율은 서류를 들고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리고 펜과 문서를 내밀며 낮게, 그러나 분명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이 예전에 한 짓들이 감춰질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그건 나중에 하나하나 따져볼 거니까.”그 말에 임유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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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이제야 기억이 났다.병원에서 나올 때 임규한이 직접 써둔 유언장만 챙겼을 뿐, 이 종이는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그제야 왜 임규한이 ‘아마 이게 너에게 도움이 될 거다’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회의가 끝난 뒤, 임서율은 양지우와 곧장 자리를 떠났고 하도원은 함께 나가지 않았다.아직도 그와 관련한 소문이 무성한데, 괜히 같은 길로 나갔다가는 또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랐다.임서율 본인은 상관없지만 하도원이 불쾌해할 수 있었으니까.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자기 앞가림뿐, 괜한 문제는 하나라도 줄이는 게 나았다.엘리베이터 앞, 양지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임서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서율아, 오늘 진짜 멋졌어. 근데 너 다쳤잖아. 우리 집에 가자, 내가 상처 좀 소독해 줄게.”“괜찮아. 그냥 살짝 긁힌 거야.”임서율은 팔을 들어 상처를 흘끗 확인했는데 피가 조금 배어나온 정도였다.그녀는 원래 이런 데 호들갑을 떠는 성격이 아니었다. 죽을 고비도 넘겨 본 사람이 이런 일로 무너질 리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임서율이 물었다.“이사 언제 할 거야? 사람 불러서 같이 도와줄게.”“아냐, 괜찮아. 강수진이 벌써 열쇠도 줬어. 계약 끝날 때까진 그냥 거기 살다가 나가라고 했어. 서율아, 넌 항상 내가 힘들 때마다 도와주네.”임서율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웃었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 없어. 가자, 내가 밥 살게.”“원래 내가 사야 하는 건데...”양지우는 미안해 고개를 숙였다.둘은 택시를 잡으려다 발걸음을 멈췄다.“서율아.”임서율은 순간 몸을 굳혔다.차주헌이 빠르게 다가오며 감탄하듯 말했다.“청력 정말 다 나았구나.”청력 얘기만 안 했으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자, 임서율은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실망했어? 내가 평생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텐데.”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운이 나쁘게도 청력이 다 회복된 덕에 네가 강수진이랑 떠들어댔던 더러운 얘기까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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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나도 확실히 알지는 못해. 다만 그때 소문이 자자했지. 일부러 널 해치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증거가 없었고 게다가 네가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져버리니까 경찰도 네가 진짜 살해 당했는지 단정하지 못했어.”임서율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그러니까, 5년 전 내 실종에 대해 너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네. 그런데 모르는 척 하고 내가 남겨둔 이혼 협의서로 이미지나 세우고... 오히려 날 짓밟아서 네 결백을 입증하는 도구로 써먹었네? 차주헌, 너 참 역겹다.”그에게 임서율은 이제 기대조차 없었다. 남은 건 혐오뿐이었다.한때는 서로 사랑했고 숱한 난관을 뚫고 함께했던 사이였으나 돌아온 건 배신이었다.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남편이라는 인간은 뒷통수를 쳤던 것이다.차주헌은 얼굴을 찌푸리며 억지로 변명했다.“그땐 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네가 당시 상황을 몰라서 그래.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서율아, 하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보상할게. 다시 기회를 줘.”임서율은 어깨를 으쓱이며 냉소를 흘렸다.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입가에 걸린 웃음을 뚝 끊듯 지워냈다.목소리에는 얼음 같은 서늘함이 스며 있었다.“차주헌, 넌 왜 여전히 본성을 못 버리니? 예전엔 나랑 살면서 강수진을 마음에 두더니, 이제 강수진이랑 결혼하고 나니까 또 나한테 기웃거려?”“정말 딱 그 말이 맞네. 가진 건 시시해 보이고 가지지 못한 게 제일 좋아 보인다더니. 집에 있는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관심없고 밖에 있는 똥은 안 먹어봤으니 향기롭다 이거지?”“너...”차주헌은 순간 말문이 막히며 얼굴빛이 시커멓게 질렸다.“주헌아.”그때, 뒤에서 맑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강수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그녀는 차주헌 곁에 멈춰 서더니 그의 팔을 꼭 끼고 몸을 바짝 붙였다.“서율 씨, 오늘 정말 축하해요. 완전 대승리네요.”임서율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지만 목소리는 냉동고처럼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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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서율 씨, 타실래요?”임서율은 잠깐 멍해졌다. 그런데 뒤에서 볼이 빨갛게 상기된 강수진이 따라올 기세인 걸 보자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지금의 강수진과 차주헌은 적어도 하도원보다 훨씬 더 경계해야 할 존재였다.그녀는 양지우와 함께 차에 올라탔고 진승윤은 바로 시동을 걸어 차를 몰고 빠져나갔다.차가 멀어지는 걸 보자 강수진은 씩씩대며 발을 구르고 입술을 삐죽였다.“주헌아, 아까 서율 씨가 한 말 무슨 뜻이야? 설마 진짜 서율 씨랑 다시 잘해보려는 거 아니지?”차주헌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시큰둥한 태도로 말했다.“넌 구멍난 돈 걱정이나 해.”차주헌이 몸을 돌리자, 강수진은 깜짝 놀라듯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눈빛은 초조하게 흔들렸고, 목소리엔 다급함이 묻어났다. “주헌아, 설마 날 외면하려는 거야? 게다가 그 프로젝트들도 네가 동의한 거잖아!”“맞아, 내가 동의했지. 하지만 넌 분명 이 프로젝트들은 대박 날 거라 했잖아. 수진아, 내가 몇 년을 돈 대주면서 네가 프로젝트 제대로 배우라고 했는데, 배운 게 고작 이 모양이야?”“서율이는 배울 때 전부 자기 걸로 만들어서 핵심까지 다 가져갔어. 그런데 넌...”차주헌이 평소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건 단 한 번도 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강수진이 날려버린 그 돈은 사실상 마지막 동아줄이었다.억누른 끝에 간신히 이 정도로 화를 삭인 것이었는데, 강수진은 그것조차 버티지 못했다.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불쌍하게 그를 올려다봤다.“주헌아, 이번 일은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걱정하지 마. 설령 내가 밥 굶고 알바 전전해도 꼭 그 돈은 갚을게.”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강수진은 몸을 돌려 걸어가려 했다.차주헌은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결국 마음이 약해져 급히 뒤따라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나도 순간 흥분해서 그랬을 뿐이야, 다른 뜻은 없어. 됐어, 그 돈은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대신, 우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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