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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461 - チャプター 470

500 チャプター

제461화

그녀는 맑은 눈빛으로 답을 기다렸다.지강산은 문을 짚은 채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감정이 짙게 뒤엉킨 눈빛이었다. 몇 초 버티던 그는 결국 아쉬운 듯 손을 내렸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은 허서령에게 설명하기 힘든 절제처럼 보였다.지강산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람인지, 예전에 둘이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갑자기 결혼해 버린 사람처럼 관계만 먼저 정해져 있을 뿐 낯설고 어색했다.“저 방에서 공부하려고 해서 문 닫는 거예요.”허서령이 이유를 설명했다.지강산이 진지하게 말했다.“굳이 일 안 해도 돼. 내가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어.”“필요 없어요. 전 일할 거예요. 돈을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치의 문제예요. 제 가치는 제가 직접 만들어요.”지강산은 마음이 놓였다. 기억은 잃었어도 뼛속 성격은 그대로였다.“어려운 일 생기면 말해.”“아마 기억 잃기 전에도 법조문이랑 사건을 너무 많이 봐서 몸이 기억하나 봐요. 다시 한번만 보면 거의 그대로 기억나요. 지금까지는 막히는 것도 없어요.”허서령은 자신감 있게 웃었다.“당장 법무법인으로 복귀해도 될 것 같아요.”지강산이 바로 말했다.“나 이번에 일주일 휴가야.”“네?”허서령은 잠시 멍해 있다가 몇 초 뒤 뜻을 알아챘다.“아, 그렇구나.”그 말은 너무 분명했다. 자기가 며칠 쉬니까 아직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좀 같이 있어 달라는 뜻이었다.어른들은 말을 늘 이렇게 대놓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강산은 계속 자리를 뜨지 않았다. 허서령이 결국 다시 물었다.“또 할 말 있어요?”지강산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천천히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럼 저 문 닫을게요.”허서령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다시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 깊은 곳에 희미한 실망이 보이는 듯했다.문을 닫은 뒤 허서령은 문짝에 등을 기댄 채 손에 든 보석 상자를 내려다봤다. 다시 뚜껑을 열어 값비싼 원석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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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지강산은 그녀 곁으로 와 가리킨 곳을 올려다봤다. 정말 노랗게 익은 커다란 배가 꼭대기에 매달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탐스러웠다.지강산도 손이 닿지 않았다. 몇 센티미터 정도 모자랐지만 발끝으로 서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나도 안 닿네.”지강산은 손을 내리고 허서령을 내려다봤다.“내가 안아 올려 줄까?”허서령의 가슴이 철렁했다.“그냥 의자 가져올게요.”“필요 없어.”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지강산이 쪼그려 앉아 두 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감싸 안고 그대로 일어섰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허서령은 깜짝 놀랐다. 두 발이 공중에 뜨고 몸이 높아지자 긴장해 그의 넓은 어깨를 두 손으로 짚었다.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높은 곳이 무서워서인지, 그가 허벅지를 안고 있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지강산은 고개를 비스듬히 든 채 그녀의 허리 가까이에 얼굴을 댄 자세였다. 꽤 친밀한 접촉이었다.“이 정도면 닿을 거야.”지강산이 알려 줬다.허서령은 민망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들고 손을 뻗었다.딱 커다란 배에 손이 닿았다. 배를 따자 지강산이 말했다.“옆에 있는 것도 몇 개 더 따.”“네.”허서령은 가지를 잡아당겨 하나씩 따서 건넸다. 지강산은 한 손으로 그녀를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배를 받아 바구니에 던졌다.그 친밀한 자세로 꽤 오래 있었다.“됐어요. 이제 내려 줘요.”허서령은 다시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지강산은 쪼그려 앉지 않고 천천히 팔의 힘을 풀었다. 그녀의 몸을 받쳐 준 채 자신의 품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도록 했다.허서령의 몸이 그의 가슴을 타고 내려오며 마찰했다. 묘한 열기가 번졌고, 옷자락이 위로 말려 올라갈 뻔했다.바닥에 발을 딛자 허서령은 얼른 옷을 정리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얼굴도 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문득 이 남자가 은근히 능글맞다는 걸 깨달았다.까치발을 하면 딸 수 있었으면서 안 닿는 척했고, 의자를 가져오면 됐는데 굳이 안아 올렸다. 큰 배 하나만 따면 되는데 여러 개를 더 따게 했고,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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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배 한 바구니를 다 채우자 지강산이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 허서령이 따라오는 걸 확인한 뒤 다시 앞을 봤다.“너는 씻어. 나는 썰어서 즙 낼게.”지강산은 그녀가 곁에 머물도록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눠 줬다.허서령이 궁금해했다.“배즙으로 끓이는 거예요?”“응. 여러 가지 식자재를 가루 내서 섞고 약한 불에 한 시간 정도 졸이면 걸쭉한 청이 돼. 60도 정도로 식었을 때 병에 담으면 1년 넘게 보관할 수 있고, 물에 타 마시면 기침이나 목에도 좋아.”허서령이 놀랐다.“진짜 만들 줄 아는구나...”주방에 들어가 지강산은 배를 싱크대에 쏟고 물을 틀었다. 그러고는 조리대에 기대 그녀를 바라봤다.“내가 농담한 줄 알았어?”허서령은 고개를 저으며 소매를 걷었다.“인터넷에서 레시피 찾아서 할 줄 알았죠.”그리고 싱크대 앞으로 갔다.지강산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진짜 할 줄 알아. 괜히 잘난 척한 거 아니야.”허서령은 순간 멈칫했다. 익숙한 온기가 스며드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지강산의 손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몇 초 멈춰 있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미안. 습관이 돼서.”“예전에도 제 머리 자주 만졌어요?”“어디든 만지는 걸 좋아했는데, 네가 키가 크진 않아서 머리가 제일 손에 잘 닿았지.”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인데 허서령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억이 없으니 이런 조금 야릇한 농담도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허서령은 입을 다물고 배를 하나씩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옮겼다.지강산은 씻은 배의 씨 부분을 도려내고 과육을 네 조각으로 잘라 착즙기에 넣을 준비를 했다.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주방을 환하게 비췄다. 키 큰 남자와 체구가 작은 여자가 나란히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공기에는 은은한 배 향이 퍼졌다.지강산이 과육 한 조각을 잘라 허서령에게 내밀었다.“먹을래?”배 향에 이미 입맛이 당긴 허서령이 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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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성까지 붙여 부른다는 건 화난 거네?’허서령은 얼른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냥 강산 씨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지강산은 길게 숨을 내쉬고 다시 과도를 집어 배를 썰었다. 말투는 여전히 진지했다.“예전 기억이 있든 없든 앞으로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 죽을 때까지 그 말은 하지 마.”허서령은 조금 억울했다. ‘그냥 생각을 물어본 것뿐인데, 헤어지자는 말이 무슨 금기어라도 되는 건가? 이 남자, 성격도 은근 세고 독점욕도 강하고 약간 능글맞기까지 하네. 기억 잃은 뒤 하루를 같이 지냈는데 단점이 벌써 이렇게 많아?’지강산은 그녀 표정이 달라진 걸 알아차리고 몸을 조금 숙여 눈을 맞추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다.“이걸로 나 싫어진 건 아니지?”“그 정도는 아니에요.”허서령은 옅게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도 짙었고 눈꼬리 근처에는 아주 옅은 점 하나가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묘한 색기가 더해졌다.지강산은 안심한 듯 웃고 몸을 바로 세워 다시 배를 썰었다.허서령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화나면 성까지 붙여 부르네요.”지강산은 부정하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응.”“앞으로 괜히 건드리지 않게 강산 씨 선이 어디인지 알려 줄래요? 어떤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지도요.”“방금 네가 건드린 게 내 유일한 선이야.”“방금 그 단어요?”허서령은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다른 건 없어요?”지강산은 고개를 끄덕였다.“너한테는 그것 하나뿐이야.”허서령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남자의 유일한 금기가 여자친구의 ‘헤어지자’라니. 아무래도 믿기 어려웠다.허서령이 또 물었다.“보통은 바람피우는 게 더 큰 건 아니에요?”지강산은 씁쓸하게 웃었다.“내가 모르게만 해.”허서령은 말문이 막혔다.허서령은 옆에서 그가 배청을 만드는 걸 지켜봤다. 익숙한 손놀림에 배청은 점점 걸쭉해지며 집 안 가득 달콤한 향을 퍼뜨렸다. 정말 요리를 많이 해 본 사람 같았다.그녀가 상상하던 권력가 집안 도련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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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허서령은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의 의자에 앉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뒤뜰의 푸른 식물들을 바라보는데 기분이 갑자기 무거워졌다.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이 왜 결혼할 수도 없는 남자를 그렇게까지 붙잡고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강산 씨에게 대체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었고,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 걸까?’지강산에 대한 기억을 찾아보고 싶었던 허서령은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SNS 계정을 하나씩 뒤졌다.그녀의 SNS에는 일 관련 게시물만 있을 뿐 지강산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다른 SNS 계정도 몇 개 열어 봤지만 온통 법률과 사건 이야기뿐이었다. 그제야 예전의 자신이 일상을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둘의 과거를 보여 줄 만한 흔적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그러다 휴대폰 메모장에서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나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남자는 더 좋은 여자를 사랑하고 더 좋은 미래를 살아야 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어두운 곳에 숨어 사는 게 맞다.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방해하지 말자.]허서령은 그 글을 보며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예전의 나는 이렇게까지 비관적이었던 모양이야. 그러니 일상을 기록할 마음도 없었겠지. 눈에 보이는 건 일뿐이었어. 이 정도면 우울증이 안 오는 게 이상해.’허서령은 곧바로 그 메모를 삭제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켜 각도를 맞춘 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환하게 웃으며 셀카를 한 장 찍었다.사진을 SNS에 올리고 문구도 적었다.[새로운 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끝에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이모티콘을 하나 붙였다....해 질 무렵 지태일이 찾아왔다.지상훈과 지은영도 퇴근해 저녁을 먹으러 집에 왔다.식탁에는 가족 다섯 명과 허서령까지 총 여섯 명이 둘러앉았다. 분위기는 제법 화기애애했다.지태일이 궁금한 듯 말했다.“집에 들어오자마자 배청 냄새가 나던데, 누가 만들었어요?”하선희가 웃으며 답했다.“네 동생.”지강산이 정정했다.“나랑 서령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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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지태일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아버지에게 사람 가치가 바닥까지 후려쳐진 그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지상훈은 다시 조용히 밥을 먹던 지강산을 바라보며 눈빛이 무거워졌다.“그리고 너, 강산아.”지강산이 고개를 들었다.“아빠, 저한테는 왜요?”“서령이는 지금 기억이 없다. 본인이 원해서 너와 계속 만나겠다면 나도 관여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결혼할 수 없는 관계가 자기 시간과 청춘을 낭비하는 거로 생각해서 헤어지겠다고 한다면, 예전처럼 집착하면 안 돼. 그 선택을 존중해. 놓아줘야 할 때는 놓아줘야 해.”“알겠어요.”지강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분위기도 순식간에 무거워졌다.하선희와 지은영, 지태일 세 사람은 동시에 지강산을 안쓰럽게 바라봤다.허서령은 밥그릇을 들고 조용히 밥을 먹다가 옆의 지강산을 슬쩍 봤다. 갑자기 기운이 완전히 빠져 보였다.아버님 말씀을 보면 지강산은 예전에 자신에게 꽤 집착했던 모양이다.‘그래도 아버님은 생각보다 사리가 밝은데, 왜 다른 가족들은 다 지강산을 그렇게 가엾게 보는 걸까?’저녁 식사가 끝났다.모두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배를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아 왔다. 배 조각마다 작은 포크가 꽂혀 있었다.허서령이 몸을 앞으로 숙여 하나 집으려는 순간 지강산이 갑자기 손을 눌렀다.“왜요?”허서령이 의아하게 그를 봤다.지강산은 잘게 잘린 배를 바라보다 허서령을 봤다. 방금 그녀가 SNS에 올린 문장이 떠올랐다.[나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기.]예전에는 뭔가 나눠 먹는 것조차 유난히 의미를 두던 허서령은 이제 없었다.“아무것도 아니야.”지강산은 손을 놓았다.“내가 집어 줄게.”그는 손을 뻗어 배 한 조각을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고마워요.”허서령은 받아 들고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면서 소파에 기대 배를 먹으면서 몰래 지강산을 바라봤다.‘내가 과일을 집으려는 작은 행동까지 바로 알아챘어. 혹시 이 남자는 계속 나만 보고 있었던 걸까?’그때 지태일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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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상세한 설명을 다 들은 뒤 수십 년간 판사로 일했던 하선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휴... 사돈어른이 정말 너무 충동적이었어. 작은 다툼 하나 때문에 형사사건에 휘말렸으니. 이런 사건은 인적·물적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진범이 직접 자백하지 않는 이상 뒤집기 쉽지 않아.”지은영이 말했다.“엄마, 진범이 자기 입으로 자백할 리가 없잖아요.”하선희가 답했다.“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말을 유도하고,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거짓말탐지기도 해 보고. 불법적인 강압 수사만 아니면 가능한 방법은 다 써 볼 수 있지.”“그런데 진범이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큰오빠도 조사 방향을 못 잡았다고 했고.”지은영은 다리를 꼬고 턱을 괴며 한숨을 쉬었다.“새언니 아버지가 현장에 들어갔다가 40초 뒤에 나왔다는 영상이 있잖아요. 법정에서는 그 40초가 폭행한 시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니 정말 할 말이 없어요.”지상훈도 무거운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였다.“확실히 어렵긴 하지. 서령이가 몇 년 동안 재심 신청을 계속했는데 반려된 것도 이해는 돼. 내 형만 탓할 일은 아니야.”그 말에 하선희가 바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당신 형 편들지 말아요. 그냥 서령이라서 엄격하게 본 거죠. 우리 지씨 집안 친척 누구 사건이었으면 심사 기준 조금 완화해서 재심은 받아 줬을걸요? 재심해 봐야 최악의 결과는 원심 유지인데, 혹시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지상훈이 설명했다.“우리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선희가 콧방귀를 뀌었다.“당신 형수는 그래요.”지상훈은 더 할 말이 없었다.“그 여자는 우리 집이 자기네 집보다 잘사는 걸 못 봐요. 뭘 하든 경쟁하고 뭘 하든 먼저 가져가려고 해요. 겉으로는 집안 명예니 후손이니 하면서 큰며느리 체면을 다 차리는데, 뒤에서는 얼마나 지저분한 짓을 하는지 몰라요.”하선희는 쌓였던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서령이 아이를 잃은 것도 그 여자 짓이 아닐까 의심돼요. 아버님 골동품도 눈독 들인 지 오래고, 증손이 아버님 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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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지은영은 짧게 자른 머리 아래로 드러난 그의 귀가 새빨개진 걸 보고, 큰오빠가 형수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봤을 거로 추측했다.그런데 어머니가 대놓고 손주 이야기를 꺼내니, 집에 있는 젊고 예쁜 아내가 떠올라 저렇게 얼굴을 붉히는 모양이었다.다만 얼굴이 구릿빛이라 붉어진 티는 잘 나지 않았다.둘째 오빠처럼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었다면 아마 원숭이 엉덩이처럼 새빨개졌을 것이다.한편, 허서령은 사건 기록을 끝까지 읽고 서류를 덮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태일을 바라봤다.“아주버님, 변호사로서 하나 물어볼게요. 사건 기록에 증인이 네 명 나와요. 그중 이은경, 그러니까 피해자 진병철의 아내가 있는데요. 이 사람이 원래부터 계속 성매매를 하던 사람이에요?”지태일이 설명했다.“계속하던 건 아니야. 집이 어려워질 때마다 남편이 일을 해서 돈 벌기 싫어했고, 그래서 아내한테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라고 강요하고 손님까지 연결해 줬어.”기억이 사라진 허서령은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완전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우리 아빠가 범인이라면,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왜 끝까지 자기는 무죄라고 주장했을까요?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사고방식과는 잘 맞지 않아요. 진짜 본인이 범행했다면 오히려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형량을 줄여 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죠.”하선희가 바로 동의했다.“맞아, 서령이 말이 맞아. 엄마가 수십 년 동안 본 사건만 해도 셀 수가 없어. 판단력도 낮고 학력도 낮은데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가 억울하다고 버티는 경우가 흔치 않아. 정말 정직하고 선한 사람인데 실제로 무고한 경우라면 중형을 받아도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지태일이 허서령에게 물었다.“이은경이 수상하다고 보는 거야?”허서령은 몇 초 생각하다 무겁게 말했다.“저는 이은경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일 수도 있다고 봐요.”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지강산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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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그 눈빛에 허서령이 오히려 긴장해 얼른 덧붙였다.“그냥 가능성을 막 던져 본 거예요. 좀 황당할 수도 있고요.”지태일은 결국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아니, 전혀 안 황당해. 가정이 충분히 합리적이야. 서령아, 변호사 그만하고 경찰 시험 볼래? 새로운 조사 방향을 찾아 줬어.”지은영도 허리를 펴고 감탄했다.“그래서 하준 변호사처럼 유명한 사람이 직접 고액 연봉 주고 새언니를 데려온 거구나. 새언니 진짜 대단해요. 진성호가 범인이든 아니든, 이 가정은 대담하면서도 논리적이잖아요. 조사할 새로운 방향이 생긴 거고.”늘 엄숙한 지상훈의 눈에도 감탄이 떠올랐다.그는 막내아들이 왜 이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원 가족의 그늘과 깊은 슬픔을 벗겨 내고 나면, 본래의 허서령은 영리하고 용감하며 단단한 사람이었다.허서령은 모두가 자신을 칭찬하는 게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는 별로 특별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지강산의 눈에는 잔잔한 빛이 가득했고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탄이 번져 있었다. 미소도 한없이 부드러웠다.허서령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저 예전에는 이런 생각 못 했어요?”지강산이 고개를 저었다.“못 했어. 당사자라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걱정이 너무 커서 판단이 흐려졌을 수도 있어. 아버지 일 터지고 우리도 헤어졌던 시기에 네 우울증이 시작됐거든.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지금처럼 냉정하고 명확하게 사건을 보기 어려웠어.”“그렇구나.”허서령은 지태일을 바라보며 부탁했다.“그럼 아주버님 동료분들에게 진성호가 5년 전 사건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집중해서 조사해 달라고 해주세요. 지금도 혹시 도망갈 수 있으니 확인해야 하고요.”“도망은 못 가.”지강산이 대답했다.“교도소에 있거든. 형기가 3년 넘게 남았어.”허서령이 놀랐다.“무슨 죄를 지었는데요?”지은영이 신나서 대신 답했다.“새언니를 괴롭혔거든요. 둘째 오빠가 하준 변호사를 찾아 새언니 사건을 맡겼고, 형량도 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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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지강산의 시선은 허서령의 뒷모습을 계속 따라갔다. 잠시 뒤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산아, 앉아.”지상훈이 그를 불러 세웠다.지강산은 이미 일어났다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앉았다.지상훈과 하선희는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깊고 얼굴에는 무력감이 어려 있었다.“강산아, 어떤 일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지상훈이 진중하게 타일렀다.“내가 보기에도 서령이는 피상적인 사람이 아니야. 정신적으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독립적인 사람이야.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까지 전부 사라진 지금, 이렇게 성숙하고 지적이고 똑똑하며 독립적인 여자가 다시 너를 사랑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알지?”“알아요.”지강산은 무겁게 대답하고는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여기까지 왔으니 저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요.”“아버지 사건이 뒤집혀도 결혼을 강요하지 마. 감정은 서로 원해야 하는 거야. 서령이는 너한테 빚진 게 없어.”지강산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은 채 힘 빠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두 눈은 더 어두워졌다.그 모습을 보던 하선희는 눈가가 젖은 채 길게 한숨을 쉬며 아들을 바라봤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강산아, 엄마 아빠도 알아. 서령이는 정말 좋은 아이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아이도 독립된 사람이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야 해.”지강산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지만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엄마 아빠는 제가 서령이를 억지로 붙잡고 상처 줄까 봐 걱정하면서, 아들이 힘들 건 걱정 안 돼요?”지상훈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넌 남자잖아. 일에 더 집중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 지나간다.”“남자니까 좀 더 버텨야죠.”지강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이 거의 빠진, 쉰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서령이가 떠나겠다고 하면 참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억지로 붙잡지 않을게요.”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돌아서는 지강산은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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