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全部章節:第 11 章 - 第 20 章

22 章節

011. 어린 방에 숨은 역모

빈 혼서는 오래도록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붉은 종이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었다. 혼인에 쓰는 종이답게 빛은 고왔고, 가장자리에는 얇은 금선이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이름도, 날짜도, 청혼의 문구도 없었다.맨 아래 한 줄만 남아 있었다.네가 쓸 이름을 비워 두었다.월령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받아들인 것인가.거절한 것인가.아니면 정말로 선택권을 돌려준 것인가.위지헌다운 일이었다. 대답을 주는 대신 판을 주었다. 혼서를 보내면서도 혼인을 강요하지 않았고, 거절하면서도 문을 닫지 않았다. 손을 내밀되 잡으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그 손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알기도 전에, 먼저 길의 끝을 계산하게 만드는 사람.종이에서는 아직도 아주 희미한 살구꽃 향이 났다.월령은 서랍을 열었다.전날 받은 향낭이 그 안에 있었다.같은 향.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향낭의 향은 죽음 끝의 봄 같았고, 혼서의 향은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차이였다. 설명하려는 순간 우스워질 만큼 작은 차이.그래서 더 마음에 남았다."월령아."심도윤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월령은 서랍을 닫았다."들어오십시오, 아버지."심도윤은 방 안으로 들어와 먼저 책상 위의 빈 혼서를 보았다. 장군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전장에서 군보를 읽을 때의 얼굴이었다. 딸의 혼사 앞에서까지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지금 이 일은 혼사가 아니라 군보에 가까웠다."왕야의 뜻을 알겠느냐.""알 수 없습니다."월령은 솔직히 말했다.심도윤은 잠시 침묵했다."그분이 네게 선택권을 준 듯 보이지만, 궁에서는 빈 종이도 말이 된다. 이미 왕부에서 혼서 형식의 종이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네 이름은 섭정왕과 묶였다.""압니다.""더구나 봉투를 가져온 자가 왕부의 혼례 담당이 아니라 북경군 사람이었다."월령의 시선이 빈 혼서 위에 멈췄다.심도윤은 낮게 말했다."청혼이 아니라 경고처럼 보이게 보냈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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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틈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새벽녘에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실을 감는 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곧이어 두 방울씩, 나중에는 어느 것이 먼저 떨어졌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잦아졌다.심가의 아침은 젖은 냄새로 열렸다.행랑채 아이들은 짚신 밑창에 진흙을 묻힌 채 창고 앞을 오갔고, 부엌에서는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느라 연기가 낮게 깔렸다. 말린 생강은 다시 대청 안으로 들여졌고, 약방의 작은 종은 창포 묶음을 처마 아래에 걸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비가 오는 날에는 집안의 틈이 먼저 보였다.기와가 조금 들뜬 곳, 창호지가 배어 오른 곳, 장독 뚜껑 가장자리에 물이 고이는 곳. 맑은 날에는 단정해 보이던 집도 물을 만나면 감춰 둔 약한 곳을 하나씩 드러냈다.월령은 서고 앞에 서서 봉인을 살폈다.붉은 봉랍은 밤새 잘 굳어 있었다. 소금을 아주 조금 섞은 자리에는 흰 점이 별처럼 박혔고, 심가의 인장은 종이 끝과 문짝을 함께 물고 있었다. 누가 문을 열고자 하면 종이가 먼저 찢어질 것이다.문지기 늙은 하인은 양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밤새 아무도 오지 않았느냐.""예, 아가씨. 둘째 나리께서도 오늘은 들지 않으셨습니다."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비가 세니 서고 앞 마루에 물이 들지 않게 해 줘. 물이 닿으면 종이가 먼저 울 테니까.""예."하인은 대답하면서도 눈을 아래로 내렸다.열여섯 아가씨가 군량 장부 봉인을 살피는 일은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크게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중이라는 명분은 월령의 작은 움직임에 조용한 그늘을 씌워 주었다.그 명분이 고마웠다.그리고 서글펐다.월령은 손끝으로 소매 안쪽을 눌렀다.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 집의 문틈을 이렇게 오래 보지 않았을 것이다. 장작값과 말먹이값이 왜 같은 줄에 매달리는지, 봉랍에 소금을 조금 섞으면 왜 누군가의 손이 두려워지는지, 서윤의 흰 매듭이 왜 자녕궁에서 위명서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나이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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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매듭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지나치게 맑았다.밤새 지붕을 두드리던 물소리가 멎자, 심가는 잠시 숨을 잃은 집처럼 조용해졌다. 처마 끝에는 아직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뜰 가운데 고인 얕은 물에는 회색 하늘이 얇게 비쳤다. 행랑채 쪽에서는 젖은 짚을 뒤집는 소리가 늦게 깨어났고, 부엌에서는 불씨를 살리려 부싯돌을 치는 소리가 두어 번 낮게 울렸다.비가 지나간 자리는 늘 사람보다 먼저 말을 했다.기와 밑에 떨어진 진흙, 담장 아래로 밀려온 풀씨, 회랑 끝에 비스듬히 남은 발자국. 맑은 날에는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아도 될 흔적들이, 비가 그친 뒤에는 이상할 만큼 오래 눈에 걸렸다.서쪽 편문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었다.빗장 끝에 묶인 흰 실 하나.밤새 젖었으나 끊어지지 않은 실은, 새벽빛을 받자 오히려 더 희게 떠올랐다. 회화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 곁의 흙을 작은 구멍처럼 팠고, 문밖 물웅덩이에는 누군가 멈춰 섰다가 돌아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기윤은 담장 그림자 안에서 눈을 내리깔았다.그는 밤새 움직이지 않았다.가만히 있는 일은 쉬워 보였으나, 때로는 칼을 뽑는 것보다 어려웠다. 뛰어들어 손목을 꺾는 일보다, 눈앞의 흔적을 그대로 두는 일이 더 오래 숨을 눌렀다. 특히 저 흰 실이 장군가 어린 아가씨의 손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 순간부터는 더 그랬다.기윤은 한때 북쪽 역참 마을에서 살았다.겨울마다 바람이 먼저 사람의 뺨을 베고 지나가던 곳이었다. 말방울 소리가 길을 알려 주고, 등불 하나가 살아 있는 집과 빈집을 갈라놓던 곳. 그곳에서 그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기다림 끝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문이 열리지 않아도 불이 꺼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다.그래서 그는 문 앞에 묶인 실을 오래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아직 아이를 죄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다만 실은 문밖을 향해 있었다.알려 주려 했다는 흔적만으로도 사람은 이미 위험에 닿는다.담장 밖 회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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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네가 황후가 되던 날

월령은 서재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문틈으로 새어 나온 등불이 바닥을 얇게 갈랐다. 그 안쪽 벽에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전생의 자신을 닮은 여인.아니, 닮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그 여인은 지금의 월령보다 말라 있었다. 어깨는 비단옷 속에서도 날카로웠고, 목가에는 지워지지 않은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눈은 정면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믿지 않으려 애쓴 사람의 눈이었다.월령은 그 눈을 알았다.처형 전날 밤, 동경 속에서 보았던 자신의 눈이었다."들어와라."위지헌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월령은 문을 밀었다.서재 안은 왕부의 다른 곳보다 차가웠다. 벽에는 병서와 문서가 빼곡했고, 탁자 위에는 봉인된 서신과 지도가 놓여 있었다. 등불은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책상 위에, 하나는 초상화 아래에.그림만 밤마다 깨어 있게 해 둔 방 같았다.월령은 초상화 앞까지 갔다.손끝을 들어 비단을 조금 더 걷자, 여인의 목에 남은 붉은 선이 또렷해졌다.칼이 지나간 자리.월령의 숨이 아주 느리게 내려앉았다."제 얼굴입니다."그녀가 말했다.위지헌은 붓을 내려놓았다."그렇게 보이나.""왕야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질문이 아니었다.위지헌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월령은 초상화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긴 문답으로 얻어낼 수 있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위지헌은 말로 헛점을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물건을 남겼다. 길을 열어 두고, 등불을 낮추고, 그녀가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했다.그렇다면 이 그림은 답이 아니라 미끼였다.혹은 경고.월령은 비단을 놓았다.그러자 천이 다시 흘러내리며 그림의 목을 가렸다.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위지헌이 다가왔다.발소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까워지는 기척만은 선명했다. 월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면 이 방에서 자신이 먼저 흔들린 것이 된다.위지헌은 그녀의 옆에 섰다.어깨가 닿지는 않았다.닿지 않았는데도, 등불 아래 공기가 좁아졌다.그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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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죽음이 기다리는 전장

아침의 왕부 식탁에는 단 과자가 올라왔다.작고 둥근 살구병이었다. 꿀에 졸인 살구를 얇은 반죽 안에 넣어 구운 과자. 심가에서 월령이 어릴 적 좋아하던 것이었다. 열두 살이 지나고 나서는 잘 먹지 않았다. 대장군의 적녀는 너무 쉽게 웃어도, 너무 쉽게 단것을 좋아해도 안 된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였다.월령은 과자를 한참 바라보았다.청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왕부 주방에서 올린 거라 합니다.""누가 시켰대.""그건 말하지 않았습니다."물어볼 필요도 없었다.위지헌은 식탁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기척이 있었다. 말없이 차려진 접시, 향이 없는 차, 너무 달지 않게 졸인 살구. 누군가 오래전의 어린 취향을 기억하고, 지금의 그녀가 거부하지 않을 만큼만 덜어 낸 흔적.월령은 과자를 집지 않았다.집으면 진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바깥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왕부의 총관이 들어와 낮게 예를 올렸다."심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월령은 손을 뻗었다.봉인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러나 종이를 펼치는 순간, 글씨의 흔들림을 먼저 보았다. 심도윤은 전장에서 수천 명을 움직이면서도 붓끝을 흔들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런 아버지의 글씨가 흔들렸다.월령의 눈이 한 줄에 멈췄다.심각.북서 변경.출정 명단.전생의 기억이 차갑게 되살아났다.심각은 전생에서 황후 책봉 두 달 뒤 변경으로 나갔다. 표면상으로는 공을 세울 기회였다. 실제로는 심가 군권을 나누고, 오라비를 수도에서 떼어 놓기 위한 명이었다.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월령은 종이를 접었다.손끝이 차가웠다."왕야는 어디 계십니까."총관은 고개를 숙였다."북원입니다. 군무 회의 중이십니다."월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살구병은 그대로 식탁 위에 남았다.왕부의 북원은 집보다 관청에 가까웠다. 낮은 문 너머로 군복 입은 장수들이 드나들었고, 마당에는 말안장과 봉인된 군보가 놓여 있었다. 월령이 다가가자 몇몇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가 곧 내려갔다.그들은 월령을 궁금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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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피 묻은 군보의 밤

흑수곡.그 세 글자가 종이 위에서 번졌다.월령은 군보를 쥔 손을 놓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은 언제나 파편으로 돌아왔다. 비 냄새, 칼날, 붉은 옷자락, 멀리서 들리던 말발굽. 그런데 흑수곡만은 선명했다.심각의 부고가 온 날.검은 봉투.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던 소리.어머니가 병상에서 한참 동안 눈을 뜨지 못하던 얼굴.그리고 위명서의 목소리.변경의 일은 하늘도 예측하지 못한다.그때 월령은 그 말을 믿었다.하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서재 안은 조용했다.위지헌은 군보를 받아 들고도 바로 펼치지 않았다. 먼저 월령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주 짧게 그녀의 손목에 머물렀다. 전날 밤 그가 붙잡았던 자리. 입맞춤이 끊긴 뒤에도 놓지 않았던 곳.월령은 손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전날 밤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먹 냄새, 상처 난 손, 피가 밴 천, 그리고 짧게 닿았다가 물러난 입술.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월령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위지헌이 군보를 펼쳤다.붉은 인장은 병부의 것이었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급히 말린 흔적이 있었다. 먹은 말랐지만, 봉랍 아래쪽에 아주 얇은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월령은 그것을 보았다.위지헌도 보았다."등잔 가까이."그가 말했다.월령은 군보를 등불 옆으로 가져갔다.검은 점은 먹이 아니었다. 아주 가는 가루가 굳어 있었다. 손끝으로 문지르면 쉽게 떨어질 듯했지만, 월령은 건드리지 않았다.전생에 심가로 날아온 군보에도 이런 점이 있었던가.기억나지 않았다.그때의 자신은 글자만 읽었다. 심각이 죽었다는 글자. 충렬이라 적힌 글자. 황은이라 적힌 글자. 그 종이 위에 남은 다른 흔적들은 보지 못했다."군보가 지나온 곳."월령이 낮게 말했다.위지헌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대신 책상 위의 지도를 펼쳤다.서북 변경.흑수곡.그리고 수도로 이어지는 보급로.월령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흑수곡은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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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달빛 아래 훔친 밀서

궁의 밤은 왕부의 밤과 달랐다.왕부의 밤은 차가웠다. 모든 그림자가 정해진 자리에 있었고, 발소리조차 명을 받은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궁의 밤은 달랐다. 낮 동안 웃음과 향과 비단으로 덮어 둔 욕망들이 밤이 되면 벽 틈으로 배어 나왔다.향 냄새.젖은 돌 냄새.멀리서 들리는 환관의 낮은 기침.그리고 아무도 없는 듯 보이는 회랑마다 숨어 있는 눈.월령은 검은 장막 아래에서 숨을 낮췄다.위지헌은 한 걸음 앞에 있었다. 검은 옷에 궁인용 외투를 걸친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그곳의 주인처럼 보였다. 심지어 남의 궁에 몰래 들어온 밤에도.그 사실이 불쾌해야 했다.그런데 월령은 그의 오른손에 감긴 천부터 보았다.자신이 묶어 준 것이었다.밤바람에 천 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손을 소매 안에 숨기지 않았다. 보이게 둔 것은 아니겠지만, 숨기지도 않았다.그 작은 변화가 월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전날 밤 이후, 둘은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짧은 입맞춤.멈춘 숨.놓지 않았던 손목.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 때문에 모든 것이 더 선명했다."외서고는 저쪽입니다."월령이 낮게 말했다.위지헌은 대답 대신 시선으로 길을 재었다.그들은 회랑의 그늘을 따라 움직였다. 태후전 외서고는 궁의 북쪽에 있었다. 겉으로는 오래된 서책과 제례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었지만, 실제로는 태후 친정과 궁 안 사람들의 장부가 오가는 곳이었다.독고가 서북 상단.흑수곡.보급 지연.심가.피 묻은 군보 조각에 남은 글자들이 월령의 머릿속에서 하나씩 맞물렸다.외서고 문 앞에는 궁녀 둘이 서 있었다.위지헌은 멈추지 않았다.월령은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한 박자 늦게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피하지 않는다. 지나간다. 피하는 사람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궁녀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위지헌의 손이 월령의 허리 뒤 장막 자락을 잡아당겼다.강하지 않았다.그러나 월령의 몸은 자연스럽게 그의 곁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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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마지막 품을 닮은 밤

문밖의 목소리는 낮았다."안에 계신 분들, 태후마마의 명입니다. 문을 여십시오."월령은 위지헌의 품 안에서 숨을 죽였다.품 안의 장부는 얇았다. 그러나 그 얇은 종이 몇 장이 지금 그녀의 목숨보다 뜨거웠다. 독고가 서북 상단. 흑수곡 보급. 심가 호송로 차용. 전생에서 오라비가 죽었던 길이, 누군가의 장부에는 이익과 손실로 적혀 있었다.그 사실만으로도 월령은 문을 열고 나가 모든 이름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허리 뒤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말보다 정확했다.월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면 그의 턱선과 입술이 너무 가까웠다. 방금 전까지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가까웠던 거리였다. 그런데 거짓이어야 했던 그 열기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문을 열어라."밖이 잠시 조용해졌다.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이다.문이 열렸다.등불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금위위 병사 넷, 태후전 상궁 하나, 그리고 검은 장부함을 든 내관 하나가 서 있었다. 상궁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은 숙이지 않았다. 늙은 여인의 눈빛은 침상과 떨어진 비녀, 흐트러진 옷깃을 빠르게 훑었다.그 눈빛이 월령의 품 앞에서 멈췄다.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월령은 그의 등 뒤로 가려졌다.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가 그녀의 자리였던 것처럼."왕야."상궁이 예를 올렸다."태후마마께서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 외서고를 봉하라 하셨습니다.""봉해라."위지헌의 대답은 짧았다.상궁의 눈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그 전에 안에 계신 분들을 확인하라 하셨습니다.""확인했겠지.""물건도 확인하라 하셨습니다."월령의 손이 장부 위에서 굳었다.상궁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그 순간 위지헌의 손이 뒤로 와 월령의 손등을 덮었다. 남들이 보지 못할 만큼 낮게, 옷자락 속에서. 그는 장부를 빼앗지 않았다. 숨기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눌렀다.그 손의 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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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거짓 충성의 맹세

위지헌은 새벽이 되어서야 열이 내렸다.월령은 그의 손목을 놓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잠든 사람의 손은 의외로 정직했다. 낮 동안의 명령도, 냉정한 계산도, 사람을 베듯 짧은 말도 없었다. 다만 손가락 끝이 때때로 그녀의 맥을 더듬었다.살아 있는지 확인하듯.월령은 그 손길을 밀어내지 않았다.비 맞게 두지 않겠다.그 말은 밤새 방 안에 남아 있었다.처형장의 비.전생의 마지막 품.그리고 지금, 동쪽 별채의 낮은 침상 위에서 상처를 안고 잠든 남자.그는 현생의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는 비 속에서 죽어 가던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늦었고, 놓쳤고, 그래서 이번에는 늦지 않으려 했다.월령은 그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이 사람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가 칼을 쥐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웃어도 되고, 단것을 좋아해도 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란과 마당을 뛰어다녀도 되는 삶.그런데 그런 삶을 돌려주려는 방식이 피와 감시와 계책뿐이다.그래서 더 슬펐다.청아가 조용히 들어와 찬 찜질 물을 갈았다. 그녀는 침상 위의 위지헌과 그 곁의 월령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가가 붉었다."아가씨, 장부는 숨겨 두었습니다."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사본은?""말씀하신 대로 한 장만 옮겨 적었습니다."청아가 품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독고가 서북 상단.흑수곡 보급 지연.심가 호송로 차용.그리고 작은 인장 하나.병부 부인.병부에서 정식으로 찍은 인장이 아니었다. 부인의 친정 쪽에서 쓰는 사인. 장부를 직접 움직이는 손은 독고가였지만, 병부 안쪽에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있었다.월령은 그 종이를 접었다.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독고가를 찌르기 전에, 심각의 출정 명부터 늦춰야 했다. 흑수곡에 병력이 움직이는 순간, 증거보다 부고가 먼저 도착할 것이다.월령은 위지헌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그를 깨울 수 없었다.그가 깨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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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무릎 꿇은 반역자

후궁 예비 명단.그 말이 동쪽 별채에 내려앉은 순간, 촛불이 한 번 낮게 흔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췄다.위명서는 하루를 내주었다.그리고 바로 그 하루의 값으로 그녀를 요구했다.곁에서 직접 보호하겠다.궁중으로 불러들이겠다.후궁 예비 명단에 올리는 일을 의논하라.말은 부드럽고 절차는 공손했다. 그러나 뜻은 명백했다. 섭정왕부에 있는 여자를 다시 황궁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 월령을 심가의 딸로도, 섭정왕의 동맹으로도 두지 않겠다는 것.황제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것.전생의 목줄을 다시 꺼낸 것이다.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젖은 소매에서 천천히 떨어졌다.그 움직임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방 안의 공기가 식었다.총관은 문밖에서 더는 읽지 못했다.월령은 위지헌을 보았다.그의 얼굴은 평온했다.너무 평온했다.그 평온함 아래서 무언가가 검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분노라고 부르기에는 차가웠고, 질투라고 부르기에는 깊었다. 오래 잠겨 있던 문이 안쪽에서 열리는 소리 같았다."조서를 들여라."위지헌이 말했다.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감히 월령을 보지 못했다. 두 손으로 조서를 받쳐 올렸다.위지헌은 조서를 받아 들었다.읽지 않았다.찢지도 않았다.그는 촛불 가까이에 조서를 가져갔다. 붉은 인장이 빛을 받았다. 삼황자의 사인과 태후전의 부인이 함께 찍혀 있었다. 아직 황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명으로 만들 준비는 끝나 있었다.위지헌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웃음은 아니었다."겁이 많군."그가 낮게 말했다.총관의 어깨가 굳었다.월령은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았다.위명서.태후.그리고 자신을 빼앗기 전에 먼저 이름으로 묶으려는 모든 사람들."왕야."월령이 입을 열었다.위지헌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아침에 입궁한다.""상처가 열렸습니다.""닫을 시간은 있다.""저 때문이라면."그제야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왔다.차가웠다.그런데 그 차가움은 그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깊게 붙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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