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164 Chapters

11. 삼전하

황궁이 심가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칼만이 아니었다. 대연의 북쪽에는 흑령산맥이 길게 누웠고, 그 너머 삭원의 기마 부족은 해마다 봄이면 남쪽 풀을 넘보았다.북문관의 군량은 호부의 장부에서 나오지만, 그 군량이 얼어붙은 고갯길을 지나 병사들의 손에 닿게 하는 것은 심가의 이름이었다.경안의 저잣거리 사람들은 겨울바람이 거칠어질 때마다 말했다. 북문이 닫혀 있으면 아이들이 잠을 잔다고.그 민심은 조정의 붉은 인장보다 질겼다. 그러니 황궁은 심가를 꺾고 싶어 하면서도, 심가의 이름을 제 편으로 세우고 싶어 했다.그 사이에서 한 여식의 혼인은 칼보다 조용하고 군령보다 오래가는 끈이 되었다. 월령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약은 멈춘다."조계가 말했다."심 부인이 살아 있으면 다른 문을 열어야지.""장부 쪽입니까?"금지가 겁먹은 듯 물었다.조계는 대답 대신 안개 낀 연못을 보았다."안채 문서가 잠기면 군량 문서도 늦어진다. 북문군이 제때 먹지 못하면 병부가 심가를 탓할 수 있고, 심가가 흔들리면 경안 백성의 입도 흔들리지. 사람은 배가 비면 충성도 헐값에 논한다."그는 가볍게 말하려 했으나, 군량과 병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아는 것을 다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체를 참지 못하는 사람의 조급함이었다.월령은 손끝을 접었다.약 한 사발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살린다 해도, 저들은 곧장 장부로, 군량으로, 북문으로 길을 옮길 것이었다.어머니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고, 그 시작을 막은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었다."내일 심가 연회에 삼전하께서 드신다."조계가 다시 말했다."네 아가씨에게 전해라. 큰아가씨를 오래 붙잡아 두라고. 웃게 만들 수 있으면 더 좋다.""큰아가씨를요?""눈으로 보겠다 하셨다. 보고 난 뒤에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심가 여식이면 북문군과 저잣거리의 입이 함께 오지."조계는 물 위로 번진 달빛을 밟듯 낮게 웃었다.웃음 끝이 얇게 갈라졌다."삼전하께서는 그 값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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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도둑

"아가씨는요?"청아가 물었다.월령은 담장 쪽으로 움직이는 조계의 등을 보았다."아버지의 호위들에게 갈 거다."정무.심도윤이 북쪽 전장에서 데려온 오래된 호위장이었다. 왼쪽 귀가 반쯤 들리지 않았고, 걷는 소리는 마른 잎보다 가벼웠다.심가의 어린 하인들은 그를 무서워했지만, 월령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 정무는 묻기 전에 먼저 문을 닫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베기보다 살려 묶는 법을 아는 손이기도 했다."저 사람은요?"청아가 물었다."오늘 밤 심가에 도둑이 들었어."월령의 목소리는 낮았다."궁의 매듭을 한 도둑이."청아의 눈이 커졌다.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무서워하면서도, 아이는 월령의 말끝에 매달려 있었다.*그날 밤, 남쪽 담장 아래에서 조계가 붙잡혔다.정무는 칼을 뽑지 않았다.칼집 끝으로 조계의 무릎 뒤를 정확히 쳤고, 쓰러지는 몸을 젊은 호위 둘이 받아 눌렀다.소리는 작았다.오래 전장을 지나온 사람의 손이었다 — 사람을 죽이지 않고, 말할 입만 남겨 두는 손. 조계는 넘어지는 순간에도 먼저 입술을 다물었다."조, 조정의…"말은 턱 아래에서 끊겼다.정무의 손이 이미 그의 턱을 눌러 올리고 있었다. 정무는 조계의 입안부터 확인했다.혀 밑에 숨긴 작은 독낭을 손가락 두 개로 빼냈다. 젊은 호위 하나가 눈을 크게 뜨자, 정무는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놀라는 소리는 나중에 해라."낮고 메마른 말이었다.청아는 멀찍이 선 채 은매가 숨은 창고 열쇠를 품에 꼭 쥐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렸는데, 누가 다가오면 먼저 눈을 들어 길을 막았다.지켜야 할 것이 늘어날수록, 사람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조심스러워졌다. 조계의 품에서는 궁제 향낭과 은자가 나왔다.향낭 안에는 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얇은 종이 조각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글자는 없었다.다만 가장자리 안쪽에 금빛 가루가 아주 엷게 묻어 있었다. 궁의 물건은 때로 글자보다 표식으로 말한다.월령은 그것을 보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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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회

다음 날, 심가에는 봄 연회가 열렸다. 겉으로는 유씨의 기침이 가라앉은 것을 기뻐하고, 가까운 친지를 불러 차와 술을 나누는 자리였다.그러나 안채의 공기는 어제와 달랐다. 하인들은 서로 눈을 피했고, 부엌에서는 찻물 끓는 소리까지 작아졌다.심가의 하인들은 솥뚜껑 닫는 속도, 쟁반 위 찻잔의 수, 누가 어느 문으로 드나드는지를 보고 집안의 날씨를 읽었다. 오늘 안채의 날씨는 흐렸다.한씨는 눈 밑을 분으로 덮었으나 창백함까지 가리지 못했다. 은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더 조용해졌다.금지는 서윤의 뒤에 서 있었다. 검은 장옷은 벗고 낮의 하녀답게 얌전한 회색 저고리를 입었으나, 손끝이 자꾸 허리끈 아래를 더듬었다.밤에 받은 종이 싸개가 아직 그곳에 있는 듯이.월령은 모르는 척했다.사람은 몰렸을 때보다, 안심했다고 믿는 순간에 더 많은 것을 흘린다. 서윤은 더 곱게 꾸미고 나타났다.옅은 하늘빛 치마에 작은 진주 비녀.맑고 어렸다.그래서 눈 밑에 고인 밤의 흔적이 더 잘 보였다."언니."서윤이 가까이 왔다.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웠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것은 때로 금이 간 그릇과 닮았다."어젯밤은 편히 주무셨어요?""응."월령은 찻잔을 내려놓았다."너는?""저도요."거짓말은 향처럼 얇았다.바람이 불면 흩어질 것 같으면서도, 한동안 옷자락에 남는다."어젯밤 꿈에 붉은 담을 봤어."월령이 웃었다."그 안에서 누가 걸어 나오더라."서윤은 아주 잠깐 숨을 멈췄다. 그 뒤에는 다시, 어른들이 보면 안심할 얼굴이었다."언니는 요즘 꿈이 깊으세요. 나쁜 꿈이면 잊으세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그러며 서윤은 월령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그 손은 여전히 작고 따뜻했다.등을 토닥였던 손.머리카락을 빗어 주었던 손. 그리고 언젠가는 비녀함을 열었던 손.아직 어린 손이었다.아직 피보다 인정에 더 쉽게 흔들릴 손. 그 손을 밀어내기만 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몰랐다.그러나 그러고 나면, 누가 이 아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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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음

월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연한 백색 저고리 위로 먹빛 머리카락이 차분히 내려앉아 있었다.화려한 장식은 없었다.다만 고개를 숙이는 순간, 긴 속눈썹 아래 맑은 눈빛이 잠시 가려졌다. 그 짧은 그늘 때문에, 오히려 얼굴은 더 또렷해 보였다.위명서의 눈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리고 그 멈춤을, 서윤이 보았다."소문보다 조용한 분이군요."위명서가 웃었다."달빛은 본디 소리가 없어 오래 남는다지요."낮은 감탄이 번졌다.서윤은 월령의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손끝은 치맛자락을 파고들고 있었다."소녀가 감당하기에는 고운 말씀입니다, 전하."월령의 목소리는 무너지지 않았다.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전에 뵌 적이 있었습니까?""아직 그런 영광은 없었습니다.""이상하군요."위명서의 웃음이 조금 깊어졌다."낯설지가 않습니다."월령은 찻잔의 온기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손등에 이마를 대던 순간을, 청아의 떨리는 숨을, 죽은 아이의 이름을.그것들이 그녀를 이 자리에 붙들었다."소녀가 낯선 얼굴을 잘 익히지 못해서요."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전하의 눈에 어디선가 본 듯 비쳤다면, 아마 봄빛 탓일 겁니다."무례하지는 않았다.그러나 길을 열어 주지도 않았다. 위명서는 그 작은 거절을 알아들었고, 알아들은 사람의 얼굴로 더 온화하게 웃었다."연회가 끝나면 정원의 바람을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긴 이야기는 아닙니다."심도윤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한씨는 숨을 삼켰고, 서윤의 얼굴은 눈에 띄게 하얘졌다."송구합니다, 전하."월령은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어머니 곁을 오래 비워 두기가 마음에 걸립니다."그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그 한마디로 충분했다.위명서의 눈동자에 얇은 빛이 스쳤다 —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에 갚겠습니다."다음.위명서는 언제나 다음을 만들었다. 다음 만남, 다음 편지, 다음 꽃가지.거절은 그에게 끝이 아니라 잠시 접어 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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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외로움

"전하."월령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위명서는 웃고 있었다."황궁은 많이 외로운 곳입니까?"뜻밖의 물음이었는지, 그의 눈동자에 아주 얇은 파문이 생겼다가 곧 사라졌다."높은 담 안에 있으니, 때로는 그렇지요.""그 외로움을, 사람 하나에게 모두 맡기셔도 되는 것입니까?"회랑 뒤에서 서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월령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겉으로는 예를 잃지 않은 채, 손끝만 소매 안에서 가만히 접었다."소녀는 아직 제 집안의 근심도 다 품지 못합니다. 병중의 어머니가 계시고, 북문을 지켜 온 아버지가 계시고, 어린 식구들도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그들을 두고 누구의 외로움을 달래러 갈 만큼, 제가 넉넉한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위명서의 미소가 옅어졌다.예전 같았다면 월령은 이쯤에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외로운 황자의 마음을 밀어냈다는 생각에 밤새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의 가슴에 남은 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너는 외로워서 나를 원한 것이 아니었지.심가가 필요했을 뿐이다.아버지의 군권, 오라비의 충성, 북문관 너머 눈보라와 경안 저잣거리의 잠자리까지 묶어 둔 심가라는 이름. 그리고 황궁이 비워 둔 자리를 가장 아름답게 채워 줄 장군가의 딸."그 말씀은."위명서가 낮게 물었다."나를 거절하는 겁니까?"부드러운 물음이었다 — 가시는 늘 그 부드러움 아래에 숨었다."전하께서 소녀에게 무엇을 청하셨습니까?"월령은 고개를 들었다.위명서의 눈빛이 멈췄다.그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다만 운명처럼 들리는 문장을 던졌을 뿐이다.상대가 스스로 의미를 얹고, 스스로 마음을 내어 주기를 기다리는 방식. 그는 늘 그랬다 — 문을 열어 놓고, 들어온 사람의 발을 탓했다.한때의 월령은 그 문턱을 제 발로 넘었다.이번에는 아니었다."청하신 것이 없다면, 소녀가 감히 물릴 것도 없겠지요."바람이 멎었다.위명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흥미인지 불쾌인지 더 깊은 계산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그의 눈 안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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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섭정왕

대문 앞은 이미 조용한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삼황자가 왔을 때와는 달랐다.그때 사람들은 들뜨고 기뻐했다. 지금은 모두가 숨을 낮췄다.하인들은 허리를 굽힌 채 눈을 들지 못했고, 친척들은 말을 삼킨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위지헌은 그런 사람이었다 — 그가 오면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고, 숨을 세었다.말발굽 소리가 멎었다.검은 옷의 군사들이 먼저 들어섰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모두를 누르는 힘이 있었다.칼집 하나, 신발 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뒤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월령은 숨을 조심스레 삼켰다.위지헌.그 밤보다 젊었으나, 이미 차가웠다. 검은 장포 위로 은실 구름무늬가 희미하게 빛났고, 허리의 장검은 장식처럼 얌전히 걸렸으나 아무도 그것을 장식으로 보지 않았다.그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 웃지 않았고,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걸음은 느렸다 — 빨리 걸을 까닭이 없는 사람의 느림이었고, 절제된 그 한 걸음이 도리어 보는 이의 숨을 잡아끌었다.깎은 듯 서늘한 이목구비, 감정을 가라앉힌 눈매, 사람을 베어 왔을 길고 단정한 손. 그 서늘함 아래로 억눌린 힘이 낮게 흘렀고, 그 힘은 위압인 동시에 —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색(色)이었다.연회장 한쪽의 젊은 부인이 부채를 쥔 손을 멈췄다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잔을 나르던 시비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사람들은 그가 두려워 고개를 숙였으나, 숙이고도 곁눈으로 그를 좇았다. 그를 한 번 본 사람은, 마음에 무엇 하나를 품지 않고는 쉬이 돌아서지 못했다.월령조차 한순간 숨이 늦었다 — 그 밤의 젖은 장포도 피 묻은 손도 아닌, 봄볕 아래 처음 보는 서늘하고 아득한 사내였다."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심도윤이 예를 올렸다."심 장군."위지헌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그 목소리.월령의 가슴이 아프게 조여 들었다.칼을 치우라 명하던 소리.늦은 게 아니라고, 되돌리겠다고 짓이기듯 낮게 말하던 그 슬픔. 월령은 자신도 모르게 반 걸음 물러났다.위지헌의 시선이 움직였다.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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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뒤뜰

서재 뒤뜰에는 오래된 측백나무가 있었다. 나무 아래 작은 돌길을 따라가면 후문이 보였다.어린 월령은 그 길을 잘 알았다. 아버지가 전장에서 돌아오면 종종 그곳에서 군보를 읽었고, 그녀는 몰래 떡을 들고 찾아가곤 했다.오늘 그 길 끝에 위지헌이 있었다. 정확히는, 월령이 기다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서 있었다.측백나무 그림자 아래 그는 혼자인 듯 서 있었다. 다만 나무 높은 그늘 어딘가에서 검은 끈 하나가 바람 없이 흔들렸다 멎었고, 위지헌의 눈길이 아주 잠깐 그 위로 스쳤다.월령은 걸음을 멈췄다.가슴이 빠르게 뛰었다.도망치고 싶었고, 달려가고도 싶었다. 그 밤의 젖은 검은 장포, 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묻어 있던 손,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이 한꺼번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월령은 그것들을 삼켰다.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그를 찾아온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심가를 살리기 위해서다."섭정왕 전하."월령은 예를 올렸다.위지헌은 대답하지 않았다.한참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이 너무 깊어, 월령은 제 마지막 숨까지 들여다보이는 듯했다."심월령."그가 마침내 이름을 불렀다. 낮은 목소리가 이름의 끝을 아주 잠깐 붙잡았다가 놓았다."제 이름을 아십니까?""방금 들었다."말끝은 너무 고요했다.캐묻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전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본왕에게."물음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심 장군의 귀를 비켜 온 말이군. 아버지께도 이르지 못할 부탁이란 말이지."가까웠다.다가선 위지헌의 옷자락에서 서늘한 향이 났다. 월령은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른 뒤 그를 올려다보았다."궁에서 심가를…"위지헌의 눈빛이 돌연 차가워졌다.월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황궁을 입에 올린 것이 잘못이었나. 잠시 뒤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과 달랐다.낮고, 이상하게 다정했다."잠시 말을 멈추거라."그제야 월령은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주변에 그림자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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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순서

"그 사내, 황자의 사람으로 보더냐."위지헌이 물었다."삼전하…라고 생각합니다."월령은 또 너무 빨리 이름을 꺼냈음을 곧 깨달았다. 위지헌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그 사실에 월령이 오히려 놀랐다. 측백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윤이 잠깐 눈을 내렸다.왕야는 본래 남에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 기척 없이 칼을 빼고, 거둘 때에도 표정을 남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 지금은 월령 앞에서만,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그 작은 틈을 알아본 것은 기윤뿐이었고, 월령은 보지 못했다."그 이름은 아직 올리지 말거라."위지헌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증거를 가지고 있느냐?""아직…""그래서 나를 찾은 거군."그가 낮게 받았다."황자의 이름은 아직 이르다. 칼끝이 그자에게 닿기 전에, 네게 먼저 돌아온다.""알고도 올렸습니다."월령은 손끝을 접었다."그러니 전하께 왔습니다."스스로도 낯선 말끝이었다.차갑게 세운 문장인데, 마지막 음절이 어린 날 무언가를 청하던 때처럼 조금 젖었다. 월령은 곧 입술을 다물었다."내 이름을 첫 수에 올릴 생각이군."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의 소매에 닿았다 돌아왔다."그 값은 누가 치르지."차가운 질문이었다.그 밤의 마지막 고백을 들은 뒤라서인지, 그 말이 더 아팠다. 그는 그녀의 간청보다 먼저 허점을 보았다.이름을 너무 일찍 꺼낸 것, 증거를 너무 쉽게 보이려 한 것, 숨은 눈을 먼저 세지 않은 것. 월령은 죽음의 냄새는 기억했으나, 기억과 판세는 달랐다.그녀는 아직 수순을 알지 못했다. 월령은 천천히 무릎을 접으려 했다."그만."위지헌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기 직전, 그의 손이 월령의 팔꿈치 아래를 받쳤다.붙잡았다기보다, 멈춰 세웠다."바닥은 차다."명령도 위로도 아니어서, 이상하게 더 아팠다."서서 말해. 무릎은 담보가 아니다."그는 월령이 완전히 설 때까지 팔꿈치를 놓지 않았다.동정도 예의도 아니었다.그는 무릎을 꿇은 사람의 말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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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뼘

위지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월령의 앞에.검고 긴 손가락, 검을 쥐는 사람의 굳은살, 차갑지만 흔들리지 않는 손. 놓쳐 버린 손이 다시 놓여 있었다.월령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잡아도 되는가.한때 그녀는 위명서의 손을 잡고 죽음으로 갔다. 이번에 위지헌의 손을 잡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구원일까, 더 깊은 불길일까.하지만 이미 선택했다.월령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손끝이 닿는 순간, 위지헌의 손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다.뜨거웠다.그 밤 마지막으로 닿았던 그 손처럼. 그는 필요 이상으로 오래 잡고 있었다.그러나 조급함은 없었다.손가락 하나가 월령의 손등을 가만히 눌렀다. 도망을 막는 듯도 했고,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듯도 했다.월령은 제 숨이 너무 가까이 들릴까 봐 입술을 다물었다. 위지헌은 그녀가 휘청이지 않을 만큼만 붙들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자 천천히 놓았다.붙잡을 수 있으면서도, 그는 당장 가두지 않았다."삼황자의 그늘을 피해, 내 그림자에 들겠다."그가 말했다."그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내 이름을 앞에 세우고.""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요."말끝이 뜻밖에 부드러웠다.허락을 구하는 사람처럼.위지헌의 눈이 그 짧은 말끝에 머물렀다."허락하지 않으면.""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다른 길의 끝도 붉은 담인가."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아닙니다."대답은 즉시 나왔다.너무 빨랐는지 월령은 스스로 놀라,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그곳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않겠다."그가 낮게 되뇌었다."긴 말보다 낫군."월령은 그를 올려다보았다.위지헌은 웃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눈 안쪽에는, 높은 단 아래서 보았던 감정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가 있었다. 분노인지, 안도인지, 오래 묻어 둔 집착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빛."좋다."그가 말했다."그럼 짧게 묶어."월령의 숨이 풀렸다.그러나 다음 말에 다시 굳었다."대신."위지헌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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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부재

위지헌의 말은 측백나무 잎 사이에 한참 머물렀다. 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렸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비단 몇 겹 너머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놓지 않겠다고도, 당신을 이용하겠다고도, 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 모두 참이어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다정한 말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약점이 되고, 약점이 끝내 죄가 되던 것을 그녀는 한 생을 바쳐 배웠다. 위지헌은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그가 진정 바란 것이 대답뿐이었다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월령의 입술보다 먼저 그녀의 숨을 보았다 — 가늘어진 목선, 소매 안으로 접히는 손끝, 속눈썹 아래 젖은 눈동자가 늦게 숨는 순간.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답은 지금 내지 마라."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두고 보아도 늦지 않다."월령은 눈을 들었다.위명서가 했다면, 다시 생각할 틈을 주는 척 손목을 감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지헌의 말에는 끈이 없었다.그는 대답을 끌어당기지 않았고, 다만 그 대답이 너무 이르게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전하."월령은 아주 낮게 불렀다."남쪽 담의 사내는요.""창고에는 없다."그 말은 죽었다는 뜻도, 달아났다는 뜻도 아니었다. 위지헌의 말은 늘 문턱에 놓였고, 건너야 하는 쪽은 듣는 사람에게 남겨 두었다.월령은 천천히 그 뜻을 짚었다. 사내가 심가 창고에 그대로 있었다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은매를 우물가로 보낼 손이라면, 묶인 사내 하나 죽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그가 창고 안에서 죽으면 심가는 황궁의 사람을 죽인 집이 되고, 아버지의 충성은 군권을 감춘 칼로 읽힐 것이었다.그러나 사내가 사라지면, 이야기는 닫히지 않는다. 한씨와 서윤은 아직 같은 편인지 밤새 계산할 것이고, 궁 쪽은 제 손이 닿기 전에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찾을 것이다."제 아버지를 속이셨습니다."그 말은 월령이 했다기보다, 그 안의 어린 딸이 했다.위지헌은 피하지 않았다."그래."변명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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