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사극 로맨스 / 주문춘귀 / Chapter 381 -الفصل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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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심소연은 그제야 웃으며 서둘러 시녀에게 말했다.“차를 얼른 가져오너라.”고하운은 차를 마시며 몸을 살짝 옆으로 틀고 소매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시선은 슬며시 계연수에게 향해 있었다.그녀는 고하운의 눈빛을 보았다. 마치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었다.하지만 방금 전, 자신은 시를 맞출 수 없다고 눈을 깜빡이며 신호까지 보냈는데도 고하운은 여전히 이 상황을 얼버무려 넘기려 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계연수의 마음속에는 조용한 실망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자리에서조차 고하운은 끝까지 속여 넘기려 하고 있었다.그럼에도 점점 더 초조해지는 고하운의 얼굴을 보자 계연수는 결국 손을 들어 찻물을 찍어 옆 작은 탁자 위에 글자를 적었다.고하운은 그것을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소매를 내리고 앞에 서 있는 심소연을 향해 말했다.“방금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그리고 입을 열었다.“푸른 하늘빛 그림자, 창사 위로 흔들리네.”심소연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러나 눈빛은 금세 옅어졌다.무난한 구절일 뿐,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었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형식적으로 말했다.“문장이 단정하네요. 우아한 표현입니다.”그 말에 고하운의 얼굴에는 분명한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그때 꽃병 옆에 앉아 있던 이수옥이 다음 구절을 이어 받았다.“바람이 스치니 수옥을 씻는 뗏목 소리가 들리는 구나.”자신의 이름 수옥을 자연스럽게 시구에 녹여 넣은 것이었다.주변의 아가씨들이 모두 감탄했다.그 뒤로도 몇 구절이 이어졌다.마지막에 심소연이 계연수를 향해 말했다.“계 언니가 마무리를 해 주세요.”계연수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았다.“가을비 섞인 두세 줄의 비파 소리.”임장월이 웃으며 말했다.“계 언니는 여전히 대단하시네요. 풍경도 있고 정취도 있고… 참으로 절묘해요.”방 안에서 찬탄이 이어졌다.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고하운의 마음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칭찬을 받을 것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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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심소연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모든 상황을 알아차린 듯했다.조금 전 고하운의 행동과 태도는 어떻게 보아도 시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눈앞의 계연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고하운이 읊었다던 그 시구마저도 계연수가 대신 지어 준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방금 고하운의 움직임은 분명 어색했다. 당당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자잘한 몸짓만 계속 이어졌다.그러나 심소연은 체면을 깨뜨릴 생각이 없었기에 겉으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옅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계 언니도 어서 가 보세요.”*계연수가 나간 뒤, 이수옥이 심소연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 계연수가 고하운을 도와 부정하게 시를 대신 지어 준 것 같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꺼냈다.“헌데 저 고씨 아가씨는 대체 어떤 집안 사람이죠? 왜 저렇게 격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심소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머니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고하운을 마음에 들어 했고 아마 오숙부 심서준의 부인으로 들일 생각이 있는 듯했다.얼마 전 어머니도 그 일을 두고 걱정하고 있었다.만약 오숙부가 장가를 들면 할머니가 그 새 며느리에게 집안 살림의 권한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심가의 거대한 가업까지도 결국 오숙부에게 넘어갈지 모른다.하지만 지금 보니 고하운이라는 사람은 심가의 안주인이 될 만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심소연은 옆에 있는 이수옥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노골적인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심소연은 일부러 한숨을 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일은 그만 이야기하죠. 앞으로 밖에서도 꺼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하지만 이수옥은 고개를 저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저는 계 아가씨가 꽤 마음에 들었어요. 헌데 저 고씨 아가씨와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걸 보니 사람됨이가 별로일 것 같네요. 앞으로 저는 그분과는 교류하지 않을 생각이에요.”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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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이때 방 안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팽팽해졌다.그때 최씨가 가운데로 나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앞쪽 강설헌에서 차를 달이고 있어요. 아가씨들, 먼저 차를 드시러 가시지요.”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다구는 며칠 전에 막 들여온 용천요 매자청이에요. 붉은 진흙 화로에 약한 불로 천천히 끓이고 있으니 때를 놓치면 가장 좋은 맛의 차를 못 드실 수도 있답니다.”최씨는 심가 장방의 장손며느리였다. 이 자리는 겉으로는 심소연이 주관하는 모임이었지만 실제로는 최씨가 마련한 연회였다.심가 같은 명문가에서는 아가씨들 사이에 작은 마찰이 있더라도 최씨가 나서서 분위기를 정리하면 모두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결국 사람들은 함께 강설헌으로 향했다.*심소연과 최씨는 맨 뒤에서 걸어갔다.그때, 심소연이 조용히 물었다.“형수님, 정말로 할머니께서 눈여겨보신 사람인가요?”최씨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노부인께서 고가의 그 아가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 하셨다. 정말로 마음에 두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에도 나에게 그 고씨 셋째 아가씨를 잘 대접하라고 하셨어.”그러다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헌데 설마 저렇게 체면도 없이 도망칠 줄은 몰랐지. 창피한 일이라 내가 쫓아갈 수도 없고.”심소연의 입가에 옅고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오늘 제대로 웃음거리를 만들었네요.”최씨도 담담히 웃었다.“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평범한 아가씨를 심가에서 초대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아까 보니 너희가 이야기하는 내내 목을 움츠리고 있더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지. 정말 소가문 티가 나더구나. 아까 이수옥 아가씨가 그녀를 얕잡아 본 것도 무리는 아니야. 나도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거든.”심소연이 혀를 차며 말했다.“확실히 우스운 모습이었어요. 헌데 됐어요. 그런 사람을 우리가 계속 입에 올릴 필요는 없겠죠. 할머니께서 아니었다면 저도 굳이 교류할 생각은 없었을 거예요.”최씨는 더 말하지 않았다.“이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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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그 시각, 고하운은 큰 나무 뒤에 서 있었다. 눈에는 충격과 혼란이 가득했고 눈물은 또 한 번 주르르 흘러내렸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갑자기 심가에서 자신을 초대했는지.그 사실이 너무도 우스웠다. 심가의 눈에 들기 위해 애써 능력 있는 척했는데 결국 이런 큰 웃음거리가 되어 사람들에게 조롱만 당했다.멍한 정신으로 몸을 돌렸다. 몇 번이나 발이 꼬이며 비틀거렸고 거의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계연수가 고하운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고 눈가는 붉게 부어 있었다.그런 모습에 계연수는 더이상 그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녀 앞을 가로막고 낮게 말했다.“여기는 아직 심가고 주변 하인들은 계속 우리를 보고 있어. 소상거에서 울며 뛰쳐나간 모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을 텐데 지금도 울고 있으면 더 많은 추측을 부를 거야.”그녀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무슨 일이 있든 상관없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걸어가. 내가 하녀에게 말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안내하게 할게. 심씨 큰부인께 인사드리고 난 후 바로 돌아가면 돼.”*그러나 고하운은 계연수의 말을 거의 듣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 소상거에서 망신당한 일조차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방금 들은 말만 맴돌고 있었다.그녀는 눈물로 흐릿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어릴 적부터 늘 사람들의 칭찬을 받던 그 얼굴.사실 어릴 때 자신도 계연수를 부러워했다. 만약 자신이 계연수처럼 생겼다면, 계연수처럼 심가의 시회에서도 능숙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을까? 지금처럼 격에 맞지 않는 여자라는 말을 들었을까?왜인지 모르게 마음속에서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아까 계연수가 자신을 붙잡아 이수옥에게 끌려가지 못하게 했다면 이렇게까지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런 이유로 화를 내면 자신이 질투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이 억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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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백씨에게 이제 고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어서 돌려보내는 것.그녀는 담담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시회에서 고하운이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자신 같은 집안에서 고가 같은 집안을 두고 그 정도 망신을 비꼬는 일은 오히려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격이니까.게다가 노부인은 사람들을 체면 있게 돌려보내라고 분명히 말했다. 애초에 그들을 초대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백씨는 겉으로만 미소를 띠고 장씨에게 말했다.“고씨 셋째 아가씨와 계 아가씨가 시회에서 나오신 것 같네요. 노부인께서는 지금 막 낮잠을 드셨고 저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더 대접을 해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장씨가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분명 손님을 보내겠다는 뜻이었다.그녀는 서둘러 더듬거리며 대답했다.백씨 얼굴에 떠오른 형식적인 미소, 그 속에 담긴 노골적인 성의 없음도 똑똑히 보였다.속으로는 수없이 욕을 퍼부었지만 감히 심가 사람을 노골적으로 거슬리게 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심씨 부인께서 괜히 마음 쓰셨습니다. 저희 집에도 일이 좀 있어서요. 오늘도 사실 잠깐 시간을 내어 온 것이니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백씨는 고개만 끄덕일 뿐, 붙잡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함께 밖으로 나왔으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친절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옆에서 걷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귀부인 특유의 정중하지만 철저히 거리를 둔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심지어 시선조차 장씨와 고하운 쪽으로는 다시 향하지 않았다.그 태도를 장씨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심가 같은 집안을 감히 건드릴 수는 없었기에 속으로 꾹 참고만 있었다.백씨는 절반쯤 배웅하다가 볼일이 있다며 돌아섰고 하녀에게 나머지 배웅을 맡겼다.장씨는 그 상황에서도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심씨 부인께서는 바쁘신데 더 배웅하실 필요 없습니다.”그 말이 얼마나 비굴한 말인지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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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계연수는 조금 전 시회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였다.“오늘 시회에서 있었던 일은 조금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촌 여동생이 몸이 좋지 않아 자리를 어지럽히게 되었고 또 급히 나오는 바람에 아까 함께 계셨던 아가씨들께 제대로 사과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잠시 말을 고른 뒤 말했다.“도련님께서 심소연 아가씨께 말씀을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늘 일은 결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고 필요하다면 다음에 저희가 다시 심부에 찾아와 정식으로 사과드리겠다고요.”그리고 고개를 들어 심정우를 바라보았다.“이 일은 명성과도 관련된 일이니 부디 도련님께서 저와 사촌 여동생을 위해 한 번 말씀을 보태 주셨으면 합니다. 일이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도와주신다면 저희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심정우는 겉보기에는 조금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그는 심소연의 친오빠였다. 그가 한마디 하면 당연히 효력이 있을 것이다.심정우는 계연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일은 사실 아주 작은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계연수는 그의 앞에서 단정히 예를 올리고 있었다.눈을 내리깔고 있는 눈매에 나무 그림자가 얼룩지게 떨어져 빛 속에서 보이는 희고 깨끗한 얼굴. 소박하고 조용한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겸손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기운이 느껴졌다.심정우는 순간 멍하니 그녀의 곧게 선 콧날을 바라보았다.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조금 전 소상거에서 계연수가 시를 읊던 모습이.그때 나무 위에서 낙엽 하나가 천천히 떨어지고 나서야 심정우는 정신을 차렸다.“걱정 말거라.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니다. 잠시 후 내가 누이에게 잘 말해두마. 다른 아가씨들에게도 전하라고 하겠다. 절대 밖으로 퍼지지 않게 하마.”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숨을 놓았다. 적어도 고하운의 명성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아까 시회에 있던 아가씨들은 모두 대대로 벼슬을 이어 온 명문가의 딸들이었다. 그녀들은 경성의 아가씨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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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낮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기색이 묻어났다.그녀는 압박을 견디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보는 심서준의 짙은 눈동자였다.그 눈빛에는 묘하게 엄한 기운까지 담겨 있었다.계연수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작아졌다.“말… 다 했습니다.”심서준은 그런 계연수를 바라보다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심정우를 힐끗 보았다.심정우는 오숙부의 표정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급히 말을 꺼냈다.“정말 끝났습니다.”심서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계연수는 숨기지 않고 방금 나눴던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했다. 심서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계연수의 눈을 바라보았다.문득 떠올랐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가게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녀는 자신을 찾지 않고 굳이 심정우를 찾아갔다. 심지어 두 사람은 같은 탁자에 마주 앉아 있기도 했다.물론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보다 심정우가 더 편하단 말인가? 앞으로는 자신의 부인이 될 사람인데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굳이 심정우를 찾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심서준의 마음속에 묘한 짜증이 눌러 앉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기색도 드러내지 않았다.“이제 돌아가십시오.”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심서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깊은 연못처럼 어두운 눈빛이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그 시선에 가슴이 살짝 조여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마차로 향했다.심서준은 계연수가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시선을 심정우에게 돌렸다.“요즘 너는 꽤 겉과 속이 다른 짓을 하고 있구나.”심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저는 그냥 계 아가씨를 조금 더 만나 보고 싶어서요.”심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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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심정우는 멍한 얼굴로 심서준의 말을 듣고 있었다. 표정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서준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잠시 입술을 다문 뒤, 낮게 말했다.“게다가 그녀는 곧 약혼도 정해질 것이다. 정말 그녀를 좋아한다면 더는 찾아가지 말거라. 괜히 그녀에게까지 화를 끼치지 말란 뜻이다.”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차가웠다.“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널 경성에서 떠나게 할 수도 있다.”심정우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계 아가씨가 누구와 약혼을 한다고요?”심서준은 담담하게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곧 알게 될 것이다.”그리고 덧붙였다.“또 네 상관에게도 말해 둘 생각이다. 앞으로는 네가 쉽게 휴가를 낼 수 없도록. 지금도 군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네 아버지를 부르겠다.”말을 마치자 그는 더 이상 심정우를 보지 않고 그대로 그의 곁을 지나가 버렸다.그 자리에 남은 심정우만이 여전히 충격 속에 서 있었다.*한편 마차에 오른 계연수를 보자마자 장씨가 급히 물었다.“이야기는 잘 됐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문제 없을 겁니다.”그 말을 듣자 장씨는 그제야 조금 안도했다. 적어도 고하운의 명성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사실 조금 전 마차 안에서 고하운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그래도 장씨는 참지 못하고 고하운을 향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네가 시를 못 지을 수는 있어도 어찌 그냥 뛰쳐나올 수가 있단 말이냐? 차라리 머리가 아프다든지 핑계를 대고 넘어갔으면 되지 않았느냐? 그렇게 바로 달아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고하운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숙여 두 무릎 위로 몸을 파묻듯 떨구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장씨를 향해 외쳤다.“제가 시를 맞췄어도 심가에서는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애초에… 그 사람들은 저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고하운은 늘 수줍고 말수가 적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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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집으로 돌아온 뒤, 계연수는 먼저 어머니의 처소에 들러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정오가 되어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앞의 긴 책상에는 화선지가 펼쳐져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림을 그려 보려 했지만 붓을 들어도 도무지 한 획이 떨어지지 않았다.결국 붓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비가 그친 뒤의 봄날 오후, 햇빛은 유난히 밝았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그녀의 몸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따스한 기운에 어느새 졸음이 몰려왔다. 계연수는 책장을 몇 장 넘기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희미하게 어둑한 회색빛이 깔려 있었다.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몸 위에는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고 곁에는 작은 화로가 놓여 있었다.요즘은 손에 쥔 돈도 넉넉해졌고 그녀와 어머니 모두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아직도 숯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로에서는 가끔씩 숯이 터지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계연수는 아직 정신이 몽롱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입안이 마른 느낌이 들어 용춘을 불러 차를 가져오라 했다.*용춘은 밖에서 춘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계연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자 먼저 촛불을 밝히고 이어 계연수가 좋아하는 동화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은은한 향을 머금은 차향이 방 안에 번졌다.계연수는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옆에 떨어져 있던 책을 주워 들었다.몸은 여전히 나른했기에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다시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자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밖이 완전히 어두워질 무렵, 심서준이 찾아왔다.그는 여전히 바깥 마차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문을 두드린 사람은 문하였다.계연수가 밖으로 나오자 문하는 마차를 가리키며 작게 웃으며 말했다.“계 아가씨, 나으리께서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계연수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마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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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계연수는 한 입 베어 물었다. 과자는 부드럽게 부서졌다. 달지 않으면서도 놀라울 만큼 맛이 좋았다.그녀는 무심코 물었다.“이건 어떤 과자인가요?”심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들면 다음에도 가져다주겠습니다.”계연수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심 대인께 계속 이런 일로 번거롭게 해 드리기엔 좀…”심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다. 과자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그는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으며 맑은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밖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그 한마디에 계연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계연수가 연달아 두 개를 먹자 상자 안에는 마지막 하나만 남게 되었다.그녀는 어쩐지 더 먹기가 괜히 민망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순간, 익숙하고 은은한 침향 향기가 가까워졌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서준의 손이 이미 그녀의 입가 가까이에 와 있었다.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마지막 과자가 들려 있었다. 마치 직접 먹여 주려는 듯한 동작이었다.계연수는 순간 얼어붙었다.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조금 물렸다. 그러자 심서준의 손이 다시 앞으로 따라왔다.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다 당신 겁니다.”계연수는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눈을 감히 마주볼 수도 없어 작게 말했다.“저… 제가 먹겠습니다.”그녀는 급히 그의 손에서 과자를 받아 들었다. 긴장한 탓에 코끝에는 얇은 땀이 맺혀 있었다. 시선도 옆으로 돌린 채 눈앞 작은 탁자의 한 모퉁이만 바라보고 있었다.심서준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웃었다.계연수가 너무 급하게 먹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 입에 과자를 거의 다 넣어 버렸다.그는 차를 한 잔 따라 그녀 앞에 내밀었다.“천천히 드십시오.”사실 계연수가 서두른 이유는 심서준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가 보고 있으면 괜히 더 빨리 먹고 싶어졌던 것이다.자신이 먹는 모습을 그에게 보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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