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의 모든 챕터: 챕터 861 - 챕터 870

974 챕터

제861화

고지행은 백진아를 꽉 끌어안으며 그녀를 받쳐 주었다.그 덕분에 백진아는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팔이 석순에 부딪히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곧이어 육리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급히 백진아를 일으켜 세우더니, 다급하게 그녀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괜찮습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몹시 긴장한 듯했다.하지만 백진아는 이 사람이 어딘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꼈다. 핑계를 대고 그녀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아, 곧바로 그의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변태!”“억!”전혀 대비하지 못한 육리는 제대로 한 방을 맞고, 배를 움켜쥔 채 허리를 굽혔다.그 모습을 본 고지행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윽… 아파!”백진아는 급히 쪼그려 앉아 소매 속을 뒤졌다. 조금 큰 야명주를 꺼내 주변을 밝힌 뒤, 다급하게 물었다.“어디를 다쳤습니까? 예?”용동 안은 다른 곳과 달랐다. 사방에 석순과 돌기둥이 널려 있어, 조금만 잘못 떨어져도 몸이 꿰뚫릴 수 있었다.고지행은 그녀가 당황한 듯 보이자, 일부러 농담 섞인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괜찮습니다. 반쯤 죽은 것뿐이니.”그 말에 백진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당신을 끌어들였어요. 아까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고, 이유 없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마치 이런 상황을 겪어본 것처럼…”뒤에서 듣고 있던 육리는 몸을 휘청이며, 두 눈을 세게 감았다.고지행은 손을 들어 그녀를 달래려 했지만, 곧 경악했다. 팔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그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큰일입니다! 마비된 것 같습니다!”그는 떨어질 때 최대한 조심했었다. 아래쪽에 날카로운 석순이나 돌기둥은 없었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돌이 튀어나와 온몸이 쑤셨다.설마 떨어지면서 불구가 된 걸까?백진아의 표정도 굳어졌다.“왜요? 어디가 불편합니까?”고지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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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백진아가 설명했다.“아마 척추를 부딪치면서 일시적인 신경 손상이 온 것 같습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육리도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치 고지행이 정말 불구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 좀 누워 있을게요.”고지행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백진아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었다.그러고는 백진아의 어깨 너머로 육리를 향해 우쭐한 눈빛을 보냈다.육리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고슴도치처럼 찔러버리고 싶다는 듯, 사나운 시선이 고지행에게 꽂혔다.백진아는 혹시 모르니 고지행에게 침을 놓아 척추를 자극해 주었다. 다행히 그는 금세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지행은 곧바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자, 나갑시다.”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용암 틈 같은 골짜기 밖으로 걸어 나갔다.육리가 백진아 옆에 서려 하자, 고지행은 일부러 몸으로 그를 밀어냈다.백진아 역시 육리라는 사람이 어딘가 이상하고 정신 나간 사람 같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모른 척 고지행에게 맞춰 육리를 뒤쪽에 남겨 두었다.육리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억울함을 꾹 참고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용암 골짜기 안은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들은 금세 배를 세워 두었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뜻밖에도 소비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와 있었다. 다만 부하 다섯, 여섯 명이 사라졌고, 남은 사람들도 거의 모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그들이 돌아온 것을 보자, 소비가 급히 말했다.“빨리 와서 사람부터 살려!”고지행과 백진아는 둘 다 의술이 뛰어난 의원이었으니, 그의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백진아는 걸음을 재촉하며 고지행에게 설명했다.“이 사람은 제 환자입니다. 동굴에서 우연히 만났어요.”“환자?”고지행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소비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약간 씁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까?”백진아는 걸음을 멈추고 부끄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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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백진아는 다른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부상자에게 야명주를 들어서 조명을 비추게 한 뒤, 곧바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그렇게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얼마나 떠내려왔는지도 모를 즈음 마침내 햇빛이 보였다.밖은 어느새 새벽빛이 하늘 가득 번지고 있었다.그들은 무려 하루 가까이 동굴 속을 헤맨 셈이었다.일행은 안전을 위해 조금 더 떠내려간 뒤에야 배에서 내렸다. 강가의 숲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문제는 모두가 배고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진아의 보따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이미 음식과 약, 붕대까지 꽤 많이 꺼낸 상태라 더 이상 물건을 꺼내기엔 부자연스러웠다.그때 소비가 말했다.“다들 여기서 쉬어라. 사냥해서 배라도 채우자.”“아이고, 며칠째 못 자니까 정말 죽겠네요!”고지행은 몹시 지쳐 있었다. 백진아를 찾고 나서야 마음속에 얹혀 있던 큰 돌덩이를 겨우 내려놓은 탓에, 이제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그는 하품을 하며 근처 바위에 털썩 앉았다.그런데 다음 순간, 고지행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두 손은 엉덩이를 감싸 쥐고 있었다.백진아가 긴장해 물었다.“왜 그래요?”“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금 다쳤는데 거의 다 나았습니다.”그는 귀 끝까지 붉어진 채 얼버무렸다. 엉덩이를 베였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미 피 냄새가 났고, 고지행의 손에도 피가 묻어 있어 백진아는 믿지 못했다. 엉덩이 부분의 옷에는 날카로운 무기에 찢긴 자국까지 선명했다.백진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다쳤잖습니까!”고지행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그,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하하…”하지만 찢어진 틈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백진아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보여주세요.”고지행은 화들짝 놀랐다.“예? 보, 보겠다니요?”그러자 육리가 눈빛을 가라앉히며 재빨리 끼어들었다.“제가 확인하겠습니다. 간단한 상처 정도는 저도 치료할 수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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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육리는 득의양양한 고지행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주먹에는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힘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고지행을 찢어버릴 듯했다.예민한 백진아는 그의 살기를 느꼈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먼저 거즈로 상처를 눌러 지혈한 뒤, 물주머니에 담긴 알코올을 꺼냈다. 그리고 핀셋으로 솜을 집어 고지행의 상처를 닦기 시작했다.알코올이 상처에 닿는 순간, 고지행은 엉덩이 근육까지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아…!”백진아는 돼지 멱 따는 소리 같은 그의 울부짖음이 안쓰러우면서도 웃겼다.“됐어요. 이 악물고 조금만 참으십시오.”“살살하세요…”고지행의 말투에는 은근한 응석이 섞여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아픈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본 육리의 주먹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상처를 깨끗이 씻어내고 나서야,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미 지방층까지 보이는 상태라, 제때 치료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백진아는 고지행이 아파서 또 난리를 칠까 봐 국소 마취제를 조금 사용한 뒤, 상처를 꿰매고 약을 발라 거즈로 마무리했다.고지행은 얼굴의 열기를 겨우 가라앉히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물었다.“어디로 갈 셈입니까?”그는 마치 그녀가 다시 신의곡으로 함께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 눈에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그렇다면 그녀 곁에 남아, 함께 기억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백진아는 약솜과 의료 폐기물을 정리하며 말했다.“람성에 가 보고 싶습니다.”고지행은 놀란 듯 되물었다.“람성에요? 왜요?”“가족이나 익숙한 사람이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그러다 백진아는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렇게 저를 찾아오셨으니… 제 집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고지행은 난처하게 웃었다.“당신의 집은 람성이 아니라, 대량국 경성 천무성에 있습니다.”백진아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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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육리가 다가와 닭 다리 하나를 백진아에게 건네며 말했다.“사람을 시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게 하지요. 먼저 산에서 빠져나간 뒤, 사람이 사는 곳을 찾아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고지행은 재빨리 그 닭다리를 낚아채고는 웃어 보였다.“고맙네요!”그는 ‘앙’ 하고 크게 한입 베어 물더니,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불 위에 있던 다른 닭 다리를 집어 백진아에게 건넸다.백진아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것을 받아 먹기 시작했다.육리의 눈빛은 고지행에게 구멍이라도 뚫을 듯 날카로웠다. 그는 이를 갈며 토끼고기 꼬치를 집어 들고, 거칠게 한입 물어뜯다가, 이내 백진아에게 물었다.“넌 대량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람성으로 갈 것이냐?”백진아는 입안의 고기를 삼킨 뒤 대답했다.“어르신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집으로 돌려보낸 뒤, 대량 천무성으로 갈 생각입니다.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요. 당신은요?”소비가 코웃음을 쳤다.“이렇게 크게 당했는데, 추혼각 형제들을 헛되이 죽게 둘 수 있나. 사람을 더 모아서 다시 쳐들어가 복수할 것이다!”백진아는 속으로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남의 원한에 끼어들 입장은 아니었다.“그럼 반드시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무족 사람들은 정말 사악하더군요.”소비는 웃으며 말했다.“알고 있다. 이번엔 그 자식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하는 말이 잔인한 살인 이야기라니…백진아는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조용히 닭 다리에 집중했다.일행은 배불리 먹고 잠시 쉰 뒤, 방향을 가늠하며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하지만 산이 워낙 커서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산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다행히 카르스트 지형이라 용동이 많았고, 그들은 금세 커다란 동굴 하나를 찾아 노숙은 면할 수 있었다.문제는 고지행이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움직인 탓에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다시 피가 배어 나왔고, 결국 열까지 오르기 시작했다.백진아는 그에게 소염제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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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고지행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왜냐하면… 그 사내가 그곳에 있으니까요. 그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으려고 들겠지요.”백진아는 깜짝 놀랐다.“사내라면…”고지행이 대답했다.“당신과 혼약이 있었지만, 당신은 시집가기 싫어했던 사람… 대량의 황제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모두 그곳에 있으니, 그가 그들을 인질로 삼아 당신을 협박하기로 한다면 대체 어쩔 셈입니까?”백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 천천히 그 사람과 맞서겠지요.”고지행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예전의 당신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쳐 버렸고,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알겠습니다.”백진아가 말했다.“그럼 당분간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냥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네요.”고지행의 눈빛이 밝아졌다.“그럼 신의곡으로 돌아갑시다.”“하지만…”백진아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과거를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녀도 기꺼이 고지행과 함께 신의곡으로 돌아가 여유롭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고지행의 예쁜 눈에 비치던 빛은 금세 흐려졌다.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아 감정을 숨겼지만, 옅은 우울과 쓸쓸함은 감춰지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백진아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됐어요. 그런 표정 지으니까 정말 당신답지 않아요.”고지행은 곧바로 특유의 건들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러면 좀 저 같습니까?”하지만 그 웃음은 우는 것보다 더 괴로워 보였고, 더 쓰게 느껴졌다.백진아는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아려 왔다. 미안하고, 또 속상했다.고지행은 일부러 더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됐어요. 농입니다. 제 보조개를 제일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자, 보조개 나왔습니까? 예쁘지요?”그러면서 그는 일부러 입술을 오므려 보조개를 더 깊게 만들었다.“흥!”백진아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그의 보조개를 콕 찌르며 말했다.“예뻐요!”고지행은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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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다행히 소비가 가벼운 상처를 입은 부하 한 명을 시켜 고지행을 업게 한 덕분에, 그의 상처가 더 심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그들은 해가 완전히 질 무렵에야 숲을 빠져나왔고, 산 아래 작은 마을 하나를 발견해 객사에 묵게 되었다.일꾼에게 물어보니, 이 마을은 뜻밖에도 마귀 늪지와 꽤 가까운 곳이었다.일행은 우선 음식을 시켜 배를 채웠다.소비는 따뜻한 죽을 마시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백진아에게 물었다.“난 내일 떠날 것이다. 넌 어디로 갈 것이냐?”백진아가 대답했다.“지행은 상처 때문에 움직이면 안 됩니다. 먼저 이곳에서 요양하기로 했어요. 상태가 좋아진 뒤에 생각해 볼 셈입니다.”고지행의 상처는 더 악화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격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누워 있거나 서 있는 정도가 전부이긴 했지만, 다행히 급한 일도 없으니 우선 몸을 회복시키는 게 중요했다.소비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그래. 그럼, 내 몸 상태도 한번 봐줄 수 있겠느냐?”과거 그녀의 환자였다고 하니, 백진아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좋습니다. 식사 후 맥을 짚어보지요.”그러자 고지행이 곧바로 덧붙였다.“식사 후 제 방으로 오세요.”그는 서서 식사하고 있었다. 불꽃처럼 붉은 비단옷과 늘씬한 체형, 뛰어난 외모 탓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백진아는 노인을 힐끗 보며, 어떻게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지 생각했다.고지행이 웃으며 말했다.“일꾼에게 돈을 줬으니, 사람을 구해 어르신을 마을까지 데려다줄 것입니다.”백진아도 웃었다.“역시 세심하네요.”노인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백진아는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고 있는 육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뒤, 사람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육리는 백진아와 고지행이 나란히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백진아가 고지행의 방에서 상처를 갈아주고 있을 때, 소비가 찾아왔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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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백진아는 문득 소비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역시 살아 있었구나.”그 말은 곧, 이미 그녀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뜻이었다.소비는 그녀의 경계 어린 표정을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운청 도사다. 네가 사고를 당하자, 네 아버지께서 넋을 잃으셨지. 그런데 운청 도사가 점을 치더니, 분명 네가 죽을 고비를 넘길 거라고 했어.”“점을 쳤다고요?”백진아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속으로는 눈을 흘기고 있었다.왠지 장난 같은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운청 도사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진법과 부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 리 없었다.소비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운청 도사까지 잊었다는 걸 깨달은 듯 웃었다.“네가 이렇게 살아 나타난 걸 보면, 그 점괘가 아주 잘 맞은 셈이지.”백진아는 굳이 무신론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은 괜찮으십니까?”소비가 답했다.“이름은 백근당. 백전백승의 장군이지. 네 사고 소식을 듣고 삶에 미련이 없어진 건지, 황제의 임명을 거절하고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그녀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은 듯, 소비는 일부러 자세한 속사정까지 말하지 않았고, 백진아도 그걸 아는 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사하시기만 하면 됐습니다.”그녀는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소비는 중요한 부분은 피하고 가벼운 이야기만 골라 답했다.세 사람은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제야 백진아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공간에 들어가 약 밭을 정리한 뒤, 영수소축에서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백진아는 상쾌하게 눈을 떴다.그녀는 옥봉의 꿀을 작은 자기 병에 담아 고지행에게 가져갔다.고지행은 이미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 푸른빛이 도는 고운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옥비녀 하나를 대충 꽂고 있었는데, 평범한 차림인데도 여전히 눈에 띄는 풍채였다.늘 붉은 옷만 입은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푸른 옷을 입은 그는 예전의 요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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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백진아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옷까지 직접 만들어서 가져왔다고?’고지행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마자 급히 설명했다.“옷 뒤쪽이 다 찢어졌잖습니까? 그래서 일꾼에게 돈을 주고 옷 좀 사다 달라고 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월국 처녀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백진아를 힐끗 보더니, 마지못해 설명했다.“저희 마을이 워낙 작아서, 기성복을 파는 곳이 없습니다.”그러고는 죽 두 그릇과 반찬 한 접시, 만두 한 접시를 탁자 위에 차려 놓았다.그녀는 다시 고지행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공자님, 다리 다친 그 어르신은 제 사촌 오라버니 둘에게 부탁해서 집까지 모셔다드리게 했습니다.”고지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게 부순 은 조각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그래. 점심은 좀 푸짐하게 준비하거라.”하지만 처녀는 돈을 받지 않고, 몸을 살짝 비틀며 수줍게 말했다.“아침에 주신 돈이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마을에서 제일 좋은 음식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고지행은 느긋하게 손을 흔들며 건들거리듯 웃었다.“그래. 나가보거라.”월국 처녀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그의 웃음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고지행이 죽그릇을 들고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그러고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방을 나갔다.백진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여자가 잘 꼬이네요.”고지행은 죽을 한 숟갈 뜨며 무심하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다 필요 없는 인연이지요. 귀찮기만 합니다.”백진아의 웃음이 순간 살짝 굳었다.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어찌 소비 일행과 아래에서 식사하지 않습니까?”고지행이 답했다.“그들은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그 육리라는 자도 말없이 사라졌고요.”“그렇군요.”백진아는 사실 육리가 계속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졌기에, 떠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곧 생각을 접고 아침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고지행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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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백진아는 고지행의 억울한 표정을 보자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살금살금 객사를 빠져나왔다.사실 공간 안에는 최고급 비단과 천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가난한 마을에서 그런 물건을 꺼냈다가는 설명하기 곤란했다.마을은 아주 작았다. 끝이 한눈에 보이는 거리 두 개가 전부였다.백진아는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고 대충 돌아다니다가 금세 천 가게를 찾았다.가게는 작았고 천 종류도 많지 않았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이라 해 봐야 질 낮은 비단 몇 필 정도였다.백진아는 질 나쁜 비단을 입느니, 차라리 좋은 면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연한 푸른색 고운 면포 두 필을 사 속옷감으로 쓰기로 하고, 청색과 흑색 천도 한 필씩 골라 겉옷을 만들기로 했다. 거기에 바느질용 실과 바늘, 가위, 줄자까지 함께 샀다.그녀가 물건들을 안고 가게를 나서자, 거리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하필 그곳은 그녀가 묵는 객사 쪽이었다.백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객잔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그제야 객실에서 나올 때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고지행은 자고 있었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그 생각에 그녀는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멀리서 보니, 고지행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는데, 특히 여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남자들까지 있었다.모두 신선이라도 보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그중에서도 여자들의 눈빛은 훨씬 노골적이었다. 월국 여인은 원래 대담하고 직설적이라지만,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고지행이 그녀들 곁을 지나가던 순간, 한 여자가 갑자기 교태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어머!”그러고는 무언가에 걸린 척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하지만 고지행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세우며 능글맞게 웃었다.“발밑을 조심하세요, 미인. 다치면 어쩌려고.”여자는 비단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키득 웃었다. 눈빛에는 요염함이 흘러넘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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