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21 - Chapter 30

336 Chapters

제21화

배경천은 금영의 물음에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찔린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래도 너를 동생으로 여기니까, 더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으려는 것이다.”금영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당연히....”배경천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려다가, 그녀의 말에 조롱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굳은 얼굴로 다시 경고했다.“배금영, 정말 끝까지 나와 맞설 작정이냐? 그렇게까지 명월이를 용납하지 못하겠어? 잊지 마라. 명월이가 없었다면 너는 그저 천한 핏줄을 이은 서녀에 불과했을 것이다.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부터 명월이의 것이었다.”금영이 동요하지 않자, 배경천은 점점 말이 거칠어졌다.그녀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고, 한참 동안 그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싸늘하게 배경천을 지나쳤다.그녀는 회귀 후, 수도 없이 사람들에게 치이며 이미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배경천은 금영의 눈빛에 비친 씁쓸함을 눈치채고,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찔렸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잔인한 말을 내뱉었음을 깨달았다.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잠시 후회했지만, 곧 스스로를 합리화했다.집으로 돌아온 지 고작 사흘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금영은 벌써 몇 번이나 배명월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끝없이 배명월을 밀어내며 욕심을 부린 대가였다. 그러니 자신의 잘못보다 금영의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렇게 멋대로 결론을 내리며 마음을 다잡은 배경천은 멀어져 가는 금영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비수를 꽂았다.“어쨌든, 처신 좀 잘 하거라!”해수는 금영을 말없이 따라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아가씨, 둘째 공자님의 말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지요. 이런 일로 괜히 상처받으실 필요 없으십니다.”금영은 해수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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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럴 때에야 그는 황제라는 이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도, 생각도 필요 없었다. 그저 혼자 조용히 서 있으면 되었다.세상은 황제를 권력 그 자체로 여겼다. 황제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고, 마음먹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무게를 아는 이는 오직 황제 자신뿐이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이번에 작산행궁에 온 것도 단순한 유흥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한참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있던 황제가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누구냐.”금영은 인공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답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말이다.황제가 다시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직접 불러야지 나오겠느냐?”그 말과 함께 황제의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가득 깃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바위 뒤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던 순간이었다.황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바위 뒤에 있던 존재가 너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연한 노란색 옷을 입은 여인, 머리에는 장식 하나 없었고, 반쯤 풀린 먹물 같은 검은 머릿결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여인은 눈이 쌓인 땅 위에 양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눈 덮인 땅 위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낮게 흐느끼는 모습은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사람처럼 보였다.황제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는 연민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딱히 여인이 울고 있다고 해서 동정심 따위가 생기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없는 여인에게 윽박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곳에 나타난 것을 보아, 딱히 의도된 접근도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여인의 어깨 위엔 이미 눈이 상당히 쌓여 있었다. 어쩌면 불청객은 그녀가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황제는 구태여 말을 걸지 않고 몸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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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금영은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태자 또한 대량에서 손꼽히는 미남이었고 신분마저 귀해 수많은 규수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태자보다도 한층 더 눈길을 끄는 존재였다.태자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매력을 지녔다면, 황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냉정함을 뿜어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금영이 낮게 말했다.“존귀하신 폐하를 앞에 두고 제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황제는 그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이제 와서 두렵다고? 직설전에서는 겁도 없이 굴더니, 내 보기엔 네 담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는 것 같다.”그 말에 금영은 문득 직설전에서의 광경이 떠올랐다. 차가운 공기에 창백해졌던 얼굴 위로 순식간에 붉은 기가 번졌다.황제는 몰랐겠지만, 금영은 이미 그가 홀로 사색에 잠겨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귀신이 되어 떠돌던 시절 봉황 비녀에 묶인 채 종종 배명월과 함께 황후궁에 들렸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처음에는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더 넓은 곳까지 갈 수 있게 되면서, 황제가 주변을 물리고 홀로 걷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다.그 덕에 대략적으로나마 그가 자주 택하는 길을 짐작할 수 있었고, 해수를 물린 뒤 홀로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물론 이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황제가 반드시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딱히 잃을 것도 없었다. 조금 추위에 떨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면 그만이었다.물론 자신의 행동이 명문가 규수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이건 노골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귀하는 순간, 과거의 자신은 모두 버리기로 했다.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체면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더 이상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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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렇다면, 성은 무엇이며 어느 집안의 여식이냐?”황제가 다시 물었다. 드디어 이 도망치기 좋아하는 작은 토끼를 붙잡은 이상,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금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꼭 말씀드려야 할까요? 사실…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워낙 출신이 미천하여, 아시게 되어도 폐하를 번거롭게 할 뿐입니다.”황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과인과 밀당을 하려 들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정말 말하지 않을 것이냐?”이미 당사자를 붙잡은 이상, 뒤를 캐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금영이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말하면, 폐하께서는 저를 궁에 들이실 생각이신 건가요?”그 말에 황제는 뜻밖이라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있던 금영의 눈빛이 갑자기 또렷해지며, 몸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기색은 결코 평범한 여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곧 금영은 다시 고개를 낮추었고, 이전과 다름없는 얌전한 태도로 돌아갔다.황제는 순간 자신이 착각했나 싶어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과인의 여인이 되었다면 마땅히 궁에 들어와야 한다. 염려 말거라. 과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를 외면하지는 않은 것이니.”황제는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말하며 금영을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그녀는 나이가 꽤나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최근 다섯 해 동안 황제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고, 가장 어린 후궁조차 이 여인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그동안 자신을 피해 다닌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몰랐다. 자신을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안 그래도 겁이 많아 보이던 그녀에게는 더 큰 공포였을 것이다.그렇게 결론을 내린 황제는 다시금 금영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을 이었다.“조서를 내려 너를 궁에 들이마. 미인… 아니, 첩여의 품계를 내리겠다.”황제는 본래 그녀에게 미인의 자리를 주려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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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황제는 금영이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황제의 곁이란, 여인들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들어가고자 하는 자리였다. 그가 먼저 책봉을 꺼낸 이상, 이를 거절당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금영은 황제의 심기가 상했음을 알아차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물러설 생각으로 던진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황제에게 분명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그와 어떤 관계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 선택이 우발이 아니라 의도라는 사실을.밀고 당기는 이치가 무엇인지는 그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거리를 두어야 그의 흥미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금영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땅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그에게 고정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 부디 폐하께서...”황제는 얼굴을 굳힌 채, 땅에 꿇어앉은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생각 잘 정리하고 말하거라. 기회는 한 번뿐이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는 분명히 경고했다.금영은 입술을 잠시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녀의 눈빛은 결의로 아주 단단해져 있었다.“전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부디 그날 일은 잊어 주십시오. 처음부터 저를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황제는 한참 동안 그녀를 살피더니, 차갑게 말했다.“그렇다면, 꺼져라.”“은혜에 감사드립니다.”금영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자리를 떠났고, 황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라고 한다고 진짜 가는 여인도 역시나 그녀가 처음이었다.황제는 금영이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다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었다.‘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편전에서 나온 금영은 재빨리 미리 숨겨두었던 모자 달린 망토를 찾았다. 이어서 벗어 두었던 장신구들까지 모두 품에 끌어안고, 서둘러 산을 내려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하지만 막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연아가 안에 있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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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오늘, 폐하께서 오셨을 때, 모두가 예를 올렸는데… 그 아이만 폐하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더구나. 저렇게 조급하게 눈에 띄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하루라도 빨리 혼약식을 올리고 싶은 게 분명해.”서 황후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조씨가 맞장구를 쳤다.“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배금영은 어려서부터 예의와 규범을 익혀 온 아이입니다. 황제를 뵈었을 때 예를 올려야 한다는 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일은 분명한 고의였습니다.”환옥이 차 한 잔을 들고 와 부드럽게 말했다.“마마, 차를 한 모금 드시고 노기를 가라앉히시옵소서.”서 황후는 찻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고, 그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은 듯했다.그녀는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효도를 핑계로 혼인 이야기를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테야.”조씨는 그 말에 서 황후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물었다.“그럼, 마마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서 황후는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그 아이가 영영 태자에게 시집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모든 일이 배금영의 자업자득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태자가 피해자라는 인식이 남도록 말이다.”절대로 배금영의 출신이 문제가 되어 태자가 먼저 저버렸다는 비난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건 결코 보위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이는 절대로 서녀인 배금영이 아닌 배명월일 터였다.무엇보다 겨우 서녀 따위와 혼인해서는 영안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터였다.만에 하나 배명월이 이황자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그 뒤에 닥칠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태자의 자리가 그리 쉽게 바뀔 일은 없겠지만, 예로부터 순탄하게 보위에 앉은 황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즉위하는 날까지 생길 수 있는 변수는 모두 예방해야 했다.서 황후는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위에 오르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어야 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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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금영이 배경천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배경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네, 네가 감히 나를 때려?”금영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배경천을 보며 말했다.“맞을 짓을 했으니까요. 그러게 왜 다짜고짜 여인의 방에 쳐들어옵니까? 당연히 변태일 줄 알았지, 누가 오라버니일 거라고 예상했겠어요? 뺨이 아니라 칼에 찔렸어도 자업자득이었을 겁니다.”금영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매섭게 몰아붙였다.배경천은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듯, 곧장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금영은 조금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왜요? 저에게 손이라도 대시겠어요? 어디 한 번 때려 보세요. 하지만…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누가 더 곤란해질까요?”금영의 눈동자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만약 정말 자신에게 손을 댄다면, 함부로 여인의 방에 들이닥친 그의 만행도 온 세상에 까발려질 각오를 하라는 뜻을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배경천은 들고 있던 손을 움켜쥐었다가, 결국은 힘없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적대감이 가득 담긴 상태였다.“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너를 보자고 하셔서 직접 데리러 온 것뿐이다!”이 말과 함께 그는 또다시 금영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금영은 한 발 빨리 그의 손길을 피하며 냉정하게 말했다.“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배경천까지 보낸 이상, 직접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래, 도대체 무슨 속셈들인지 직접 확인해 주지.’그렇게 두 사람은 안채로 향했고, 배경천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상석에 앉아 영안후와 송정희에게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배금영을 데려왔습니다.”그리고는 덧붙였다.“배금영은 명월을 괴롭힌 것도 모자라 아프다는 핑계로 부름조차 거부했습니다. 반드시 엄히 벌하셔야 합니다.”뒤이어 금영이 안으로 들어섰다.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평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어차피 불쌍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을 봐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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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영안후는 이 상황이 몹시 난처한 듯 이마를 짚었다. 출신을 떠나 금영은 분명 그의 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 또한 임종 직전, 그녀를 잘 돌보라고 당부까지 했었는데 말이다.영안후이라고 해서 금영을 일부러 박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회양에서 돌아온 지 겨우 사흘, 그 짧은 시간 동안 금영이 벌인 일만 해도 이미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영안후는 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금영아, 그동안 네가 저지른 일들을 보아라. 명월이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그런데도 너를 두둔해 주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네 어머니가 언제 네가 친딸이 아니라고 홀대한 적이 있느냐?”영안후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우리는 너를 적녀와 다름없이 입히고 먹였고, 궁에서 교육해 줄 스승까지 구해 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너에게 어떻게 해 왔는데… 이리도 마음이 좁으냐. 왜 자꾸 동생을 괴롭혀 네 어머니를 상심하게 만드는 것이냐?”그러자 금영이 그를 보며 물었다.“아버지께서도 제가 동생을 괴롭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연회 때 명월이가 너에게 차를 따르려 할 때, 네가 일부러 찻잔을 엎지른 것을 네 오라비가 직접 목격했다고 하지 않느냐! 이래도 시치미를 뗄 것이냐?”영안후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금영은 웃음을 흘렸다.“오라버니가 봤다고 하면, 그게 곧 사실이 됩니까? 그렇다면 저도 제가 본 것을 말씀드리지요. 오라버니께서 춘홍루(春红楼)에 드나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그냥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연인까지 두고 계시더군요?”그 말을 듣자 배경천은 분노한 얼굴로 금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배금영! 어디서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하지만 금영은 오히려 비웃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라버니가 본 것은 진실이고, 제가 본 것은 거짓입니까?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시네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겠지요.”영혼의 상태로 떠돌던 시절, 금영은 분명히 보았다. 배경천이 춘홍루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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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영안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명월이의 옷이 젖지 않았다고 해서, 네 오라비가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길 수는 없는 법이다. 네 오라비가 설마 너를 모함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송정희 또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못마땅한 기색으로 옆에서 거들었다.“금영아, 어떻게 그렇게 매정한 말을 할 수가 있니? 평소 네 둘째 오라비가 얼마나 너를 아꼈는지,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네가 누군가와 다툴 때마다 늘 네 오라비가 도와주지 않았느냐? 서왕의 세자와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고, 가을에 네 옥패가 물에 빠졌을 때도 그렇고, 다 네 오라비가 나서 해결해 주지 않았느냐?”“게다가 네가 고열에 시달렸을 때도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간병했던 이도 네 오라비였다. 이 모든 일이 있고도 정녕 네 오라비가 너를 모함하려 들었다고 생각하느냐? 네 오라비는 자신이 다치는 한이 있어도 절대 너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없다.”송정희는 몹시 가슴 아픈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거기까지 들은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배경천을 바라보았다. 송정희가 한 말이 사실이었고,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배경천은 한때 누구도 부럽지 않을 좋은 오라비였지만, 이제 그녀가 알고 있던 배경천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영이 영안후부의 적녀 자리를 잃은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금영은 영안후부 적녀의 자리나 태자비 자리 따위에 연연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배명월에게 줄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 혈육으로서 그동안 쌓아 왔던 정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금영은 다시 송정희를 바라보았다.십여 년 동안 친모로 여기며 따랐던, 누구보다 온화하고 세심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겉으로만 안타까워할 뿐 실제로는 배명월을 두둔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다.금영이 이내 차갑게 입을 열었다.“둘째 오라버니께서 일부러 저를 모함한 것이라 단정 짓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눈으로 본 것이 늘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그리고는 영안후를 똑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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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배명월이 간절한 표정으로 금영의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차이는 더욱 극명해졌고, 영안후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점점 마음속에서 의구심을 느꼈다.최근 들어 금영이 보이는 행보를 떠올리며, 과연 태자비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 영안후부에 득이 될지, 아니면 실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불안은 차라리 금영보다는 밖에서 자란 배명월이 태자비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영안후조차도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아무리 그래도 금영은 십여 년 넘게 곁에서 키운 딸이었다.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곧 스스로를 설득했다.흠천감에서는 영안후부의 핏줄 가운데 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여식이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금영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배명월이 그 예언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비록 어릴 적 사건으로 곁에서 키우지는 못했으나, 배명월은 이 집안의 적통 혈통을 타고난 아이였고, 반면 금영은 달랐다. 그저 영안후부 노부인을 모시던 시비의 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핏줄이 이토록 고귀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영안후는 배명월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한편 배명월은 이번에는 대상을 바꾸어 금영을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언니, 아버지께서도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더 노하신 거예요. 얼른 아버지께 사과드리시지요. 그러면 금방 용서해 주실 거예요.”하지만 금영은 배명월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영안후만을 바라보았다.“아버지께서는 정말 제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무시당한 배명월은 가늘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금영의 태도가 몹시 불만스러웠다. 도무지 왜 금영이 자신을 이토록 무시하며 오만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영안후가 냉정하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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