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의 모든 챕터: 챕터 1401 - 챕터 1410

1550 챕터

제1401화

연천능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 앉혔다.“백경패 일행을 손에 쥐고 있는데, 굳이 병든 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자가 당신에게 흑심을 품을까 봐 내가 너무 걱정했던 모양이야.”백진아가 그를 위로했다.“그자가 흑심을 품었든 아니든, 우선 사람부터 구해야 합니다. 사람만 구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요. 최악의 경우 사람을 구한 뒤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자가 죽더라도 나를 찾을 수는 없을 테니!”연천능의 눈동자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진아야,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느냐?”연천능의 표정이 진지하고 엄숙해지자 백진아도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말하세요.”연천능은 그녀의 손을 쥔 채 힘을 조금 더 주었다.“앞으로 우리가 의견이 엇갈리거나 다투고 화가 나더라도, 공간에 숨어 나오지 않는 일은 없다고 약속하거라!”“하하!”백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엄포를 놓았더니 당신부터 겁먹었네요.”연천능은 고집스럽게 말했다.“딴소리하지 말고 어서 약속하거라!”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약속하겠습니다. 원칙에 어긋나는 잘못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사과하고 해명할 기회를 줄게요.”연천능은 만족한 듯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얼굴을 마주 보고 따지거라. 마음속에 담아 두어 오해가 점점 깊어지게 만들지 말고.”백진아는 가슴 아팠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빛을 어둡게 했다.“예, 알았습니다.”연천능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진아야, 넌 내 보물이다. 너의 공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의 성취를 이루는 데 적어도 오륙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백진아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기꺼이 한 일이니까요. 하늘이 내게 공간이라는 능력을 준 건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황후의 자리를 주었기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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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2화

백진아의 어깨 아래로는 온통 시퍼런 멍 자국으로 가득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그녀는 연천능을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기봉궁 주변에는 적어도 오십 명은 되는 암위 고수들이 있습니다.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궁 밖으로 나가는 건 고사하고, 기봉궁에서 빠져나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연천능은 그녀의 어깨에 남은 멍 자국을 보더니 안타까운 듯 입을 맞추며 물었다.“지하로 가는 건 어떠냐?”백진아가 말했다.“소리 없이 지하 통로를 팔 수는 있지만, 그 안을 지나가다 보면 많든 적든 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더 깊이 파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너무 깊으면 산소가 부족하니… 그래도 산소통을 메고 가면 되기에 큰 문제는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사고가 나면 혼자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함께 가서 붕괴 같은 위험이 생길 때마다 일행을 공간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습니다.”지하 통로는 깊이 팔수록 위험해졌다. 게다가 백진아는 의사일 뿐, 터널을 파는 일에는 전문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무너지는 사고가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얕은 곳이라면 내공으로 뚫어버릴 수 있지만, 깊은 곳에서 무너지면 그대로 생매장될 수도 있었다.연천능이 말했다.“괜찮다. 적어도 처음에는 당신과 함께 밖으로 나가지. 궁으로 들어올 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되니.”그 역시 궁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궁 안의 지형에 익숙했고, 방비가 허술한 사각지대가 어디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연천능의 시중을 받아 목욕을 마친 뒤, 잠옷 차림으로 공간을 나와 대역을 다시 공간에 들여보냈다.욕실에서 나오자 비취와 진주는 열 명의 궁녀를 데리고 수건과 향유, 향, 깨끗한 옷가지 등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백진아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았다.비취가 수건으로 백진아의 긴 머리를 닦아 주었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낸 뒤에도 향유나 향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백진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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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3화

공간 안팎의 시간차 때문에, 백진아는 제때 공간에 들어가 자현에게 젖을 먹일 수 없었다. 자현은 분유와 우유는 잘 안 먹지만, 영천수만큼은 꽤나 좋아했다.지난번 보아가 공간에서 난 과일퓌레를 먹였을 때도 그녀는 제법 잘 먹었다. 다만 아직 너무 어려 배에 가스가 찼지만 말이다. 그래서 연천능은 공간에서 기르는 젖소의 우유를 영천수에 희석해 자현에게 먹였는데, 뜻밖에도 너무 좋아한 것이었다. 백진아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요 녀석, 입맛도 참 까다롭네요.”보아는 커다란 글씨를 한 장 써서 백진아에게 내밀었다.“어머니,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포도알처럼 까만 큰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칭찬해 주세요. 얼른 칭찬해 주세요!’백진아는 글씨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웃으며 칭찬했다.“잘했어. 정말 많이 늘었구나! 어떤 글자는 어머니보다도 더 잘 썼네.”원래 이 몸의 주인은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백진아 역시 붓글씨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연습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솜씨는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보아는 어머니를 조금 놀리고 싶었지만, 차마 버릇없이 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연천능은 부인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아의 동그랗게 묶은 머리를 쓰다듬었다.“네 어머니는 붓글씨는 그럭저럭이지만, 숯으로 글씨 쓰는 솜씨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단다.”보아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어머니가 제일 잘해요!”백진아는 웃으며 말했다.“글씨 연습 열심히 하거라. 아버지만큼 잘 쓰게 되도록 말이야.”연천능은 딸의 앙증맞은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게 임무 하나를 맡기마. 어머니 대신 동생을 잘 돌보거라. 아버지는 밖에 나가 볼일을 좀 보고 오마.”보아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는 말에 곧장 허리를 꼿꼿이 폈다. 어린 어른이라도 된 듯 제법 진지한 모습이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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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화

연청리는 백진아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는 기봉궁에 나타나지 않았다.비록 여장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엄연히 남자의 몸이었다. 그런 그가 후궁을 계속 드나드는 것도 곤란한 일이었다.괜히 연경곤의 후궁들과 엮여 일이 커지기라도 하면 귀찮아질수도 있었다.백진아는 속으로 연경곤이 남동생에게 한 번쯤 크게 뒤통수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커질까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렇게 백진아는 사실상 방치된 채 지내고 있었다. 마음은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먼저 조급해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법이었다.백진아가 기봉궁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풀숲 사이로 초록빛 그림자가 번쩍 스쳐 지나가더니, 반짝이는 작은 뱀 머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백진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꽃분이였다.그녀는 곧바로 의념을 움직여 꽃분이를 공간 안으로 들였다.익숙하면서도 오랜만인 공간에 들어온 꽃분이는 무척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잔디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입에 물고 있던 작은 종이 뭉치를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곧장 영천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물을 마시려는 것이었다.그리운 영천수를.‘랄랄라, 랄랄라…’백진아는 꽃분이가 잔디밭을 몇 바퀴나 데굴데굴 구른 뒤 영천수로 풍덩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그녀는 의념으로 종이 뭉치를 펼쳐 보았다.그 안에는 단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평안.백경패 일행도 그녀가 천무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꽃분이를 통해 안부를 전해온 모양이었다.그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백진아는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그때 어린 궁녀 하나가 궁문 쪽에서 급히 달려와 비취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비취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백진아에게 다가와 공손히 아뢰었다.“마마, 귀비마마와 덕비마마께서 문안을 오셨습니다.”백진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양채접과 후우청?”그러고는 담담히 말했다.“그래. 본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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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5화

백진아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량 폐하께서는 제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삼아 저를 이곳에 데려오셨습니다. 병을 치료해 달라는 조건과 함께요. 거래가 끝나면 저는 부군과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갈 겁니다.”그 말에 후우청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정말 폐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백진아가 담담하게 답했다.“확실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직접 환자를 보고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후우청은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하고 싶었다.“예전 폐하의 상태를 기준으로 본다면, 얼마나 자신이 있으십니까?”백진아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병이 재발한 것이니 처음보다 상태가 더 심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방법까지 써 가며 저를 데려오지는 않았겠지요.”후우청은 눈을 내리깔았다.그녀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감쌌다.아직 아이도 없었다.만약 황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는 태비가 되어 궁 안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늙어갈지도 몰랐다.반면 양채접의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갔다.그녀에게는 이미 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은 황태자였다. 아직 세 살도 되지 않았지만, 황제가 승하한다면 가장 먼저 황위를 이을 후보가 될 터였다.그때 아버지가 조정을 보좌하며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면, 사실상 대량의 권력은 그녀의 손에 들어오게 될지도 몰랐다.황후의 자리가 비어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후궁 여인들의 마지막 승부는 결국 아들로 가려지는 법이었다.하지만 백진아가 이곳에 와 있었고, 하필 기봉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양채접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내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백 황후마마를 기봉궁에 머물게 하신 것만 봐도 얼마나 특별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겠네요. 기봉궁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거든요. 모두들 언젠가 누가 이곳의 주인이 될지 궁금해했는데, 설마 백 황후마마가 들어오실 줄은 몰랐답니다.”그러면서 슬쩍 후우청을 바라보았다.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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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6화

후우청이 협조해 주지 않으니, 양채접은 혼자서 노골적으로 떠보거나 은근히 비꼬며, 빈정대는 말만 늘어놓았다.하지만 백진아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뒤로는 더 이상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여자 셋이 모이면 연극 한 편은 나온다지만, 백진아와 후우청이 좀처럼 장단을 맞춰 주지 않으니 양채접 혼자서는 분위기를 끌고 갈 수 없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작별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백진아는 비취를 바라보며 물었다.“양채접은 아주 의기양양해 보이고, 후우청은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비취는 눈을 내리깔고 공손히 답했다.“마마들의 일은 소인이 감히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습니다.”백진아는 작게 웃으며 현상에게 말했다.“봤느냐? 좋은 하인은 바로 이런 법이란다. 입이 무거워야 해.”현상은 재빨리 대답했다.“예!”비취는 자신을 하인이라 부른 것에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손히 몸을 낮추며 말했다.“마마, 과분한 칭찬이십니다.”애초에 그녀는 궁인이었다. 굳이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었다.오후가 되자, 연경곤의 곁을 지키는 상 태감이 기봉궁을 찾아왔다.삼 년이 넘도록 보지 못했지만, 상 태감은 여전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수가 놓인 분홍빛 손수건을 살랑이며 허리를 흔들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모습은 여전히 특유의 요염함을 풍기고 있었다.다만 예전의 통통하던 몸집은 한결 야위어 있었고, 머리카락 역시 검은색보다 흰색이 훨씬 많아져 있었다.황제 곁에서 총애를 받는 총 태감의 자리 역시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상 태감은 백진아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황후 마마를 뵙습니다!”백진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혀끝으로 볼 안쪽을 꾹 눌렀다.‘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듣기 거북하지?’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상 태감, 예는 거두세요. 나는 월국의 황후입니다. 대량 황제 폐하 곁의 총 태감에게 이런 예를 받을 수는 없지요.”상 태감은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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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7화

보아도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응석을 부릴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처럼 다급하게 말했다.“어머니, 어서 동생부터 살펴보세요. 너무 심하게 울어서, 울다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에요.”말을 하는 사이에도 백진아는 이미 자현을 품에 안고 있었다.두 달 남짓 된 아기는 어머니를 보자 반갑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지, 입을 활짝 벌려 웃으면서도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백진아는 가슴이 미어져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그녀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며 물었다.“우리 자현이, 어미가 보고 싶었느냐?”“아!”녀석은 정말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냈다. 우연인지, 정말 알아들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러더니 젖을 찾는 본능이 밀려왔는지, 백진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칭얼대기 시작했다.백진아는 서둘러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어린 자현은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만족스럽게 먹었다. 하지만 커다란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눈물에 젖은 속눈썹은 한 올 한 올 축 늘어져 있었다.안쓰러워도 너무 안쓰러운 모습이었다.백진아는 보아의 보드라운 뺨을 사랑스럽게 꼬집어 주며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연경곤, 이번에는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야!’백진아는 연경곤을 철천지원수처럼 여겼지만, 연경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해 질 무렵,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찾아왔다.그는 용포를 입지 않고, 예전에 즐겨 입던 달빛 같은 옅은 색의 넉넉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백진아는 처음 궁궐에서 그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그는 이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옥처럼 맑고 온화하며, 품격 있는 군자처럼 보였었다.누가 그런 모습 아래에 이토록 음험한 야심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는가.황제가 된 지 삼 년이 넘은 연경곤은 평상복 차림이었음에도 몸에 밴 제왕의 위엄을 감출 수 없었다.백진아를 바라본 그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진아야,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는구나.”마치 오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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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8화

연경곤은 정말 이 기회를 이용해 백진아를 곁에 붙잡아 둘 생각이었다.한 가지 이유는 백진아의 의술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이미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수없이 같은 꿈을 꾸었다. 백진아와 함께했던 사소한 일상을 떠올리기도 했고, 달빛 아래에서 그녀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순간을 꿈꾸기도 했다.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어느새 백진아는 그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하지만 백진아에게 연경곤은 오직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연경곤처럼 속을 감추는 데 능한 사람이 어찌 백진아의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난 살의를 눈치채지 못하겠는가.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선 식사부터 하자꾸나.”백진아도 더는 말을 보태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기봉궁에서 나오는 음식과 음료를 단 한 입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모든 음식은 공간으로 옮겨 쓰레기 처리 시스템에 넘겨 버렸다.연경곤은 이따금 공용 젓가락으로 그녀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그는 시종일관 세심하게 그녀를 챙겼다.가끔은 백진아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눈처럼 희고 투명한 피부는 금방이라도 상처가 날 듯 고왔고, 빼어난 미모는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지금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선녀 같았다.연경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이번만큼은 절대로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를 자신의 황후로 만들고 싶었다.저녁 식사가 끝나고 소화를 돕는 차가 올랐다.백진아가 담담히 말했다.“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돌아가십시오.”연경곤은 귀엽기라도 하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그리 서두르지 말거라. 내 맥이나 한번 짚어 보아라.”백진아는 속으로 의기양양해졌다.‘거봐. 결국 먼저 못 참고 본색을 드러내는 건 당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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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9화

‘참을 수 있다니, 정말 잘 참는군. 이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백진아는 채취한 골수를 잘 보관한 뒤 말했다.“저는 고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아직 알 수 없고요. 연구를 해봐야 합니다. 만약 치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고충을 꺼내는 방법을 권해 드리겠습니다.”연경곤은 느긋하게 옷을 갖춰 입으며 말했다.“청리가 도와주게 하면 안 되겠느냐? 그 아이는 고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백진아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좋습니다. 대신 제 의술과 관련된 일은 보지 않도록 자리를 비우게 하세요.”연경곤은 온화하게 웃었다.“네 뜻대로 하마.”백진아가 물었다.“그때 폐하께 혈수를 제공했던 사람은 아직 살아 있습니까?”연경곤이 답했다.“살아 있다. 잘 보살피고 있지.”백진아는 장갑을 벗어 진주가 받치고 있는 대야에 손을 씻으며 나직이 말했다.“언제쯤 백경패 일행을 만나게 해주실 생각입니까? 그들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마음 놓고 폐하를 치료하기가 어렵겠네요.”이 정도로 노골적인 협박을 연경곤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하하.”그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무얼 그리 서두르느냐? 내 병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백진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그녀는 손을 닦던 수건을 대야에 툭 던져 넣고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연경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알았다, 알았어. 내일 사람을 보내 너를 조옥으로 데려가게 하마.”그의 눈에는 백진아가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백진아는 그런 태도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그때 공간 시스템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연경곤의 상태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골수를 교체한다고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다만 몸속에 고충이 있으니,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어쨌든 지금까지 연경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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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0화

무봉을 보니, 결벽증과 강박증은 여전한 모양이었다.하지만 백진아는 무봉은 이미 혼인해 자식까지 두었고, 부인 하나에 첩 둘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첩들 역시 연경곤이 직접 골라 준 자들이었다.지금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으니 자식 복도 제법 있는 셈이었다.무봉은 백진아를 보자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곧 예를 올렸다.“소신, 백 황후 마마를 뵙습니다.”백진아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무 대인, 예는 거두세요. 익숙한 사이인데 그리 예를 차릴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그의 하반신을 슬쩍 훑어보았다.예전에 그를 진찰하고 침을 놓을 때 안 본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손으로 만져보지 않은 곳도 없었다.무봉은 두 다리 사이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차가운 손길이 그곳을 이리저리 더듬던 감각이 떠오르자……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여우처럼 교활한 그조차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귓불이 붉어졌다.온화하고 부드럽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번뜩였다.하지만 백진아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연경곤의 생사는 그녀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봉이 그녀를 죽인다면, 그 역시 섬기는 주인을 잃게 되는 셈이었다.더구나 무봉이 백경패 일행을 괴롭힐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기분이 상하면 연경곤에게 무봉을 처리하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아예 연경곤의 병을 치료해 주지 않아도 됐다.그렇게 생각하니 백진아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조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 모습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무봉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관자놀이가 불끈거렸고,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한 끝에야 백진아의 목을 조르지 않고 참아낼 수 있었다.그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조옥 안으로 들어선 순간, 화를 낼 사람은 오히려 백진아였다.백경패 일행은 형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먹고 입고 자는 환경이 형편없었다. 모두 얼굴이 누렇게 뜨고 야위어 있었으며, 거친 베옷을 입은 채 돌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무봉이 결벽증이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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