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1781 - 챕터 1790

1855 챕터

제1781화

“최근 국경 지역에 정체불명의 인원들이 월경한 흔적이 발견됐어. 감시랑 경계 태세가 평소보다 몇 배는 강화됐고 윗선에서도 바짝 주시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엄청 살벌해.”최수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혹시... 주시하고 있는 주요 인물이 두 명이야?”그녀는 최대한 담담하게 들리도록 애썼다.“엘리아스와 심종연?”뼛속까지 시린 한기를 품은 이름들이었으니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상대방의 호흡이 확연히 멎어 들더니 한층 더 심각해진 음성이 돌아왔다.“네가 그 두 사람을 어떻게 알아? 털어놓자면, 그 두 사람 얼마 전까지 국내에 있었어. 동선이 너무 교묘해서 우리가 한참을 추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대략 일주일 전쯤에 국내 흔적이 돌연 전부 사라졌어. 마치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최수빈의 숨결이 차갑게 굳어버렸다.“사라졌다고?”“어. 다방면의 단서들을 종합해 볼 때, 이미... 출국했을 가능성이 아주 커.”출국했다니...가볍게 흘러나온 한마디는 천 근 무게의 거대한 바위가 되어 최수빈의 심장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온몸의 피를 얼려버릴 듯한 충격을 주었다.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엘리아스는 인정사정없는 잔혹함으로 무장 기습을 일삼았고 심종연은 겉과 속이 다르게 사람을 포섭하여 음모를 꾸미는 데 도가 튼 자였다.주민혁과는 철천지원수이자, 이번 임무의 핵심인 항공 소재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그들이 국내에 머물며 주민혁의 숨통을 조이는 대신 이 결정적인 타이밍에 국경을 넘었다니 현지의 불안정한 정세, 조작된 실험 데이터, 잠복한 내부 스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포화까지... 조각나 있던 실마리들이 찰나의 순간 숨 막히게 투명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그들의 목적지는 십중팔구 그녀가 있는 이곳이었고 진짜 타깃은 주민혁을 향한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이 막대한 가치의 항공 소재를 탈취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주민혁은 이 모든 것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위험이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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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2화

그리고 왜 혼자 다니지 말라며 그토록 신신당부했는지, 그가 말하던 ‘아무 일 없다'는 말은 단 한 번도 진실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는 국경에서 전체 판세를 통제하며 엘리아스와 심종연의 흔적을 쫓느라 짓눌릴 듯한 압박감을 견디는 와중에도, 그녀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거짓말을 지어내며 그 모든 불안과 공포를 홀로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이토록 서로 알면서도 묵인하는 거짓말은 날 선 말다툼보다 훨씬 더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최수빈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눈가에 차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고 억지로 냉정을 되찾았다.흔들려서도, 허점을 보여서도 안 됐다. 그녀의 멘탈이 무너지는 순간 연구소 팀 전체가 흔들릴 것이고 실험 성과와 대원들의 안전마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의 거짓말을 들춰내거나 숨겨둔 진실을 따져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은밀히 떠보는 것뿐이었다. 그가 어디까지 태연하게 숨길 수 있는지, 포화가 가득한 천 리 길을 사이에 둔 이 관계가 언제까지 아슬아슬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말이다.그녀는 화면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지극히 평범한 일상 같은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오늘 업무는 순조로웠어요. 데이터도 거의 다 복구했고 내부 스파이 수색도 진전이 있으니 걱정 말아요. 그쪽은 어때요? 국경에 별일은 없고요?]전송 성공을 알리는 알림이 뜨자 최수빈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액정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그녀의 심장이 제멋대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기다렸다. 그가 또다시 거짓말로 진실을 덮어씌우기를. 고작 몇 분 뒤, 휴대폰이 징 하고 가볍게 울렸다.어김없이 찾아온 주민혁의 답장은 늘 그렇듯 지극히 평화로운 어조였다.[모두 정상이고 방어선도 굳건해.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 넌 그저 일에만 집중하고 네 몸만 잘 챙겨. 이쪽 일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아주 미세한 머뭇거림도, 단 한 군데의 빈틈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고요함이었다.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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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3화

“그자들이 거기 있으니까 내가 가야 하는 거야.”주민혁이 고개를 들었다.“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무력하게 기다리는 짓은 두 번 다시 못 하겠어. 통신이 끊길까 봐, 포탄이 떨어질까 봐, 수빈이가 덫에 걸려들까 봐 불안에 떨며 마냥 기다리는 건 이제 끝이야.”예전의 그라면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다릴 수 있었고 차가운 이성으로 모든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을 터였다.하지만 그날 밤, 신호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무자비한 안내음 앞에서 이성을 잃어버린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지휘실에 가만히 앉아 모니터와 위성 화면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게 되었다.반드시 제 눈으로 그녀의 안전을 확인해야 했고 그녀의 온기가 닿는 자리에 직접 서야만 했다. 머나먼 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대신, 이제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모든 위협을 온전히 막아내야 했다그날 밤, 그는 국경 간 공조 수사라는 합법적인 신분을 이용하여 길을 나섰다. 여러 경로를 거쳐 조용히 입국하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최수빈에게조차 그 어떤 연락도 남기지 않았다.그녀 앞에 예고 없이 나타나고 싶기도 했고 정말 그녀의 말대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한편, 임시 기지는 여전히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포격의 여파는 가시지 않았고 스파이의 정체 역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최수빈은 데이터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며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웠다.그녀는 여전히 주민혁과 매일 짧은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는 국경이 평화롭다 말했고, 그녀는 기지가 안전하다 답했다. 악의 없는 거짓말들의 향연 속에서 누구도 먼저 진실의 베일을 벗기지 않았다.다만 그녀는 간혹 어둠 속에서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가슴을 저미는 감정이 서운함인지 짙은 그리움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며 그저 그렇게 두 사람이 전장의 뿌연 포연을 사이에 둔 채 아련히 바라보는 상태로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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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4화

최수빈의 가슴이 찡하게 죄어들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며칠 동안 가슴을 옥죄던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의 난데없는 등장과 함께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지듯 씻겨 내려갔고 긴장했던 숨결마저 부드럽게 풀렸다.사무 구역에 있던 동료들이 하나둘 휴식을 취하러 자리를 비웠다.송미연은 육민성을 부축해 병실로 돌아갔고 지원팀장 임수철은 보안팀을 이끌고 외곽 순찰을 돌았다. 넓은 공간은 금세 고요해졌고 오직 최수빈과 주민혁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최수빈은 의자를 당겨 그를 앉히고는 몸을 돌려 따뜻한 물 한 잔을 받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오는 길 많이 힘들었죠?”최수빈이 나지막이 물었다.“괜찮아. 네가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하나도 안 힘들어.”주민혁은 컵을 건네받으며 손끝으로 컵 표면을 매만졌다.그의 시선은 온전히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간단한 그 한마디에 최수빈의 마음이 단번에 누그러졌다. 그동안의 모든 떠보기와 비밀, 말없이 오가던 밀고 당기기가 그가 직접 이 먼 곳까지 달려온 이 순간 전부 납득이 가는 듯했다.그녀는 그의 이전 거짓말을 당장 들춰내지 않고 조용히 맞은편에 앉았다.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고 오직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릴 뿐이었다.먼저 침묵을 깬 것은 주민혁이었다. 낮고 솔직한 목소리에는 평소의 거리감이나 절제가 걷히고 보기 드문 진지함이 묻어났다.“알아. 너도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다는 거.”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희미한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엘리아스와 심종연이 국경을 넘었어. 목적지는 네가 있는 이 나라야. 항공 소재들을 노리고 움직인 거지. 국경 수비를 몇 배나 강화하고 전면 봉쇄한 채 그놈들의 흔적을 쫓았지만 끝내 정확한 위치는 포착하지 못했어.”최수빈은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 그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지난번에 연락이 끊겼을 때, 나 거의 이성을 잃을 뻔했어.”그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울컥 움직였다. 목소리에는 뒤늦은 두려움이 깊게 배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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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5화

“진용휘가 대원들을 데리고 근처에 잠복하고 있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위험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역할만 하는 거지.”주민혁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애들이 알아서 선조치할 테니 넌 안심해도 돼.”“너무 과하게 대처하셨네요.”최수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온기를 느꼈다.“너한테는 아무리 넘치게 해도 과하지 않아.”남자의 거침없고 깊은 진심은 최수빈의 뺨을 발갛게 물들였고 며칠간 그녀를 짓누르던 피로와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이어 두 사람은 현재의 정세에 대해 면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엘리아스와 심종연이 어둠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고 내부의 스파이 역시 아직 밝혀지지 않아 기지는 여전히 위태로웠지만, 다행히 주민혁이 가져온 국외 정보들과 최수빈이 쥐고 있던 단서들이 맞춰지면서 스파이의 범위는 한층 좁아졌고 대응책 또한 명확해졌다.“앞으로 난 여기 남아서 임무가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기지를 지킬 거야.”주민혁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해.”하지만 최수빈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계속 여기 머무실 수는 없어요.”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율이가 아직 국내에 있잖아요. 본가에서 돌봐주고 계시지만 아이가 아직 어려서 부모 손길이 필요해요. 그리고 국경 일도 비워둘 수 없고요. 나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고 달려와 주셨는데, 더 이상 오래 지체하시면 안 돼요.”딸아이의 이름이 거론되자 주민혁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율이가 눈에 안 밟히는 건 아니었지만, 사지에 남겨진 최수빈에 비하면 걱정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걱정돼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여기 용휘 씨 대원들도 있고 추가 증원 병력에다 민성 선배와 미연이도 있으니까 전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선에 있어요.”최수빈은 그의 손을 꼭 쥐며 진지하게 설득했다.“내일 당장 돌아가세요. 거기서 율이를 지키고 후방을 받쳐주시는 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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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6화

곁에 누운 남자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고르게 숨을 쉬는 주민혁의 얼굴은 평소의 차갑고 단단한 기색이 걷히고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다.최수빈은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가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가느다란 손목이 붙잡혔다.주민혁이 눈을 뜨며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잠기운이 서린 눈동자로 낮게 잠긴 목소리를 냈다.“더 자지 않고 왜 벌써 일어나.”“시간 됐어요. 오늘 귀국해야 하잖아요.”최수빈이 차분하게 현실을 환기시켰다.귀국이라는 말에 주민혁의 정신이 맑아졌으나, 붙잡은 손아귀에는 오히려 힘이 들어갔다.“국내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다시 올게.”그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제품에 끌어안으며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몸조심하고 내가 다시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 율이랑 다 같이 모여야지.”“네.”최수빈은 그의 품에 기대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온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주민혁은 씻기 위해 일어났으며 최수빈은 아침을 준비하러 향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주민혁이 기지를 떠나려 할 때, 기지의 동료들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눈치껏 깊이 묻지 않은 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육민성을 부축하며 걸어오던 송미연은 최수빈의 눈가에 서린 다정함과 아쉬움을 알아차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마침내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직감하며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그렇게 주민혁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 순간, 송미연의 휴대폰이 찢어질 듯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발신인은 송미연의 어머니였다.송미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급히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설희애의 다급하고도 울음 섞인 목소리가 두서없이 쏟아졌다.“미연아, 큰일 났어. 회사 자금줄이 막히는 바람에 협력업체들이 전부 투자금을 회수해 갔단 말이야. 지금 당장 빚쟁이들이 들이닥쳐서 행패를 부리고 있어... 우리 집안은 이제 완전히 망했어...”“게다가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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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7화

옆에 서 있던 주민혁의 표정도 묵직하게 가라앉았다.송씨 가문이 돌연 재정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육씨 가문의 이러한 처사는 명백한 낙정하석이자 비정하고 의리 없는 짓이었다.그는 육민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옅은 인정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송씨 가문의 일은 내가 국내 사람들을 시켜 손을 써둘 테니, 재정 위기는 최대한 완화해 보도록 하세요. 육씨 가문 쪽에도 고개 숙일 필요 없습니다. 민성 씨 소신대로 밀고 나가시면 돼요.”최수빈 역시 황급히 다가가 송미연을 부축했다.“걱정 마. 미연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도울게.”송미연은 육민성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야속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든든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가문이 파산하고 이혼을 종용당하는 절망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곁을 지켜주는 이들의 굳건한 수호는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민혁은 원래 떠나려던 발걸음을 다시금 멈추어 섰다.송씨 가문이 무너지고 송미연의 마음이 무너진 데다 육민성의 부상도 완치되지 않아 기지 자체가 이미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인데 이런 변고까지 겹쳤으니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터였다. 그가 최수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나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최수빈이 깜짝 놀라 물었다.“하지만 율이는...”“율이는 봐줄 사람이 있으니 당분간은 안전해.”주민혁이 그녀의 손을 쥐었다.“지금은 여기가 내 손길이 더 필요해. 송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고 육씨 가문이 압박을 가해오는 데다 내부 스파이도 아직 못 잡았잖아. 적대 세력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당이니, 내가 여기 남아서 너랑 같이 이 모든 위기를 버텨낼게.”그는 원래 오늘 귀국하기로 그녀와 약속했으나, 갑작스러운 변고 앞에 결국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것 역시 본디 그녀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순간 홀로 발길을 돌릴 그가 아니었다.한편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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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8화

수화기 너머가 순간 정적에 휩싸이더니, 이내 전보다 훨씬 더 거센 분노가 터져 나왔다.“육민성, 네가 아주 미쳤구나! 지금 송씨 가문은 밑 빠진 독이야! 그런 아내를 둔다는 건 네 스스로 앞길을 망치는 짓이라고! 내 분명히 경고하는데, 이 혼인은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 끝내야 해! 육씨 가문은 그런 며느리를 들인 적도 없고, 송씨 가문의 난장판을 대신 수습해 줄 마음은 더더욱 없다!”“가문에서 인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제 아내로 인정했으니까요.”육민성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굳은 신념을 어조에 실었다.“저와 송미연은 부부예요.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언제든 내팽개쳐 버릴 수 있는 짐짝이 아니라고요. 처음 가짜 결혼으로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이후 제 마음이 움직인 것 또한 진실입니다. 아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손을 놓아버리는 짓 따위, 전 절대 못 해요.”“네 이놈...”“송씨 가문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육민성이 다시 한번 상대를 가로막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육씨 가문이 나설 필요도 없고 가문에서 그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결과는 저 혼자 감당하겠습니다.”“네가 감당해? 무슨 수로 감당하겠다는 게냐! 넌 지금 해외에 가 있고 쓸 수 있는 자원도 한정되어 있는데, 송씨 가문의 그 거대한 구멍이 네 말 한마디로 메워질 만한 곳인 줄 알아!”“제게 생각이 있습니다.”육민성의 어조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어쨌든 이혼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다시는 사람을 보내 설득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상대가 다시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어떠한 망설임도 없는 가차 없는 손놀림이었다.이내 몸을 돌려 소리 없이 눈물짓는 송미연을 향해 다가간 그의 눈가에 다정한 미소가 스쳤다. 그는 다시 그녀의 가녀린 손을 힘주어 잡았다.“들었지? 난 너랑 안 헤어져. 아무도 우릴 강요할 수 없어.”송미연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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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9화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기 때문에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최수빈과 주민혁은 이미 이국땅에서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의 보살핌과 비호를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짜 돈까지 내어주며 송씨 가문의 빚더미를 메워주겠다니, 그녀로서는 참으로 과분하고 염치없는 일이었다.주민혁은 단단히 굳어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화를 내지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았다.그저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것을 계산해 둔 것처럼 침착하게 입을 열 뿐이었다.“공짜로 받는 거라고 착각하지 말아요.”송미연이 눈을 치뜨며 혼란스러운 안광을 보냈다.“지금 당장 집에 전화해서 한마디만 전해요.”주민혁의 어조는 평온했으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서슬 퍼렇게 명확했다.“송씨 가문이 겪고 있는 지금의 모든 문제들을 미연 씨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세요. 채무 관계, 현금 수송, 투자 유치까지 단번에 정리해 주겠다고요.”송미연이 멍해졌다.“제가 어떻게...”“해결할 수 있어요.”주민혁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단, 조건이 하나 있어요.”그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 자 한 자 분명하게 힘주어 말했다.“리스크가 청산되는 즉시 송씨 가문의 기존 지분과 재산 중 정확히 절반을 미연 씨 명의로 양도받으세요. 그리고 앞으로 그 기업은 미연 씨가 직접 전권을 쥐고 경영하는 겁니다.”그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흠칫 놀랐다.최수빈은 깜짝 놀랐으나 이내 주민혁의 영리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찬성의 뜻을 담아 눈빛을 빛냈다.육민성 역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민혁을 바라보는 눈빛에 깊은 신뢰와 인정의 기색을 더했다.오직 송미연만은 영문을 모른 채 그저 멍청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왜요?”“이유 같은 건 없어요.”주민혁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정곡을 찔렀다.“송씨 가문이 이 지경까지 몰린 건, 경영자들의 무능과 실책, 그리고 잘못된 판단력 탓이 커요. 미연 씨가 그들의 구멍을 메워줘 봤자, 그들은 조만간 또다시 일을 망쳐놓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미연 씨의 도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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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0화

송미연은 가슴 터질 듯한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굽은 허리를 곧추세웠다.그녀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가고 연결되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거칠고 원망 섞인 고함이 들이쳤다.“왜 또 전화질이야! 육씨 가문에 사정이라도 해본 거야? 미연아, 헛수고하지 말고 제발 얌전히 이혼 도장부터 찍어...”송미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단 한 방울의 눈물도 고여 있지 않았고 입을 열어 흘려보낸 목소리는 더는 울먹이지도, 갈라지지도 않았다.“아빠, 내 말 똑바로 들으세요. 송씨 가문이 안고 있는 리스크, 내가 전부 청산할 수 있어요. 부채 상환, 자금 회전, 바이어 확보까지 모든 구멍을 내가 직접 메울 수 있다고요.”전화기 너머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대신 조건이 있어요.”송미연의 목소리 톤이 조금 더 높아졌다.“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송씨 가문 총자산의 정확히 절반을 내 명의로 넘기세요. 경영권 역시 내가 회수할 겁니다. 앞으로 모든 기업 의사결정은 내 손을 거쳐야 해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송씨 가문은 살려주겠지만, 싫다면 뭐, 이대로 망하는 겁니다.”그녀는 말을 잠시 멈췄다. 어조는 차분했으나 어딘가 단호한 구석이 있었다.“어쨌든 송씨 가문이 잘되든 말든, 내겐 애초부터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어요.”말을 끝마친 그녀는 상대방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단번에 끝낸 거침없는 몸짓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마치 천 근의 무게를 내려놓은 듯, 혹은 마침내 스스로의 인생을 되찾은 듯한 얼굴이었다.주민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잘하셨어요.”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국내 재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조는 간결하고 단호했다.“자금을 준비해 줘. 규모는 현재 송씨 가문의 자금 부족분으로 계산해서 지정된 계좌로 바로 입금하도록 해. 반나절 안에 반드시 송금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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