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Chapter 231 - Chapter 240

287 Chapters

#230. 오만한 폭군을 굴복시키고 싶은데

난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오늘 내가 그와 도달하고자 했던 대화의 방향은, 그가 깔아놓은 이 달콤한 비단길이 아니었다.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마냥 꿈속을 헤매던 이 순간,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을 떠올렸다.“대표님.”나는 그가 내미는 반지를 향해 손을 뻗는 대신, 반대로 그의 단단한 손을 밀어냈다.“왜?”차준호의 짙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반지는 넣어두세요.”나는 당혹감이 서린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주의 차가운 아침 바람이 그와 나 사이를 서늘하게 가로질렀다.“왜 그러지?”나는 턱을 슬그머니 치켜들고, 오만한 시선으로 그를 정면에서 꿰뚫었다. 오늘 새벽 그의 품에 안겨 무방비하게 신음하던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내 목소리는 차갑고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난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아주 어둡고 슬픈 비밀 말이에요.”차준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증발해 버렸다.“난 네게 떳떳해.”그의 눈동자가 맹수처럼 가늘어지며 나를 서늘하게 옭아맸다. 압도적인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자국 더 다가가 그의 넥타이를 거칠게 휘어잡고 내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물론 당신은 내게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죠. 대신 진실도 언급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당신의 그 어두운 비밀을 풀어낼 해결책은, 이제 내가 쥐고 있으니까.”차준호의 거친 숨결이 내 코끝에 아찔하게 닿았다.“신하늘, 그건 비밀도 아니야
Read more

#231. 그대의 훈장에 경의를 표하며

정적.차진아의 그 떨리는 한마디가 떨어진 순간, 작은 카페 안은 마치 모든 산소가 순식간에 빠져나간 것처럼 무겁고 짓눌린 고요 속으로 침몰했다.나는 차진아를 향해 당장이라도 다가가 머리라도 쓸어내려 주고 싶었다. 이 오만한 남자의 철옹성 같은 비밀을 무너뜨릴 첫 번째 균열을, 그토록 겁 많고 어린 차진아가 목숨을 걸듯 내어준 것이었으니까.열린 창문 틈새로 제주의 짙은 바다 내음이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멀리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이 충격적인 폭탄선언 앞에서 가장 크게 흔들려야 할 사람은 단연 차준호였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처럼 덤덤했다.속눈썹 하나 떨리지 않는 얼굴. 무심하게 젓가락을 움직여 반찬을 집어 올린 그가,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다는 듯 나직하고 서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차진아, 밥이나 먹어.”명백한 경고이자 통제였다. 자신이 쥔 비밀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오는 거만함.나는 차분하게 숨을 정돈하며, 눈앞의 이 위태롭고도 오만한 포식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선이 공중에서 정면으로 얽혀 들었다.“대표님. 진아 양이 제게 아주 간절한 부탁을 하네요.”내 서늘한 받아침에도 차준호는 입꼬리를 피식 올리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마치 아이의 어리숙한 투정을 들은 어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이어갔다.“내 앞날이야. 그 누구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단 한 치의 여지도 두지 않는 냉혹한 거절이었다. 곁에 앉은 차진아는 그 서늘한 기류에 어깨를 바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여태껏 차준호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던 고미주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는 그동안 차 대표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어요. 신
Read more

#232. 벼랑 끝에서 이젠 비밀의 문을 열고

“음, 뭔지 몰라도 신 비서가 대처한다면 지혜롭게 마무리 짓겠군.”금방이라도 폭주할 듯 사납게 몰아붙이던 주원형의 얼굴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순식간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거두어졌다. 짓눌렸던 경련이 풀리며 굳었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활짝 펴졌다.신하늘이라는 유능한 존재가 그 거대한 비밀의 축을 공유하고 있다면, 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눈빛이었다.“그래요. 이게 세상에 밝혀지면, 대표님도 절 이해할 수 있으실 거예요.”얄밉도록 단단하고 완벽한 신하늘. 하지만 그 유능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강소희의 깊은 절망 속에서도 묘한 안도와 믿음이 싹터 올랐다.그녀는 천천히 대형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여배우의 화려한 왕관이 수면 위의 비누 거품처럼 허망하게 터져 나가고 있었다.강소희는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는 손을 올려 자신의 아랫배 위에 가만히 얹었다. 이 작은 생명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덮친 이 지독한 파국은 또 어떤 절망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그때 주원형이 조용히 다가와 강소희를 품에 가득 안았다. 그의 두꺼운 손길이 등 뒤를 다독이며 묘하게 다정하게 이어졌다.“우리 결혼 이야기나 매듭짓자고. 행복해야 할 신부를 너무 다그쳐서 미안해.”어쩌면 이 남자가 자신을 구원해 줄 마지막 밧줄일지도 몰랐다. 굴지의 엔터사 대표이자 대한민국 탑 배우였던 대단한 재력가와의 정식 결혼.여배우로서의 비참한 몰락이 아닌, 새로운 보호막과 울타리의 시작임을 깨닫자 얼어붙었던 심장에 기묘한 평온이 찾아왔다.거대한 비밀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대한민국은 거친 지진이라도 난 듯 뒤집어질 터였다.“그래요, 우린 행복해질 거예요. 저기 화면에 나오는 신 비서가·&mi
Read more

#233. 욕심이 정점에 선 구원자

공항 한복판, 수백 개의 플래시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게 뒤흔들며 사방에서 터져 나갔다.그 눈이 멀 것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내 시선은 오롯이 차준호의 눈동자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이 강인한 남자가 아프다니. 모든 것을 제 발아래 두고 통제하던 이 포식자가 쓰러져 가다니.눈앞의 단단하고 건장한 피지컬을 보고 있노라면 결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잔혹한 진실이었다.단단했던 차준호의 완벽한 가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경악과 혼란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남자의 시선이 정면에서 내 눈동자와 거칠게 부딪쳐 왔다.“신하늘, 지금 XX당 관계자들부터 만나야지. 무슨 소리야.”억누른 목소리 사이로 낮게 깔린 경고가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주위는 취재진의 고함과 마이크 세례로 도도한 소음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이 남자가 풍겨 내는 날카로운 서늘함만큼은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왔다.나는 당황함으로 일렁이는 그 눈빛을 부드럽게 올려다보았다.“아니요. 병원부터요.”입꼬리를 단단하게 고쳐 물고, 마치 고집스러운 어린아이처럼 단호하게 떼를 썼다. 밀려드는 취재진 앞이라는 상황도, 시시각각 생중계로 타전되는 뉴스의 시선도 전부 상관없다는 듯한 내 막무가내 태도에 차준호의 굳은 얼굴 위로 서늘한 냉기가 짙게 내려앉았다.“선거 안 나가?”남자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나직한 물음 속에는 나를 향한 걱정과, 자신의 치부를 끝까지 감추려는 포식자의 지독한 방어기제가 동시에 얽혀 있었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나는 머릿속을 까맣게 비워 낸 채 오직 차준호라는 존재로만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내 인생을 지배해 온 비참했던 과거도, 김희주를 구
Read more

#234. 내 인생 우선순위, 바로 그대!

“어르신! 차준호가 아프다니요?”김희주는 충격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크게 외쳤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서늘하고 차가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건조하게 깔린 음성이 들려왔다.― 신하늘이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서. 선거운동 따위는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순이야.호재도 이런 대형 호재가 없었다. 차준호라는 거대한 인물의 치명적인 건강 이상이라니. 미리 알았더라면 자신이 진작에 그 약점을 낚아채 세상에 터뜨리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터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최고의 변수였다.“그렇다면······ 제가 사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혀를 쯧쯧 차는 서늘한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김희주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 자신이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묘책이라는 말을 내던졌다는 뜻은, 자신을 구원할 계략을 꾸미고도 남았다는 소리였다.― 그 여자의 발목을 낚아채 흠을 붙잡고 늘어져 보든가. 대중은 김 의원을 향한 관심을 자연스레 잊게 될 것이오. 이번 선거는 몸을 사리고, 다음 지방선거 때 김 의원이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로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전폭적으로 판을 깔아주겠소.김희주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요?”언제 울었냐는 듯 일그러졌던 그녀의 얼굴 위로, 서서히 기괴하고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도약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이라니, 막강한 실권
Read more

#235. 그 남자에게만 잔인하게 흐르는 시간

차진철 회장의 등장만으로도 로비를 채우고 있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쏠려들었다.나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수행원들을 빽빽하게 대동하고 나타난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병원 복도의 공기를 순식간에 다시 겨울로 바꿔 버렸다.구겨진 미간 아래로 굳어진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노골적인 멸시와 불쾌함이 그 서늘한 눈빛에 훤히 찍혀 있었다.“신 비서, 선거는 벌써 포기한 건가? 바쁠 텐데 그만 가봐.”감히 이 재계의 거물을 병원으로 불러내다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겁이 없긴 했다.차진철의 냉정한 축객령에도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차준호의 얼굴에도 깊은 불쾌함이 감돌았다.“신하늘, 선 넘지 마.”손끝으로 차가운 오한이 몰려왔지만, 나는 꺾이지 않기 위해 허리를 바짝 세우고 차진철 회장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제가 아무리 바빠도 회장님을 이 자리에 모실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나의 당돌한 응수에 차진철의 안색이 한층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운 좋게 공천장을 거머쥐어도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아.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이지!”그는 거침없이 날 선 비난을 내던지며 나를 짓눌렀다.정치적 입지가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한들, 차진철의 눈에 나는 여전히 감히 차준호의 곁을 탐할 수 없는 미천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하지만 오죽했으면 내가 이 서늘한 거물을 직접 병원으로 끌어들였겠는가.“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행원들을 모두 멀리 물려주십시오. 회장님과 대표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만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신하늘, 피곤하니까 일 키우지 마
Read more

#236. 고독을 즐기며 예견된 파멸을 걷는 남자

병원 복도에는 하얀 소독약 냄새가 공기 중에 자욱하게 맴돌며, 마치 유령의 숨결처럼 서늘하게 피부를 핥고 지나갔다.차진철 회장의 눈빛에는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은 듣고 싶지 않은 잔인한 진실을 터뜨려 버린 나를 향한 원망이자, 무너진 자존심이 내뿜는 독기였다.“신 비서, 선거로 바쁜 몸일 텐데 남의 집안일에 유난 떨지 말고 어서 돌아가!”피 끓는 아비의 절박함인 동시에, 무너져 내린 위엄을 지키기 위한 비겁한 화풀이였을지언정 난 반발하지 않았다.오한이 서릴 정도의 무시와 멸시를 해도 차준호만 살릴 수 있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차 대표는 절대로 이식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어. 큰일이야, 신 비서. 제발 살려줘.]고미주를 통해 알게 된 그 잔인한 진실이 귓가를 울렸다.그렇기에 나는 차진철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끌어들여 그를 강제로 벼랑 끝에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다. “제가 무모했습니다, 회장님. 이런 방식으로 알려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이기적인 저를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그저······ 대표님을 잘 부탁드립니다.”나의 처연한 사죄에 차진철은 짓눌린 한숨을 내쉬며 차갑게 시선을 돌려 버렸다.몸을 돌려 서늘한 복도 너머로 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 순간.“신하늘, 같이 가. 기다려.”거칠고도 단단한 악력이 내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돌아본 곳에는 여전히 오만한 가면을 쓰고 있는 차준호가 서 있었다.늘 모든 것에 초연하고 아득한 거리를 두던 남자의 두 눈동자에는,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사정
Read more

#237. 칼을 품은 백조가 날개를 펼치다

차준호의 귓가에는 차진철 회장과 강진욱 박사의 목소리가 더 이상 닿지 않았다.아버지에게 자신의 시한부 비밀이 알려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으나, 어차피 언젠가는 드러났을 진실이었다. 그보다 그를 자극하는 것은, 제 목숨을 던져서라도 자신을 수술대로 떠밀려는 신하늘의 기특하고도 처연한 간절함이었다.차준호가 여전히 생명에 초연한 채 딴생각에 잠겨 있자, 차진철 회장은 원망과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장 이식 수술 날짜부터 잡아! 진아와 고 여사에게는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데려올 테니! 조직적합성까지 맞다는데 이게 기회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아니면 강소희라도 끌어들이든가! 해준다고 할 때 받아! 받아들이란 말이다!”차준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무엇보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온통 신하늘뿐이었다. 밥은 제때 챙겨 먹었는지, 저 험악하고 어수선한 선거판 한가운데에서 위축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어 미칠 것만 같았다.조급해진 차준호는 말 한마디마다 서늘한 독을 품은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아버지, 소희는 배우이고 현재 임신 중입니다. 진아 이야기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고요. 타인의 피를 짜내 연명하느니, 차라리 우아하게 말라죽겠습니다. 사람 목숨, 그리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그러자 차진철 회장 역시 벼락같이 일어나 차준호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잡았다.“네 어미도 그렇게 금방 죽었다! 다들 내 곁을 그리 황망하게 떠나 버렸는데······ 너마저 이러면······ 나는 대체 어쩌라고·····&m
Read more

#238. 여왕의 곁으로 결집하는 기사들

세종동의 좁은 골목 초입, 최기범이 공들여 준비한 그곳에 다다랐을 때 도시에는 서서히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그러나 건물 내부는 마치 쇳물을 부어 넣는 주물공장처럼 열기와 긴장감으로 펄펄 끓어오르는 모양새였다.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퇴근길에 접어들 시간이었지만, 이곳엔 당에서 파견한 정예 인력이 즉각 투입되어 사무실은 흡사 거대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소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벽면에는 내 얼굴과 기호가 큼지막하게 박힌 초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선거 공약서와 홍보 인쇄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다섯 대의 유선 전화기가 일제히 비명을 지르듯 울려 댔고, 벽면 데스크에 늘어선 봉사자들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는 팽팽한 치열함 속의 총격음처럼 귀를 때렸다.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하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이전의 내게 선거일이란 그저 빨간 날로 표시된 공휴일일 뿐이었고, 거실 소파에 누워 개표 방송을 게임하듯 들여다보던 게 전부였다.하지만 이것이 진짜 정치판의 민낯이자,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전의 서막이었다.사무실 한쪽, 당에서 파견된 선거 전략 전문가 이승은 선대위원장이 지역구 지도 한 장을 거창하게 펼쳐 놓으며 나를 불러세웠다.“신 후보님, 개표 방송 날 전국에서 가장 먼저 후보님 가슴에 당선 무궁화꽃이 달릴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판을 짜겠습니다!”내가 직접 벌인 판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절로 기가 찼다.“역시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그럼요. 오래 사셔서 국회에도 아주 길게 머물러 주셔야죠.”내가 오래오래 살아가는 그 길에 반드시 차준호라는 남자도 함께 있어 주어야 하는데.그 지독하고 오만한 성격상 절대 이식을 받지 않겠다고
Read more

#239. 맹수를 길들일 때 필요한 채찍은 무엇?

“어! 대표님!”“오셨습니까?”허기찬과 선우현을 비롯한 XX당 관계자들이 하나둘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고, 나 역시 천천히 차준호에게로 다가섰다.자신의 죽음마저 아득하게 비웃던 이 남자가, 이제 내가 벌여놓은 정황의 전장 속으로 깊숙이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회사 안 들어가셨어요? 아니면 회장님하고 한남동이라도 가시지.”“신하늘 밥 안 먹었을 거 아니야.”이 와중에 밥 타령이라니.그러고 보니 그가 몰고 온 보좌 인력들의 손에는 고급스러운 팩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싱그러운 과일과 정갈한 고급 한정식 도시락, 그리고 세련된 디저트까지.이 남자는 늘 이랬다. 자신의 생명이 시들어가는 것은 방관하면서도, 언제나 내 끼니와 안위에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사람 마음을 이토록 심란하게 어지럽혀 놓고서.“대표님, 저랑 잠깐 옥상에서 이야기 좀 나눠요.”어쨌든 나를 아끼는 그 지독한 마음을 이용해 먹는 수밖에 없었다.차준호는 나른한 미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망설임 없이 내 손을 꽉 감싸 쥐었다.“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그가 잡아끄는 온기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그의 뜨거운 체온이 굳어있던 내 심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있었다.***서울의 밤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으나, 그 속살은 지독하게 건조하고 냉혹했다.옥상 위, 나는 차준호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아득한 허공을 응시했다. 봄의 초입이라기엔 너무도 예리한 바람이 칼날처럼 뺨을 베고 지나갔다.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별빛이 차갑게 일렁였
Read more
PREV
1
...
2223242526
...
2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