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Chapter 361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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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어릴 적 강시원은 자주 이곳에 와 소파에 앉아 기계 모형을 만지며 어머니 퇴근을 기다렸다.수많은 밤을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가 희미하게 눈을 뜨면 아직도 사무실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지칠 줄 모른 채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사무실은 주인이 바뀌며 모든 게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소파도 바뀌고 주류장까지 들여놓았으며, 미니 골프 시뮬레이터까지 마련해 놓았다.그야말로 강용호가 얼마나 향락을 즐기는지 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영원 테크가 예전에 가졌던 본연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시원아, 너 정말 참을성이 없구나. 네 일자리 문제는 외삼촌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너무 조급해할 것 없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시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자르며 불붙을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봤다.“엄마 발명 특허는 절대 팔아선 안 됩니다.”강용호는 깜짝 놀라 물었다.“어떻게 알았어? 서정혁이 알려준 거야?”“어떻게 알았는지는 상관 마세요. 어쨌든 엄마의 피와 땀이 담긴 성과를 파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몸 옆에 내려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강시원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가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이 특허들은 엄마가 저와 회사에 남겨준 추억이자 회사의 근본입니다. 이걸 팔아버리면 영원 테크가 사실상 붕괴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면 엄마가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잠들지 못할 거예요.”“시원아, 이 시대는 계속 움직이고 혁신해야 살아 남아. 넌 나이도 어린데 생각이 왜 이렇게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냐?”강용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영원 테크를 위해 온갖 마음 고생을 하느라 밤잠도 제대로 못 이뤘어. 여동생의 가업을 지키려고 이 늙은 몸을 다 던졌다. 그런데 지금 회사가 신에너지 사업 확장으로 자금줄이 끊어진 상태야.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공장 가동도 멈추고 직원 월급도 줄 수 없어. 그때 가서 추억이니 근본이니 따질 수 있겠어? 회사가 버텨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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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다음 날, 강시원은 서정혁의 전화를 받았다.오늘 할머니 정기 검진이 있지만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 모셔다드릴 수 없으니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강시원더러 와서 돌보라고 했다.강시원은 망설임 없이 제시간에 병원으로 갔다.할머니 건강 검진을 함께 마치고 병실에서 점심도 같이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정혁이 나타났다.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강시원이 할머니와 속내를 털어놓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서정혁의 눈에 들어왔다.오후 따스한 햇살이 여인의 맑고 단아한 얼굴을 부드럽게 내리쬐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풍겼다.서정혁은 저도 모르게 깊은 눈빛으로 강시원을 멍하니 바라봤다.“어머, 정혁아? 왔으면 얘기라도 하지, 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박해순이 먼저 서정혁을 알아보고 한마디 했다. 눈에는 서정혁을 반기는 웃음이 가득했다.“할머니, 안색이 아주 좋아 보이시네요.”조용히 강시원 뒤로 다가간 서정혁은 따뜻한 큰 손을 자연스럽게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에 얹었다.강시원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남자는 몸을 굽혀 얇은 입술을 그녀 귓가에 가까이 대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검진 결과 나왔어? 할머니 상태는 어때?”귓가가 간질거렸지만 강시원은 이런 느낌이 너무 불편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괜찮으셔.”눈을 살짝 감은 뒤 고개를 돌렸다.워낙 피부가 하얗고 고운 데다 귓가가 간질거린 탓에 목덜미에 연분홍 기가 돌아 삼월에 활짝 핀 아름다운 복숭아꽃 같았다.눈을 가늘게 뜬 서정혁은 얇은 입술을 올렸다.“그래, 우리 와이프. 수고했어.”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든 강시원은 귀신 보듯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5년 만에 서정혁이 처음으로 강시원에게 ‘와이프'라고 부른 것이다.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모르는 사이인 척했고 사람 없을 때는 차갑고 무관심했을 뿐이었다.‘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강시원은 차갑게 시선을 거두었다.‘또 연기하는 거겠지.’아마 재벌 대표 중에서 서정혁은 연기력이 최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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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할머니도 남편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젊은 부부가 마음에 걸려 안심할 수 없을 뿐이었다.그래서 서정혁에게 강시원을 잘 대해주라고 거듭 당부한 건, 박해순도 자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손자와 손주며느리가 곁에 있자 박해순은 며칠 만에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두 사람이 병실을 나오자 강시원은 투자 문제가 마음에 걸려 마음이 편치 않은 채 떠나려 했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팔뚝을 잡아당겼다.“왜 그래?”강시원은 팔이 아파 눈살을 찌푸렸다.언제나 강시원에게 다소 거칠기만 한 서정혁인지라 임지민에게 대하듯 부드러운 모습은 그녀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남자가 강시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와봐, 얘기 좀 하자.”강시원은 그 말에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남녀 간 힘의 차이가 워낙 많이 났기에 몸을 반쯤 웅크린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곁에서 지켜보던 한수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한수현의 각도에서 보면 대낮에 서정혁이 여자를 끌어안는 것처럼 보였다.강제로 사랑이 이어지는 분위기마저 감돌았다.복도 끝, 용모가 뛰어나고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빚을 등에 진 채 서 있었다.“바빠. 할 말 있으면 빨리 해.”강시원은 서정혁의 눈을 쳐다보지 않은 채 짜증 섞인 태도로 말했다.서정혁은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비웃었다.“뭐가 그렇게 바빠? 쓰레기통 같은 곳에 일자리라도 찾으러 다니는 거야?”강시원은 몸 옆에 내려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강시원, 네가 내 곁을 떠나고 서정 그룹을 나가면 잘 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능도 없는 외삼촌에게 기대려고 했나 봐.”서정혁은 점점 창백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독설을 쏟아냈다.“네 외삼촌, 재능도 별로 없고 경영도 서툴러 영원 테크를 가산까지 팔아야 할 지경으로 만들었어. 사람을 시켜 알아봤는데 전과도 화려해서 이제 어느 은행도 영원 테크에 대출해 주려 하지 않아. 특허 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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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서정혁이 오히려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Nora가 없었다면 서정 그룹 신에너지 자동차 판매량이 전국 1위에 오를 리도 없었고 그 짧은 3년 사이에 신에너지 시장에 자리 잡을 수도 없었을 일이다.서정혁이야말로 눈앞에 큰 산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바보였다.강시원의 말에 서정혁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어두운 미소를 지었다.아마 그때의 말 한마디가 배기훈의 마음에 가시로 박힌 모양이었다.배기훈이 그때 한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신경 쓰기 시작했으니 결국 물러선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강시원이 일자리도 없고 힘든 상황에 배기훈이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마 강시원을 멀리하려는 속셈이 틀림없다.‘흥!’이런저런 생각에 서정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강시원을 목숨보다 더 아끼는 척 행세하지만 속내는 여전히 이해득실만 따지는 계산적인 사람일 뿐이라고...사생아로 태어나 자기 이름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한 채 어둡고 습한 구석에서 자란 사람이 정상인지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강시원을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겠는가.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강시원, 우리 거래 하나 하자.”곧은 자세로 선 서정혁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태연하게 강시원을 바라보았다.“너도 알다시피 지금 영원 테크 사정이 굉장히 힘들어. 네 외삼촌은 융자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신에너지 자동차 생산이 전면 중단될 판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파산은 시간 문제야. 내가 영원 테크에 1차로 융자를 해줄 수 있어. 얼마가 필요하든 네 외삼촌이 부르는 대로 다 줄게.”천천히 몸을 기울여 서로의 숨결이 얽히는 거리까지 다가갔다.“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나와 이혼하려는 마음 아예 접어.”“흥...”강시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싫다면 어떻게 할 건데?”서정혁도 자신만만한 듯 웃었다.“그러면 최저 가격으로 영원 테크 특허를 인수할 뿐만 아니라 네 외삼촌이 스스로 달려와 영원 테크를 사달라고 애원할 수도 있어.”“서정혁, 이제 돈으로 전 와이프를 협박해? 당신, 이 정도로 바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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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마음이 답답해진 강시원은 밤에 집에 홀로 있기 너무 갑갑했는지 성수연을 불러 집에서 함께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성수연은 오는 길에 과일 맛 맥주 한 봉지와 새우 두 상자를 사 왔다. 두 사람은 샤브샤브와 함께 새우를 까고 맥주를 마시며 마치 대학 시절 주말로 돌아간 듯 단순하고 소박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세상에! 서정혁이 그렇게 비겁한 수단으로 너를 협박하다니?! 그러고도 뭐 경시 바닥 귀공자라고! 그냥 천하의 나쁜 놈일 뿐이야!”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마신 성수연은 입가 거품을 힘껏 닦으며 유리잔을 부술 듯 화를 냈다.“세상이 인플레이션이 심해져도 저 사람은 그냥 악당 중의 악당이야! 나쁘고 못됐기 짝이 없어!”“네가 그렇게 말하니 속이 시원하네! 나도 한 잔 마셔야겠다.”강시원은 눈을 감고 가늘고 하얀 목을 치켜들며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와! 대단하다!”성수연은 감탄하며 박수를 치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강시원은 주량이 꽤 센 편이었지만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잘 익은 복숭아처럼 사랑스러웠다.그 모습에 성수연은 턱을 괴고 바라봤다.“우리 시원이, 이렇게 예쁜데! 서정혁 그 양심 없는 위선자는 어떻게 이렇게 예쁜 너를 이렇게 괴롭힐 수 있어? 마음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그 사람도 마음은 있겠지. 다만 그 마음을 처음부터 나한테 준 적이 없을 뿐.”강시원은 담담하게 웃으며 다시 술을 한 잔 마셨다.“그 개 같은 사람 얘기는 그만해, 기분만 나빠지니까!”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성수연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시원아, 그 투자 유치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강시원은 다시 술을 한 잔 들이마신 뒤 말했다.“기훈 씨에게 한번 물어볼 생각이야.”“역시 나랑 텔레파시가 통하네. 나도 딱 그 생각 하고 있었어!”성수연은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배기훈은 라이트 미라클 아시아권 대표니까 확실히 돈은 있을 거야. 게다가 너한테 마음도 있고, 너도 그 사람 아들을 친자처럼 아껴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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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성수연은 태연한 척 말했지만 강시원은 그녀가 진실을 숨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성수연의 화려하고 예쁜 얼굴 뒤에는 상처투성이의 몸이 숨겨져 있었다.그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는 거의 모두 심지경을 위해 생긴 것들이다.왼쪽 어깨에 총상 자국은 아직도 비 오는 날이면 은은하게 아파 진통제를 먹어야 견딜 수 있었다.강시원은 심지경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서로 솔직한 모습으로 마주할 때 온몸에 상처가 있는 이 소녀를 보며 단 한 번도 연민을 느껴본 적이 없는지...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다면 성수연이 자신을 위해 몇 번이나 뛰어드는 걸 지켜볼 수 있겠는가. 성수연에게 안정적인 삶을 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수연아, 경호원 일 그만두는 건 어때?”목이 살짝 멘 강시원은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나 적금도 충분히 있으니까 앞으로 내가 너를 먹여 살릴게.”“뭐?”깜짝 놀란 성수연은 너무 감동을 받아 심장이 뛰었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웃었다.“내가 얼마나 무능했으면 내가 먹여 살리겠다는 말까지 하겠어!”“그게 아니라 수연아...”“걱정 마. 이 일 오랫동안 해서 익숙하고 잘 해내고 있어. 조기 은퇴해서 이 긴장감 넘치는 생활을 떠나라 하면 오히려 내가 적응 못 해.”성수연은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굳게 결심했다.‘시원아, 꼭 그럴 거야.’돈을 충분히 모으고 외할머니를 잘 정착해 놓은 뒤 언젠가 완전히 심지경 곁을 떠날 것이다.‘오늘 참는 건 내일의 자유를 위한 것이니 내 선택을 이해해 줘.’...성수연이 떠난 뒤 휴대폰을 쥐고 소파에 앉은 강시원은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배기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려도 상대방은 받지 않았다.강시원은 배기훈이 못 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걸었다.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아이 방 안, 가운을 입은 배기훈은 침대 머리에 기대 배다울을 안고 자기 전 동화를 읽어주고 있었다.동화책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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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그날 밤 강시원은 배기훈에게 세 번이나 전화했지만 전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보낸 메시지도 답장 한 통 없었다. 마치 깊은 바다에 돌 던진 듯 묵묵부답이었다.침대 머리에 앉아 멍하니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배기훈이 너무 바쁘거나 일찍 잠들어 못 들었을 뿐 내일 아침이면 당연히 답장해 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꼬박 이틀을 기다려도 배기훈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강시원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외삼촌과 약속한 기한은 점점 다가오는데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은 없어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셋째 날 오후, 학교 하교 시간.배기훈은 간만에 직접 학교 정문까지 아들 마중을 나왔다.곧고 훤칠한 기럭지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하얗고 차분한 피부에는 타고난 귀한 기품이 묻어났다. 복숭아꽃 같은 눈으로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자 다정한 느낌이 감돌았다. 깔끔하고 선명한 턱선은 눈과 어울려 놀라운 대비를 이루어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와, 저분 누구야? 너무 멋지다! 배우 아닌가?”주변 엄마들이 수군거리며 배기훈에게 시선이 꽂혔다.“학교 하교 시간이 좀 늦었으면 하는 거 처음이네. 세상 최고 미남을 더 오래 보고 싶어.”“눈이 호강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이가 벌써 컸는데 당연히 와이프가 있을 거야!”“아이 있다고 꼭 와이프가 있는 건 아니잖아? 이혼했을 수도 있고... 이렇게 훌륭한 남자는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데... 일찍 한 여자에게 묶이면 너무 아깝지.”여자들이 저마다 말을 나누는 사이 하교 종이 울리며 학교 정문이 활짝 열렸다.아이들이 활기찬 새처럼 우르르 나와 부모에게 달려갔다.“아빠!”배다울은 작은 가방을 메고 달려 나왔다. 아버지가 너무 눈부셔 한눈에 사람들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다울아!”배기훈은 활짝 웃으며 몸을 굽혀 두 팔을 벌려 아이를 품에 안았다.얼음처럼 차갑고 깊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주변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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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강시원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나도 다울이 정말 보고 싶었어.”“강시원 씨, 안녕하세요.”배기훈이 차가운 어조로 말을 끊으며 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왜 갑자기 차를 막고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는 거죠?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확 달라진 남자의 냉담한 태도에 강시원은 살짝 긴장했지만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기훈 씨, 급히 할 말이 있어요.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잠시 따로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두 사람은 길 건너 카페로 갔다.서로 마주 앉은 뒤 배기훈이 서정혁과 달리 쓴 블랙커피보다 달콤한 걸 더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던 강시원은 라떼를 시킨 뒤 설탕 한 조각까지 넣어 주었다.하지만 배기훈은 생수만 마실 뿐 강시원이 시킨 커피는 건드리지도 않았다.강시원은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배기훈의 태도가 확 바뀐 걸 아무리 둔해도 알 수 있었다.차갑고 멀어진 느낌, 마치 처음 만난 남남처럼...“강시원 씨, 할 말 있으면 직접 하세요. 아들이 집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으니까.”배기훈의 낮은 목소리에 강시원은 하던 생각을 멈췄다.“배 대표님, 오늘은 저의 엄마, 강부안 여사가 세운 회사 영원 테크를 대표해서 찾아왔어요.”깊이 숨을 들이마신 강시원은 가방에서 준비한 서류 자료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넸다.“이건 영원 테크 신에너지 자동차 프로젝트 자료입니다. 최신 모델이 이미 3차 융자 단계까지 왔는데 지금 자금줄에 문제가 생겨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배 대표님, 라이트 미라클이 지난 2년간 신에너지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걸 알고 있습니다. 저희 영원 테크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한번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금만 제때 들어오면 프로젝트가 정상 가동되는 순간, 영원 테크 신에너지 차량 판매량이 반드시 서정 그룹의 JS9 Mate를 넘어설 거라 장담합니다.”배기훈은 고개를 들어 앞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당차고 포부 가득한 모습을 보더니 비꼬는 듯 입가를 올렸다.“강시원 씨, 허황된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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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강시원은 온몸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차가움에 한기까지 느껴졌다.배기훈의 말은 마치 한 통의 얼음물처럼 강시원의 온몸을 휩쓸었다.남자는 단 한 번 망설이는 기색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뜨려 했다.“대표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강시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배기훈을 붙잡았다.그러자 배기훈이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뒤를 돌아보았다.“예전에 한 가지 부탁은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신 거 기억나세요?”목이 멘 강시원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꽉 쥐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지만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속의 불안함을 그대로 드러냈다.“지금 그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위기에 빠진 영원 테크를 구해주세요. 대표님이 말씀을 어기는 분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배기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깊은 눈빛으로 강시원을 응시하자 온몸이 굳은 강시원은 머리까지 저릿저릿했다.한참 뒤, 배기훈이 피식 웃었다.“난 이미 약속을 지켰는데 강시원 씨, 기억 못 하나 봐요?”강시원은 멍해졌다.“언제...”“오대호가 고용한 납치범에게 납치됐을 때, 전화에서 살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 않았나요?”복숭아꽃 같은 배기훈의 눈이 더욱 어두워졌다.“강시원 씨, 설마 그 일을 벌써 잊어버렸나요?”순간 분홍 입술을 살짝 떤 강시원은 목이 막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그때 일까지 약속에 포함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정작 반박할 수도 없었다.그날 확실히 목숨을 살려달라 애원했고 배기훈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해주었다.남남 사이인데도 최선을 다해 도와준 것이다.여기서 더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사실 반년 전부터 시원 씨 외삼촌이 이 자료를 내게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때 이미 단호하게 거절했었고요. 오늘 똑같은 말, 다시 한번 하죠...”배기훈의 눈빛은 신이 세상을 내려다보듯 이성적이고 냉혹했다.“라이트 미라클은 오직 미래를 만들 뿐, 기적을 만들지는 않아요.”말을 마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강시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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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전적이 뭐가 화려하다고... 날 서정혁 같은 개새끼로 보는 거야?”검은 눈썹을 살짝 치켜든 배기훈은 오히려 이 비유가 마음에 드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런데 말이야, 내가 해외 출장 갔을 때 서정혁 비서한테 전화가 왔어.”배기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서정혁이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그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신우민이 턱을 괴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쓴웃음을 지었다.“그 비서가 대리로 나서서 자기네 할머니 심장 이식 수술해달라고 부탁하더라. 나와 네가 형제 같은 사이인 걸 모를 리 없는데, 정말 얼굴이 어쩜 이렇게 두꺼울 수가 있어? 그런 소리를 어떻게 내뱉는지 모르겠네.”시선을 살짝 내린 배기훈이 잔 속 술을 흔들며 물었다.“거절했어?”“당연하지! 서정혁이 자기가 세상 제일 잘난 줄 알고 살잖아.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 듯 비서 보내서 전달하고. 자기가 뭐 대통령인 줄 알아? 옛날 왕조도 망한 지 오랜데. 정성 하나 안 보여주는데 걔 부탁 들어주면 진짜 바보지!”배기훈이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들어줘.”술을 입에 머금었던 신우민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뭐? 내가 바보로 보여?”“박해순 어르신 상태가 위중해. 서씨 가문에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야. 네가 안 들어주면 서정혁이 분명 네 아빠 찾아갈 거야. 그러면 네 아빠가 경시 서씨 가문의 세력 때문에라도 억지로 너를 설득해 수술하라고 할 거야.”“흥, 난 원래 반항하는 성격이라 억지로 시키면 더 안 해.”신우민이 술잔을 탁하고 탁자에 내려놓았다.“본인들이 서정 그룹에 잘 붙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지. 아빠더러 직접 하라고 하든가, 안 되면 신형민이라도 나서겠지 뭐. 흥... 아직도 메스 들 수 있나 보자고.”신씨 가문에는 아들이 두 명이 있었다. 막내 신우민은 천재 의사로 열여덟 살 때부터 큰 수술에서도 거침없이 메스를 들고 완벽히 해냈다. 의사로 ‘데뷔’하자마자 세상의 주목을 받아 신씨 가문의 영광이 됐다. 그렇게 원래 장남 신형민에게 쏠렸어야 할 기대감까지 전부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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