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별이 되어 빛나리 / 챕터 101 - 챕터 110

별이 되어 빛나리의 모든 챕터: 챕터 101 - 챕터 110

198 챕터

제101화

이강우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귀청이 째질 듯한 마찰음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그는 고개를 홱 돌리고 눈가에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럼 아니야?”심성빈은 전에 그녀에게 그토록 차갑게 굴더니 이제 와서는 줄곧 감싸고 돈다. 이게 그녀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고?“강우 씨!”송하나는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차가운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배어 있었다.“저랑 심성빈 씨는 단순한 업무 관계에요. 현진 바이오테크의 협력 건 외에는 어떤 사적인 연락도 없으니 안심하셔도 돼요. 저는 심성빈 씨한테 딴마음 품은 적 없어요.”차 안은 이내 죽음과도 같은 정적에 잠겼다. 오직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이강우는 눈 앞에 펼쳐진 아득한 차량을 바라보며 짙은 어둠 속에서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이내 그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방금 한 말 꼭 지켜!”차는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의사가 검사하는 동안, 송하나는 너무 아파서 주먹을 꽉 쥐었지만, 끝까지 신음 한 번 안 냈다.드디어 엑스레이 판독 결과가 나왔다.의사는 판넬을 가리키며 말했다.“뼈에는 이상이 없어요. 인대만 늘어난 정도라 발목이 붓고 붉어졌는데,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되도록 걷는 건 삼가시는 게 좋아요.”그는 멍과 붓기를 가라앉힐 약을 처방했다.돌아오는 길에서 침묵만 흐르는 차 안 분위기에 이강우는 갑갑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차는 어느 주택가 골목 앞에 멈춰 섰다.송하나가 이제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이강우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그가 몸을 숙이고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송하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했다.“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그녀는 차 문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하지만 발목에 체중이 실리자마자 너무 아파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송하나는 통증을 참고 절뚝거리며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이강우는 제자리에 서서 억척스러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여자인데, 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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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최로운은 속으로 의심의 불씨가 활활 차올랐다.아침 댓바람부터 심성빈의 조수석에 탄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설마 그가 오랫동안 숨겨온 애인?한편 심성빈의 차가 현진 바이오테크 건물 앞에 멈춰 설 때쯤, 최로운의 스포츠카는 겨우 길모퉁이를 돌았다.그는 핸들에 얼굴을 묻고, 심성빈이 조수석 쪽으로 와서 여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부축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여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최로운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헐, 대박!”그는 너무 놀라 핸들에 부딪힐 뻔했다.송하나였다니?심성빈이 왜 그녀를 데리고 함께 출근하는 걸까?이 무슨 스펙터클한 전개란 말인가!최로운은 길모퉁이의 스포츠카 안에서 무려 30분 넘게 앉아 담배 두 개비를 태웠다.그는 심성빈이 송하나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은 눈이 시릴 정도로 조화로웠다.심지어 심성빈 저 녀석이 송하나의 가방까지 들어주고 있다니?한때 심성빈에게 대시했던 부잣집 딸들도 누리지 못했던 혜택인 것을.마침내 그가 다시 건물 입구로 나왔다.차 문을 열고 이제 막 타려던 참인데 최로운의 스포츠카가 끼익 소리를 내며 그의 앞에 가로막듯 멈춰 섰다.화들짝 놀란 심성빈은 미간을 구기며 쏘아붙였다.“귀신이야 뭐야?”이때 최로운이 차에서 뛰어내렸다.“말 돌리지 마라!”그는 마치 ‘너 딱 걸렸어!’라는 표정으로 심성빈 앞에 성큼 다가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말해봐, 송하나랑 어떻게 된 거야? 아침부터 출근길 픽업해주고 건물 안까지 같이 들어가? 너 설마 송하나한테 마음 있냐?”심성빈은 양복 소매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담담하게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하나 씨 발목이 아직 안 나아서 계약하러 가는 길에 태워다준 것뿐이야.”“가는 길?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왔는데 가는 길이라고?”최로운은 갑자기 몸을 숙이고 예리한 눈길로 심성빈을 쏘아보았다.“내가 그 만년필 조사 좀 시켜봤는데 송하나가 가게에서 똑같은 걸 샀더라. 네 주머니에 있는 그거 송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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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심성빈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잠시 침묵 끝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일단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특히 강우는 절대 안 돼.”“알았어. 알았다고.”최로운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나 입 무거워.”심성빈이 차에 오르자 그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창문에 바짝 달라붙으며 소리쳤다.“그럼 너랑 송하나는...”“내가 알아서 해.”심성빈은 그의 말을 자르고 시동을 걸어 떠났다.최로운은 제자리에 서서 심성빈의 차가 교차로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이어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지만, 한참을 더듬어도 라이터를 찾지 못해 짜증스럽게 담뱃갑을 찌그러뜨렸다.대체 왜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걸까?심성빈과 이강우 모두 그에겐 가장 친한 친구인데...이미 흠뻑 빠져버린 심성빈,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강우.최로운은 그사이에 끼어서 마치 도마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꺼내 이강우에게 문자를 보냈다.[저녁에 시간 괜찮아? 간만에 한잔할까?]어찌 되었든 그는 먼저 이강우의 속내를 파악해야 했다.만약 이강우가 이 일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심성빈은 정말 큰 곤경에 처할 터였다.현진 바이오테크.임효민은 송하나의 걸음걸이가 살짝 이상한 것을 보고,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하나 언니?”그녀의 시선은 살짝 부은 발목에 머물렀다.“발이 왜 이래요? 혹시... 다치신 거예요?”송하나는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어제 부주의로 살짝 삐끗했어요.”“다 제 탓이에요!”임효민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어제 제가 먼저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언니 곁에 있었다면, 분명 잡아드릴 수 있었을 텐데...”그녀가 점점 더 자책하는 모습에 송하나가 다정하게 등을 토닥였다.“효민 씨 탓 아니에요. 제가 중심을 못 잡은 거죠.”그녀는 임효민의 팔을 부축받아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지난주 실험 기록 좀 가져다줄래요? 오전까지 데이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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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서유준은 고집스러운 그녀의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그는 송하나를 너무 잘 안다. 겉보기엔 온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지지 않으려는 끈질긴 기개가 숨겨져 있었다.특히 일에서는 결코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다.“그래, 알았어.”서유준은 끝내 타협하고 몇 가지 당부를 더 늘려놨다.“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마. 불편하면 바로 얘기하고.”좀 전의 관심이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생각됐는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였다.“선생님께서 네가 아픈 몸으로 일하는 걸 알면, 분명 전화해서 나를 혼내실 거야.”송하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걱정 마세요. 절대 고자질하지 않을게요.”저녁.최로운은 이강우를 술집으로 불러냈다.그는 약속 시각보다 반 시간이나 먼저 도착했다. 손가락으로 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이따가 어떻게 물어야 들키지 않고 자연스러울까?“뭔데? 갑자기 웬 술?”문득 이강우의 목소리가 문 쪽에서 들려왔다.그는 오늘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옷깃에는 촉촉한 밤이슬이 묻어났다.바 테이블 앞에 앉을 때, 상대가 선뜻 다가서지 못할 싸늘한 기운까지 풍겼다.“우리 강우 오늘 꽤 빨리 왔네?”최로운은 얼른 웨이터를 불렀다.“여기 위스키 한 잔, 온 더 락으로 줘.”술이 나오자마자 최로운은 잔을 들었다.“짠!”그는 단숨에 반 잔 넘어 마셔서 목구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이강우가 눈썹을 치키고 천천히 술잔을 흔들었다.얼음이 잔 벽에 부딪히는 맑은소리가 울렸다.“무슨 고민 있냐?”“뭐래.”최로운은 다시 술을 가득 채우고 그와 잔을 부딪쳤다.“그냥 네가 보고 싶길래, 술 한잔하려고 불렀지.”말을 마친 최로운이 또다시 연거푸 술을 들이켜며 얼굴을 찡그렸다.몇 잔을 마셔도, 이강우의 잔은 겨우 3분의 1밖에 비지 않았다.그는 최로운이 잔을 연거푸 비우는 것을 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너 오늘 좀 이상해.”“그래?”최로운은 트림을 했다.“나 멀쩡한데.”“말해봐. 도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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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아무리 그래도 결혼한 지 4년이나 됐는데 너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송하나한테 호감 없어?”이강우는 술을 마시다 말고 잠깐 멈칫하더니 곧이어 담담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응, 없어.”그제야 최로운은 마음속에 거대한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숨통이 트였다.그는 술을 한 잔 더 따라서 이강우 앞에 내밀었다.“그럼... 두 사람 언제 이혼해?”“성신테크 소송 끝나면 바로.”이강우의 목소리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최로운은 잔 테두리를 살살 어루만지며 무심한 척 질문을 건넸다.“송하나 지금 꽤 잘나가는 것 같더라. 능력도 있고, 외모도 빠지지 않고... 이혼하고 나서 혹시라도 다른 남자들이 대시하면... 너 그때 질투 안 할 자신 있어?”이강우는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는 목울대를 움직이며 쿨하게 대답했다.“나랑 상관없는 일이야.”최로운이 더 물어보려 했지만, 이때 이강우가 예리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그런데 너 오늘 줄곧 송하나에 관해서만 묻는다?”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걔한테 관심 있어?”“미쳤어?”최로운은 너무 놀라서 술기운이 반쯤 달아났다.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야, 내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네 와이프인데... 아니, 이제 곧 전 부인이 될 사람인데 어떻게 감히 넘봐?”한창 말하고 있을 때 이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송태리한테서 걸려온 전화였고 그는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응, 술 마시고 있어...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이강우는 트렌치코트를 집어 들었다.“태리가 좀 아프대. 잠깐 가봐야겠어.”“야, 가지 마...”최로운은 그를 붙잡으려다가 눈빛에 그만 깨갱 했다.“너도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이강우는 이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이에 최로운은 복잡한 눈길로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이강우가 송태리에게 저토록 신경 쓰는 걸 보면 송하나에겐 전혀 아무 느낌 없는 거겠지?그는 술병을 집어 들고 벌컥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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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최로운, 이 개자식아!”그녀는 낮게 고함을 지르며 최로운을 침대로 걷어찼다.몸에 달라붙은 셔츠가 너무 역겨워서 질색팔색하며 벗어버리자 안에 입은 민소매가 훤히 드러났다.침대 위에 누워 인사불성이 된 최로운을 한참 쳐다보다가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욕실로 달려갔다.뜨거운 물줄기가 몸에 쏟아지자 차설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술집에서 하필이면 이 망할 놈이 자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걸 들어버렸고, 그래서 결국 이런 귀찮은 일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차설아가 샤워 가운을 두르고 나왔을 때, 최로운은 흐릿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자신의 방에 샤워 가운을 두른 여자가 떡하니 서 있었고 긴 머리가 축축이 젖어서 어깨에 드리워진 모습을 보더니 그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화들짝 놀란 최로운은 몸을 뒤로 움츠렸다.“너... 누구야?”차설아는 팔짱을 끼고 그를 보며 짜증스럽게 물었다.“널 여기까지 데려다준 사람.”최로운의 시선이 그녀에게 맴돌더니, 갑자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허구한 날, 샤워는 왜 해? 설마 나랑 자려고 온 거니?”그는 가슴을 감싸 쥐었다.“경고하는데 나 쉬운 남자 아니야.”찰싹!찰진 귀싸대기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최로운은 머리가 홱 돌아간 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아팠다.그는 얼굴을 감싸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지금 나 쳤어?”“그래, 쳤다, 왜?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차설아는 손을 흔들며 눈빛에 조롱이 가득했다.“네가 나를 그렇게 좋아해 주는 걸 봐서 도와준 거지. 안 그러면 쳐다도 안 봤어.”최로운은 더욱 어리둥절했다.“내가 너를 좋아한다고?”그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차설아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평평한 저 몸매가 S라인 모델에 감히 비할 바가 된다고?한편 차설아는 그의 시선에 불쾌감을 느끼고 또다시 뺨을 후려쳤다.“이런 개자식이! 어딜 쳐다보는 거야!”그녀는 팔을 부둥켜안고 제자리에 서서, 턱을 높이 치켜들었다.“잘 들어. 넌 내 스타일 아니니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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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심성빈은 찻잔을 들며 눈가의 실망감을 감췄다.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애썼다.“사실 딱히 급한 일은 아니니 송하나 씨가 회복되면 그때 다시 의논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지금 저를 못 믿으시겠다는 건가요?”서유준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 밑에 약간의 견제가 서려 있었다.“현진의 프로젝트는 저랑 하나가 늘 함께 해왔으니 하나 생각은 제가 잘 알아요.”“아이고, 제가 어찌 감히요.”심성빈은 감정을 추스르며, 홍보 제안서를 펼쳤다.“그럼 일단 세부 사항부터 논의해 볼까요?”회의실 안에서 차분한 대화가 이어졌다.그 시각.이강우의 차가 심하 그룹이 있는 빌딩 상권으로 막 접어들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법무팀에서 보낸 메시지인데 성신테크 소송에 심하 그룹의 추가 증명 서류가 필요하며, 되도록 오늘 안에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그는 핸들을 돌려 곧바로 심하 그룹으로 향했다.대표이사실 문을 열자 비서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이 대표님, 심 대표님은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어디로 갔는데?”비서는 공손하게 차를 건넸다.“현진 바이오테크로 가셨습니다. 협력 프로젝트 때문에 간다고 하셨어요.”이강우는 차를 건네받던 손이 멈칫했다.“현진에?”비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말했다.“네. 그 프로젝트는 심 대표님이 직접 책임지고 계셔서 최근에 자주 찾아뵙고 있어요.”이강우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깊은 사색에 잠겼다.심성빈은 요즘 현진 바이오테크에 자주 드나든다.감사회에서 그가 송하나를 특별히 챙기던 모습을 떠올리자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이강우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심하 그룹을 나섰다.차를 몰고 한참을 가고 나서야 자신이 현진 바이오테크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참나, 기가 막혀서!”이강우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브레이크를 밟지는 않았다.현진 바이오테크 건물 앞.그의 차가 막 멈춰 섰을 때, 서유준이 마침 심성빈을 배웅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서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 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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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서유준은 칼을 쥔 손이 움찔거리고 토마토즙이 칼날을 따라 도마 위에 뚝뚝 떨어졌다.그는 고개를 돌리면서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은근히 떠보듯이 물었다.“그래?”송하나는 그의 말투에서 전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말이 끝나기 바쁘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딩동 하는 소리가 돌연 주방의 소음을 깼다.또한 서유준까지 하려던 말을 멈추게 했다.‘그럼 한번 만나볼 생각 있니?’송하나가 현관문을 열자 놀랍게도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이강우였다.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여 은근히 거리감이 묻어나는 말투로 물었다.“강우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강우는 손에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었다.그는 마치 지나가던 길에 들른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께서 네가 발목 다쳤다고 걱정하시면서 국을 끓여 보내셨어.”송하나는 보온도시락을 건네받으며, 낯선 사람을 대하듯 격식을 차리면서 대답했다.“고마워요. 나중에 할머님 찾아뵐게요.”바로 이때, 서유준이 토마토계란볶음을 한 접시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하나야, 밥 먹자.”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공기마저 얼어붙을 것 같았다.서유준이 귀여운 앞치마를 두른 모습은 꼭 마치 제집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이강우는 동공이 아찔거리더니 눈가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송하나의 집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다니?한편 서유준은 태연하게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 대표님, 오셨군요. 마침 밥 다 됐는데 들어와서 같이 드실래요?”이강우는 식탁 위에 놓인 두 벌의 밥그릇과 수저를 훑고, 다시 송하나에게 시선을 돌렸다.왠지 모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한없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됐습니다!”곧이어 자리를 떠나는 이강우, 구두가 복도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그 속에는 적나라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이강우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굳은 얼굴을 쳐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턱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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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아직 아침 안 드셨죠? 이거 제가 방금 산 두유라 따뜻해요.”송하나는 웃으며 밀어냈다.“먹었어요. 효민 씨 드세요.”그녀는 책상 위를 쭉 훑더니 말투가 금세 업무 모드로 바뀌었다.“며칠간 실험 데이터 정리 다 됐나요?”“벌써 다 정리했어요!”임효민이 자료를 가지러 가려는 참인데 휴대폰이 딩동 울렸다.그녀는 화면을 내려다보더니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왜 그래요?”송하나도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무슨 일 있어요?”“아, 아니에요, 아무것도!”임효민은 황급히 화면을 끄고, 허둥지둥 자료철을 뒤적였다. 그녀는 어느덧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렸다.“그, 마지막 페이지 한 장만 인쇄하면 되는데, 금방 끝낼게요!”송하나는 허둥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가에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대체 왜 이러는 걸까?하루 종일 임효민은 마치 넋을 잃은 듯했다.실험할 때 라벨을 삐뚤빼뚤하게 세 번이나 뒤집어 붙이고, 점심 식사 때도 실수로 식판을 잘못 가져왔다.송하나는 그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다가 퇴근 무렵에 임효민을 불러 세웠다.“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언제든 말해요.”임효민은 옷깃을 움켜쥐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언니. 저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 덕분에 배울 것도 많고, 전혀 힘들지 않아요.”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그냥... 사적인 문제가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아서요.”송하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요.”임효민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네!”퇴근 무렵, 임효민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방금 차 불렀는데 같은 방향이면 태워줄까요?”송하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들고 손사래를 쳤다.“아니요, 괜찮아요. 언니 먼저 가세요. 저는 마무리할 일이 좀 남아서 다 끝내고 갈게요.”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송하나와 눈도 마주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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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현진은 아주 포용적인 회사예요. 하나 언니도 저한테 너무 잘해주세요.”임효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녀는 도무지 송태리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이렇게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 삶는 고통은 차라리 때리고 욕하는 것보다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송태리는 웃으며 가방에서 빛바랜 편지 봉투를 꺼냈다.그녀는 느긋하게 안의 내용물을 꺼내, 한 장씩 테이블 위에 펼쳤다.그 위에는 임효민이 중학교 시절, 몇 명의 여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구석에 몰린 채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물범벅이 된 사진들로 가득했다.어떤 종이에는 [내가 송태리 목걸이를 훔쳤다.]라고 삐뚤빼뚤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임효민이 강제로 눌러 찍은 지문이 찍혀 있었다.심지어 알몸으로 학교 찐따와 부둥켜안은 나체 사진까지 있었다. 이것들은 바로 그 해 송태리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임효민의 옷을 벗기고 찍었던 사진이었다.이 물건들을 보자 임효민은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머리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수년간 겨우 억눌러왔던 악몽인데 송태리가 너무나도 쉽게 또다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이 사진들, 설마 다 잊은 건 아니겠지?”송태리가 지극히 태연한 말투로 말했다.“그땐 참 재미있었는데. 다 같이 신나게 떠들면서 놀았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그리워. 그렇지?”“선배님!”임효민이 대뜸 언성을 높이고 무너지기 직전의 갈린 목소리로 외쳐댔다.곧이어 바닥에 철썩 무릎을 꿇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다가가 송태리의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았다.“선배님, 저 정말 선배님 목걸이 안 훔쳤어요. 제발 이 물건들 돌려주시고 이제 그만 저 좀 내버려 두세요!”그녀는 울면서 머리를 조아리느라 이마가 빨갛게 물들었다.한편 송태리는 역겹다는 듯 발을 뒤로 움츠렸다. 행여나 그녀에게 닿기라도 한 것처럼.“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 옛날 사진 몇 장 가지고 이렇게 울고불고 난리 칠 일이야?”임효민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눈빛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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