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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581 - Chapter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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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연경은 손기욱에게 긴 서신을 써서 보냈다. 대부분 그의 악몽에 관한 내용이었다.그녀는 재삼 그에게 세상에 믿기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혼례식 전이든 후든, 그의 신변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꿈에서 말한 8대죄가 전생의 그가 죽은 이유라면 그 근원을 없애 버리면 될 것이다.그녀는 손기욱에게 꿈을 통해 전생으로 가서 8대 죄명을 찾아내길 부탁했다.아현은 두툼한 서신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치풍 오라버니에게 들었는데 나으리는 매일 매향원에서 주무신다고 해요.”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이 없자,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나으리께서는 아씨가 남긴 쪽지를 매일 손에 내려놓지 않으신다고 해요. 상사병에 걸려서 자꾸 꿈을 꾸신 것 같다고요.”연경은 놀란 얼굴로 붓을 내려놓았다.“내가 그 많은 쪽지를 매향원에 숨겨두었는데 그걸 다 찾아냈단 말이야?”아현은 방긋 웃더니 말했다.“나으리께서는 첫번째 쪽지를 발견하신 이후로 방 안에 더 많은 쪽지가 있을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매향원 안팎을 다 뒤졌다네요.”연경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자업자득이지.”그녀는 진씨 저택에 도착하면 자주 그에게 서신을 보낼 기회가 없을 것을 우려했다. 신분이 들통날 것도 걱정되고 후작부로 서신이 도착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기에 떠나기 전에 그에게 쪽지를 남겨두었던 것이다.그런데 그의 그리움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연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신을 봉투에 넣은 후, 다시 붓을 들어 서신을 ㅡㅆ기 시작했다.“그걸 벌써 다 봤다면 왜 나에게는 말씀 한번 없으셨을까? 매화나무 아래에 묻어둔 술은 설마 다 마셔버린 건 아니겠지?”매향원에는 사방에 매화나무가 있었기에 그녀는 틈만 나면 매화주를 담가서 땅에 묻어두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제 마셔도 될 때였다.아현은 고개를 저었다.“나으리께서 술을 마신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요.”연경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그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쪽지가 있다는 거네. 내가 아주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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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둘째 부인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위씨 노부인은 한때 군주였었고 위씨 가문은 황상이었기에 노부인께서 젊었을 적에는 진정한 금지옥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분이 가르친 아이가 어디 부족한 데가 있을 리 없었다.둘째 부인은 반박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연경은 위씨 노부인이 둘째네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중재에 나섰다.“할머니, 저를 아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둘째 큰어머니와 예절 어멈에게 한번 검증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제 예의범절이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면 큰어머니도 안심하시지 않겠어요?”위씨 노부인도 그 말을 뱉고 나서 살짝 후회하고 있었다.진짜 진연은 과거 집안 다툼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몸이 몹시 허약했다. 노부인은 셋째 아들과 막내딸을 위해 덕을 쌓고자 그 어린 생명에게 손대고 싶지 않았기에 친히 곁에서 길렀다.진연 역시 순종적이고 예의 바른 아이였다.노부인은 연경이 지난 몇 년 간 고된 생활을 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다시 배워야 할 점이 많을까, 일시적인 감정이 앞서 며느리를 거절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되진 않았을까 걱정했다.연경의 말을 들은 노부인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둘째 부인은 연경이 스스로 자태를 숙이고 나오니 표정을 풀었다.“연이 네 말이 맞아.”어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있다가 둘째 부인의 눈짓을 보고 연경의 예의범절을 시험하기 시작했다.앉고 서고 걷는 것, 온갖 자태와 동작을 연경에게 하나씩 해보게 했다.연경은 이미 강씨 어멈에게서 정성 들인 가르침을 받았기에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그녀가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단정하고 대범하여 조금도 틀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둘째 부인은 그녀가 이 부분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지켜보니 비로소 진정한 귀족 규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이미 시집을 간 둘째 부인의 딸보다도 더 단정했다.여러 차례의 시험을 거친 후, 둘째 부인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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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화방 안에 긴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소연의 목소리였다.연경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순간에 그쳤다.그녀는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소저는 저와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요? 어찌 첫 만남부터 저를 죽으라 저주하시나요?”소연은 연경의 눈빛 속에 어리둥절함과 그녀가 하고 있는 차림새를 보고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그녀 곁의 아현과 아민이 가짜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연경을 모시던 사람들이었다.둘째 부인은 지부 부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보고 연경의 곁으로 다가왔다.“이분이 아마도 소씨 가문의 아씨겠지요? 역시 자태가 빼어나고 기품이 남다르시군요.”소씨 집안의 딸이 소연 한 명만 있는 건 아니어서 둘째 부인은 소연을 잘 알지 못했다.그저 소씨 가문의 서녀가 무안 후작의 첩실로 들어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눈앞의 사람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소연은 건성으로 미소 짓고는 담담히 물었다.“부인은 누구신가요?”둘째 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의 귀족 규수들은 이런 모임에 참여할 때, 얼굴을 모르는 부인을 만나도 공손히 예를 갖추고 사적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보는 법인데 면전에 대고 묻는 것은 실례이거나, 너무 오만하여 상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다.연경은 곧바로 둘째 부인의 불쾌함을 알아챘다.둘째 부인에게 자신은 내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녀는 즉시 나서서 말을 보탰다.“이 소저는 방금 전에 제 죽음을 저주하더니 이제는 제 큰어머니께 이런 무례를 범하시네요. 저희 진씨 집안이 소씨 집안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저희 큰어머니는 지부 대인의 정실 부인이십니다. 비록 진씨 집안이 승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늘 본분을 지키며 소씨 집안을 건드린 적은 없습니다.”안 그래도 둘째 부인은 한참 어린 후배에게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는데 연경이 대신 나서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화방에 오른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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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그리하여 소연은 평생 생과부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살짝 밀친 것뿐인데 연경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소연은 억울함이 사무쳤다. 그녀는 진심으로 눈앞의 진 소저가 연경이기를 바랐다. 연경이 살아만 있다면 억울함을 풀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그리하여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소연의 눈에는 연경만 보였다.“아씨, 진 소저를 그만 쳐다보세요. 소란이라도 생기면 금족에 처해질지도 몰라요.”숙희가 조심스럽게 귀띔했다.“이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똑같게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진 소저가 연 이랑과 너무 똑같게 생겼다는 생각이 안 들어?”소연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연경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숙희도 연경을 바라보았다.사실 그녀는 연 이랑의 용모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눈앞의 진 소저처럼 요염하고 아름다운 미인이었다는 것만 기억났다.숙희는 조심스레 말했다.“아씨, 잊으셨나요? 나으리께서 약수 위씨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소문이 온 경성에 퍼졌었잖아요. 진씨 가문 노부인이 위씨이고 진 소저는 한때 노부인의 약을 구하러 경성에 왔다가 나으리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해요. 연말 밤에 나으리와 함께 경성 나들이를 나갔던 분도 바로 저분이고요.”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진 소저와 약수 위씨를 같은 사람이라 보고 있었다.“그런데 사람이 저 정도로 닮을 수가 있나? 절대 그럴 리 없어!”소연은 쳐다볼수록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아씨, 고집 피우지 마세요. 눈앞의 저분은 진연, 진 소저이고 연 이랑은 이제 이 세상에 없어요.”소연은 울먹이는 숙희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왜 울고 그러니? 내가 뭘 했다고!”한편, 연경도 등골이 오싹했다.소연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화방은 이미 호수 중심에 도착했고 주변에서 서늘한 바람과 뭇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풍경이 이리도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곡조가 있다면 더 정취가 있겠네요?”누군가가 제안했다.양 지부의 막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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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소연은 꿈쩍도 않는 연경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진 소저는 위세가 대단하시네요. 이 정도로 안하무인이라니.”지부 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둘째 부인은 지부 부인이 연경의 오만함에 기분이 상한 줄 알고 연경의 등을 떠밀었다.“어서 가서 흥을 좀 돋우어 주지 않고 뭐 하느냐.”연경은 재차 작은 소리로 말했다.“할머니께선 건강이 안 좋으셔서 제게 가야금까지 가르칠 정력이 없으셨습니다. 제가 나가서 집안 망신을 시켜도 괜찮으시다면 나가겠습니다.”둘째 부인은 어제 약간의 마찰이 있어서 연경이 일부러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여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밖에서까지 나와 심통을 부리다니. 너는 후작 부인이 될 사람인데 어찌 이리 속 좁게 구느냐?”연경의 얼굴도 싸늘하게 굳었다. 그녀가 자신을 이렇게 생각한다면 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연경은 뭇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착하게 고금 앞으로 가서 앉았다.세월의 흔적이 녹아든 고금은 4대 고금 중 하나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연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대범하게 자리에 앉았다.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쏠렸다. 나와서 연주 자랑을 하려던 귀녀들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위씨 노부인이 전수한 아름다운 음색을 듣고 싶었지만 앞에서 너무 잘하면 이따가 자신들이 망신을 당할까 걱정했다.연경은 눈을 질끈 감고 어제 위씨 노부인이 직접 가르친 지법을 떠올렸다.소연은 연경의 모습을 보고 의심을 조금 거두었다.시종 출신인 연 이랑은 가야금 연주를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후작부에서 알아본 결과 연 이랑이 현을 뜯는 걸 들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녀도 매향원에 가보았지만 무안 후작이 그녀의 처소에 들여놓은 수많은 물건들 중에 유독 가야금만 없었다.소연은 연 이랑이 가야금 연주를 모른다고 확신했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아름답고 유순한 진연이 연주하는 소리가 이토록 형편없을 줄이야.마치 연주를 금방 배운 어린아이가 연주하는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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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연경을 압박하여 망신을 주려던 소연만 얼굴이 시뻘게져서 씩씩거리고 있었다.반면, 연경은 태연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여 규수들의 감탄을 받았다. 연경을 좋게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소연을 고깝게 보았고 그리하여 나들이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소연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화방에서 내린 후, 각 부저의 귀녀들은 지부 부인과 작별인사를 했다.지부 부인은 진 소저와 잘 지내라는 부군의 당부를 기억하고 일부러 연경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위씨 노부인께서 소저를 가르칠 여력이 없으시다면, 소저만 원한다면 내 부저로 오게. 내가 친히 가르치겠네.”연경의 형편없는 연주가 지부 부인의 치하를 받을 줄 생각지 못했던 둘째 부인이 다급히 말했다.“지부 부인의 연주 실력은 승주에서도 유명하시지요. 연아, 어서 부인께 감사하다 인사드리거라.”연경은 바로 감사인사를 하지 않았다.신선준 때문에 놀란 가슴이 이번에는 소연까지 나타났으니 더 이상 바깥에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매일 양 지부의 부저로 오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둘째 부인을 따라 살림을 배우는 게 나았다.연경은 조심스레 예를 행하며 말했다.“부인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시집을 가기 전에는 할머니 곁에 좀 더 있어드리고 싶습니다.”둘째 부인은 몰래 연경을 흘겨보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지부 부인에게 말했다.“연이는 어머니가 데리고 키운 아이라 어머니와 사이가 각별합니다.”지부 부인은 전혀 불쾌한 내색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연경에게 효성이 지극하다 칭찬하고는 자리를 떴다.소연은 맨 마지막으로 화방을 내렸다.그녀는 멀어지는 연경의 마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용모도 꼭 빼닮았는데 하필 연주를 못한다니.과연 우연일까?며칠 전 장군부로 돌아온 이후로 그녀는 계속 금족에 처해졌다가 오늘 겨우 외출할 기회를 얻었으니 조용히 지나갈 수 없었다.그녀는 평생 과부로 살 생각이 없었다.“숙희야, 사람을 시켜 진 소저에 관해 알아보거라. 무안 후작이 그렇게 연 이랑을 아꼈는데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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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신선준이 소연과 만남을 청한 일로 소씨 가문의 모두가 놀랐다.승주에서 신선준의 권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연은 소씨 가문의 서녀로, 신선준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그들은 대접을 태만할 수 없어, 곧바로 사람을 시켜 병풍을 치고 문을 모두 열은 후,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소연의 성격에 병풍까지 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신선준이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어르신들이 재삼 사고를 만들지 말라고 했기에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소연은 한참 지나도 상대가 말이 없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신 도령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신선준은 아직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없었기에 줄곧 둘째 형이 떠나기 전 만들어준 바퀴 의자를 타고 생활했다.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소씨 가문 셋째 아씨는 역시 듣던대로군. 일개 서녀가 이토록 건방진 말투라니.”신선준이 진연에게 혼담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을 소연도 알고 있었다. 찾아와서 손을 잡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나온 첫마디가 비아냥이라니!소연도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서녀면 또 어떤가요? 신국공은 명문세가인데 그 댁에서는 서출을 사람으로도 안 친답니까?”신선준은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네가 진 소저를 괴롭히려 했다지?”소연이 물었다.“왜요? 그 일 때문에 대신 혼내주려 찾아오셨습니까?”“그렇다면? 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괴롭히는 꼴을 못 봐.”신선준은 음침한 눈을 하고 병풍 뒤쪽을 노려보았다.‘너 따위가 뭐라고 감히 진연을 괴롭혀?’소연은 분노가 치밀었다.“무안 후작부의 부인이 될 사람입니다. 도령께선 무슨 자격으로 그 여인의 일에 나서시려는 거죠?”처음에는 신선준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는데 지금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꺼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그녀의 목적은 억울함을 씻는 것이었다. 만약 신선준이 이를 이용하여 무안 후작부를 공격한다면 그녀에게도 득이 될 게 없었다. 그녀는 아직 명의 상, 무안 후작의 첩실이고 무안 후작부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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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진씨 저택.이날 밤, 연경은 악몽을 꾸었다.손기욱에게는 아직 서신이 없고 그가 꿈에서 8대 죄명에 대해 알아내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다.연경은 시종들을 물리고 방 안에서 밤새 전생에 겪었던 기억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손유민과 그의 친우들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손기욱과 마주쳤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안 후작부 시종들이 뭐라고 수군댔는지, 애써 기억을 회상했다.그녀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늘 송지운에게 가로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감이 가장 고통스러웠다.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두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책상 위에 고개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그리고 그녀는 꿈을 꾸었다.전생에 처음 손유민이 그녀를 다른 사람의 노리개로 주었던 광경이었다.손유민은 그녀를 이끌고 저택을 나온 후, 밤새 바깥에서 보냈다. 금수원으로 돌아오니 송지운이 어젯밤의 경과를 보고하라고 압박했다.그날 송지운은 금수원의 돌바닥을 모조리 물로 씻으라고 명했다.그녀는 길을 따라 대문 앞까지 씻었다가 어멈들이 대문을 막고 있어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간 그녀는 아무곳이나 들어가서 눈을 좀 붙이려고 복도에 있는 편전 안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나으리, 신국공네가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셋째 도령은 진연 아씨를 지하실에 감금하였다고… 위씨 노부인께서 경성까지 찾아와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나으리께서는 상소를 제출하는 과정에 편의를 좀 줬다고 신씨 가문에서 직권남용으로 나으리를 탄핵하다니….”연경은 들려오는 욕설에 눈을 번쩍 떴다.시야에 거대한 인영이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에 큰 키의 무안 후작이었다.연경은 놀라서 꼼짝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이 일은 더 논의할 필요 없다. 신씨 가문에서 그런 식으로 신선준을 방치한다면 조만간 쇠락할 것이야. 유왕의 지하 저장고들은 모두 준비되었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거라.”“나으리, 안심하십시오. 왕야께서는 나으리의 호의를 절대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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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소리를 듣고 다가온 경춘이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아씨, 오늘은 어디 불편하십니까? 왜 잠을 이리 오래 주무셨어요?”연경은 아현에게 눈짓하여 책상 위에 놓인 초안을 치우게 하고는 물었다.“지금이 언제지?”“막 사시가 넘었습니다. 무안 후작부 강씨 어멈께서 예물을 보내오셨는데 아씨가 너무 곤하게 주무시길래 노부인께서 깨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연경이 물었다.“예물을 보내오셨으니 이제 날짜를 정하겠지?”길한 날짜를 정하는 일은 혼례식의 중요 절차였다. 손기욱이 말한 기한과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예, 추연에게 들었는데 강씨 어멈은 혼례를 앞당겼으면 하는 눈치더랍니다. 하지만 노부인은 많이 아쉬워하셨지요. 도련님들도 절대 안 된다고 누이를 시집보내는데 그리 급하게 서두를 게 없다고… 내년까지 기다리라 하셨습니다.”“내년?”연경은 대충 씻고 급하게 밖으로 향했다.경춘과 추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뒤를 뒤쫓았다.“아씨, 천천히 가세요. 뭐 그리 급하시다고요? 혹시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그러시나요?”연경이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위씨 노부인이 한씨 어멈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고 있었다.연경은 크게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강씨 어멈은 돌아가셨나요?”노부인이 답했다.“그래, 돌아갔어.”연경은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강씨 어멈이 혼례 날짜에 대해 언급하셨나요?”위씨 노부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얘기는 했지만 그쪽에서 요구한 날짜를 계산해 보면 한달밖에 안 되더구나. 너무 촉박하다 생각해 거절했지.”예전에 연경이 외손녀인 줄 몰랐을 때는, 단지 손기욱을 도와주는 것뿐이라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게다가 막내딸과는 아직 상봉도 못하지 않았는가.아쉬움이 너무 많이 쌓였는데 그렇게 서둘러 연경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연경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그럼 할머니께서는 언제가 좋다고 생각하세요?”위씨 노부인은 크게 실망한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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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연경은 작은 소리로 답했다.“당연히 나으리의 아이이지요.”그녀는 회임의 증상을 알지 못했다. 손기욱이 승주에 왔을 때도 합방을 했지만 강씨 어멈을 찾아가 피임탕을 받지 못했으니, 지금 생겼을 수도 있었다.“너… 이런… 고얀 놈! 무안 후작은 성인군자인 줄 알았건만!”노부인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겨우 되찾은 외손녀가 예쁘고 아깝기만 한데 혼례도 올리기 전에 무안 후작의 사람이 되었다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연경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할머니께서도 들으신 바가 있겠지만 무안 후작에게는 첩실이 둘 있어요. 사고로 죽은 그 첩실이 저예요. 저와 무안 후작은 진작부터 함께였지요. 이 세상에 나으리처럼 일개 첩을 정실로 만들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겠어요? 그분은 평생 저를 첩실의 자리에 두어도 되었을 것입니다.”노부인은 한참을 말을 못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예전에 풍족한 삶을 산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는데… 네 말을 들어보니 그분 잘못은 아니로구나.”연경은 노부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제가 부덕하다 생각되시면 할머니께서 화가 풀리실 때까지 때려주세요. 하지만 혼례식을 서둘러 달라는 제 부탁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그녀는 일부러 서툰 손길로 아랫배를 만지작거렸다.그 모습을 본 노부인은 그저 웃음이 나왔다.“본디 그분의 첩실인데 내가 왜 널 벌하겠느냐?”말을 마친 노인은 또 눈시울을 붉히더니 서둘러 연경을 일으켜세웠다.“회임한 어미가 무릎을 꿇고 있으면 쓰나? 다 내 잘못이다. 진작에 너와 네 어미를 알아보고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오늘의…”“할머니….”연경은 다가가서 노부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녀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후작부와 혼례를 마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만약 손기욱에게 죽음의 고비가 없다면 언제 혼례를 올리든 상관이 없겠지만 고난이 곧 시작될 시기에 혼자서만 이곳에서 향락을 누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돌아가서 그와 고난을 함께하기로 했다.위씨 노부인은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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