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들은 예를 거두시오."건정제는 오늘 기분이 무척 좋은지,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들어 올렸다.곁에 선 황후 역시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단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는 과연 천하의 국모다웠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후 마마."모든 이들이 인사를 올린 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건정제는 앞으로 두어 걸음 나서며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 행궁으로 봄나들이를 나오니 하늘이 맑고 공기가 청명하여, 경치도 사람도 참으로 조화롭소. 경들과 가솔들은 예법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껏 즐기게. 그래야 이 아름다운 절경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겠소."건정제는 그리 말하며 다시 손을 들어 사람들이 편히 머물도록 이끌었다."예, 폐하."사람들은 건정제의 자애로운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자, 다들 편히 놀다 오시라."건정제는 황후의 손을 이끌더니, 조원철을 비롯한 측근 대신들을 향해 말했다."자네들은 짐을 따라오너라. 궁에서 새로 빚은 다과를 맛보자고."황제와 중신들이 곁에 있는 정자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각자 구경에 나섰다.서너 명의 귀부인들은 한데 모여 앉아 바둑을 두며 담소를 나누었다. 서준은 종실 자제들과 어울려 축국(蹴鞠: 고대 공놀이의 일종)을 하며 연신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내관들은 신선한 과일과 다과를 나르며 분주히 오갔고, 행궁 안은 어느새 활기가 넘쳤다.강유영은 홀로 나무 아래 서서 웃음꽃이 만발한 연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 소란스러움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녀는 마치 얇은 막 너머에 서 있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소음이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처럼 느껴졌다.강유영은 조원철 쪽도, 소지란 쪽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또다시 속이 뒤집힐까 두려웠다. 그저 까만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피며,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도 괜찮을지 가늠하고 있었다."강 소저, 어울려 놀지 않으십니까?"어느새 다가온 소지란이 강유영의 곁에 서 있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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