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21 - Chapter 30

164 Chapters

21. 정말

위지헌이 반 걸음 가까워졌다. 식은 차와 젖은 나무 같은 향이, 살구꽃의 끝을 낮게 붙잡았다."정말?"월령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확실한가."그는 추궁하지 않았다.이미 답을 알면서도, 그녀가 제 손으로 놓은 수를 한 번 더 보게 하는 물음이었다. 그런데도 월령은 숨을 조금 늦게 삼켰다."으응?"위지헌이 아주 낮게 덧붙였다. 그 한 음절이 어쩐지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월령은 자신이 무슨 말을 알아들은 줄도 몰랐다. 다만 이 차가운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말도 이렇게 냉정하게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오만이기도 했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오만에 심장이 흔들렸다. 마른 가지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월령은 이번에도 한 박자 늦었다.위지헌은 늦지 않았다.그의 손이 월령의 손목에 닿았다. 잡아당기는 힘은 크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월령은 측백나무 그림자 안쪽으로 반 발 물러나 있었다.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서자, 검은 장포가 월령의 옆얼굴을 가렸다. 가려졌으나 갇히지는 않았다 — 빠져나갈 틈은 남아 있었다.다만 그 틈을 지나려면 그의 팔과 장포 사이의 좁은 그늘을 통과해야 했고, 그 생각만으로 월령의 숨이 낮아졌다. 위지헌의 손끝이 맥 위에 놓였다.그는 말없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숨을 줄이라는 뜻이었다.월령은 입술을 다물었다.심장이 그 손끝에 들킬까 봐,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월령 언니?"서윤의 목소리였다.달고 조심스러웠으나, 옷자락 끝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서윤은 위지헌을 보고 놀란 듯 예를 올렸다.놀란 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놀랐고 실제로 두려웠을 것이다.다만 서윤은 두려움을 보이는 법까지 배운 아이였다 — 눈가의 물기, 살짝 굳은 입술, 너무 늦지 않게 숙이는 고개.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갑옷이었다."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위지헌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그는 서윤의 얼굴보다 발끝을 보았다.걱정하러 온 사람의 걸음이라기에는, 흙을 밟은 힘이 달랐다. 찾는 사람의 발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Read more

22. 허락

"가르쳐 주십시오."이 말만은 직접 해야 했다. 그런데 말끝이 생각보다 낮게 젖었다.스스로도 알아차릴 만큼.차라리 명령처럼 나왔으면 덜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위지헌의 시선이 한순간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가, 곧 눈으로 돌아왔다.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월령은 제 자존심이 천천히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이상하게도 수치만 남지는 않았다.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 비어 있던 자리에 들어왔다."서윤에게 먼저 가라."뜻밖의 말이었다.월령은 눈을 들었다."제가요?""네가.""사과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말은 네가 고르면 된다."위지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문은 열리게만 해라."처음에는 모욕처럼 느껴졌다.그러나 곧 뜻이 열렸다.압박하면 서윤은 더 깊이 숨어들고, 안심시키면 제 손으로 문을 연다. 의심받는 아이를 몰아붙이는 대신, 용서받았다고 믿게 두어 다음 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약해지라는 뜻은 아니다."그가 덧붙였다."네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보여라.""나머지는요."월령이 물었다."내가 가린다."위지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월령을 약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다만 그녀가 상처를 미끼로 써야 한다면, 그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제 그늘로 덮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안쪽의 조심스러움을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그러나 월령이 아는 위지헌은 늘 서늘했다 — 붉은 담 안에서 마주쳤을 때도, 연회의 높은 자리에서 잔을 들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그런 사람이 자신에게만 다른 결로 말한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이 차가운 사람은 사람을 위하는 방식도 차갑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위지헌이 몸을 돌렸다.월령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의 소매 끝을 붙잡으려던 손이었다.아주 작고 어리석은 움직임이었으나, 위지헌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돌아보자 월령은 급히 손을 거두었다.잡으려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너무 뻔한 거짓이었다. 위지헌의 눈
Read more

23. 살구꽃잎

서재 후문 밖에는 왕부의 강무진과 윤백이 서 있었다. 둘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낮췄다.그 무심함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도리어 수상했다. 월령이 걸어 나올 길목에 떨어져 있던 마른 가지 하나를 윤백이 잽싸게 치웠고, 강무진은 서재 쪽에서 따라붙는 시선을 한 걸음으로 막았다.명령은 없었다.그런데도 두 사람은 이미 아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윤백이 월령에게 물잔을 내밀었다가, 물이 아직 뜨거운 것을 깨닫고 제 손등에 먼저 대 보았다.곧장 잔을 바꿔 들고는,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군무를 마친 사람처럼 엄숙하게 물러섰다. 위지헌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윤백은 빈손을 등 뒤로 감췄다. 강무진은 바닥의 돌무늬를 평생의 숙적처럼 노려보았다.그 과한 침묵을 보고서야 월령은 깨달았다. 섭정왕의 명령은 말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왕부의 사람들은 그가 보려는 곳과 가리려는 곳을, 누구의 발밑에서 마른 가지 하나까지 치워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정함보다 먼저, 정치처럼 보였다.위지헌은 왜 자신을 이토록 가까운 그늘에 두는가. 심가 때문인가, 위명서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 보지 못한 더 깊은 암투 때문인가.답을 모르는 일은, 아는 적보다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서원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아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달려왔다."아가씨."목소리가 떨렸다."지하 창고가 비었습니다."월령은 걸음을 멈췄다."문은.""안에서 잠겨 있었답니다. 밧줄만 남았고요."안에서 잠긴 문.사라진 사람.남은 밧줄.위지헌이 둔 그 빈자리가, 이제 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심가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할 것이고, 궁 쪽은 제 손이 먼저 닿았는지 확인하려 들 것이다.한씨와 서윤은 밤새 잠들지 못할 것이고, 위명서는 그 빈 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할 것이다. 월령은 그 어지러운 셈을 가만히 따라가다, 문득 소매 안쪽에서 손끝에 닿는 것을 느꼈다.작고 얇은 종이였다.언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이 소매를 덮었던
Read more

24. 가면

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도 크게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 계집종들이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으로 충분했다.안에서 잠긴 문, 끊어지지 않은 밧줄, 사라진 사내. 사건은 사라졌는데 의심은 남았다.월령은 그 의심이 어디로 번지는지 보았다. 호위들은 서로의 허리끈과 신발 밑창을 살폈고, 안채 사람들은 둘째 부인의 처소 쪽으로 눈을 주었다가 황급히 거두었다.한씨는 평소보다 늦게 문을 열었고, 서윤의 하녀 금지는 새벽 물을 뜨러 가며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위지헌의 말은 맞았다.빈자리가 사람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확인하는 기쁨보다, 월령의 안쪽에는 다른 것이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는 심가를 구했고, 동시에 심가를 속였다. 두 가지가 함께 성립한다는 것이 그녀를 오래 붙들었다.높은 단 위의 그 사람은 악행을 왕조의 질서라 불렀고, 위지헌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진실을 감추었다. 월령은 아직 그 차이를 다 판단할 수 없었다.다만 위지헌은 제 손을 깨끗하게 보이려 들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손은 때로 더 믿기 어렵고 더 놓기 어려웠다. 서원당 뒤 작은 창고에는 은매가 숨어 있었다.청아가 아침 죽에 생강즙을 조금 풀어 가져갔다. 병든 어미와 어린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은매가 그릇 잡은 손을 떨더라고, 청아는 전했다.담장 안의 사람 하나를 숨기는 일과, 담장 밖의 삶 하나를 건지는 일은 전혀 달랐다. 경안의 쌀값은 벌써 올랐다.북문군으로 가는 군량 수레가 늦어지면 먼저 굶는 것은 대신이 아니라 장터의 아이들이었다. 심가가 흔들리면 국경의 장부가 흔들리고, 장부가 흔들리면 민심이 조용히 썩는다.황궁은 그런 조용한 썩음을 잘 이용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한 집의 균열이 되고, 한 집의 균열이 한 나라의 명분이 되는 길 — 그 길을 월령은 너무 늦게 보았었다.이번에는 늦지 않아야 했다.*거울 앞에 앉은 월령은 일
Read more

25. 연꽃 향

심서윤의 처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연꽃 향이 났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향이었다.연못의 꽃은 아직 멀었고, 봄의 공기는 살구꽃과 젖은 흙에 가까웠다. 그런데 서윤의 방 앞에서는 늘 여름의 연꽃이 먼저 피어 있었다.깨끗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향을 많이 썼다.금지가 문을 열었다.어젯밤 남쪽 연못가에 서 있던 하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으나, 손끝은 숨기지 못했다. 손톱 가장자리가 거칠게 물려 있었다 — 밤새 손톱을 물어뜯은 손이었다.제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가장 먼저 손을 문다."놀라지 마라. 서윤이가 괜찮다면 잠시 기다리마."월령은 일부러 부드럽게 웃었다.말은 길지 않았다.긴 말은 의심을 남긴다.심서윤은 곧 직접 나왔다.하얀 저고리, 옅은 분홍 치마, 진주비녀 하나. 꾸미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오래 꾸민 차림이었다.그녀는 자신이 어떤 표정일 때 가장 보호받기 쉬운지 늘 알았다. 월령은 한때 그것을 천성이라 여겼다.지금은 생존법으로 보였다.서윤은 늘 다음 자리였다.월령이 장녀였고, 유씨가 안채의 주인이었으며, 심도윤의 이름은 늘 월령의 뒤를 비추었다. 고운 사촌, 가련한 아이, 착한 동생 — 그 말들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자리 밖으로 밀어내는 말이기도 했다.서윤은 그 자리를 오래 견디다, 어느 순간 자신이 중심이 되려면 누군가의 자리가 비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월령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용서할 수는 없었다."서윤아."월령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서윤의 눈이 커졌다."요 며칠 내가 예민했어. 어머니 병세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졌나 봐. 너와 숙모의 정성을 의심한 것처럼 보였다면 — 미안해."그 말이 떨어지는 동안, 월령은 서윤의 얼굴을 보았다. 놀람이 먼저 왔고, 그다음 안도가,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서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피어올랐다.서윤은 눈물을 맺었다.그 눈물의 절반은 연기였고, 절반은 진심이었다. 억울함도,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어쩌면 정말로 월령이 자신을 미
Read more

26. 몽혼향

오후의 빛은 흐렸다.심가의 하루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멈추지 않았다 — 부엌에서는 저녁 장국에 넣을 무가 얇게 썰렸고, 행랑채에서는 북문군으로 보낼 마른 장작을 세는 소리가 났다.사람이 죽고 살아도 국은 끓고 장부에는 숫자가 적혔다. 그 멈추지 않음이 오히려 이상했다.월령은 방을 준비하며 빠뜨릴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셌다.문은 열어 둔다.창은 반쯤 열어 둔다.향로는 비운다.찻잔은 둘.청아는 문과 탁자 사이.화장대 서랍은 아주 조금 열어, 시선이 그쪽으로 흐르게 한다. 위지헌이라면 또 무엇을 보았을까.그 물음이 계속 따라붙었고,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불안했다. 심서윤은 작은 향주머니를 들고 왔다.연분홍 비단에 은실 연꽃.너무 서윤다운 물건이었다.그녀는 월령의 얼굴을 살폈고, 월령은 살펴지는 것을 허락했다. 오늘의 미끼는 물건이 아니라, 제 약한 곳이었다.향주머니가 탁자 위에 놓였다. 백단과 난향, 감초의 희미한 단내.겉으로는 진정향이었다.죽이는 독이 아니라, 잠을 깊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향. 황궁에서는 그런 것을 독이라 부르지 않았다.사람이 죽지 않으면 죄도 흐려진다고 믿는 자들이 많았다.몽혼향.월령은 그 이름을 떠올렸다. 오래 피워야 효과가 나는 향이라, 잠시 안심했다.그 안심이 실수였다.금지가 창가로 갔다.바람이 차다는 말은 예의 바르게 나왔다. 서윤은 월령의 손을 잡으며 손이 차다고 했고, 금지의 손은 이미 창문 문고리에 닿아 있었다.두 사람의 움직임은 미리 맞춰 둔 것처럼 부드러웠다. 월령은 짧은 순간 망설였다.너무 빨리 경계하면 서윤은 손을 거두고, 조금 더 두면 무언가 드러난다.그 계산이 늦었다.창이 닫히는 작은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향주머니는 찻잔 가까이에 있었고, 더운 김이 향을 빠르게 풀어 올렸다.난향 아래 거의 느껴지지 않던 쓴내가 뒤늦게 올라왔다.등피향.몽혼향의 문을 빨리 여는 궁중 향료였다. 이건 서윤 혼자 짠 수가 아니었다.궁의 처방이었다.월
Read more

27. 창이 닫혔군

위지헌이었다.그는 소리 없이 나타났다.문턱을 넘기 전부터 방 안의 공기가 먼저 물러났다. 서윤의 손은 월령의 소매 안쪽에서 멈췄고, 금지는 창가에서 굳었다.위지헌은 여인의 처소에 함부로 든 무례한 남자가 아니었다. 열린 문, 닫힌 창, 향주머니, 찻잔의 위치를 한눈에 읽고서야 문턱을 넘는 사람이었다.그의 시선은 서윤을 향하지 않았다. 향주머니에 먼저 닿았고, 그다음 창, 그다음 월령의 손목, 마지막으로 서윤의 손에 닿았다.그 순서만으로 방 안의 모든 이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다."창이 닫혔군."위지헌이 한마디 했다.그것은 창문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숨길 것이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공기를 막는다는 뜻이었다.서윤은 예를 갖추었다.놀람과 수치와 분노가 빠르게 얼굴을 지나갔다. 여인의 처소라는 말을 꺼내려 했으나, 위지헌은 이미 그보다 앞서 있었다.문은 열려 있었고, 닫힌 것은 창이었다.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그가 월령 앞에 섰다.가까웠으나 닿지는 않았다.먼저 손을 뻗은 곳은 턱도 어깨도 아닌, 손목이었다.또 맥.늘 가장 숨길 수 없는 곳. 그의 엄지가 맥 위를 누르자, 월령은 자신이 숨을 너무 얕게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그는 입으로 천천히 숨을 바꾸라는 신호를 손끝 하나로 주었다.몸이 먼저 그를 기억했다.형장의 마지막 손, 측백나무 그림자 안의 손, 지금 독향 사이에서 맥을 붙잡은 손. 서윤의 눈이 그 손목에 오래 머물렀다.그 시선에 월령은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서윤은 단지 들킨 사람이 아니라, 또다시 자신이 밀려나는 장면을 본 사람이었다.월령이 아프고 약한 순간에도 누군가는 월령의 맥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 그 사실이 서윤을 찔렀을 것이다. 위지헌은 서윤에게 손을 거두라고 길게 말하지 않았다.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내려갔고, 서윤은 천천히 손을 뗐다. 향주머니는 탁자 위에 남았다.금지가 그것을 챙기려는 순간 위지헌의 눈이 움직였고, 금지는 손을 거두었다. 서윤은 울고 싶어 하는 얼굴을 했다.어쩌면 정말
Read more

28. 깨끗한 손

문밖에서 심도윤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위지헌은 향주머니를 집어 들었다.가져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서윤에게는 의심을 남기고, 황궁에는 회수하지 못한 패를 남기고, 월령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남기는 방식.문가에서 그가 잠시 멈췄을 때, 월령은 묻지 말아야 할 말을 거의 묻고 말았다. 오늘 밤, 전하께서도 제 방에 들지 못하십니까.말이 되기 전에 스스로 삼켰다. 그런데 위지헌은 돌아보았다.입 밖에 나오지 않은 말까지 본 것이다. 그의 눈가에 희미한 변화가 스쳤다."거짓말이 빨라졌군."무슨 말을 삼켰는지 안다는 뜻이었다.월령의 얼굴이 뜨거워졌다.위지헌은 더 묻지 않고, 아주 낮게 덧붙였다."배우고 있다."칭찬은 아니었다.그런데도 월령의 심장을 오래 흔들었다.*서윤은 처소로 돌아와 향로를 밀어 넘어뜨렸다. 깨지는 소리에 금지가 몸을 떨었다.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분노만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 수치와 질투와 두려움, 그리고 이상하게도 서러움이 섞여 있었다.왜 늘 언니인가.그 물음은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이제는 목소리조차 필요 없었다. 삼전하도 월령을 보았고, 섭정왕도 월령을 보았다.심가의 어른들도 하인들도, 심지어 제가 준비한 향에 쓰러질 뻔한 그 순간에도 모두 월령의 안색부터 살폈다. 서윤은 사랑받기 위해 늘 얼굴을 만들었다 — 더 순하게, 더 가련하게, 더 해치지 못할 사람처럼.그러나 월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중심에 있었다. 그 불공평함이 서윤의 마음을 조금씩 비틀었다.그래도 서윤은 자신이 악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빼앗긴 것을 되찾고 있다고 믿었다.사람을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믿음이었다. 서윤은 깨진 향로 조각을 내려다보다, 마침내 궁에 전할 말을 정했다.섭정왕이 월령의 방에 들었다.향주머니는 회수당했다.월령은 아직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 섭정왕이 월령의 손목을 잡았다.그 문장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넣지 않았다.
Read more

29. 살구꽃 한 줌

밤새 창을 열어 둔 방에는 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연꽃 향도, 난향도, 판단을 늦추던 희미한 쓴내도.대신 창가에 말린 살구꽃 한 줌이 놓여 있었다. 누가 두고 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청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과 울음을 참는 얼굴이 이상하게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월령은 그때 처음 알았다."왕부에서 보낸 거예요."청아가 아주 작게 말했다.탁자 위에는 꿀물이 담긴 백자잔, 향 없는 비단 수건, 말린 살구꽃, 그리고 작은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글씨는 위지헌의 것이 아니었다 — 너무 둥글고 지나치게 단정했다.윤백이었다.찬 것은 올리지 말라 하셨습니다.향은 빼라 하셨습니다.단것은 조금이라도 드시라 하셨습니다. 문장마다 '하셨습니다'가 붙어 있었다.누구의 명인지 모를 리 없게,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은 한 번도 쓰지 않은 채.월령은 종이를 접었다.어이없어야 했다.섭정왕부의 근시가 심가 아가씨 방 앞까지 꿀물의 온도를 재고 간다는 일이 어찌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모든 배려가 너무 조용하고 익숙해서, 마치 왕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이런 명을 받아 온 것처럼 보였다.이것은 다정함인가, 감시인가. 혹은 심가의 문턱에 세워 둔 섭정왕부의 표시인가.월령은 답을 정하지 못했다. 정하지 못한 답은 늘 두려움 쪽으로 기울었다.손목이 먼저 뜨거워졌다.어제 위지헌의 손이 맥을 누르던 자리. 독향 사이에서 몸보다 먼저 숨을 붙잡힌 것 같던 감각.월령은 천천히 소매를 내렸다.숨은 아직 조금 무거웠다.몽혼향 자체는 오래 남는 독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향, 죄를 흐리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향이라 더 교묘했다.누군가 쓰러지면 병약함이 되고, 판단이 늦으면 피로가 되며, 기억이 흐릿하면 예민함이 된다. 황궁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독이 많았다 — 사람의 말을 빼앗고, 증거를 흐리고, 뜻을 남의 손에 맡기게 만드는 것들.월령은 어제의 실수를 되짚었다.독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Read more

30. 병문안

심가의 대문 앞에는 삼황자부의 깃발이 서 있었다. 병문안이라는 말은 온화했다.그러나 온화한 말일수록 길을 넓게 열었다. 병든 사람을 위한다는 뜻을 내세우면, 그 마음을 의심하는 쪽이 도리어 무례해진다.위명서는 그런 길을 고르는 데 능했다.그는 직접 왔다.옥색 장포에 어제와 같은 온화함을 얹은 채, 그러나 더 공적인 차림으로. 허리의 백옥패는 수수했으나 질이 좋았고, 뒤따르는 내관들의 걸음은 조용했다.과시가 아니라, 과시하지 않기 위해 고른 격식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절제를 품위라 불렀다.심도윤이 대문 안쪽에서 그를 맞았다. 장군의 얼굴은 단단했으나, 월령은 아버지의 손등에 서린 긴장을 보았다.받아들이면 은혜가 생기고, 거절하면 무례가 된다. 전장에서는 적의 깃발이 보였지만, 집안의 문턱으로 들어오는 예의는 그보다 다루기 어려웠다.한씨는 누구보다 먼저 사정을 읽고 조심스레 눈시울만 붉혔다. 너무 빨리 기뻐하면 속이 드러나고, 너무 늦게 반응하면 의심을 산다.서윤은 한 걸음 뒤에 있었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눈이었으나, 오늘은 울지 않았다.울고 싶은 사람이 울음을 참는 얼굴은, 잘 만든 눈물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월령은 회랑 끝에서 그 장면을 보며 곧장 나서지 않았다.이번에는 먼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 제 두려움, 제 분노, 그리고 위명서가 여전히 자신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 그녀가 문지방 뒤에서 숨을 고르는 사이, 반대편 회랑에서 낮은 발소리가 다가왔다.위지헌이었다.그는 군무를 핑계로 심가에 남아 있었다. 그가 회랑에 들어서자, 분주하던 하인들의 손이 한 박자 느려졌다.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검은 대창포가 햇빛 속에서도 빛을 먹어 깊었고, 은실 구름무늬는 걸음마다 아주 희미하게 살아났다. 사철 변함없는 감송향이 한 자락 지날 때, 물동이를 인 어린 계집종 하나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그를 보다, 들킨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서늘한데도 눈을 떼기 어려운 무엇이 그 사람의 느린 걸음 안에 깔려 있었다. 위
Read more
PREV
123456
...
1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