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김희주는 충격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크게 외쳤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서늘하고 차가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건조하게 깔린 음성이 들려왔다.
― 신하늘이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서. 선거운동 따위는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순이야.
호재도 이런 대형 호재가 없었다. 차준호라는 거대한 인물의 치명적인 건강 이상이라니.
미리 알았더라면 자신이 진작에 그 약점을 낚아채 세상에 터뜨리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터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최고의 변수였다.
“그렇다면······ 제가 사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혀를 쯧쯧 차는 서늘
차진철 회장의 등장만으로도 로비를 채우고 있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쏠려들었다.나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수행원들을 빽빽하게 대동하고 나타난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병원 복도의 공기를 순식간에 다시 겨울로 바꿔 버렸다.구겨진 미간 아래로 굳어진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노골적인 멸시와 불쾌함이 그 서늘한 눈빛에 훤히 찍혀 있었다.“신 비서, 선거는 벌써 포기한 건가? 바쁠 텐데 그만 가봐.”감히 이 재계의 거물을 병원으로 불러내다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겁이 없긴 했다.차진철의 냉정한 축객령에도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차준호의 얼굴에도 깊은 불쾌함이 감돌았다.“신하늘, 선 넘지 마.”손끝으로 차가운 오한이 몰려왔지만, 나는 꺾이지 않기 위해 허리를 바짝 세우고 차진철 회장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제가 아무리 바빠도 회장님을 이 자리에 모실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나의 당돌한 응수에 차진철의 안색이 한층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운 좋게 공천장을 거머쥐어도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아.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이지!”그는 거침없이 날 선 비난을 내던지며 나를 짓눌렀다.정치적 입지가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한들, 차진철의 눈에 나는 여전히 감히 차준호의 곁을 탐할 수 없는 미천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하지만 오죽했으면 내가 이 서늘한 거물을 직접 병원으로 끌어들였겠는가.“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행원들을 모두 멀리 물려주십시오. 회장님과 대표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만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신하늘, 피곤하니까 일 키우지 마
“어르신! 차준호가 아프다니요?”김희주는 충격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크게 외쳤다.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서늘하고 차가운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건조하게 깔린 음성이 들려왔다.― 신하늘이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서. 선거운동 따위는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순이야.호재도 이런 대형 호재가 없었다. 차준호라는 거대한 인물의 치명적인 건강 이상이라니.미리 알았더라면 자신이 진작에 그 약점을 낚아채 세상에 터뜨리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을 터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최고의 변수였다.“그렇다면······ 제가 사퇴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혀를 쯧쯧 차는 서늘한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김희주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자신이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묘책이라는 말을 내던졌다는 뜻은, 자신을 구원할 계략을 꾸미고도 남았다는 소리였다.― 그 여자의 발목을 낚아채 흠을 붙잡고 늘어져 보든가. 대중은 김 의원을 향한 관심을 자연스레 잊게 될 것이오. 이번 선거는 몸을 사리고, 다음 지방선거 때 김 의원이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로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전폭적으로 판을 깔아주겠소.김희주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요?”언제 울었냐는 듯 일그러졌던 그녀의 얼굴 위로, 서서히 기괴하고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이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도약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이라니, 막강한 실권
공항 한복판, 수백 개의 플래시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게 뒤흔들며 사방에서 터져 나갔다.그 눈이 멀 것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내 시선은 오롯이 차준호의 눈동자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이 강인한 남자가 아프다니. 모든 것을 제 발아래 두고 통제하던 이 포식자가 쓰러져 가다니.눈앞의 단단하고 건장한 피지컬을 보고 있노라면 결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잔혹한 진실이었다.단단했던 차준호의 완벽한 가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경악과 혼란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남자의 시선이 정면에서 내 눈동자와 거칠게 부딪쳐 왔다.“신하늘, 지금 XX당 관계자들부터 만나야지. 무슨 소리야.”억누른 목소리 사이로 낮게 깔린 경고가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주위는 취재진의 고함과 마이크 세례로 도도한 소음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이 남자가 풍겨 내는 날카로운 서늘함만큼은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왔다.나는 당황함으로 일렁이는 그 눈빛을 부드럽게 올려다보았다.“아니요. 병원부터요.”입꼬리를 단단하게 고쳐 물고, 마치 고집스러운 어린아이처럼 단호하게 떼를 썼다. 밀려드는 취재진 앞이라는 상황도, 시시각각 생중계로 타전되는 뉴스의 시선도 전부 상관없다는 듯한 내 막무가내 태도에 차준호의 굳은 얼굴 위로 서늘한 냉기가 짙게 내려앉았다.“선거 안 나가?”남자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나직한 물음 속에는 나를 향한 걱정과, 자신의 치부를 끝까지 감추려는 포식자의 지독한 방어기제가 동시에 얽혀 있었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지금 이 순간, 나는 머릿속을 까맣게 비워 낸 채 오직 차준호라는 존재로만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내 인생을 지배해 온 비참했던 과거도, 김희주를 구
“음, 뭔지 몰라도 신 비서가 대처한다면 지혜롭게 마무리 짓겠군.”금방이라도 폭주할 듯 사납게 몰아붙이던 주원형의 얼굴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순식간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거두어졌다. 짓눌렸던 경련이 풀리며 굳었던 표정이 거짓말처럼 활짝 펴졌다.신하늘이라는 유능한 존재가 그 거대한 비밀의 축을 공유하고 있다면, 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눈빛이었다.“그래요. 이게 세상에 밝혀지면, 대표님도 절 이해할 수 있으실 거예요.”얄밉도록 단단하고 완벽한 신하늘. 하지만 그 유능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강소희의 깊은 절망 속에서도 묘한 안도와 믿음이 싹터 올랐다.그녀는 천천히 대형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여배우의 화려한 왕관이 수면 위의 비누 거품처럼 허망하게 터져 나가고 있었다.강소희는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는 손을 올려 자신의 아랫배 위에 가만히 얹었다. 이 작은 생명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덮친 이 지독한 파국은 또 어떤 절망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그때 주원형이 조용히 다가와 강소희를 품에 가득 안았다. 그의 두꺼운 손길이 등 뒤를 다독이며 묘하게 다정하게 이어졌다.“우리 결혼 이야기나 매듭짓자고. 행복해야 할 신부를 너무 다그쳐서 미안해.”어쩌면 이 남자가 자신을 구원해 줄 마지막 밧줄일지도 몰랐다. 굴지의 엔터사 대표이자 대한민국 탑 배우였던 대단한 재력가와의 정식 결혼.여배우로서의 비참한 몰락이 아닌, 새로운 보호막과 울타리의 시작임을 깨닫자 얼어붙었던 심장에 기묘한 평온이 찾아왔다.거대한 비밀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대한민국은 거친 지진이라도 난 듯 뒤집어질 터였다.“그래요, 우린 행복해질 거예요. 저기 화면에 나오는 신 비서가·&mi
정적.차진아의 그 떨리는 한마디가 떨어진 순간, 작은 카페 안은 마치 모든 산소가 순식간에 빠져나간 것처럼 무겁고 짓눌린 고요 속으로 침몰했다.나는 차진아를 향해 당장이라도 다가가 머리라도 쓸어내려 주고 싶었다. 이 오만한 남자의 철옹성 같은 비밀을 무너뜨릴 첫 번째 균열을, 그토록 겁 많고 어린 차진아가 목숨을 걸듯 내어준 것이었으니까.열린 창문 틈새로 제주의 짙은 바다 내음이 차가운 밤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멀리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이 충격적인 폭탄선언 앞에서 가장 크게 흔들려야 할 사람은 단연 차준호였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처럼 덤덤했다.속눈썹 하나 떨리지 않는 얼굴. 무심하게 젓가락을 움직여 반찬을 집어 올린 그가,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다는 듯 나직하고 서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차진아, 밥이나 먹어.”명백한 경고이자 통제였다. 자신이 쥔 비밀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오는 거만함.나는 차분하게 숨을 정돈하며, 눈앞의 이 위태롭고도 오만한 포식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선이 공중에서 정면으로 얽혀 들었다.“대표님. 진아 양이 제게 아주 간절한 부탁을 하네요.”내 서늘한 받아침에도 차준호는 입꼬리를 피식 올리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마치 아이의 어리숙한 투정을 들은 어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이어갔다.“내 앞날이야. 그 누구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단 한 치의 여지도 두지 않는 냉혹한 거절이었다. 곁에 앉은 차진아는 그 서늘한 기류에 어깨를 바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여태껏 차준호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던 고미주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는 그동안 차 대표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어요. 신
난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오늘 내가 그와 도달하고자 했던 대화의 방향은, 그가 깔아놓은 이 달콤한 비단길이 아니었다.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마냥 꿈속을 헤매던 이 순간,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현실을 떠올렸다.“대표님.”나는 그가 내미는 반지를 향해 손을 뻗는 대신, 반대로 그의 단단한 손을 밀어냈다.“왜?”차준호의 짙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반지는 넣어두세요.”나는 당혹감이 서린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주의 차가운 아침 바람이 그와 나 사이를 서늘하게 가로질렀다.“왜 그러지?”나는 턱을 슬그머니 치켜들고, 오만한 시선으로 그를 정면에서 꿰뚫었다.오늘 새벽 그의 품에 안겨 무방비하게 신음하던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내 목소리는 차갑고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난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아주 어둡고 슬픈 비밀 말이에요.”차준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증발해 버렸다.“난 네게 떳떳해.”그의 눈동자가 맹수처럼 가늘어지며 나를 서늘하게 옭아맸다. 압도적인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오히려 한 발자국 더 다가가 그의 넥타이를 거칠게 휘어잡고 내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물론 당신은 내게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죠. 대신 진실도 언급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당신의 그 어두운 비밀을 풀어낼 해결책은, 이제 내가 쥐고 있으니까.”차준호의 거친 숨결이 내 코끝에 아찔하게 닿았다.“신하늘, 그건 비밀도 아니야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