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달리 캡슐 안쪽은 의외로 따뜻했다. 살을 감싸는 온도가 체온과 비슷하게 맞춰진 것 같았다. “심호흡해.”역시나 재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해인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희뿌연 연기와 함께 등 쪽이 약간 따끔하더니 눈꺼풀이 스르르 무거워졌다. “마이크로 로봇 투입.”이후부턴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더 이상 아프지도 따갑지도 않았지만 이미 혈관과 신경을 타고 수많은 마이크로 로봇들이 흐르고 있었다. 해인은 그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의 젖은 운동장 냄새,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파문처럼 스쳤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시끄러운 복도, 처음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자각했던 순간, 설렘에 잠들지 못했던 기억. 부끄러움, 기대, 실망. 꿈이라 느끼는 모든 감정이 통째로 추출되고 있었다.언젠가 이불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알아가던 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심장 박동, 귀 끝까지 달아오르던 열기, 숨을 참으며 느꼈던 낯선 쾌감은 물론 망설임과 죄책감도 스쳤다.마지막 장면은 백재원의 모습이었다. 침대 위, 매서운 눈매로 자신을 옭아매던 순간들이 짜릿하게 되살아났다. 첫 경험.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아...”캡슐 안, 해인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몸은 마취되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꿈만큼은 이상하게 선명했다.모니터에 그래프가 급격하게 요동쳤다. 감정 반응 수치 상승, 쾌감 회로 활성화, 기억 밀도 최고치. 재원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꽤나 짜릿했나 보네. 온해인.”마이크로 로봇이 해마의 시냅스를 스캔하며 해인의 기억들을 데이터화했다. 그건 단순한 영상 복제가 아니었다. 이미지, 감각, 체온, 심박, 호르몬 분비 패턴까지. 해인이 느꼈던 강도가 그대로 추출되었다. “OK, 장치 세팅.”케이블이 온몸을 휘감으며 가운이 벌어졌다. 케이블 선단은 오늘도 액체를 뿜어냈지만, 어제처럼 끈적함과 다른, 부드럽고 밀도 있는 크림 제형. 물론 해인은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Zuletzt aktualisiert : 2026-04-23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