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465 챕터

제411화

서현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안요한의 얼굴에 손끝에 맺힌 물방울을 튀겼다.“가까이 오지 마실래요?”안요한은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그는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면서 서현주의 얼굴에 기웃거렸다.“보아하니 기분이 정말 안 좋은가 봐. 말도 채 하기 전에 손부터 올라오는 걸 보면.”서현주는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그를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그렇게 한가하면 설거지나 해요.”안요한은 바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밥 얻어먹은걸 봐서 당연히 할 수 있지.”서현주는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자리를 내주었다. 안요한은 다가와 능숙하게 설거지하기 시작했다.서현주는 팔짱을 끼고 옆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안요한의 동작에 집중하다가 원래부터 길쭉하고 하얀 그의 손이 물에 잠기자 더욱 하얗고 보기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서현주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멍때리기 시작했다.안요한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고, 두 사람 사이에 두꺼운 벽이 세워져 있는 듯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아니긴...”서현주는 오늘 저녁에 기분이 확실히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전생 이맘때쯤. 그녀는 배가 불러온 채로 연씨 저택에 갇혀 몰래 방에서 수험표를 출력하고 있었다. 주목받지 않으려고 온종일 얌전히 지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듣기만 했고, 저녁이 되자 일직 잠자리에 들었다.새벽 세 시. 그녀는 휴대폰과 현금을 들고 몰래 방을 빠져나갔다.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서현주는 허리를 숙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바닥을 밟았다.도우미 방 중의 하나인 그녀의 방은 1층이었고, 입구와 멀리 않았다.그녀는 희미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입구로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서현주, 어디 가려는 거야.”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이것은 바로 차갑디차가운 연동욱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서현주는 힘없이 문손잡이를 놓아버리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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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하지만 연씨 가문 도우미들도 10초도 걸리지 않고 그녀를 붙잡았고, 마치 헝겊 조각처럼 들어 올려 방안에 집어넣었다.이때 복부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면서 무기력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땅바닥에 몸을 움츠린 채 고통을 참느라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아팠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기어가 힘껏 문을 두드렸다.“살려주세요...”그녀의 목소리는 모기보다도 작았다.“배가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간에 맞춰 하루 세 끼를 가져다주는 것 외에는 아무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신경 쓰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황한 망상뿐이었다.서현주는 갑자기 연지훈을 떠올렸다.연지훈의 아이를 품고 있는데 어쩌면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연지훈은 하루건너 연동욱과 함께 식사하러 집을 찾았고, 그 말인즉슨 다음 날이면 연지훈을 볼 수 있었다.서현주는 연지훈의 주의를 끌려고 문 앞에 엎드려 계속 문을 두드렸다.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그 며칠은 서현주에게 지옥과도 같았고,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었다.그녀는 수능을 놓친 것이 더 괴로운지. 아니면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운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두 눈동자에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너무나도 안 좋은 기억인지 서현주는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때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거의 잊혀갔다.올해 다시 수능을 맞이하면서 가끔 전생이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다시 기회를 얻었지만 그녀는 딱히 기뻐하지 않았다.환생해서 어렵게 얻은 수능 기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대부분 다 주어졌던 기회였기 때문이다.“현주 씨, 내 말 들려? 현주 씨.”전생의 기억에서 벗어난 서현주는 멍한 표정으로 안요한을 바라보았다.“뭐라고 하셨어요?”안요한은 순진무구한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왠지 뺨을 꼬집고 싶다는 생각에 손이 간질거렸다.“내 말 들리냐고.”서현주는 당연히 듣지 못했다.“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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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서현주가 말했다.“맞은편 이웃이에요. 소꼬리 곰탕이 아직 남았길래 먹어보라고 불렀어요. 곧 돌아갈 거예요.”“그래?”두 사람을 훑어보던 엄진경은 바로 눈빛부터 달라졌다.“아니야. 괜찮아. 그렇게 빨리 돌아갈 필요 없어. 난 방에 들어갈 테니까 좀 더 얘기해. 방해하지 않을게. 저기 이웃 총각.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어.”안요한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엄진경은 방으로 돌아가기 전 서현주의 귓가에 속삭였다.“힘들게 데려왔는데 기회를 잘 잡아야지.”“무슨 기회요...”서현주가 말하려고 하자 엄진경이 바로 끊었다.“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지킬 건 지켜야 해. 연애는 괜찮지만 잠자리는 가지면 안 돼. 알겠어?”“저...”“그리고 너무 늦게까지 이야기하지 마. 모레 수능이니까 잘 쉬어야지.”엄진경의 경고하는 말투에 서현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엄마, 저 내일 수능이에요.”엄진경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그래? 기억이 잘 안 나네. 괜찮아. 너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됐지.”서현주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엄진경을 붙잡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그리고 연애하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그런 말 좀 하지 마요.”엄진경은 그녀를 달래면서 말했다.“알았어.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그런데 잘 기억해. 아무리 좋아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는 거야.”‘끝이 없네...’서현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들어가서 쉬세요.”엄진경은 서현주를 한 번 쏘아본 후 뒤돌아 안요한을 향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나는 일찍 들어가 쉴 테니까 마저 이야기 나누고 있어.”안요한은 이 순간에 아주 얌전해 보였다.“네. 아줌마. 일찍 쉬세요.”이미 돌아선 엄진경은 안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뒤돌아 손을 흔들며 말했다.“우리 딸이 표현이 좀 서투르긴 해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잘 부탁할게.”그는 서현주를 힐끔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네. 알아요. 현주 씨는 정말 착한 것 같아요.”‘착하다는 게 무슨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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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서현주는 발바닥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쑥스러움이 밀려와 순식간에 온몸에 닭살이 돋고 말았다.그녀는 너무 민망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안요한은 고개 숙여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현주 씨, 나를 그 정도로 좋아하는 거야? 나랑 이야기하려고 소꼬리 공탕으로 나를 집까지 끌어들인 거야?”서현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요한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얼굴이 점점 화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억지로 짜내듯이 말했다.“그게 아니라 잘못 들은 거예요.”안요한은 피식 웃고 말았다.“현주 씨, 부끄러워?”서현주는 이를 꽉 깨물었다.“그만 해요. 그런 거 아니라고요.”안요한은 가까이서 서현주의 쑥스러운 감정을 즐기고 있었다.“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현주 씨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안 것도 아닌데 난 현주 씨가 싫지만은 않아.”서현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안요한을 힘껏 밀어냈다.“제가 말했잖아요. 오해라고요. 저는 그런 적 없으니까 못 믿겠으면 지금 바로 나가주세요. 빨리요.”안요한은 억울한 듯 말했다.“화내지 마. 별만 안 했잖아.”서현주는 그를 힘껏 밀어내며 말했다.“얼른 나가라고요.”문 앞까지 다다른 안요한은 문틀을 꼭 붙잡고 뒤돌아보면서 말했다.“내가 했던 말 기억나?”서현주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재촉했다.“기억나지 않으니까 얼른 나가요.”안요한은 혀를 차면서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내가 요구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잖아.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서현주는 안요한이 문밖으로 나간 걸 확인해서야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기억할 테니까 이제는 갈 수 있겠어요?”안요한은 돌아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아직도 기분 나빠?”뭔가 달래주는 말투에 서현주는 멈칫하고 말았다.다음 순간, 안요한은 갑자기 후드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가지고 있어. 내일이면 수능인데 기분 풀어.”말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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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서현주는 싫증 난 표정으로 혀를 찼고, 안요한은 다가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무슨 눈빛이야? 내가 시험장까지 데려다주는 게 싫어?”서현주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니요. 잘못 보셨어요.”안요한은 그녀의 옆에 딱 붙어 고개 돌려 그녀의 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됐어. 오늘은 수능 보는 날이니까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서현주는 전날에 이미 시험장에 다녀와서 길이 익숙했다. 안요한과 함께 지하철로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이른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수능이 있는 날이라 다른 학생들도 일찍 출발한다고 지하철 안이 붐볐다. 서현주는 한참을 찾아서야 겨우 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그녀는 좌석에 앉아 또 한 번 준비물을 꼼꼼히 체크했다.안요한은 팔짱을 낀 채 옆에서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그만 확인해. 벌써 세 번이나 확인한 것 같은데. 다 준비된 거 아니야?”서현주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확인을 마친 뒤에 고개를 들었다.안요한은 옆으로 몸을 돌려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현주 씨, 평소에는 그렇게 까칠하더니 수능 앞에서는 똑같이 긴장하는구나?”서현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준비물로 그의 머리를 한 대 내리쳤다.“비켜요. 가까이 오지 말고.”안요한은 이를 꽉 깨문 채 손으로 맞은 부위를 감싸 쥐며 서현주를 노려보았다.“걱정해도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이제는 손대는 게 습관인데?”서현주는 콧방귀를 뀌면서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요한 씨 할아버지가 긴장해도 저는 긴장하지 않아요.”전생의 트라우마로 계속 확인하는 거였지만 수능에 대해서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 부분은 절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안요한은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말도 마. 우리 할아버지 정말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서현주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누군가가 저를 계속 쳐다보는 게 싫단 말이에요.”지하철에 오른 뒤로 모르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계속 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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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현주 씨, 나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밖에서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내일도 시험장까지 바래다줄 수 없어.”서현주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일 보세요.”‘내가 언제 그러지 말라고 했나?’안요한은 그녀의 속내를 읽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현주 씨, 내가 없어도 시험 잘 봐야 해. 꼭 수능 1등 따내야 해.”이 말이 나오자 더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누가 수능이 시작되기도 전에 허세를 부리는지 확인하려는 눈치였다.서현주는 처음으로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기다려요. 반드시 1등하고 돌아올 테니까요.”수능은 전국에서 주목하는 일이라 시험장 밖에는 수험생,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을 인터뷰하러 온 방송국이나 매체들이 많았다. 서현주와 안요한같이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나타나자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끓었다. 기자들은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면서도 서현주와 안요한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서현주의 수능 1등을 노린다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에 몇몇 기자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달려와 두 사람 앞에 마이크를 들이댔다.“안녕하세요. 경연 방송국 기자예요. 혹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서현주와 안요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기자가 먼저 질문하기 시작했다.“두 분 다 수험생이신가요? 방금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수능 1등을 노리고 있다면서요? 자신감이 넘치신 것 같은데 혹시 간단히 소감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기자의 말이 끝나자 앞에 마이크와 카메라로 붐볐다.서현주와 안요한은 눈빛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냥 헛소리했을 뿐이에요.”“네. 1등을 노리고 있어요.”첫 번째 말은 서현주가 했고, 두 번째 말은 안요한이 했다.‘겸손이 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이 많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말을 할 수 있지? 정말 1등을 노리고 있다고 인정해버리면 첫 과목을 치르기도 전에 인터넷에 온통 우리가 했던 말뿐일 텐데.’기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할 때,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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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서현주는 안요한이 몇 달 전에 루체 피아노 콩쿠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안요한이 알고 있는 게 전혀 놀랍지 않았다. 주변 누구에게도 숨기려 한 적 없었고,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큰 화제가 된 이 사건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이웃마저도 그녀를 만나면 뒤에서 수군거리곤 했다.안요한은 절대 모를 리 없었다.서현주는 불편한 과거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그저 안요한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보고도 그녀를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고, 아무렇지 않게 앞에 카메라 앞에 서서 조금 의외였다.서현주는 안요한을 보고 피식 웃었다.이 미소는 아까보다도 더 저돌적인 미소였다.“괜찮아요. 어차피 수능 성적이 나오면 전국에 이름이 퍼질 거니까요.”안요한은 그제야 완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그는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정말 미쳤네. 한창 미칠 나이이지.”서현주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들어갈게요.”서현주의 예상대로 시험 문제는 전생과 똑같았다. 어느 한 과목도 빠짐없이 전부 다 똑같았다.서현주는 막힘없이 시험지를 작성했고, 시험장 밖으로 나오자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꽉 막혀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이렇게 붐비는 인파 속에서 서현주는 한눈에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혜인, 엄진경, 그리고 나민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녀는 멈칫하다가 강혜인이 손짓하는 걸 보고 바로 달려갔다.“왜 왔어?”강혜인이 웃으면서 말했다.“수능도 다 끝났는데 안 올 수가 있겠어? 해방된 거 축하해.”엄진경은 서현주의 손에서 준비물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삼계탕을 끓여놨으니까 다들 편하게 집에 가서 먹고 가.”강혜인은 서현주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좋아요. 오랜만에 아줌마 요리를 맛보네요. 민석 씨, 먹을 복 있는데요?”나민석은 옆에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서현주는 강혜인에게 이끌려 시험장을 떠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안요한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대충 강혜인이 하는 말에 대꾸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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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방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유이영은 만삭인 배를 부여잡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비록 루체 피아노 콩쿠르 사건이 이미 몇 달이나 지났지만 마음에 찔리는 거 있어서 자주 관련 글을 찾아보곤 했다.서현주와 벌인 이번 싸움은 그녀가 지금껏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처절한 순간이었다.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팬들이 이미지 세탁해주고 있었지만 항상 태클을 거는 네티즌이 한두 명 있었다. 유이영은 서현주가 보낸 댓글부대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아니면 서현주를 대신해 나서주는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인기 검색어를 열어보니 서현주가 정말 수능 1등이 맞았다.게다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은 언제나 존경과 호감을 받기 마련이었다. 서현주가 수능 1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검색어 밑에는 서현주를 칭찬하는 글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서현주가 수능 1등이라고? 이럴 수가. 절대 그럴 리 없어. 채린이랑 같은 기수잖아. 채린이는 시험 끝나자마자 울며불며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면서 절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연채린은 성적이 나오자마자 바로 확인했는데 역시나 점수가 낮았다.연동욱은 창피해서 연채린에게 밖에서 성적 말을 꺼내지 말라고 했고, 대신 외국 명문대에 유학 보내기로 했다.‘채린이 말한 난이도와 서현주의 이전 성적을 봤을 때 절대 이렇게 높은 점수를 따낼 수 없어. 그런 머리로 수능 1등을 따냈을 리가. 무조건 동명이인일 거야.’네티즌이 올린 링크를 열어보니 바로 경연 방송국 인터뷰 영상이 튀어나왔다.영상 속 서현주는 한 잘생긴 남자와 함께 서 있었고, 뒷배경은 소란스러운 수능 시험장이었다. 서현주는 차분한 모습으로 조용히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었다.남자의 대답을 듣고 서현주는 분노에 찬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그 표정은 연씨 가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생생했다. 둘은 기자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고는 곧장 카메라를 벗어났다.화면은 다시 경연 뉴스 생방송 스튜디오로 전환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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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수능 1등이 내가 알던 서현주였다니. 같은 사람이었어.][맙소사. 내가 오해했던 거였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무조건 착한 사람일 거야. 서현주, 그때 욕해서 미안한데 필기한 거 빌려주면 안 될까?][세상에. 반전이 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어. 솔직히 말해서 난 서현주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그런 학생인 줄 알고 성적도 별로 좋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내가 틀렸던 거야.’[누가 좀 알려줘. 서현주는 왜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도 잘하는 건지. 대박. 청아대 컴퓨터 전공을 지원했다니. 흑흑흑.”“진지하게 묻는데 서현주 연락처 아는 사람 없어? 내년이면 나도 수능 보는데 서현주한테서 과외받고 싶어서 그래. 얼마든지 괜찮아. 우리 엄마 아빠 돈 많아.][개인 연락처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에 유이영 팬들한테 전화 테러를 받은 적 있어서 전화번호까지 바꿨더라고요.][저도 유이영 팬들을 들어봤는데 완전 깡패들이던데요? 서현주가 흔들리지 않고 수능까지 잘 봐서 다행이에요. 만약 수능 치르는 데까지 영향을 받았다면 정말 벌 받아야 했을지도 몰라요.][우리 이영이 그만 좀 괴롭히면 안 돼? 며칠 전에 연 대표님이랑 약혼을 마치고 지금은 집에서 태교에만 집중하고 있단 말이야. 매일 피아노도 연습해야 하고. 이영이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이영이도 참 안됐어. 맨날 서현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잖아. 그런데 서현주가 수능 때문에 고군분투할 때 이영이는 연 대표님과 결혼해서 부러워할 수밖에 없을걸? 집안끼리도 잘 맞아서 아이 낳고 산후조리가 끝나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잖아. 들은 바로는 이영이 웨딩드레스도 연 대표님이 직접 골랐다고 하던데? 전 세계에 단 한 벌뿐이고, 약혼반지도 몇억 원이나 된다던데...]하지만 유이영 팬들이 올린 글들은 모두 묻혀서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했다.점점 표정이 어두워진 유이영은 실시간 댓글을 보려고 페이지를 새로고침했지만 그 화면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유이영은 잠시 멈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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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유이영은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게시물이 삭제된 거 지훈 씨가 그런 거예요?”연지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일찍 자. 쓸데없는 글 보지 말고.”유이영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고마워요. 지훈 씨, 사실 전 괜찮아요. 저는 현주 씨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기뻐요.”이번에는 연지훈의 대답이 이전만큼 빠르지 않았다.“응. 일찍 자. 난 아직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연지훈이 차가운 반응을 보여서야 유이영은 안심할 수 있었다.“그러면 일찍 끝내고 얼른 자요. 저는 방해하지 않고 이만 끊을게요.”유이영은 이 전화 한 통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잠을 청해보기로 했다.“언니.”이때 밖에서 연채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방문이 열렸다.깜짝 놀란 유이영은 휴대폰을 냉큼 내려놓고 부드럽게 물었다.“왜요?”연채린의 사랑스러운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고,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연승재도 마찬가지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연채린은 다가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유이영의 팔에 머리를 기대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봤어요? 현주가 무려 수능 1등을 따냈다고요. 저는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거 절대 믿을 수 없어요. 분명 부정행위 했을 거라고요.”유이영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현주 씨는 성적이 늘 우수했잖아요...”“우수하긴요.”연채린은 즉시 반박하며 긴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언니도 그 멍청한 네티즌들처럼 서현주한테 속아 넘어가면 안 돼요. 무조건 부정행위 했을 거라고요. 승재 오빠도 서현주보다 훨씬 똑똑한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높은 점수를 따내지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부정행위를 한 게 틀림없어요.”연승재는 씁쓸하기만 했다.“연채린, 그만 좀 해. 수능에서 부정행위 할 리 없잖아.”연채린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전 상관 안 해요. 어떻게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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