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노예원의 다회는, 어원의 복사꽃 아래에 차려졌다.봄이 가기 전, 마지막 꽃놀이라 했다. 내명부의 여인 몇이 자리했고, 상 위에는 봄나물과 과실, 향이 짙은 화전이 올랐다.월령은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그 자리에 들었다.*노예원은 곱게 맞았다."섭정왕비마마. 이렇게 와 주시니, 다회에 빛이 납니다.""청해 주셔서 왔습니다."두 여인은 곱게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곱게 나누는 인사 아래로, 서로가 서로를 재고 있었다. 한쪽은 무엇을 감추려 하고, 한쪽은 그 감춘 것을 들추려 했다.봄이 가기 전 마지막 꽃놀이라는 말은, 겉의 이름이었다. 속의 이름은 따로 있었다. 노예원은 이 자리에서, 섭정왕비의 몸을 확인하려 했다. 향으로, 음식으로, 오래 앉히는 것으로.노예원이 직접, 화전 한 접시를 월령 앞으로 밀었다."마마, 이 화전이 별미입니다. 향을 진하게 넣어, 봄내가 물씬 나지요. 한 점 드셔 보세요."*월령은 그 화전을 보았다.향이 짙었다. 기름에 지진 냄새와, 꽃을 짓이겨 넣은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그 냄새가 코에 닿는 순간, 속이 울렁였다.회임한 몸은, 짙은 냄새에 약했다. 아침마다 옅은 죽 냄새에도 물리던 몸이었다. 하물며 기름에 지진 진한 화전이었다.향이 짙을수록, 몸이 먼저 답했다. 노예원이 굳이 향이 가장 진한 화전을 고른 것도, 그 답을 보려는 것이었다.월령은 그 울렁임을, 얼굴에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노예원의 눈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찌, 안 드십니까."노예원이 물었다.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눈은 다정하지 않았다."마마께서, 요즘 봄을 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입맛이 없으시면… 향이 진한 것이 도리어 힘이 되지요. 한 점만."노예원이 화전을 든 젓가락을, 월령 쪽으로 내밀었다.월령은 그 젓가락을 보았다.받아 먹으면, 속이 뒤집힐 것이었다. 받지 않으면, 향에 약한 몸을 저 여인이 확인할 것이었다. 어느 쪽을 골라도, 노예원의 눈에 답이 하나 놓였다.향에 약한 여인. 봄을 타는 여
회임을 확인한 이튿날 아침, 위지헌은 월령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깨어서, 아직 잠든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그 아래 아직 아무 표도 나지 않은 자리를.월령이 눈을 떴다."…뭘 그렇게 보세요.""아직, 아무것도 안 보인다.""두 달인데, 뭐가 보이겠어요."위지헌은 그 말에 대답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전장에서 수천을 베던 손이, 그 자리에서만은 깃털을 얹듯 가벼웠다."…안 무거워요, 그 손.""무거울까 봐."월령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두 생을 건너온 사람이, 아직 오지도 않은 아이 앞에서 손 무게를 걱정하고 있었다."두 달이라 했지."위지헌이 낮게 말했다."그 밤이겠구나. 우리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한 밤."월령의 귓불이 옅게 붉어졌다. 두 생의 비밀을 다 꺼내 놓은 밤이었다. 숨길 것이 없어, 가장 뜨거웠던 밤. 그 밤에 이 아이가 왔다.월령은 제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그 밤을 오래 떠올렸다.*아침상을 물린 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어찌할지 이야기했다."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어머니껜 이미 아셨지만, 그 밖으로는 안 돼요. 이 소식이 궁에 퍼지면, 가장 먼저 아는 건 우리 편이 아니라 '연'일 거예요."위지헌의 눈이 서늘해졌다.'연'이 두 생에 걸쳐 지우려 한 것이, 이 아이였다. 그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은, '연'에게는 두 생을 건 마지막 표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소식을 쥐는 것도, 하나의 방패다."위지헌이 말했다."저들이 모르는 동안은, 저들이 겨눌 수 없다."*그러나 소식을 쥐고 있기에는, 이미 그 소식을 노리는 눈이 있었다.노예원이었다.측실 명분이 깨진 뒤로, 노예원은 물러나기는커녕 도리어 조바심을 냈다. 그 여인에게, 섭정왕비의 회임은 가장 무서운 소식이었다. 정비가 후사를 보면, 측실 자리마저 영영 사라졌으니까.그래서 노예원은, 월령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걸음이 무거워지지 않았
이튿날, 의원이 왕부에 들었다.월령의 맥을 짚던 의원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기쁨이 번졌다."경하드리옵니다, 마마."의원이 낮게 아뢰었다."회임이시옵니다. 두 달 남짓 되신 듯하옵니다."방 안이, 잠깐 고요해졌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두 생을 살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전생에는 정비가 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가 되는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생에, 그 봄이 왔다.몸 안에서, 두 사람의 대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위지헌은 그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장에서 수천의 군을 호령하던 사람이, 그 한마디 앞에서 말을 잃었다. 다만, 월령의 손을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의원이 물러간 뒤, 두 사람만 남았다."…부군.""…그래.""저희, 아이가 생겼대요."월령의 눈에서, 물기가 흘렀다. 이번에는 무서움도, 슬픔도 아닌 물기였다.위지헌이 그녀를 안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두 생을 건너온 사람을 안던 팔이, 이제 그 안의 작은 것까지 함께 안듯이."령아."그가 낮게 불렀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고맙다."*두 사람은 오래, 그렇게 있었다.두 군을 물려받을 아이였다. 심가의 북문군과, 섭정왕의 북경군. 두 힘이 한 몸으로 이어지는 대.그것이, '연'이 두 생에 걸쳐 지우려 한 바로 그것이었다.전생에 '연'은, 그 대가 잇기 전에 그녀를 형장으로 보냈다. 어머니를 죽이고, 그녀를 죽여, 뿌리를 잘랐다. 그런데 이번 생에, 그 뿌리에서 마침내 싹이 텄다.*"부군."월령이 낮게 말했다."이제, 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제 안에 있어요."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연'이 두 생에 걸쳐 지우려 한 것이, 이제 이 세상에 오려 하고 있었다. 그 소식이 벽 뒤의 얼굴에 닿는 날, '연'은 두 생에 걸친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아이를 겨눌 것이었다.지켜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두 사람이 두 생을 걸고 지켜 온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밤에
노가의 명분이 깨진 뒤로, 왕부에 잠깐 봄다운 봄이 들었다.살구 열매가 제법 굵어졌고, 마당에 볕이 길게 들었다. 겨눔과 셈으로 채워지던 날들 사이에, 오랜만에 숨을 트는 낮이 왔다. 마당에는 벌이 다시 날기 시작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드는 계절이었다.그런데 그 봄에, 월령의 몸이 조금 이상했다.*아침이면, 자꾸 나른했다.늘 일찍 눈을 뜨던 사람이, 요즘은 해가 든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좋아하던 죽도 몇 술 뜨다 물렸고, 옅은 냄새에도 속이 울렁였다."어디, 편찮으세요?"청아가 걱정스레 물었다."…아니. 봄을 타나 봐."월령은 그렇게 넘겼다. 두 생을 건너온 몸이, 봄마다 한 번씩 나른한 것이려니 했다.*위지헌은, 그 나른함을 곁에서 보았다.그는 월령보다 먼저, 그 나른함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만,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오늘은, 무리하지 마라.""…괜찮아요.""괜찮아 보이지 않는다."위지헌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열은 없었다. 다만, 얼굴빛이 며칠 새 옅어져 있었다."의원을 부르랴.""봄을 타는 것뿐인데, 의원까지요."월령이 옅게 웃었다. 위지헌은 그 웃음을 보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두 생을 건너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두 생 어디에도, 이런 나른함은 없었다. 위지헌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제 입으로 먼저 말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며칠 뒤, 유씨가 왕부에 다녀갔다.딸의 얼굴을 오래 보던 유씨가, 문득 낮게 물었다."…월령아. 요즘, 달거리는 하였느냐."월령의 손이, 잠깐 멎었다.생각해 보니, 지난달의 것이 없었다. 겨눔과 셈에 마음을 쓰느라, 제 몸의 달을 세는 것을 잊고 있었다."…어머니.""짚이는 것이 있느냐."유씨의 눈에, 오래 감춰 온 기쁨 같은 것이 옅게 비쳤다.*월령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두 생을 살며, 이런 것은 한 번도 겪어
노예원은, 받드는 자리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봄이 다 가기 전, 그 여인이 무리수를 두었다.궁 안에 소문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섭정왕비가 가례를 올린 지 한 철이 넘도록 후사가 없으니, 몸에 흠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었다.그 소문의 자취를 따라가자, 안쪽 처소의 상궁이 나왔다. 노예원이 그 상궁을 통해, 소문을 흘린 것이었다.*소문은, 노예원의 조바심에서 나왔다.측실 자리로는 그 여인의 야심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정비의 자리를 흔들려 했다. 정비에게 흠이 있으면, 그 자리가 비고, 그 빈자리를 제가 노릴 수 있으니까.그러나 그 소문이, 도리어 노가의 명분을 깼다.노가는 여식을 '후사를 돕는 측실'로 바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 여식이 정비의 자리를 흔드는 소문을 냈다면, 노가의 뜻은 돕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었다.명분과 야심의 어긋남이, 소문 하나로 드러났다.소문 하나가, 노가의 명분을 스스로 겨눴다. 노예원이 정비 자리를 흔든 순간, 노가가 내세운 '돕는 자리'라는 말이 거짓이 되었다. 겨눈 자의 수가, 겨눈 자를 향해 돌아간 셈이었다.*월령은 그 소문을, 흔들리지 않고 받았다.황후의 다회에서, 월령은 나긋하게 말했다."요즘 궁에, 제 몸을 두고 소문이 돈다지요. 소문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저보다 마마들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그 말에, 여러 눈이 노예원에게로 갔다."후사를 돕겠다는 자리에서 나온 소문이라면, 그 자리는 돕는 자리가 아니라 흔드는 자리겠지요. 저는 다만,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노예원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노가의 명분이 흔들리자, 가장 먼저 발을 뺀 것은 배중곤이었다.바람 따라 줄을 옮기는 원로였다. 노가의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날 낌새가 보이자, 그는 슬그머니 노가에게서 발을 뺐다."후사는… 서두를 일이 아니지요. 섭정왕 저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며칠 전까지 후사를 나라의 근심이라 하던 입이, 이제 서두를 일이 아니라 했다.노경의 얼굴이, 그 바람개비 앞에서 굳었다.*노가
'연'의 향을 다시 맡은 밤부터, 위지헌의 기억이 조금씩 또렷해졌다.향은, 잠긴 기억을 여는 열쇠 같았다. 남쪽 절터의 향, 안쪽 처소의 향. 같은 향을 이번 생에 다시 맡자, 지난 생 형장의 비 오는 얼굴이 조금씩 살아났다. 잊어서 흐려진 얼굴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서 묻어 둔 얼굴이었다. 향 하나가, 그 묻어 둔 자리를 건드렸다."…떠올랐다."어느 밤,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그 사람은, 여인이었다."월령이 고개를 들었다."비를 맞으며 형장을 지켜보던 그 사람. 남정네가 아니었다. 궁의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상궁도, 후궁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옷이었다."월령의 손끝이 식었다.궁의 옷을 입은 여인이, 붉은 꽃을 들고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 여인이, 지난 생의 '연'이었다.'연'은, 궁 안에서 왔다.궁 안의 여인이라면, 순검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위지헌의 칼도, 왕부의 눈도 함부로 들지 못하는 내명부. '연'이 두 생에 걸쳐 얼굴을 감출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 있었다. 그 자리는, 사내들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그 여인이, 어떤 얼굴이었어요."월령이 낮게 물었다.위지헌은 오래, 그날을 떠올렸다."울지 않았다. 미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해 온 일을 마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붉은 꽃을 코에 대고, 조용히 한 가지 일을 끝낸 사람처럼."월령은 그 말을, 오래 마음에 새겼다.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었다. 오래 이어 온 일을 마치듯 죽인 것이었다. 대를 이어 온 자리가, 그 여인의 손에서 한 매듭을 지은 것이었다.*그 말을 하는 위지헌의 얼굴에, 오래된 것이 스쳤다."내가, 그 얼굴을 조금만 더 일찍 떠올렸다면.""부군.""지난 생에 그 여인을 먼저 보았다면. 너를… 늦지 않게 데리러 갔을지도 모른다."월령은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부군은 늦지 않았어요.""늦었다. 형장에 닿았을 때…""이번 생에는, 늦지 않았어요."월령이 그의 말을 잘랐다."지난 생의 늦음을, 이번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는 안개가 내려앉았다.봄밤의 안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얇고 희어서,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서 곧장 풀어질 듯했다.그러나 그 안에 오래 서 있으면 숨이 조금씩 낮아졌다.물 위의 달도,버드나무 아래 그림자도,멀리 별채 처마에 걸린 등불도 한 겹씩 지워졌다.소리가 먼저 숨었다.벌레 우는 소리는 물가의 돌 틈으로 잦아들었고, 회랑 아래 고인 밤공기는 젖은 약재처럼 싸늘했다.월령은 회랑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 밤 안으로 스며
그 말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그대가 내 곁에 있다면.이 황궁도 외롭지 않을 것 같군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살구꽃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너무 가벼워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칼집에 숨은 소리라는 것을 모를 터였다.한때의 월령도 몰랐다.그녀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 한 사람의 온기를 들이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녹을 줄 알았다.높은 처마와 긴 회랑과 밤마다 닫히는 문들 사이에 자신이 봄을 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이제는 안다.황궁의 외로움은 사람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사람 하나를 삼
"월령 언니, 여기 계셨어요?"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그때의 월령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촌이라 믿었고, 어머니의 방 앞에 흰 천이 걸린 뒤에는 서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었다. 등을 토닥이던 작은 손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그리고 황후전의 어느 밤, 비녀함 안쪽에서 밀서를 꺼내던 그 손도.그 손등에 비치던 차가운 등불도.그래도 월령은 그 손을 기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