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의 모든 챕터: 챕터 371 - 챕터 380

421 챕터

제371화

“왜, 이제 뭐 도를 닦기 시작한 거야? 소문 캐는 건 정말 빠르네. 너랑 상관없는 일은 함부로 알려고 하지 마.”배기훈은 우렁찬 목소리로 술을 한잔 들이켰다. 잔을 꽉 쥔 큰 손의 손가락 마디는 어느새 하얗게 질렸다. 시선도 점차 흐릿해졌다.추억이 파도처럼 몰려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넌 이름이 뭐니?”“저... 저는 배훈입니다. 훈훈하다는 훈 자 씁니다.”중학교에 막 입학한 그 시기 배씨 가문 사람들은 배기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낡은 옷을 입고 어깨를 움츠린 채 걷는 뚱뚱한 소년, 친구들에게조차 따돌림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되었다.자기소개를 하는 순간조차 자신감 부족과 체형에 대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배씨 가문 자제들은 모두 최고급 귀족 사립 학교에 다녔지만 배기훈은 엘리트 교육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시내 중심가의 일반 중학교에 다녔기에 배씨 가문의 아들과 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처지였다.친엄마마저 배씨 가문에서 자리 잡기 위해 배씨 남매에게 아첨하기 바빠, 친아들인 배기훈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배율희가 칼로 배기훈의 교복을 찢어도 모르는 체했고 배명욱이 배기훈의 학비를 훔쳐 레이싱카 개조에 써도 따지지 않았다.아파도 돌봐주는 건 집사뿐이었다.반대로 배씨 남매가 조금만 아파도 그의 엄마는 남들보다 더 바삐 뛰어다니며 지극히 정성을 다했다.오랜 시간이 지나 배씨 가문에서 벗어나 예전에 당한 억울함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서러움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부모가 모두 살아계시지만 고아처럼 외롭게 살아왔다.열세 살이 되던 해, 강시원의 어머니 강부안이 배기훈의 앞에 나타났다. 짙은 어둠 속을 뚫고 비치는 찬란한 하늘빛처럼, 그의 흐릿한 삶에 빛을 비춰주었다.“훈? 누가 자기 이름을 그렇게 소개하니? 바보 같은 녀석, 네 이름은 깊고 성숙하며 그 누구보다도 훈훈한 마음을 가졌다는 뜻이야. 넓디넓은 바다이기도 하고 웅장한 산이기도 해. 하지만 내가 네 엄마였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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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열한 살이 되던 해, 배기훈이 돈을 훔쳤다고 배율희가 모함하자 배강수는 배기훈을 제대로 ‘훈육’한다며 옷을 다 벗겨 마당으로 끌고 나와 모든 가정부들이 보는 앞에서 회초리로 힘껏 때렸다.그럼에도 분노가 풀리지 않은 늙은 남자는 다시 시가 담뱃불로 그의 손목을 지졌다.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고기 타는 냄새는 배기훈이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의 트라우마로 남았다.그래서 지금까지도 구이집은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다.배기훈이 가만히 있자 한효선은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아직까지 여자친구 없다는 말에 혹시라도 결혼 못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해. 경시 상류층의 명문가 딸들 눈여겨보고 있으니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줄 거야. 그러면 꼭 만나봐라. 아빠 기대 저버리지 말고.”“필요 없습니다.”배기훈은 차갑게 거절했다.“그리고 지금 일이 바빠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가정을 먼저 꾸리고 일을 해야지. 이미 자리 잡았으니 연애도 같이 해야지.”“필요 없다고 했잖아요.”다시 한번 단호하게 거절하는 배기훈은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고 딱딱했다.한효선이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기훈아, 왜 이렇게 자꾸 싫다고만 하니? 혹시 정말로 서정혁의 아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배기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사람과 상관없어요.”“기훈아, 자식 마음은 엄마가 제일 잘 알아. 네 심정, 충분히 짐작이 가. 피하려 할수록 그 여자를 더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지.”배기훈은 눈빛이 잔뜩 어두워졌다.전화기 너머 한효선의 목소리도 한층 차가워졌다.“설령 네가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 여자는 분명 서정혁의 아내이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은 사람이야.”“서정혁의 여자라고 해서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배기훈은 억지 부리는 듯 냉소를 지었다.“네 아빠가 서씨 가문과 원수지간이기도 하고 나도 김설연이랑...”한효선은 말을 아꼈다.“어쨌든 그런 여자는 네 아빠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야. 안 그래도 이야기 꺼내봤는데 네 아빠가 아주 탐탁지 않아 하셨어. 우리 배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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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길에 차량이 많은 탓에 기사가 시속 40킬로로 느리게 달렸다. 그러다 보니 강용호의 차와 점차 거리가 벌어졌다.“기사님, 좀 더 빨리 가주세요!”마음이 초조한 강시원은 안절부절못했다.하지만 운전기사는 느긋하게 말했다.“손님, 이미 충분히 빨라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으니 안전이 최우선이에요.”“기사님, 내려요, 제가 운전할게요!”“네?”“요금은 세 배 드릴 테니 얼른요!”눈을 부릅뜬 강시원은 평소와 달리 아주 강한 태도를 보였다.요금을 세 배로 주겠다는 말에 기사는 바로 차에서 내려 자리를 내주었다.재빨리 운전석에 앉은 강시원은 이를 꽉 깨물고 액셀을 힘껏 밟으며 최고 속도로 달렸다. 그러자 차가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어머나!”깜짝 놀란 운전기사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반면 강시원은 앞을 똑바로 보며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차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빠져나갔다.완전히 어리둥절한 기사는 넋이 나간 얼굴로 감탄했다.“손님, 뭐가 이렇게 급해요... 남편이 바람이라도 났어요?”강시원의 표정이 굳었다.“제 외삼촌이에요.”“아... 외삼촌이 바람났나 보네요.”운전기사 머릿속에는 바람이 난 것밖에 떠오르지 않나 싶었다.약 한 시간쯤 지난 후 강용호의 차가 서정 그룹 정문 앞에 멈춰 섰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은 강시원은 강용호가 비서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마음속에 몰려왔다.기사에게 돈을 건넨 뒤 곧바로 내려 강용호를 불러세우려 했지만 서정 그룹 경비원에게 가로막혔다.“저기요, 출입증이 없으시면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주먹을 꽉 쥔 강시원은 고민 끝에 서정혁 와이프 신분을 내세웠다.“저는 서정혁 대표 아내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한수현 비서를 불러와 확인해 보세요.”어쩔 수 없이 내린 긴급한 수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서정혁 같은 찌질이와 엮일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그러자 경비원도 토 달지 않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저희는 규칙대로 일할 뿐입니다. 함부로 들여보낼 권한이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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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강용호가 회의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서정혁이 뒤늦게 안으로 들어왔다.“죄송합니다. 강 회장님, 서 대표님께서 조금 전까지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오래 기다리셨네요.”한수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신 설명했다.“하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강용호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엊그제 직접 전화해 만날 시간까지 잡았는데 정작 약속 시간이 되자 한참을 기다리게 했으니 화가 안 날 수 없었다. 속으로는 서정혁이 분명 자기를 얕보고 망신 주려는 것이라고 욕했다.느긋하게 자리에 앉은 서정혁은 긴 다리를 꼰 채 손목시계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드러냈다.“전에 영원 테크에서 할 말은 다 했던 것 같은데요? 회장님께서 일부러 여기까지 오신 건 우리 서정 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이해해도 될까요?”특허 두 개를 60억에 넘기라니...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영원 테크는 직원 월급도 지급하기 힘들 정도인 데다 본인도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그럼요. 받아들이고 말고요. 서 대표에게 일분일초가 소중하니 지금 바로 계약서에 사인하죠. 귀중한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강용호는 억지로 웃으며 맞췄다.바로 그때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요염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앞에서는 잘난 체하다가 뒤에서는 고개 숙이다니,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빠른 강 회장님의 태도 변화가 정말 우습네요.”그 말에 한수현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이내 임지민이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서정혁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순간 한수현은 깜짝 놀랐다.이 구역은 서정혁의 전용 공간으로 서정혁과 한수현만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그런데 임지민이 이곳에 들어오다니...‘서 대표님께서 전용 엘리베이터 권한은 물론 사적 구역 출입 권한까지 내준 걸까?’이는 서씨 가문 안주인만 받을 수 있는 대우였다.그런데 진짜 안주인은 오히려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임지민과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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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오빠.”서정혁 곁에 다가온 임지민은 가는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그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몸을 굽히자 브이넥 사이 가슴 라인이 은은하게 드러났다.“이 계약 조건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아.”사람 보는 눈이 남다른 강용호는 지난번부터 이 여자가 서정혁과 사적인 관계가 있음을 눈치챘다.따라서 이번 행동으로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소문대로 임지민이 서정혁의 애인이었다.그러니 지난번에 부부 사이를 물었을 때 강시원이 눈빛을 흐리며 피했던 것도, 서정혁이 친인척인 자신에게도 냉담하게 굴며 정을 주지 않았던 것도 다 이해가 갔다.아마 강시원과는 그저 쇼윈도 부부 사이일 뿐 진심으로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임지민일 것이다. 강시원이 외면받은 상황에서 서정혁이 먼 친척인 아내의 외삼촌을 안중에 둘 리 만무했다.순간 가슴이 답답해진 강용호는 강시원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쓸모없네.’죽은 여동생마저 자기 남편 마음 못 잡더니 그 딸 역시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모녀 모두 고집불통이라 남자 마음 못 잡고 이런 꼴을 당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서정혁이 낮은 목소리로 의아한 듯 물었다.“어느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데?”“다른 조건은 다 괜찮은데 특별히 조항 하나만 추가하면 돼.”입꼬리를 살짝 올린 임지민은 독사처럼 강용호를 차갑게 응시했다.“특허 양도 후 2년 안에 영원 테크에 신용 불량 사고, 즉 큰 사건이 터질 경우 영원 테크는 서정 그룹에 특허 가격의 네 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으면 좋겠어. 서정 그룹이 괜히 손해를 보면 그 손실을 메워야 하잖아. 특허 두 개를 산 이상 사건이 생기면 우리도 여론의 피해를 입게 되니, 권리 보호 차원에서 이건 필요할 것 같아.”무표정하게 듣던 서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민 강용호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대표란 인간이 여자 꼬임에 넘어가 제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강 회장님, 금액의 네 배면 천억이 넘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영원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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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조카딸이 윽박지르듯 몰아붙이는 모습이 예의가 전혀 없자 화가 치밀어 오른 강용호는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강시원을 억지로 차에 태웠다.한동안 달리던 차는 한적한 골목길에 멈췄다.강용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시원아, 서정 그룹에 특허 팔았어. 하지만 너도 이해해 줘야 해...”화가 나 가슴을 들썩이던 강시원은 참아온 감정 탓에 목소리까지 떨렸다.“일주일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아직 기한까지 사흘이나 남았는데 어떻게 약속을 어기실 수 있나요!”“시원아, 나 혼자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영원 테크 수백 명 직원들은 월급 받고 가족 부양해야 해. 그런데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어.”강용호는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시원아, 너는 엄마 밑에서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몰라. 지금은 서씨 집안 사모님으로 편안하게 지내니 세상의 고난을 알 리가 없지. 공장이 벌써 며칠째 가동을 멈춰 있어서 하루에 손실만 수억 원이야. 더 끌면 영원 테크는 파산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벌써 나흘이 지났는데 투자금 하나도 끌어오지 못했잖아. 사흘 더 준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느냐.”강시원은 숨이 막히며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왔다.강용호의 말이 너무 현실적이라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하지만 엄마의 평생 노력이 이렇게 헐값에 넘어가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조수석에 앉은 장 비서는 백미러로 억울해서 붉어진 강시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비웃었다.‘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네. 아직까지 약속 운운하며 따지고 앉았으니. 옛말에 속임수도 전략이라 했는데 아이 엄마까지 됐는데도 아직 학생티를 못 벗어났네... 정말 생각이 너무 순진하군.’“특허 두 개를 얼마에 파신 건데요?”강시원은 차가운 눈빛으로 따졌다.이미 모든 일이 확정된 터라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 여긴 강용호는 계약서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하... 60억 원... 엄마가 밤낮으로 피를 토하며 연구해 만든 결과물이 겨우 이 정도 가치밖에 안 되다니.”강시원은 손이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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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강용호는 속으로 거부했지만 이번 특허 매각은 분명 자기 잘못이었다. 게다가 강시원은 창립자의 외동딸이기에 어릴 적 그런 상황만 없었었어도 회사는 당연히 그녀가 물려받았어야 마땅했다.하지만 오랫동안 회사를 혼자 좌지우지하며 독단적으로 운영해 온 강용호로서는 자기 권리를 견제하고 권한을 나눌 동등한 위치의 인물을 들일 수 없었다. 그 누구라도 안 됐다.영원 테크가 자기 손에 있는 이상 완전히 파산하는 순간까지 자기 혼자 차지해야 했다.“시원아, 부안의 외동딸인 네가 이렇게 힘들게 부탁하는데 외삼촌이 모른 척할 수는 없지.”강용호는 엄지손가락의 비취반지를 만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시원아, 어떤 직책을 원하는 거야?”“영원 테크 연구개발팀 부장 자리에 앉고 싶어요.”강용호는 속으로 안도했다.연구개발팀 부장 정도는 핵심 권력에 닿지 않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의 젊은 여자가 전문 연구 기술을 얼마나 알까 싶었다.아마 임지민처럼 지적인 여성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서정혁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얕은 수작일 뿐이라 여겼다.하지만 강시원의 다음 말에 강용호는 깜짝 놀랐다.“그리고 영원 테크 CEO도 겸임하고 싶습니다.”“뭐라고! 대표이사가 되고 싶다고?”깜짝 놀라 몸을 휘청인 강시원은 차 지붕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시원아, 지금 외삼촌한테 장난치는 거야?”강시원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나요?”“안 돼! 영원 테크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영진과 이사회도 있고 이렇게 중요한 인사 발령은 반드시 회의를 거쳐 투표로 결정해야 해 네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강용호는 조급한 마음에 핑계를 길게 늘어놓았다.강시원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담담히 말했다.“영원 테크는 결국 가족 기업이고 또한 상장 기업도 아닙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삼촌이 지분 4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고 이사장으로서 의사 결정권을 쥐고 계시니, 저를 대표이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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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말을 마친 강시원은 차에서 내렸다. 약해 보이지만 곧은 뒷모습이 이내 차가운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정말 판박이네, 고집 센 부안과 똑같군.”강용호는 어두운 눈빛을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회장님, 아가씨가 몇 년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더니 돌아오자마자 바로 대표 자리를 달라고 하시네요. 정말 욕심이 대단하시네요.”장 비서가 억울한 듯 말했다.“창립자 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 온 건 다 회장님 아닙니까? 그런데 말투마저 저렇게 원망하는 듯하다니... 정말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이네요.”“쯧쯧, 그런 소리 하지 마라.”강용호가 못마땅한 듯 혼냈다.“시원이는 부안이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자식이고 우리 강씨 가문 핏줄이야. 말조심해라.”“네...”장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영원 테크는 지금 엉망진창이야. 나도 얼른 떠넘기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니야.”눈빛이 차가워진 강용호는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적절한 시기가 되어 회사의 마지막 가치까지 다 빼앗은 뒤에는 시원이가 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넘겨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기원이가 핵심 경영진에 들어오면 내가 불편할 일이 많아져.”말이 끝나자마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화면을 본 강용호는 기쁜 마음으로 바로 전화를 받았다.“성 대표님! 혹시 새 물건 들어온 건가요?”“그럼요, 좋은 물건 생겼는데 강 회장님께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최근 들어온 비취 원석들이 컬러도 맑고 투명하며 반지르르 윤기까지 나요. 하나같이 최고급 상품들이에요.”“좋아요! 꼭 남겨둬요, 오늘 밤 바로 갈 테니!”“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를 끊은 강용호는 손을 비비며 눈을 반짝였다. 또다시 보석 도박에 빠진 모습이었다.장 비서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회장님, 오늘도 성 대표님 쪽으로 가실 건가요? 회장님, 조금 전서 대표님과 계약 쓰는 사이에도 채권자들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빚 16억 빨리 갚으라고요.”강용호는 짜증 섞인 듯 손을 휘저었다.“고작 16억 원 가지고 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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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이 말을 들은 강시원은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눈시울은 어느새 시뻘게져 있었다.서정혁은 정말로 체면만 따지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만 착한 척 위선을 떨며 연인 앞에서 자상한 남편 연기를 하는 정말 연기력이 대단한 사람...틈을 타 이익을 챙기는 약탈자 주제에 마치 본인이 아내를 도와준 구세주인 양 말하니...‘서정혁, 겉과 속이 아무리 달라도 정도가 있지!’“오빠, 언니를 정말 많이 아끼네. 친정 식구 일까지 이렇게 챙겨주다니.”부러운 듯한 어조로 한마디 한 임지민은 말투에 질투심이 가득 묻어났다.남자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그게 네 집에 생긴 일이었다 해도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야.”눈시울이 뜨거워진 임지민은 목소리까지 떨렸다.“정말? 오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고마워.”“응.”빚진 정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긴 서정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지.”“오빠는 정말... 너무 좋은 사람이야. 내가 만난 남자 중 최고야.”살금살금 남자 등 뒤로 다가간 임지민은 부드러운 손을 그의 넓은 어깨에 얹었다.“오빠 같은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온 마음 다해 잘해주고 목숨 걸고 아껴줄 거야. 절대 화나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을 텐데...”딴생각에 잠긴 서정혁은 임지민의 손이 흰 뱀처럼 살금살금 어깨로 올라온 줄도 몰랐다.머릿속에는 온통 매일 이혼을 운운하며 자신의 삶을 어지럽히는 강시원 생각뿐이었다.사실 서정혁은 강시원이 자기와 아들까지 낳은 이상 평생 자신 곁에 묶여 있을 줄 알았다.자신이 외도한 것도 아니니 떳떳했고, 설령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아들 서도훈이라는 끈이 있는 데다 강씨 가문 식구 역시 자신의 지원이 필요하니 강시원이 절대 반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서씨 가문 사모님 역할에 충실할 거라 여겼다.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강시원은 아들마저 버릴 듯한 의지로 이혼 의지가 확고했고 서씨 가문을 떠난 뒤에도 주변에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혀 꺼리지 않고 어울리고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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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요즘 연안 빌리지로 돌아와도 넓은 별장 안에 강시원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자주 허전하고 가슴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정작 얼굴을 마주하면 오히려 가장 날카로운 말로 그녀를 공격하고 말았다.하늘과 달처럼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 부부 사이란 가장 가깝기도 가장 멀기도 했다.서정혁과 강시원은 진정한 부부로서의 친밀함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두 사람 사이가 완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듯했다.서정혁은 억울함에 이를 악물었다.“서정혁, 애인한테 자리 좀 비켜달라고 해줄래? 내가 어떤 거친 말을 내뱉을지 나도 모를 것 같으니까.”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시원이 곧바로 쏘아붙였다.“두 사람이 손잡고 우리 엄마 특허를 빼앗아 이득을 본 주제에 감히 우리 엄마 평생의 연구 성과를 쓰레기라고 해? 그렇게 잘났어? 세상에 두 사람처럼 뻔뻔한 인간들은 정말 처음이야.”“언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무리 사정을 모른다 해도 함부로 누명 씌우면 안 되지!”임지민은 눈시울까지 붉히며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강 회장님께서 직접 정혁 오빠를 찾아온 거잖아.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언니 얼굴 봐서라도 좀 도와달라고 한 거고. 원래 영원 테크의 특허 두 개? 60억 원은 고사하고 곧 폐기처분당할 물건이었어. 오빠가 개인 돈으로 60억 원을 내서 그 특허 두 개를 사준 거야. 회사 자금도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어? 언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되지.”“내가 고마워해야 한다고요? 정말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네!”“언니...!”임지민은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기침까지 콜록댔다.“너, 왜 그렇게 몸이 약하고 병이 잘 나는지 알아?”강시원은 모든 속내를 꿰뚫어 본 듯 차가운 눈빛으로 쓴웃음 지었다.“속셈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데 정신력만 소모하니 병이 나을 리가 있겠어?”“오빠...”가슴을 움켜쥔 임지민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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