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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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어려서부터 허아연이 자라는 걸 봐온 주건영과 박민정은 조용한 성격과 똑똑한 모습을 좋아했다.원래는 주진우를 맺어주려 했는데 허아연이 하필이면 반항기가 심한 주현우를 선택한 것이다.그때 주건영 말대로 했다면 두 사람은 분명 잘 지냈을 것이고 아이가 벌써 엄마 아빠를 부를 나이가 됐을지도 몰랐다. 주건영의 말을 들은 허아연이 급히 말했다."할아버지, 그 얘긴 일단 넣어두세요. 절차 다 밟으면 몇 년 동안은 할아버지 모시면서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간신히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는데 어떻게 다시 뛰어들 수 있을까.게다가 앞으로 재혼한다 해도 주진우는 절대 아니다.주씨 집안은 안 부끄럽다 해도 허아연은 부끄러웠다.주현우가 자기를 형수라고 부르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게다가…… 주진우와 그의 엄격함이 두려웠다.결혼 얘기만 나오면 뱀에 물린 사람처럼 질색하는 걸 본 주건영도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그저 다른 얘기를 하거나 허민수와의 옛날 얘기를 나눴다.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주건영이 말했다."나는 이제 괜찮아. 다만 오늘 회초리를 세게 휘둘렀으니 가서 현우 좀 봐줘라. 이 결혼을 정말 끝낸다면 너희들 성격에 아마 앞으로 자주 못 볼 거야.""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으니 그래도 좋게 헤어지고 깔끔하게 정리해. 현우가 너한테 줘야 할 것들은 내가 한 푼도 부족하지 않게 할 거야."주건영의 말에 허아연은 답을 하지 않았다.지금 조금이라도 이혼 진행에 영향을 미칠 일이라면 대답도, 의사 표시도 하지 않았다.예를 들어 이혼 재산 분할에 관해 허아연이 안 받겠다고 하면 일이 또 꼬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씨 집안 뜻대로 하게 했다.절차를 다 밟은 뒤 원하지 않는 것들은 그때 가서 주현우에게 한 번에 돌려주면 되었다.주건영의 얘기를 들으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 허아연은 앞쪽 별장으로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현우 방에 도착했을 때 의사가 이미 링거를 꽂고 약을 바른 뒤였다. 유서희와 주민경이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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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주민경이 유서희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엄마, 그만 얘기해요.""오빠 이제 별일 없으니까 우리도 나가요. 좀 쉬게 해줘요."방금 그렇게 큰 소동이 있었고 허아연도 방금 주건영과 얘기를 나눴을 테니 지금 두 사람은 할 얘기가 있을 것이다.주민경의 말을 들은 유서희가 주현우에게 두어 마디 더 잔소리하고는 함께 방을 나갔다.두 사람이 나가자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침대 옆에 서서 고개를 숙여 주현우 등의 회초리 자국을 보던 허아연은 조금 전 그가 한 농담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슬프지 않았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남은 건 감동뿐인 듯했다.아니면…… 두 사람의 감정에서 허아연에게 남은 건 무감각함일지도 몰랐다.허아연이 웃자 주현우가 몸을 일으켜 뒤돌아 누우며 담담하게 물었다."기분 좋아?"허아연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주현우를 보고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꽤 감동적이에요."잠시 멈칫하던 허아연은 다시 난처해하며 말했다."제가 좀 쓸데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요."허아연이 말을 마치자 주현우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시선을 거뒀다.지금 이 순간 물을 것도 없이 허아연은 주현우가 오늘 매를 맞은 게 오지은과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주현우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자 허아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 마요. 할아버지는 이미 받아들이셨어요. 앞으론 우리 이혼에 간섭하지 않으실 거예요."주현우가 차갑게 말했다."가서 볼일 봐.""네, 그럼 먼저 쉬어요."주현우가 보기 싫어하자 허아연이 오래 머물지 않고 일어나 옆쪽 작은 서재로 갔다. 책 한 권을 들고 소파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가끔 링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이 주현우를 향할 뿐이었다. 링거가 다 떨어지면 허아연이 말없이 다가가 약을 교체해 주었다.대화는 없이 그저 묵묵히 의사가 당부한 일만 했다.주건영이 말했듯 절차를 다 밟으면 두 사람은 앞으로 만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방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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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침대 옆에서 이불을 정리하던 허아연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한참 바라보던 허아연이 살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럴 일 없어요. 할아버지는 선을 아시는 분이니 정말로 끝을 보실 생각은 없으셨을 거예요."직접적인 대답을 피한 허아연을 보며 주현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침대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다만…… 오늘 매를 괜히 맞은 것 같았다.……저녁 7시, 허아연은 아래층에서 저녁을 먹고 주현우에게 죽을 가져다주었지만 주현우는 너무 심심해서 입맛이 없다고 했다.침대 옆 의자에 앉아 주현우가 노트북을 꺼내 일하는 걸 보며 허아연은 감탄했다.사람의 잠재력은 정말 무한했다. 주현우는 쇠로 만든 몸일까?손에 죽을 들고 주현우를 한참 보던 허아연은 여전히 먹을 생각이 없는 그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앞으로 보름은 담백한 것만 먹어야 해요. 안 그러면 상처 회복에 안 좋아요."침대에 앉아 등을 기대지도 못한 채 주현우는 두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링거 몇 개 더 맞으면 돼."주현우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에만 몰두하는 걸 보며 허아연은 말없이 죽을 내려놨다.그 모습에 주현우가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마주쳤지만 허아연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허아연이 주현우의 침실에서 있었던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예전에 허아연은 여기서 숙제를 여러 번 한 적 있었고 주현우 숙제도 많이 대신해 주었다.대부분 허아연이 단정하게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면 주현우는 옆에서 잠을 잤다.한번은 허아연이 주현우 침대에서 낮잠 자다 깼을 때 주현우도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허아연을 품에 안고 있기까지 했다.그때는…… 너무 좋았다.그때 허아연은 주민경을 만나러 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주현우가 더 보고 싶어서였다.주현우는 허아연에게 거리낌이 없이 뭔가 시키는 걸 무척 좋아해서 허아연도 자주 방에 머물곤 했다.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니 주건영이 깔끔하게 정리하고 좋게 헤어지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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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한동안 부드럽고 애틋한 키스가 이어졌고 주현우는 아픈 것도 잊을 정도였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허아연이 급히 주현우를 밀어내고 못마땅한 듯 말했다."할아버지가 아까 가볍게 때린 것 같네요."주현우가 부드러운 눈길로 웃으며 손을 들어 허아연의 입술을 닦아줬다. 허아연이 주현우를 쏘아보고는 그릇들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잠시 후.허아연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주현우가 옷을 들고 씻으러 가려 했다.순간 허아연이 경악하며 주현우를 바라봤다."주현우 씨, 미쳤어요? 죽으려고 환장했어요?"주현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허아연이 주현우를 괴물 보듯 바라봤다. 주현우는 말도 없이 깨끗한 옷을 허아연 품에 쑤셔 넣고는 허아연의 목덜미를 잡고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원래는 신경 안 쓰려 했는데 주현우가 문을 잠가버려서 나갈 수가 없었다.결국 주현우가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씻기 힘든 곳을 씻겨줬다.두 사람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허아연은 주현우가 꽤 뻔뻔하다고 생각하며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침실에서 허아연이 귀가 살짝 빨개진 채 눈도 마주치지 못한 걸 본 주현우는 웃음이 나서 놀리듯 말했다."결혼까지 한 사람이 아직도 부끄러워?"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침착하게 말했다."내가 하나도 안 부끄러워하면 주현우 씨는 아마 웃지 못할 거예요."주현우가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농담도 할 줄 아네."예전엔 늘 새침하게 시키는 것만 얌전히 했었다.주현우가 우쭐해하자 허아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부러 말했다."기분이 그렇게 좋으면 월요일에 가서 이혼 신청……"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몸을 숙여 또 입술에 키스했다.이번엔 허아연이 화를 내며 두 손으로 주현우 가슴을 세게 밀었다."주현우 씨, 다쳤다는 핑계로 함부로 막 하지 말아요. 내가 정말 화 안 낼 거라고……"'생각해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현우가 또 얼굴을 감싸고 키스했다.주현우가 여전히 제멋대로 굴자 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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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주현우가 정원 발코니에서 전서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허아연 같은 타입은 안 좋아한다던 말, 허아연은 그럴 가치가 없다던 말이 떠오르자 흉터에 댄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허아연이 침대 옆에 앉아 침묵하자 주현우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눈이 마주친 허아연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꽤 깊게 다쳤네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조심스레 약을 발랐다.약을 다 바르고 나서야 허아연은 잠옷을 들고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 다만 기분이 묘하게 무거워지며 수많은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아마 과거와 작별하고 현재와 작별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기억이 유난히 선명한 거겠지.허아연이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주현우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허아연이 조용히 머리를 닦으며 방해하지 않았다.오지은이 걸어온 전화였다, "현우야, 내일 주말인데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새로 개봉한 영화 엄청 재미있대, 후기도 꽤 괜찮고."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일 있어서 못 가."오지은이 살짝 투정 부렸다."너 요즘 너무 바빠, 우리 한동안 같이 밥도 못 먹었잖아."창밖을 보던 주현우는 유리에 비친 허아연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허설아는 마치 이 결혼의 당사자 같지 않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현우야, 현우야."오지은이 전화기 너머에서 부르자 정신을 차린 주현우가 시선을 거두고 감정 없이 말했다."요즘은 불편해, 무슨 일 있으면 나중에 얘기하자."말을 마친 주현우는 오지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돌아서자 허아연이 마침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보고 있었다.시선이 마주치고 주현우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한참 바라보던 허아연은 태연하게 시선을 돌리고는 드라이기를 들어 머리를 말렸다.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현우가 다가가더니 허아연 손에 있던 드라이기를 빼앗았다.허아연이 고개를 들자 주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허아연, 화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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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허아연이 화를 낸다면 주현우는 신경 썼을 것이다.사실…… 늘 신경 쓰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주현우가 잠에서 깼을 때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허아연은 이미 방에 없었다.주현우가 방 안을 둘러볼 때 주민경이 여유로운 얼굴로 침실 문에 기대어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찾지 마. 아연이 할아버지한테 불려 갔어."주현우가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대꾸도 없이 시선을 거뒀다.주민경이 주현우를 뚫어져라 보며 물었다."오빠, 오빠는 아예 이혼할 생각 없잖아. 어제 일부러 그런 거지? 고육지책 쓴 거 맞지?"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다시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아연이가 어제 마음 약해졌다면, 아연이가 예전처럼 달려들어서 말렸다면, 아연이가 할아버지한테 이혼 안 하겠다고 했다면 오빠 고육지책 성공해서 둘이 이혼 안 해도 되는 거였잖아.""그런데 아연이가 오빠 계획에 걸려들지도 않고 오빠를 위해 사정하지도 않아서 헛고생했네."주민경이 밤새 궁리한 결과, 주현우는 쓸데없이 회초리를 맞을 바보는 아니었다.그러니……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허아연이 이혼을 고집하니 어쩔 수 없었던 주현우가 이런 방법을 쓴 것이다.결과는 괜한 매를 맞은 것이다.주민경의 분석에 주현우가 차갑게 쏘아봤다."너처럼 꿍꿍이만 가득한 줄 알아?"주민경이 웃음을 터뜨리며 웃기다는 듯 말했다."내가 꿍꿍이가 많아? 꿍꿍이 빼면 시체인 오빠를 누가 상대해. 나보다 꿍꿍이가 더 많은 사람이 지금 나를 비웃는 거야?"주민경이 먹다 남은 사과 심을 방 안 쓰레기통에 정확히 던져 넣고는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주현우 씨, 나한테 부탁해 봐. 부탁하면 내가 가서 아연이 속마음 떠봐줄게. 돌아설 여지가 있나 없나."주현우가 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주민경, 다른 데 가서 놀아."주민경이 의기양양해서 으스대며 말했다."진짜 가라고? 진짜 헛된 고생만 하고 끝내려고? 오빠, 잊지 마. 나는 아연이 제일 친한 친구야, 내 말 영향력이 엄청나.""내가 오빠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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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오! 이제는 인정도 안 하네."주민경이 이어서 말했다."현우 오빠, 더 캐묻지도 않을게. 곤란하게 안 할 테니까, 딱 하나만 확실히 말해. 아연이 3년 동안 냉대하고 무시한 거 아연이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길 바란 거야?"주민경의 분석에 주현우는 웃기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저 웃기기만 했다.주현우가 통유리창 옆 캐비닛으로 걸어가더니 캐비닛 위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태연하게 불을 붙였다.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으며 돌아서더니 주민경에게 우습다는 듯 말했다."내가 이혼하고 싶었으면 허아연이 말 꺼내길 기다려야 했겠어? 굳이 3년 기다려야 했겠어?"주민경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그럼 그 말은 그때 오빠가 아연이랑 결혼한 거 할아버지한테 강요당한 게 아니란 거네."주현우가 더 웃으며 말했다."주민경, 너 나랑 23년 알고 지냈지. 누가 나 강요할 수 있는 것 같아?"주현우가 으스대자 주민경이 못마땅한 티를 냈다."그렇다면 왜 아연이 냉대했어? 왜 아연이한테 잘해주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서 오빠가 천성이 놀기 좋아한다 해도 바보는 아니잖아. 아연이랑 결혼했으면 아연이 체면은 생각했어야지. 집에 와이프를 두고 밖에선 다른 여자들과 실컷 놀아나면 어떡해.""이 여자 저 여자 다 갖고 싶었던 거야? 현우 오빠, 3년 동안 오빤 아연이를 사지로 몰아넣었어.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한 적 없고 체면도 전혀 봐주지 않았어. 모든 게 이혼을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한 건 왜 그런 거야?"주현우 성격상 결혼에 동의했으면 허아연을 이렇게 대하지 않아ㅁ야 했다. 주현우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처리할 사람이었다. 주민경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까.주민경의 분석에 주현우가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쳐다봤다.'평소엔 덜렁대는 것 같더니 질문은 꽤 날카롭게 하네.'한참 주민경을 보던 주현우가 차갑게 말했다."집에 와이프를 두고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다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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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알았어, 알았어. 아연이는 오빠 와이프고 나는 주워온 동생인 거지. 오빠랑 아무 상관도 없는 애지.""간다, 가. 두 사람만 가족이지." 비꼬듯 말을 마친 주민경은 주현우를 쏘아보며 손을 들어 밀어내고 두 사람의 침실을 나갔다. 나가면서 방문까지 닫아줬다.주민경이 나가자 방 안이 확 조용해졌다.유난히 조용했다.옅은 담배 냄새는 공기 청정기로 정화되었다.주현우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아무 감정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다만 얼굴과 옷깃 부분의 회초리 자국이 여전히 선명하게 보였다. 허아연이 주현우를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야근하러 가야 해요. 참, 정 선생님이 오후에 와서 주사 놓아줄 테니 푹 쉬어요."허아연이 회사에 야근하러 간다고 하자 주현우는 힐끗 쳐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유건희 참 사정없이 부려 먹네.""프로젝트 책임자라서 좀 바쁘긴 해요."예전 경주 그룹에 있을 땐 지금보다 더 바빴고 밤낮없이 야근했었다.허아연이 상의하듯 누그러진 말투로 말하자 주현우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책상 앞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사실 주현우는 허아연이 야근하는 걸 별로 원하지 않았다. 허아연이 일상 생활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길 바랐다.주현우가 아무 말 하지 않자 허아연은 준비를 하고 차 키와 휴대폰을 들고 저택을 나갔다.방금 유건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민규도 연락이 왔는데 오성 그룹이 스타라이트에 거절당한 뒤 오지은이 요즘 계속 성대 테크 접촉하며 성대 테크의 가정용 로봇 프로젝트와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스타라이트 프로젝트와 완전히 겹치는 것이었다.게다가 오지은이 대놓고 오성 그룹이 성대 테크의 가정용 로봇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 반드시 스타라이트보다 한 수 위에서 스타라이트 제품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출시 자체를 못 하게 만들거라고 했다.허아연은 업무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는 주현우에게 말하지 않았다.어쨌든 오지은이 누구와 협력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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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함께 만나러 가자는 유건희의 말에 허아연도 따라나섰다.가는 길에 유건희가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천천히 허아연에게 말했다."권 어르신은 스타라이트의 수석 기술 고문이에요. 회사에 기술 지분이 있는데 계속 배당을 안 받으셔서 법무팀에 시켜 다 주식으로 전환해드렸거든요. 그래서 권 어르신도 회사 주주예요.""보통은 가끔 실험실에 들르시는데 기술 업무 외에는 누구도 안 만나시고 회사 경영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으시죠.""얼마 전에 아연 씨가 회사에 왔을 때 어르신한테 얘기했더니 진작부터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셔서 오늘 부른 거예요."유건희의 설명에 허아연이 말했다."대표님, 스타라이트 테크는 정말 종잡을 수 없네요."두 손으로 핸들을 잡은 유건희가 웃었다."그 정도는 아니고 그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것뿐이에요."그 뒤로 유건희가 회사 다른 상황과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자 허아연은 진지하게 귀담아들었다.잠시 뒤 만날 권유성은 교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일찍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권유성은 지금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맥과 발언권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게다가 권씨 집안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권유성에게는 권승준이라는 손자가 있었다. 올해 스물아홉 살로 작년에 막 교진시로 발령받고 상당한 요직을 맡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데 앞날이 창창했다.교진시의 명문가를 말하자면 권씨 집안이 절대 으뜸이었다. 주씨 집안과 맞붙을 수 있고 전혀 밀리지 않는 집안이었다. 허아연은 이런 얘기들을 모두 주민경한테 들었다. 주민경이 교진시 전체를 통틀어 권씨 집안 말고는 인정하는 집안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교진시를 제외하면 더더욱 인정할 집안이 없다고 했다.허아연이 유건희가 하는 얘기와 권 어르신이 지도한 기술과 유도 시스템 개발 연구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사이, 차가 금방 권씨 저택으로 들어섰다.권씨 저택은 교외 쪽에 있었는데 밖에서 보기엔 차분하고 조용했다. 유건희가 처음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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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이어서 권유성이 또 말했다."아연 양 특허 기술은 나도 봤네. 영감이 뛰어나더군. 처음엔 남자애인 줄 알았는데 아가씨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래서 더욱 눈여겨보게 됐지."권유성의 손을 가볍게 잡은 허아연이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권 어르신 과찬이세요.""건희 따라서 열심히 해. 앞으로 실적 내고 성과 내서 국가 자동화와 정보 기술 발전을 이룩하게."어깨가 무거워지는 말에 허아연이 급히 대답했다."권 어르신, 꼭 대표님 따라 열심히 하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좋아, 좋아. 그럼 됐어. 난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좋아."세 사람은 거실에서 한참 얘기하다가 권유성이 두 젊은이를 데리고 1층 서재로 갔다.그때 유건희가 설계 도면을 꺼내 권유성과 논의하자 허아연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두 사람은 오후 4시가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유건희는 권유성과 논의한 내용에 따라 거의 새 설계 도면을 그려냈다.7~8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허아연은 전혀 방해하지 않고 계속 옆에서 두 사람에게 차를 따르고 물을 따르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만 가려 하자 권유성이 식사하고 가라며 불러세웠다. 하지만 유건희가 돌아가서 새 도면을 그려야 한다며 허아연을 데리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검은색 제네시스 안, 유건희가 운전석에 앉아 있고 허아연은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차가 밖으로 나갈 때 맞은편에서 똑같은 차가 들어오는 걸 본 유건희가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두 차는 동시에 속도를 줄였고 맞은편 검은색 제네시스 뒷좌석 창문 유리도 천천히 내려갔다.윤곽이 뚜렷하고 바른 기운이 넘치는 숨이 멎을 정도로 눈부신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허아연은 그만 멍해졌다.주현우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 같은 미남이고 유건희가 단정하고 고운 미남이라면 맞은편의 저 남자는 분명 신이 직접 빚는 작품일 것이다. 게다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을 갖고 있었다.남자의 분위기는 주현우, 유건희와 완전히 달랐다.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유건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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