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현관?”서하는 고개를 저었다.“벽.”“무슨 벽.”“거실 오른쪽 벽에 액자가 있었어. 하나는 늘 그 액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신우는 끝까지 떼지 않았고.”건우는 희미하게 떠올렸다. 신우의 집 거실 한쪽에 걸려 있던 바다 그림 액자.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고, 집 안 분위기와도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던 그림. 초반 현장 조사 때도 그냥 인테리어 소품처럼 지나갔을 가능성이 컸다.“그 뒤에 뭔가 있어?”“있었어.”서하는 시선을 들어 건우를 보았다.“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건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담당 형사에게 바로 연락해야 했다. 그러나 누르기 전, 서하가 말했다.“말하기 전에 생각해. 경찰이 찾으면 증거가 돼. 하지만 그 전에 누가 그걸 노리고 있었다면, 경찰이 움직이는 순간 그들도 알게 돼.”“그럼 어쩌라는 거야.”“이번엔 숨기지 말고, 순서를 조심해.”그 말은 모순처럼 들렸지만, 건우는 이해했다. 경찰에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전화로 모든 걸 흘리는 순간, 정미라 뒤의 사람들이 듣고 움직일 수 있다. 병원 출입 기록이 지워지고, CCTV가 끊기고, 문태오가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수사 내부에도 새어나가는 통로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직접 가서 말해야겠네.”건우가 말했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형사에게만. 그리고 네가 같이 있어야 해.”“왜.”“그 액자 뒤를 보는 순간, 너도 다시 볼 거야.”건우의 손이 멈췄다.“뭘.”서하는 아주 낮게 말했다.“네가 멈췄던 자리.”집 안이 조용해졌다. 녹음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건우는 그것을 의식했다. 하나가 나중에 들을 것이다. 서하가 말한 모든 것, 액자 뒤의 단서, 신우의 마지막 자료, 그리고 자신이 다시 봐야 할 자리까지.“하나가 이걸 들으면…”건우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서하는 부드럽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야 해. 네가 더 이상 대신 고르면 안 돼.”그 말이 정확했다. 아프지만 정확했다.그때 서
“신우는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야. 너를 살리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도 아니야. 그는 늦었고, 잘못했고, 숨겼고, 마지막에야 자기가 만든 선택들이 전부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끝까지 버틴 거야. 자기가 본 것을 누군가에게 넘기려고. 그런데 네가 멈췄고, 나는 선택해야 했어.”건우는 그 말을 들으며 눈앞의 식탁이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신우의 죽음은 이제 단순히 외부 공격과 내부 선택으로만 정리되지 않았다. 신우는 끝까지 무언가를 넘기려 했고, 건우는 그 순간 멈췄으며, 서하는 그 다음 장면을 끊었다. 그 모든 선택이 서로를 물고 있었다.“너는 왜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어.”건우의 질문은 낮았다.“내가 멈췄다면, 나를 밀어서라도 형에게 가게 할 수 있었잖아.”서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너는 이미 한 번 그렇게 밀려서 죽을 뻔했으니까.”건우는 말을 잃었다.“네 사고가 그랬어. 네가 선택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네 위치를 만들었고, 네 시간을 만들었고, 네가 그 자리에 있게 만들었지. 나는 그날 밤 또다시 네가 누군가의 설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 네가 형에게 다가가는 것도 선택이었겠지만, 동시에 그들이 기다린 장면일 수도 있었어.”“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답이었어?”“답은 없었어.”서하는 바로 말했다.“그 밤에는 답이 없었어. 그래서 죄만 남은 거야.”그 말이 가장 정확했다. 건우는 그 잔인한 정확함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답이 없던 밤. 그러나 누군가는 선택했고, 누군가는 멈췄고, 누군가는 죽었다. 답이 없었다는 말이 죄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죄가 왜 이렇게 오래 썩어왔는지를 설명할 뿐이다.식탁 위 녹음기의 빨간 불빛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 서하는 그것을 보고, 이번에는 하나를 향해 말했다.“하나야. 네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 나는 늘 네 안에 있었어. 네가 기억하지 못한 병원 복도, 신우가 낯선 얼굴로 너를 바라보
“강하나. 오후 2시 58분. 방금 윤신우가 남긴 문자 초안에 ‘하나는 모른다. 서하를 찾아라’라는 문장이 있었다는 걸 들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이번에는 울음이 섞이지 않았다.“나는 지금 화가 난다. 신우 씨에게도, 건우에게도, 서하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하지만 그중 누구에게 가장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나는 녹음기를 내려다보며 계속 말했다.“서하가 이걸 듣게 된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나를 지킨 건지, 나를 빼앗은 건지. 신우 씨를 끝낸 게 정말 선택이었다면, 왜 나는 그 선택을 몰라야 했는지.”그녀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마지막으로 말했다.“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도망치지 말고 나와.”그 말이 끝난 순간, 집 안 공기가 달라졌다.건우는 그 변화를 느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했다. 온도가 내려간 것처럼, 혹은 어디선가 문틈이 열린 것처럼.하나도 느낀 듯했다. 그녀의 손이 녹음기 위에서 멈췄다.“건우야.”그녀가 낮게 말했다.“지금…”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하나야.”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숨이 한 번 깊게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그리고 눈이 다시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조금 전의 분노가 아니었다. 더 오래되고, 더 차가운 피로가 있었다.서하가 조용히 녹음기를 바라봤다.빨간 불빛은 아직 켜져 있었다.그녀는 아주 낮게 말했다.“드디어 네가 나를 불렀네.”건우는 움직이지 않았다.이번에는 기록되고 있었다.하나가 없는 동안, 하나가 들을 수 있도록.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좋아. 그럼 나도 이제 말할게.”집 안의 오후가, 다시 밤처럼 어두워졌다.서하가 “말하겠다”고 한 뒤에도, 건우는 곧바로 질문하지 않았다. 식탁 위의 녹음기에는 아직 빨간 불빛이 켜져 있었고, 그 작은 빛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방 안의 공기를 붙잡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하나가 자기 이름과 시간을 말하며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 켰던 기록이 이
“02:17이라는 숫자를 보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진다. 정확한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 있다. 손잡이를 잡고 있고, 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안쪽에서 누가 열고 있는 느낌. 이 감각이 서하와 관련 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잠깐 멈췄다. 숨이 깊어졌다.“나는 서하를 모른다. 그런데 이름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이게 제일 무섭다.”건우는 그 문장에서 눈을 내렸다. 하나는 지금 자기 안의 균열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분석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감각 그대로.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신우 씨가 죽던 밤, 나는 집에 들어갔다. 거실을 봤다. 신우 씨를 봤다. 그리고 경찰보다 건우를 먼저 찾아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누군가 안에서 ‘건우한테 가’라고 말한 것 같다고 느낀다. 그게 서하라면…”하나는 문장을 멈췄다.손이 떨렸다.건우는 기다렸다.한참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서하가 나를 건우에게 보낸 거라면, 나는 그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선택만으로 움직인 게 아닐 수도 있다.”그 말이 끝난 뒤, 하나는 녹음기를 껐다. 빨간 불빛이 사라졌다.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하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대신 의자 등받이에 천천히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마치 아주 긴 거리를 걸어온 사람처럼, 숨이 가늘게 떨렸다.“들어볼래?”건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나중에. 지금 들으면 내가 다시 나를 심문하는 것 같을 것 같아.”“알았어.”그때 건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담당 형사의 이름이 떠 있었다. 하나는 눈을 떴고, 건우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형사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았다.“보조 휴대폰 일부 복구됐습니다. 메시지 기록이 조금 살아났고, 02:17 알림 외에 예약 문자 초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발송되지는 않았습니다.”건우의 시선이 하나에게 향했다.“내용이
택시 안에서 하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폐창고 단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다 냄새는 옅어졌고, 젖은 도로 위로 낮빛이 더 넓게 번졌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오히려 더 깊은 그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건우는 그 침묵을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조금 전 하나는 자기 안에서 서하가 나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동안 비어 있던 시간들을 앞으로는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말로 꺼내면 간단해 보이는 결정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몸 안에서 자신이 밀려나는 순간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집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동시에 현관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 집은 이제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하나가 신우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찾아왔던 곳이고, 건우가 그날 밤의 감각을 다시 열었던 곳이며, 이제는 서하의 말을 기록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는 일조차,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건우가 먼저 문을 열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새벽부터 이어진 하루의 소란과는 상관없이, 거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돈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급하게 두고 나간 컵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신우의 통화 기록을 확인했던 자리에는 아직 작은 물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하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다 말고 식탁을 보았다.“여기서 시작됐네.”그녀가 말했다.건우는 무슨 뜻인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신우의 부재중 전화, 문태오의 연락, 차미령이라는 이름, 정미라의 존재, 그리고 결국 서하까지. 모든 것은 이 식탁 위에서 하나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쉬어야 해.”건우가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쉬면 더 무서울 것 같아. 눈 감으면, 내가 없어질까 봐.”그 말은 조용했지만, 너무 아팠다. 피곤해서 잠드는 것과 자기 안의 다른 이름에게 밀려나는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의 두려움이었다.건우는 거실 서랍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예전에 인터뷰를 녹음하거나 통화 내용을 정리할 때 쓰던 낡은 기기였다.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했지
건우는 서하와 함께 현장 입구를 벗어났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곳이라 조금 걸어야 했다. 폐창고 단지가 뒤로 멀어질수록 서하의 걸음이 느려졌다. 건우는 옆에서 보조하려 했지만,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만지지 마.”목소리는 여전히 서하였다.건우는 손을 거두었다.“하나가 돌아오고 있어?”서하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돌아온다기보다, 밀려오고 있지. 네가 들려준 게 많잖아.”“미안해.”“미안하다는 말은 나한테 하지 마.”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바다 냄새가 섞인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하나한테 해. 그리고 신우한테도. 나한테는… 아직 하지 마.”건우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아직 죄를 나눌 수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서하 자신도 무엇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뜻인지.“너는 뭘 원해.”건우가 물었다.서하는 잠깐 그를 보았다.“끝까지 보는 것.”그 대답은 단순했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누가 벌받고, 누가 용서받는지는 그 다음이야. 먼저 끝까지 봐. 네가 멈췄던 지점까지. 하나가 끊긴 지점까지. 신우가 남긴 숫자까지.”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서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몇 걸음 더 걷다가, 갑자기 몸의 힘이 빠지는 것처럼 휘청였다. 건우는 이번에는 묻지 않고 팔을 잡았다. 서하는 저항하지 않았다. 눈꺼풀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고, 그 사이에 얼굴의 결이 바뀌었다.하나가 돌아왔다.그녀는 처음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주변을 보았다. 폐창고 단지, 젖은 도로, 바닷바람, 그리고 자기 팔을 잡고 있는 건우. 기억이 단번에 이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나…”하나가 낮게 말했다.“나 또 없어졌어?”건우는 손을 천천히 놓았다.“잠깐.”하나의 눈이 흔들렸다.“서하였어?”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하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 서하가 형사에게 말하고, 폐창고를 보고, 건우와
카페는 회사 건물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한산했다.유리창 밖으로는 출입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있었다.유림은 이미 와 있었다.짙은 네이비 재킷, 단정한 머리.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곧았다.하나와 건우가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와주셔서 감사합니다.”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하나는 마주 인사했다.“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건우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유림과 눈이 마주쳤다가,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세 사람은 마
건우는 거의 잠들지 못한 채 눈을 떴다.방은 익숙했다.벽지의 색, 침대 옆 협탁의 위치, 책상 위에 뒤집힌 법전까지.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그런데도 공기는 낯설었다.부엌에서 물이 끓는 소리, 컵이 부딪히는 소리,혼자일 때는 존재하지 않던 생활의 잔향이 집 안에 남아 있었다.그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하나가 부엌에 있었다.단정하게 묶인 머리, 다림질된 셔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어제 새벽의 젖은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일어났네.”건우는 대답을 늦췄다가 짧게 말했다.“네.”하나는 커피를 내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건우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불을 켜지도 끄지도 못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하나의 말. 나가려는 목소리였다.유림의 말.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렸어야 한다.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혹시 문을 잠근 사람이, 형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 생각은 곧바로 밀어냈다.너무 빨랐다. 너무 직접적이었다.아침, 하나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부엌에서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9시 12분.9시 18분.6분.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그녀가 먼저 물었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근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