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위지헌이 반 걸음 가까워졌다. 식은 차와 젖은 나무 같은 향이, 살구꽃의 끝을 낮게 붙잡았다.
"정말?"
월령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확실한가."
그는 추궁하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면서도, 그녀가 제 손으로 놓은 수를 한 번 더 보게 하는 물음이었다. 그런데도 월령은 숨을 조금 늦게 삼켰다.
"으응?"
위지헌이 아주 낮게 덧붙였다. 그 한 음절이 어쩐지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월령은 자신이 무슨 말을 알아들은 줄도 몰랐다. 다만 이 차가운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말도 이렇게 냉정하게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오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오만에 심장이 흔들렸다. 마른 가지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월령은 이번에도 한 박자 늦었다.
위지헌은 늦지 않았다.
그의 손이 월령의 손목에 닿았다. 잡아당기는 힘은 크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월령은 측백나무 그림자 안쪽으로 반 발 물러나 있었다.
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서자, 검은 장포가 월령의 옆얼굴을 가렸다. 가려졌으나 갇히지는 않았다 — 빠져나갈 틈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 틈을 지나려면 그의 팔과 장포 사이의 좁은 그늘을 통과해야 했고, 그 생각만으로 월령의 숨이 낮아졌다. 위지헌의 손끝이 맥 위에 놓였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숨을 줄이라는 뜻이었다.
월령은 입술을 다물었다.
심장이 그 손끝에 들킬까 봐,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월령 언니?"
서윤의 목소리였다.
달고 조심스러웠으나, 옷자락 끝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서윤은 위지헌을 보고 놀란 듯 예를 올렸다.
놀란 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놀랐고 실제로 두려웠을 것이다.
다만 서윤은 두려움을 보이는 법까지 배운 아이였다 — 눈가의 물기, 살짝 굳은 입술, 너무 늦지 않게 숙이는 고개.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갑옷이었다.
"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
위지헌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그는 서윤의 얼굴보다 발끝을 보았다.
걱정하러 온 사람의 걸음이라기에는, 흙을 밟은 힘이 달랐다. 찾는 사람의 발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발이었다.
"걸음이 무겁군."
서윤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비난은 아니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큰언니께서 보이지 않으셔서…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 하여 찾아보던 길이었습니다."
"걱정은 길을 밝히지."
위지헌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그늘을 데려오지는 않는다."
서윤의 입술이 희미하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월령은 장포 그림자 안에서 그 아이를 보았다.
서윤은 악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늘 뒤였기 때문에 움직였다.
유씨가 살아 있으면 한씨는 안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월령이 있으면 서윤은 심가의 중심에 설 수 없다. 고운 사촌 동생이라는 이름은 달콤하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에게는 오래 쓰다.
그러나 이해와 용서는 달랐다. 서윤은 살아남기 위해 남의 숨을 끊는 쪽을 택했다.
그 아이의 손은 아직 작아 완전히 단단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도리어 더 두려웠다. 작은 손은 제 손에 들린 것이 칼인지 꽃가지인지 모른 채 휘두를 수 있으므로.
"돌아가라."
위지헌이 짧게 말했다.
"심가의 큰아가씨는 곧 돌아갈 것이다."
그는 월령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작은 절제가 월령을 한 번 더 가렸다.
서윤은 잠시 망설였다.
더 물어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섭정왕 앞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윤은 결국 예를 올리고 돌아섰다. 그 치맛자락이 나무 그림자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월령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혼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섭정왕을 몰래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는 스스로 판 위에 피를 떨어뜨린 셈이 되었을 것이고, 위명서가 그 피를 어떻게 쓸지는 뻔했다.
월령은 굴욕을 삼키고 인정했다.
그녀는 아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순서는 서툴렀다.
방울이 울렸다.늙은 태의가 아이의 오른쪽에서 방울을 흔들자 봄이 돌아보며 잡으려 했다. 태의가 방울을 뒤로 빼고 왼쪽으로 돌아가서, 아이 귀 한 뼘 옆에서 울렸다.아이는 앞에 있는 월령을 보고 웃었다.태의가 방울을 놓고 왼쪽에서 크게 손뼉을 쳤다. 방어멈이 놀라고 청아가 놀랐는데 아이는 놀라지 않았다."열이 귀 안으로 들었사옵니다. 왼쪽이옵니다. 돌 전 아이가 열병을 앓고 나면 더러 있사옵니다. 열 아이에 하나꼴이옵니다. 오른쪽은 멀쩡하옵니다.""왼쪽은요. 약을 쓰면요.""쓸 약이 없사옵니다. 안 돌아오옵니다.""평생요.""예, 마마님. 평생이옵니다."월령이 오른쪽 귀가 제 가슴에 오게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그쪽 귀로 어미 숨소리를 듣고, 이 하나 난 잇몸으로 웃었다.*위지헌이 흰 옷에 왼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마루 기둥 옆에 서서 태의 말을 들었다. 왼쪽이 안 돌아온다는 말이었다.그가 소리를 냈다.말이 아니었다. 목 안에서 숨이 꺾이는 짧은 소리였다. 열 해 전장에서도 내지 않았고 형장에서 늦었을 때도 내지 않은 소리를, 아내 앞에서 처음 냈다.오른손이 옥대로 가서 매듭을 잡고는 놓지 못했다.월령이 아이를 안은 채 그것을 보았다. 무너지지 않았다. 아이가 품에서 오른쪽 귀로 어미 숨소리를 듣고 있어서, 무너질 자리가 없었다."부군."그가 아내를 보지 않고 기둥을 보았다."부군. 이리 오세요. 오른쪽으로요. 이 애 오른쪽은 다 들어요."그가 아이의 오른쪽으로 왔다. 아이가 아비를 돌아보며 손을 뻗었는데 옥관이 없어서 붕대를 잡았다. 그는 앉은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었고, 아이 손이 잡은 붕대를 빼지 않았다."내 왼쪽하고, 네 왼쪽하고. 둘이면—"말이 거기서 끊겨 다 맺지 못했다. 그가 말을 다 맺지 못하는 것을 월령은 여태 손에 꼽을 만큼만 보았다. 오늘 하나가 더 늘었다."둘이면 오른쪽이 둘이에요. 그거면 돼요."*"오른쪽에서 부르면 됩니다."방어멈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마루 끝에서 말했다."애가 고개 돌
흰 천이 문마다 걸렸다.곤원전 문과 회랑 기둥과 궁문에, 늙은 상궁이 제 손으로 그것을 걸었다. 어제 문지방에서 무릎이 꺾였던 사람이 일어나서 걸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빈전이 곤원전 안에 차려지고 황후가 마신 찻상은 치워졌다. 잔 하나만 꼭지를 오른쪽으로 둔 채 고 내관의 손에 들려 편전으로 갔다.*경화제가 병상에서 일어났다.태의가 말리고 고 내관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다리가 서지 않는 사람이 서자 위명서가 그 팔을 잡았고, 아비가 아들에게 실어 본 적 없는 무게를 실었다."아바마마, 가마를 부르겠습니다.""가마는 안 탄다. 황후한테 가는 길이다. 걸어서 간다.""그럼 제 팔을 잡으십시오. 놓지 마시고요."편전에서 곤원전까지 회랑 하나와 돌길 하나를 걷는 데 반 시진 가까이 걸렸다. 위명서는 아비가 서면 서고 걸으면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화 소맷단의 마른 것 위에 아비의 손이 닿아 있었다.빈전 앞에서 경화제가 아들 팔을 놓았다."여기서부터는 혼자 간다."혼자 세 걸음을 걸어 흰 천 앞에 섰다. 꿇지 못하는 다리라 선 채로, 임금이 아니라 늙은 남편의 눈으로 보았다. 그러고는 고 내관 손의 잔을, 오른쪽인 꼭지를 보았다."그 잔은 짐 머리맡에 둬라. 꼭지는 그대로 두고. 짐이 누운 동안 짐 대신 볼 것이다.""예, 폐하. 머리맡에 두겠사옵니다."*위지헌이 국청 마당에 섰다.태의가 손가락 셋이 제 방향이 아닌 채로 밤을 넘기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황후를 독살하고 폐하께 향을 먹인 손이다. 지금 참한다.""전하, 국상 중에 피는 법도에—""국상 중이라 벤다. 상주가 없는 국상이다. 벨 것이라도 있어야지."옥리가 마당에서 벴다. 월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봐야 할 것은 어제 다 봤다. 위지헌은 칼을 닦지 않았다. 벤 것은 옥리의 칼이었다.*자녕궁 담 밖에서 초비가 들었다.담 안에서 나는 곡소리는 숙비의 것이었다. 법도대로 세 번 길게 하고 끊고, 다시 세 번 하고 끊는, 황
월령은 국청 마당을 뛰쳐나왔다.궁 안에서는 아무도 뛰지 않는다. 여인이 치맛자락을 쥐고 달리면 그것만으로 흠이 되고, 섭정왕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태의가 국청 바닥에 엎드린 채 뱉은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곤원전 찻잔은 오늘 아침에 바뀌었소.기윤이 뒤에서 따라붙다가 앞질러 나갔다. 회랑을 두 개 지나고 돌길을 건너는 동안 월령은 한 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곤원전 문 앞에 늘 서 있던 늙은 상궁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국화 우린 물 냄새가 흘러나왔다. 황후가 좋아하는 차였다.*황후는 찻상 앞에 앉아 있었다.병상에서 일어나 곤원전으로 돌아온 지 사흘 만에 처음 옷을 갈아입고 앉은 자리였다. 찻상 위에는 잔 하나가 뚜껑을 벗은 채 놓여 있었고, 벗겨 둔 뚜껑의 꼭지는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상궁이 직접 우린 것만 오른쪽으로 놓기로 한, 월령이 만든 규칙 그대로였다.잔은 비어 있었다."마마."황후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빛이 희다기보다 잿빛이었고, 입가에서 국화 냄새가 났다."섭정왕비가 궁 안에서 뛰다니. 무슨 일이냐.""마마, 그 잔을 누가 올렸습니까.""상궁이 우렸다. 내 눈으로 봤다."황후는 이상할 것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려 놓고 나니 편전에서 부른다기에 갔다. 폐하께서 찾으신다고 하더구나. 가 보니 찾으신 적이 없다 하시고. 돌아와 보니 잔이 그대로 있기에 마셨다. 꼭지가 오른쪽이었으니까."월령은 찻상으로 다가가 잔을 집어 들었다.빈 잔 바닥에 국화 잎 하나가 붙어 있었다. 잔을 뒤집자 굽에 난 흠이 손끝에 걸렸다. 곤원전의 잔은 굽에 흠이 없다. 이것은 곤원전의 잔이 아니었다. 곤원전의 것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국화 냄새까지 입힌 다른 잔이었다. 상궁이 우린 진짜 잔은 이 방에 없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이 잔을 놓고 갔다. 뚜껑 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려놓을 줄 아는 손이었다."기윤 나리, 태의원에 가 주세요. 원로 말고 아무나,
목패가 먼저 떨어졌다.궁문 밖 돌길에서 기윤이 태의의 뒷덜미가 아니라 허리띠를 잡았다. 돌아선 태의는 회색 옷에 마흔 남짓이었다. 맥 짚던 손이 허리로 갔다가 멎었다. 강무진이 붕대 감은 왼팔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그 손목을 잡았다."무슨 일이오. 나는 태의원 사람이오. 폐하의 맥을 짚고 나오는 길인데—""압니다. 하가 태의시지요. 소매만 보겠습니다."강무진이 소매 안에 손을 넣자 작은 향낭이 나왔다. 비단이 아니라 무명으로 지어 오래돼 색이 바랜 것이었다. 단내가 났고, 단내 밑에 쓴 것이 있었다.다른 태의 둘은 그냥 보냈다. 고 내관이 그들을 돌려세워, 아무것도 못 본 얼굴로 집에 가라고 일렀다.*왕부 별채에서 독고진겸이 그 향낭을 늙은 손으로 받았다.코에 대지 않았다. 댈 것도 없이 아는 냄새라, 손바닥에 놓고 무명 주머니와 실 매듭만 보았다."자녕궁 것이 아니오.""향방 것이 아니에요? 자녕궁 향방에서 짓던 냄새예요.""향방이 이것을 물려받은 거요. 아버지가 서른 해 전에 셈방 문 앞에 이 향을 피웠소. 셈이 틀린 사람이 문을 열면 이 냄새부터 맡았지. 맡고 나서, 아, 내 셈이 틀렸구나 하고 알았소. 누이가 입궁할 때 이것을 가져갔소. 그걸로 향방을 차렸고."독고진겸이 매듭을 보았다. 셈방 매듭이라 푸는 법이 따로 있었다. 그가 그것을 풀자 안에 향 가루가 있었고, 가루 밑에 숫자 하나가 적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아버지 사람이오."독고진겸이 종이 조각을 들어 보였다."나도 몰랐던 사람이오. 셈방 문패에 이 번호가 있었소. 아버지가 사람을 살 때 이 번호를 줬지. 내가 셈방을 물려받을 때 이 번호 사람은 없었소. 죽었다고 들었소.""살아 있었네요.""살아 있었소. 하가 옷을 입고 서른 해를 살았소."월령이 향낭을 도로 받았으나 매듭을 묶지 못했다. 독고진겸이 대신 묶어 주었다. 딸에게 이름 첫 자를 굵게 쓰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손이었다.*자녕궁 담 위에서 초비가 내려왔다."담 안은요, 마마님, 조용해요. 설련 언
숨소리가 문밖까지 났다.편전 안쪽 침방에는 발이 내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숨이 들고 났다. 드는 숨은 짧고 나는 숨은 길었으며, 나는 숨 끝에는 기침이 붙었다. 고 내관은 그 기침을 세지 않았다. 셋을 넘긴 뒤로는 셀 수가 없었다.월령이 발 밖에 서고 위지헌이 먼저 들어갔다. 왼 어깨에는 방어멈이 다시 감은 붕대가 대창포 안에 있었다. 발이 들렸다가 내렸다."지헌아. 왔느냐.""예, 형님. 왔습니다.""어깨는 어떠냐.""화살이옵니다. 뼈는 비켰습니다.""뼈만 비키는 애다,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경화제가 웃으려 했으나 웃음이 기침이 됐다. 위지헌은 무릎을 꿇은 채 그것을 보면서도 손을 뻗지 않았다. 뻗을 손이 오른쪽 하나뿐이라, 그 하나를 무릎 위에 두었다."형님, 언제부터 이러셨습니까.""어제부터 못 일어났다. 기침은 그 전부터고. 고 내관이 세더구나. 짐이 모를 줄 알고."*태의가 셋이었다.회색 옷에 허리에 목패를 찬 셋이 번갈아 맥을 짚었다. 하나가 짚고 물러나면 다른 하나가 앞으로 나왔고, 짚고 나서는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눈을 맞추면 셋이 같은 것을 안다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황후가 병상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예복이 아니라 사흘째 갈아입지 않은 옷이었다. 위명서는 그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북문에서 곧장 온 옷 그대로, 매화 소맷단의 마른 것을 털지 않은 채였다."명서.""예, 아바마마.""북에서 곧장 왔느냐. 어미한테는 갔다 왔고.""아직 안 갔습니다. 여기 먼저 왔습니다.""그럼 거기 앉아 있어라. 짐이 자다 깨면 네 얼굴이 있게.""예. 여기 있겠습니다."경화제가 눈을 감았고, 위명서는 그 자리에 남았다. 어미에게 가지 않고 아비 곁에 있었다. 월령이 발 밖에서 그것을 보았다. 전생에 이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고, 어미 곁에 있었다.*가운데 태의가 물러나며 월령 곁을 지났다.소매가 스치자 향이 왔다.월령이 굳었다.단내가 나고, 단내 밑에 쓴 것이 있었다. 자녕궁 향방에서
도성 북문 돌계단에 첫서리가 앉아 있었다.아침 해에 반은 녹고 반은 남은 서리 위에 월령이 봄을 안고 서 있었다. 아이는 열이 내린 지 나흘이라 뺨이 도로 희었고, 품 안에서 제 손으로 어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힘이 돌아온 손이었다.청아가 뒤에, 기윤이 그 뒤에 섰다. 방어멈은 대문을 지킨다고 오지 않았고, 초비와 묵아는 길 끝이 보이는 성루 위에 있었다.길 끝에서 먼지가 올랐다.*북문로에서 검은 줄이 왔다.앞에 말 하나, 검은 대창포에 옥관이었다. 대창포 안에 붕대가 있어서 어깨 한쪽이 다른 쪽보다 높았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월령에게는 보였다.그 뒤에 붉은 것과 검은 것이 다 마른 매화 소맷단, 붕대 감은 팔 둘인 강무진과 정무, 들것, 북경군이 차례로 왔다.말이 돌계단 앞에 섰다.위지헌이 오른손으로 안장을 짚고 내렸다. 시간이 걸리는데도 아무도 돕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월령 앞에 섰다."왔다.""예. 오셨어요."위지헌이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모르는 얼굴을 보는 눈으로 그를 보다가 옥관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앉는다더니.""앉아요. 기울지만요.""열은 내렸느냐.""내렸어요. 나흘 전에요. 이제 밤에도 안 깨요."위지헌이 오른손을 들어 희어진 아이 뺨에 손등을 댔다. 그러고는 그 손을 아이를 안은 월령의 손 위에 놓았다. 북경군이 뒤에 서 있는 채로, 서리 위에서, 그가 아내에게 건넨 것은 그 손 하나였다.월령이 그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어깨는요. 뼈는요.""비켰다. 살만 뚫렸다.""고름 냄새가 나요. 여기서도요.""방어멈이 감으면 낫는다."*"첫 장이다."위지헌이 오른쪽 소매에서 반, 또 반 접힌 종이를 꺼내 아이를 안은 월령의 팔 위에 놓았다.월령이 한 손으로 펴려는데 아이가 그것을 잡으려 했다."아기씨, 저한테 오세요. 마마님이 종이를 보셔야 해요."청아가 아이를 받았고, 월령이 두 손으로 폈다.'심월령.' '위지헌.'여섯 살 이름과 열다섯 이름이 가는
그 말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그대가 내 곁에 있다면.이 황궁도 외롭지 않을 것 같군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살구꽃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너무 가벼워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칼집에 숨은 소리라는 것을 모를 터였다.한때의 월령도 몰랐다.그녀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 한 사람의 온기를 들이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녹을 줄 알았다.높은 처마와 긴 회랑과 밤마다 닫히는 문들 사이에 자신이 봄을 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이제는 안다.황궁의 외로움은 사람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사람 하나를 삼
"월령 언니, 여기 계셨어요?"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그때의 월령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촌이라 믿었고, 어머니의 방 앞에 흰 천이 걸린 뒤에는 서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었다. 등을 토닥이던 작은 손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그리고 황후전의 어느 밤, 비녀함 안쪽에서 밀서를 꺼내던 그 손도.그 손등에 비치던 차가운 등불도.그래도 월령은 그 손을 기억할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피와 비가 뒤섞이던 형장의 냄새가 혀끝에 되살아났다.아니.칼이 아니었다.그녀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던 것은 칼날보다 조용한 것이었다. 탕약의 밑바닥에 가라앉
비가 내렸다.그러나 비는 피 냄새를 씻어 내리지 못했다.젖은 흙은 피를 먹은 뒤 오래된 쇠처럼 비렸다. 낮은 돌계단 틈마다 붉은 물이 고였고, 빗방울은 그 위에 닿을 때마다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형장 둘레에 몰린 백성들은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했다. 누군가의 젖은 소매에서 눅눅한 마 냄새가 났고, 멀리 황궁 쪽 붉은 담은 비안개에 잠겨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상처처럼 서 있었다.심월령은 그 붉은 담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무릎이 진흙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한때 대연에서 가장 고운 비단만 몸에 두르던 황후의 무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