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391 - Chapter 400

510 Chapters

제391화

임서율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양지우와 진승윤을 번갈아 본 뒤, 다시금 확인하듯 물었다.“진심이에요?”“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거든요.”하도원은 팔꿈치를 괴고 턱을 받친 채 옆얼굴을 드러냈다. 매끈한 선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고 날카로운 인상마저도 지금은 나른한 기운에 덮여 있었다.양지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서율아, 노래를 왜 불러?”임서율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그게...”“임 팀장이 다섯 해 전에 저랑 계약을 하나 맺었는데 그때 저한테 진 큰 빚을 아직 못 갚았어요. 심지어 절 속이기까지 했죠. 이제 돌아왔으니 자기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하도원의 눈매가 가늘게 접히며 의자에 기댔다.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듯한 몸짓과 나른하면서도 묘하게 전류가 흐르는 듯한 목소리에는 대놓고 놀리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임서율은 얼굴이 벌게졌다.따지고 보면 그녀의 잘못이 맞았다.양지우는 하도원에게는 차마 묻지 못하고 임서율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서율아, 너랑 하 대표님 대체 무슨 사이야?”임서율은 조금 움찔하며 대답을 피했다.“이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그래? 그럼 노래해봐. 나도 네 노래 들어본 적 없으니까, 이번 승리 축하한다고 생각하자.”임서율은 더 이상 도망칠 길이 없었다. 계약서에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하도원이 요구하는 건 거절할 수 없다는 조항이.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하 대표님, 뭐 듣고 싶으세요?”“행운.”남자의 얇은 입술이 무심히 움직였다.“푸핫, 콜록콜록!”운전석 옆에서 물을 마시던 양지우가 그대로 사레 들려 심하게 기침했다. 임서율은 아직 병뚜껑도 못 열고 있었는데 말이다.양지우는 연신 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미안...”임서율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하 대표님이랑 오래 안 겪어봐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저 사람은 항상 상상도 못 할 만큼 촌스러운 노래만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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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진승윤이 하도원의 어머니를 언급했을 때 눈빛이 반짝였다.순간, 임서율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여인이길래 언급만 해도 무심결에 감탄이 흘러나올까.하도원만 봐도 남다른 외모에 기품이 넘치는데, 그 어머니라면 당연히 압도적인 미모와 기품을 지닌 사람이었을 것이다.잠시 후, 차는 청운각 앞에 멈췄다.임서율은 하도원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차를 얻어 탄 이상, 운전기사 취급하며 먼저 헤어지자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차가 완전히 멈추자 임서율은 예의 바르게 진승윤에게 인사했다.“진 비서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더 볼 일이 없으시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그러자 진승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서율 씨, 대표님께서 두 분도 함께 식사하시자고 하셨습니다.”양지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옆의 호화로운 건물을 올려다봤다. 청운각, 평생 바깥에서 구경만 했지 안에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던 곳이었다.흥분을 감추지 못한 양지우가 임서율의 팔을 덥석 잡았다.“서율아, 하 대표님 진짜 통 크시다!”임서율은 그런 친구의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렸다.“차라리 먹방 BJ 하는 게 낫겠다. 네 성격엔 딱이야.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니.”양지우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임서율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하도원이 도와준 것도 있으니, 이 식사는 그냥 그녀가 사는 셈 치자고.하지만 여긴 워낙 비싼 곳이었고 한 끼 값이 보통 사람 월급 여덟 달 치였다.그때 진승윤이 뒷좌석 문을 열며 하도원을 불렀다.잠에서 막 깬 듯한 그는 천천히 차에서 내려 두 팔을 크게 기지개처럼 뻗더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들어가죠.”그는 임서율 곁을 스치며 낮게 속삭였다.“노래가 너무 별로라 반도 못 듣고 잠들었어요.”임서율은 순간 굳어 섰다가 그의 뒷모습을 째려보며 입술을 삐죽였다.그녀가 음치인 건 맞지만 세상에 듣기 좋은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녀를 노래하게 해놓고는 듣기 싫다니.그 모습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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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임서율은 눈앞에서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아마 한종서라는 사람을 거의 잊고 살았을 것이다.처음엔 하도원만 보고 다가오던 그가 뜻밖에도 임서율까지 보게 된 것이다.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검은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젖히고 있었다. 헐렁하게 드러난 쇄골, 위로 도드라진 목젖, 매끈하고 날카로운 턱선, 투박하면서도 위태로운 매력이 그를 감쌌다.연기 너머로 보이는 그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장난스러웠다.“어, 이게 누구야. 5년 동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임서율 씨 아니신가? 안 보이는 사이에 성숙해지고 기품도 달라졌네.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어.”임서율의 얼굴은 싸늘했다. 5년 전에도 그를 상냥하게 대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잔 속의 차만 홀짝거릴 뿐, 단 한 번도 한종서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하도원 역시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를 공기인 것 마냥 무시했다.한종서는 그런 무시에도 개의치 않고 곧장 임서율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뺨 쪽으로 손을 뻗으며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임서율, 벌써 나를 다 잊은 거야? 우리 예전에 언덕 위에서 거의...”“아악!”말끝을 채 맺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하도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임서율이 그의 손목을 꺾어 제압한 것이다. 동작이 워낙 빠른 탓에 주변 사람들은 따라잡을 틈도 없었다.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뒤틀렸고 한종서의 얼굴은 금세 일그러졌다.임서율의 눈매는 한 치 흔들림도 없이 차갑고 서늘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통에 일그러진 그를 내려다봤다.“한종서, 아직도 내가 5년 전 말로만 해결하던 임서율일 거라 생각했어?”하도원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느긋하게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음, 맛 괜찮네.”한종서는 애써 버텨보려 했으나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임서율이 언제 이렇게 힘이 세진 건지 알 길이 없었다.게다가 하도원은 옆에서 태연하게 식사만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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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한종서는 마지막으로 하도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씩씩댔다.“하도원, 너 아주 잘났다! 기다려, 두고 보자!”하도원은 건성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나는 원래 잘났거든. 근데 너는 잘...”한종서는 이를 갈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다치지 않은 손을 거칠게 내저으며 씩씩거리다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식당 문을 거칠게 밀치고 나가버렸다.양지우는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며 임서율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구경하던 손님들까지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와, 저 여자 장난 아니던데? 아까 봤어? 진짜 멋있더라!”“한종서 내가 알지. 온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재벌 2세잖아. 웬만한 집안 자제들도 못 건드리는 인물인데, 워낙 집안 뒷배가 든든하니까.”“맞아 맞아.”“근데 아까 봤어? 손목을 탁 꺾는데, 눈 깜짝할 새에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라. 내가 당했으면 기절했을 걸.”“엄마, 저 언니 완전 멋있어! 나도 커서 태권도 배워서 나쁜 사람 혼내줄래!”“그래, 잘 생각했어. 엄마도 늘 말했잖아. 여자애는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안 그러면 위험할 때 우리가 곁에 없으면 어쩌겠니.”양지우는 그 말들을 들으며 또 한 번 임서율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서율아, 너 아까 진짜 멋있었어. 언제 그런 기술을 배운 거야?”“예전에 조금 배워뒀어.”예전 직장 동료 중 태권도를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게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지난번 한종서에게 위협당했던 기억이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땐 살려달라 빌기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다시는 그런 꼴을 겪고 싶지 않았다.“넌 정말 대단하다니까. 난 아까 숨이 멎는 줄 알았어.”임서율은 겁이 많은 양지우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낮게 말했다.“근데 지우야, 이런 상황에선 무서워하기만 해선 안 돼.”“응, 알겠어.”그때 하도원이 낮게 말을 보탰다.“오늘 한종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어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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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서빙하던 직원이 다가와 임서율을 옆으로 몰아내려 했다.“죄송하지만, 이쪽으로 좀 와주시겠어요?”임서율은 원래 시시콜콜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계산원의 뻣뻣하고 무례한 태도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다가와 손을 뻗으려는 직원을 보자 그녀는 단호하고 압박감 있는 목소리로 경고했다.“손대지 마요.”직원은 임서율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왠지 모르게 움찔하며 겁이 났다.결국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임서율은 곁눈질로 아까 그 불친절했던 계산원이 또다시 노골적으로 흘겨보는 걸 포착했다.가슴에 쌓여 있던 화가 더는 억눌러지지 않았고 그녀는 곧장 그 계산원과 따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손님,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수밖에 없어요!”직원은 임서율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녀의 단호하고 위압적인 기세에 기가 눌려 저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섰다.임서율은 곧장 계산원 앞까지 걸어갔다.“제가 거짓말한다고 우기고 싶으면 지금 당장 매니저를 불러요. 주방이랑 주문 내역 대조하면 되는 일 아닌가요?”하지만 계산원은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듯, 오히려 짜증을 내며 또다시 흘겨보았다.“분명히 말씀드렸죠? 저희는 절대 실수 안 해요. 괜히 억지 부려서 공짜밥 얻어먹으려는 거잖아요.”청운각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계산원은 임서율 같은 고객도 몇 번 본 듯, 못마땅하다는 듯 툭툭 내뱉었다.“아니, 왜 아직도 계산 안 해요? 저런 사람한테 왜 말 섞어요, 그냥 신고하지 그래요.”“맞아요, 저 여자 때문에 우리 시간 다 잡아먹네.”“손님, 공짜로 먹고 싶어도 핑계는 좀 그럴듯해야죠. 영수증만 봐도 알잖아요? 주문 자체가 고가 메뉴라, 애초에 공짜밥이 될 수가 없어요.”임서율은 다시 계산원을 똑바로 노려보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매니저 당장 불러와요.”계산원은 불쾌하다는 듯 또 눈을 흘기며 코웃음쳤다.“매니저님 바쁘세요. 돈도 없으면서 우리 가게에서 공짜밥 먹겠다고요? 간도 크네요.”그 순간 임서율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직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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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진승윤이 무심결에 벌떡 일어섰다.“무슨 일일까요? 어서 가봐요.”만약 임서율이 여기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했다면 돌아가 상사에게 혼쭐이 날 것이다.양지우도 진승윤을 따라 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때 임서율은 도문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당신이 여기 매니저죠? CCTV 좀 확인해 주세요. 분명히 서빙 나온 애들이 캐비어랑 호주산 랍스터는 안 가져다 줬는데, 우리가 먹고 발뺌한다고 우기고 있어요.”“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그 말에 방수지가 눈을 크게 뜨고 도문석을 바라봤다.“매니저님,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수지 씨, 이분이 누군지 알기나 해? 어떻게 감히 함부로 대하는 거야?”방수지는 멍해졌다.“그냥 밥 먹으러 온 손님 아니에요? 설마 무슨 대단한 재벌이라도 된다는 거예요?”이 와중에도 여전히 임서율을 얕잡아보는 눈빛이었다.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체면을 중시했다. 설령 음식 하나둘 잘못 나와도 괜히 따지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고 말지, 남들 앞에서 얼굴 구기진 않았다.도문석이 코웃음을 쳤다.“재벌보다도 더 대단한 분이셔.”방수지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 전에 주방에서 허겁지겁 한 사람이 달려 나왔다.“매니저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워낙 바쁜 데다 신입이 하나 들어왔는데, 그만 주문을 잘못 입력했습니다. 원래 다른 테이블 메뉴인데, 이 손님 테이블로 잘못 들어갔어요. 그 두 가지가 추가로 잘못 나간 겁니다.”“어떤 메뉴가 잘못 나갔어?”도문석이 바로 묻자 주방 직원이 솔직하게 답했다.“캐비어랑 호주산 랍스터입니다.”순간 방수지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었다.도문석은 단호하게 말했다.“수지 씨,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당장 손님께 사과드려.”방수지는 끝까지 버텼다.“그건 주방 잘못이지, 전 그냥 계산만 하는 사람인데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하지만 주방장은 곧장 임서율 앞에 서서 허리 숙였다.“손님, 오늘은 저희 주방의 잘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도문석도 거들었다.“진심 어린 사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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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그건 전 세계 한정판 블랙카드였다.방수지는 이 식당에서 오래 일했지만 실제로 블랙카드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이 카드는 단순히 돈만 많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권력과 배경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 심지어 차씨 가문조차도 가지지 못한 카드였다.눈앞의 이 여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블랙카드를 가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멍하니 굳어 있는 방수지를 향해, 임서율은 탁자 위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재촉했다.“계산 안 할 거예요?”방수지는 감히 계산을 진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만약 진짜로 결제라도 했다간 자신이 운성시에서 앞으로 버틸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순식간에 얼굴을 바꾼 그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임서율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책임감 없이 대처한 제 불찰입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보시다시피 저희 같은 알바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어요. 오늘은 특히 손님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고요...”하지만 임서율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그게 당신 일이잖아요. 일하다가 실수한 걸 손님한테 대신 감당하라는 건가요?”방수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말했다.“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하지만 손님처럼 돈 많으신 분이 꼭 저 같은 알바를 이렇게까지 곤란하게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한 번만 봐주시면 전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데...”임서율은 비웃듯 되물었다.“지금 그 말은 내가 당신 일자리를 빼앗아버렸다는 뜻인가요?”방수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스친 억울함과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멀찍이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진승윤이 고개를 돌려, 한참 전부터 구경만 하고 있던 하도원에게 물었다.“대표님, 언제 서율 씨한테 카드를 빌려주셨어요?”하도원은 눈길을 살짝 내리깔며 그를 흘겨봤다.“누가 내 카드라고 했지? 내 카드는 지금 내 손에 있는데.”진승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럼 그 카드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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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그녀는 그동안 임서율이 지난 5년을 단순히 상처를 치유하며 보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차주헌과 강수진이 남긴 상처가 워낙 깊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보니, 임서율이 지난 5년 동안 한 건 단순한 치유가 아니었다. 분명 또 다른 무언가를 겪고 돌아온 게 틀림없었다.하지만 임서율은 양지우에게 많은 얘기를 풀어놓지는 않았다.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는 건 양지우에게도 좋지 않으니까.“길에서 주운 거야.”“뭐라고? 너 운도 참 좋다. 그 카드가 얼마나 귀한 건데. 전 세계 한정판인데, 그거 잃어버린 사람은 발 동동 구르고 있을 거야.”양지우는 놀라면서도 곧이곧대로 믿었다.임서율은 태연히 둘러댔다.“돈이 워낙 많다 보니 카드가 여러 장 있겠지. 그러니까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거지 뭐.”“그렇긴 하죠. 전 세계 한정판 카드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릴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예요.”차 문에 기대 있던 하도원이 느긋하고 장난스러운 태도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임서율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도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눈빛이 너무도 깊고 강렬해, 정면으로 맞댈 용기는 나지 않았다.잠깐 스치듯 본 것만으로도 등에 소름이 돋는 듯 불편한 기운이 몰려왔다. 임서율은 그 기분을 떨치려는 듯 쿠폰 한 장을 꺼내 양지우에게 내밀었다.“이거 받아. 애들 방학하면 데리고 와서 한번 맛 좀 보게 해.”“서율아, 너...”양지우는 쿠폰을 받아들고 놀라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안 돼, 나 너한테 이미 너무 많은 걸 받았잖아. 더는 못 받아.”“괜찮아. 어차피 더 있으니까 안 쓰면 손해지.”임서율은 억지로 그녀 손에 쥐여줬다.잠시 후, 진승윤이 양지우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임서율도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나 다리를 뻗기도 전에 하도원이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어디 가요?”임서율은 순간 멈칫했다. 하도원에게 이렇게 붙잡힐 때마다 늘 병아리가 목덜미를 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조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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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임서율은 그가 성큼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어차피 제 카드도 아닌데 대표님이랑은 상관없잖아요?”의아했다. 하도원은 원래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관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하지만 그의 다음 말이 곧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하도원의 깊은 눈빛은 매서운 매처럼 날카로웠다.“당신이 보기엔 내가 정체도 불분명한 사람을 곁에 둘 것 같아요?”임서율의 눈이 번쩍였다.“그 말은 새로운 사람을 뽑으실 생각이라는 뜻인가요?”하도원의 시선이 그녀를 정면으로 꿰뚫었다.평소의 가볍고 나른한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감정 하나 묻어나지 않는 얼음 같은 눈빛이었다.“그렇게까지 나한테서 멀어지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임씨 집안은 원래 이용하고 나면 바로 버리는 습성이 있나?”임서율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그의 매서운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도망치듯 고개를 돌리자 하도원의 손이 곧장 그녀의 턱을 붙잡아 시선을 억지로 고정시켰다.“왜요? 찔리는 데라도 있어요?”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그의 눈은 끝없는 심연 같았다.그 순간, 임서율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그녀는 늘 생각해왔다. 지난 5년 동안 별의별 일을 겪었으니 이제 웬만한 남자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실제로 그녀가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자도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그래서 예전에 하도원 앞에서 느낀 두근거림도 단순히 자신이 차주헌의 아내였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얽히는 게 부담스러워서 생긴 착각이라고 여겼다.그런데 지금, 왜 여전히 이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면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걸까?임서율은 시선을 내리깔고 마음을 다잡았다.“아뇨. 제 정체가 불분명해 보이신다면 다른 분을 구하세요. 계약 위약금은 제가 책임질게요. 필요하시다면 후임자를 찾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나죠.”“난 당장 사람을 바꿀 생각 없어요. 그러니 당신도 그런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예요.”그 한마디에 임서율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5년 전에도 이해할 수 없던 남자였는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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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이제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미 끝났고 회사에서도 더는 그녀의 정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하도원이 마음만 먹으면 임서율의 신상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계약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라 괜히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거부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임서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 결국 수락 버튼을 눌렀다.곧바로 이체 알림이 떴다.금액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무려 이백만 원.“이 샴푸, 그렇게 비싼 건 아닌데요.”그 돈이면 샴푸를 열 병은 훨씬 넘게 살 수 있었다.“아, 그럼 알아서 다른 것도 사요. 세면도구 같은 거요.”하도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임서율은 그 말에 순간 긴장해 고개를 들었다.“저 앞으로도 계속 대표님 댁에서 지내야 하나요?”“내가 회의 때문에 새벽까지 붙잡히는 날도 있는데, 그때 서율 씨가 한밤중에 집까지 갈 거예요?”임서율은 솔직히 하도원의 집에서 머무는 게 내키지 않았다.남녀 단둘이라면 괜한 구설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차주헌은 아직 자신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고 오늘은 한종서까지 크게 당했으니 그 성격상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차를 한 대 사서 밤에는 제가 직접 운전해서 돌아가면 돼요.”하도원이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제법 큰 지출이네요?”임서율은 담담히 답했다.“어차피 아빠 병세 때문에 당분간 보살펴드려야 하니까, 저도 여기 꽤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차 하나쯤은 괜찮죠.”설령 나중에 자신이 쓰지 않더라도 양지우에게 주면 아이들 데리고 다니기 편할 것이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양지우의 일자리가 문제였다.차주헌이 그녀와 양지우가 한편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소문을 퍼뜨려 재취업까지 방해할 가능성도 컸다.하도원은 그 속사정을 금세 눈치챘는지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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