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의 모든 챕터: 챕터 81 - 챕터 90

108 챕터

제81화

태하가 가장 먼저 나섰다.“자, 우리도 얼른 역할부터 나누자.”역시나, 이현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나는 당연히 조종이지.”태하, 은하, 민희가 동시에 소리쳤다.“안돼!”“너한테 맡겼다가 우리 물건은 그냥 추락이야.”“맞아, 백이현은 무조건 수신 팀.”결국 드론 조종은 은하와 태하가 맡았고, 수신 역할은 이현과 민희가 맡기로 했다.“이번엔 진짜 제대로 하자.”“응. 우리 팀은 백이현만 잘 하면 돼.”단단한 각오와 함께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었고, 각 팀의 드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그들의 드론 역시 천천히 이동하며, 어렵지 않게 들어 올린 물건을 수신 위치로 옮기기 시작했다.멀리서 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너무 늦어! 빨리 와!”“우리 그냥, 백이현 말은 듣지 않기로 하자.”“응.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태하와 은하는 같은 마음이었고, 이현과 민희는 정해진 위치에서 손을 펼치며 대기했다.“떨어진다!”“야 정태하! 조금만 더 오른쪽!”“아니거든. 이게 맞거든?”“하씨, 답답하네 진짜.”마지막 버튼이 눌리고, 물건은 결국 애매한 위치를 향해 낙하했다.하지만, 놀랍게도 잽싸게 몸을 날린 이현이 간신히 물건을 받는데에 성공한 것.“잡았다! 오예! 내가 해냈다!”"오 백이현, 어쩐 일이냐?""봤냐? 봤지?"이번 미션은 어찌저찌 성공했지만, 그들의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저녁을 먹고 운동장으로 향하자, 이미 몇몇 팀이 모여 드론 조종 연습을 하고 있었다.그들 역시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내일이 진짜 실전이다.” “우리에게 실수란 없다.”“너만 잘하면 돼.”이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네 사람은 계속해서 드론을 띄우며 이륙과 착륙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다 민희의 손에 조종기가 쥐어진 그때, 드론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잠깐만, 이거 왜 이러지?”“민희야. 일단 속도부터 줄여봐. 오른쪽 세 번째 버튼.”"어? 안 되는데? 왜 이래 이거?"조작 미숙으로 인해 결국 균형을 잃고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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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다음 날,이현과 태하는 이미 후드 집업을 입고 운동장에 나와 은하와 민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뭐냐 니네? 설마 커플룩이냐?”“꽤 잘 어울리네.”대놓고 전해지는 놀림에 태하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이현은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그때, 멀리서 쭈뼛쭈뼛 걸어오는 은하와 민희.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현의 입가에 미소가 사르르 번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듯 모자는 푹 눌러쓰고 있었지만 분명히 몸에 걸친 카키색 후드 집업.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자, 모두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쟤네 봐. 넷이 팀복이야 팀복.”“야, 그래도 팀워크는 있어 보이네.”“통일감은 죽이네. 웃긴다 진짜.”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멀뚱멀뚱 서 있었고, 이현은 신나 죽겠다는 웃음을 조금도 감추지 못했다.“야, 봤냐? 이게 바로 팀워크라는 거야.”“하, 시선 집중이야 완전.”“나 미치겠다. 진짜.”가장 의의의 반응은 은하에게서 나왔다. 어느새 모자를 내린 은하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생각보다 따뜻하네.”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 이현이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우리 사진 찍자.”모두가 멈칫한 순간, 그는 이미 다른 친구에게 핸드폰을 넘기고 있었다.“길어 보이게 부탁한다. 친구야.”세 사람을 바짝 끌어당겨 억지로 세운 이현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민희와 태하, 은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찰칵 소리가 들린 후, 핸드폰에 모여들어 찍힌 사진을 확인하는 네 사람.“생각보다 잘 나왔는데?”“뭐, 한 팀 같긴 하네.”순간, 이현이 사진을 확대하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이현과 태하, 민희는 나름대로 웃고 있었지만, 은하는 혼자서 눈을 감고 있었다.“강은하! 너 눈 감았어! 고새 잤냐?”“…아니거든?”"푸하하하하! 잤네! 잤어!"누가 눈을 감았든, 결국 네 사람이 처음으로 한 장에 담긴 사진이 남겨졌다.이현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단톡방을 만들어 세 사람을 초대했다.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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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심장이 뛰어대는 감각이 왜 이렇게 당황스러운지, 얼굴까지 붉어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됐어. 사고나 치지 말고 제대로 찾아와.”“와, 내 이미지 이거 어떻게 된 거냐?”그렇게 구조자는 은하로 결정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구조자 역할을 맡을 학생들은 미리 이동하도록 합니다!”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각 팀의 구조자들을 배웅했고, 은하 역시 쭈뼛쭈뼛 강사님을 따라 배정된 장소로 이동했다. 은하가 사라지고 한참 뒤, 미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펴졌고 각 팀은 서둘러 드론을 띄웠다. 드론 조종은 태하가 맡았고, 민희와 이현은 태하의 말에 따라 지형을 파악하며 은하를 찾기로 했다. “자, 드론 띄운다.”“좋아! 가즈아!”하지만, 화면을 바라보던 태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왜?”“생각보다 좀 먼데?”같은 시각, 은하는 배정된 장소에서 조용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산속의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쌀쌀했다.강사님은 떠나기 전, 작은 기계 하나를 건네 주었다. 비상용 GPS 장치야. 문제가 생기면 빨간 버튼을 누르라는 말을 남겼다.오랜만에 조용한 곳에 혼자 남은 순간.은하는 잠시 수련회는 잊고,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백이현, 정태하… 그리고 민희까지.’‘이제는 정말… 친구 같아.’처음 전학을 오던 날, 잔뜩 날이 선 자신에게 먼저 웃으며 다가와 준 민희, 그리고 시작은 좀 달랐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을 챙기며 걱정하는 이현과 태하.그들은 이미 은하에겐 단순한 같은 반 친구들 그 이상이었다.‘나도 이제 평범해질 수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미 평범해지고 있는 건지도 몰라.’자신도 모르게 손끝으로 후드 집업 소매를 꼭 쥐었다.잠시 동안 이현이 지퍼를 여며주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내가 진짜 애기인 줄 아나.’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한편,이현과 태하, 민희는 지형을 살피며 천천히 이동 중 이었다.그때, 혼자 남은 은하가 걱정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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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두 남자는 확실하게 은하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은하는 빠르게 주머니에서 GPS기계를 꺼내 손에 쥐었지만,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은하를 향했다.“학생, 여기서 뭐해?”등골이 서늘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온 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진정 시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수련회 온 학생인데요. 드론 훈련 중이니까 그냥 지나가시면 될 것 같은데….”침착한 목소리였다.이곳에 있어도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드론 훈련?”하지만 눈빛은 빠르게 흔들렸다. 불법 포획은 잡히면 구속이라, 들키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그리고 그 말은, 지금의 이 상황을 더 알아 봐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그래? 그럼 학생은 왜 혼자 있는데?”“그냥 단순한 미션이에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그 말이 끝나는 순간, 한 남자의 시선이 은하의 손을 향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꼭 쥐고 있던 작은 GPS 기계.“그거, 이리 줘.”“네?”“손에 들린 거, 당장 달라고.”두터운 손이 은하의 앞으로 다가왔을때, 이상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린 기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툭.’마치 손끝조차 닿기 싫다는 듯한 행동에,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기계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았다.“학생, 왜 이렇게 겁이 났어?”“귀엽네.”말투가 확실하게 변했다. 장난스럽지만, 위협이 섞인 뉘앙스.한 남자가 은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한걸음 더 가까이 내딛는 순간, 삐-익 소리가 나며 숲속 어딘가에서 드론이 저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뭐야? 진짜 드론이잖아?”동시에 태하와 이현의 눈에 비친 화면 속에는, 은하의 앞에 낯선 남자들이 서있는 모습이 목격됐다.“뭐냐? 저 새끼들?”“뛰어!”“정민희. 넌 혹시 모르니까 여기 있어.”“야! 백이현! 정태하!”이현과 태하는 주저 없이 은하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민희 역시 자신도 모르게 뛰고 있었다. 드론의 모습을 본 남자들은 순간적으로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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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이제야 안도한 이현이 은하를 자신의 품으로 끌더니, 꽉 끌어안았다.“미안해. 조금 더 빨리 올 걸.”은하는 목이 메인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따스한 가슴팍에 안겨있었다.“그래도, 우리 진짜 빨리 뛰었다. 강은하.”이상하게도 백이현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은 체온을 데워주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지, 한동안 굳어있던 입술이 열렸다.“…알아. 고마워.”태하와 민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현은 자신의 후드 집업을 벗어 은하에게 덮어주었다. 더 이상은 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은하는 괜찮으니까. 공황 증상은 따스한 온기에 스르륵 녹아버렸으니까.***이현과 태하는 은하와 민희가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곧장 담임 선생님과 강사들을 찾아 나섰다. 이현의 얼굴엔 이제 분노만이 서려 있었다.본부 앞을 지키고 있던 담임 선생님과 강사들을 발견하자마자, 무턱대고 언성부터 높이기 시작했다.“수련회 관리를 왜 이따위로 하시는 거죠?”“뭐…?”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태하가 이현을 진정 시키듯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저희 팀 구조 미션 구역에 수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수상한 사람들이라니?”이현이 이를 악물었다.“그냥 수상한 게 아니라, 총을 들고 있던 밀렵꾼들이었다고요. 은하는 그 새끼들 사이에 혼자 있었고요. 저희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으면… 하…”선생님과 강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태하는 드론 영상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정말로, 은하 앞에 서 있던 밀렵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강사들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핸드폰도 안 터지던데, 이게 다 우연입니까?”한 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핸드폰은 미션 시간에만 잠시 조치해 둔 거고… 미션 구역은 사전에 다 조사했던 구역이야. 학생들에게 위험 요소가 없는 걸 확인하고, 그 후에 미션을 배정했는데….”강사들은 표정은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임이 틀림 없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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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이현의 미소가 보였다. “강은하.”“…응?”“뭐냐? 후드 집업 왜 벗었냐?”은하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지만, 금세 침대 위에 놓인 집업을 챙겨 입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 은하의 옆에는 그 어느때보다 진심이 담긴 미소가 함께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오늘 하루는 혼란스러웠지만, 남아있는 오늘 밤 만큼은 조금은 따뜻해질지도 모르겠다고.두 사람은 캠프파이어 장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아니었으면, 또 안 나올 생각이었지?”“그냥… 다들 잘 노는데, 굳이 나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너는, 별것도 아닌 일에 매번 고민하더라?”“뭐…?”“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다들 잘 놀고 말고를 왜 신경 써. 태하랑 민희도 엄청 기다려.”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닥불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밤바람이 가볍게 스쳐 지나 갔다.은하의 말이 조심스레 이어졌다.“근데… 오늘 좀 이상했어.”“응? 어떤 게?”“아까 그 사람들 만났을 때… 뭔가 갑자기 기억이 떠 올랐어.”그래서 반응이 그랬던 건가? 이상하긴 했어. 깜짝 놀라는 모습에 텅 빈 눈동자까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냐고.“아홉 살 때 잃어버렸다던 기억?”“모르겠어… 그 기억이 진짜인지, 꿈인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어.”이현은 그런 은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냥, 그게 기억이든 꿈이든. 그게 널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해.”“…….”“물론 쉽진 않겠지만, 솔직히 꿈이면 다행이고, 잊고 있던 기억이어도 다행인 것 같은데?”“…왜?”“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까.”맞다. 그 일이 무엇이었든 그건 다 과거다. 혹은 꿈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과거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네. 다행이네.”작은 대답이 가벼운 숨처럼 흩어졌다.“그럼, 이제 진짜 가볼까?”이현이 손을 내밀자 은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이번엔 그 모닥불이 타오르는 불빛 속으로 함께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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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모닥불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민 이현, 하지만 마음속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강은하는 정말 나에게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가? 내가 성급했나?장난이 섞인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대답을 듣고 나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희가 돌아왔다.약간의 어색함이 남아 있었지만, 표정 만큼은 후련해 보였다. “은하야.”“응?”“나… 수혁이랑 만나보기로 했어.”눈만 깜빡이며 잠시 입을 다물었던 은하가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정말? 축하해. 둘이 잘 어울려.”민희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달라지는 표정.“근데, 있잖아….”“응?”“너는 백이현이랑 정태하, 둘 중에 누구야?”또 다시 말을 잃은 은하. 민희는 팔짱까지 끼고 오늘따라 집요하게 굴어댔다.“솔직히 둘 다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알잖아.”“글쎄… 나는 그런 생각 해본 적 딱히 없는데.”대답을 하는 순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한쪽을 스치고 지나갔다.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감정, 그건 앞으로도 없을거라는 보장은 없는거잖아.“뭐, 아무렴 어때. 시간이 알려주겠지.”민희의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은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이현과 태하 역시 오늘 밤 만큼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침대에 누워 있긴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너희는 나한테 처음으로 생긴 소중한 친구야.’은하의 단호한 말이 두 사람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그 말은 단순한 선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을까. 이현이 한참을 뒤척이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태하 역시 쉽게 잠들고 있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야 정태하. 자냐?”“아니. 왜.”“나 오늘, 강은하한테 실수한 거냐?”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태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그냥… 너무 빨랐던 거겠지.”“무슨 뜻이냐?”“은하는 지금, 자기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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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생각해 보니, 곧 부모님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기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조여왔던 은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어지는 학교, 멀어지는 친구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실.수련회에서 있었던 일들, 순간 순간 느꼈던 감정들. 모든 게 꿈처럼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 오빠한테 왜 얘기 안 해?”“이미 다 들었을 거 아니야.”“그래도. 오빠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이번 걱정은 부담이 아니라 의문이었다.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던 길고 긴 시간들, 잃어버린 기억. 오빠는 분명 모든 걸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늘 나로 인해 전전긍긍 하는 거겠지.“오빠….”“응. 은하야.”“어제… 기억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장면이 떠올랐어.”운전대를 잡은 우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무슨 장면?”“누군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고, 그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어.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고, 움직이면 더 위험해진다고. 그런 목소리도 환청처럼 들렸고.”그때였다. 우주의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갓길에 멈춰 섰다.은하의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우주의 손이 이미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은하는 확신했다. 이건, 평범한 반응이 아니다. 분명,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갑자기 왜 그래?”“아니… 아니야. 잠깐 놀라서.”“그러니까 왜? 내가 떠올린 기억, 그거 9살 때 있었던 일이랑 관련 있는 거지?”화살같은 질문이 공기를 울렸다. 이미 우주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한 가득 담겨 있었고, 그건 은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빠.”“부모님은, 기일날 다시 찾아뵙자.”“응?”“일단 집으로… 집으로 가서 얘기하자.”은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우주는 서둘러 기어를 조작하고 다시 차를 출발 시켰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평소와 다른 공기가 감돌았다. 한 곳에 서 있지 못하고, 마치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소파 근처를 오가며 서성거리는 우주.머릿속을 정리하는 건지, 대체 무슨 고민을 저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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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은하는 그동안 오빠가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이유를 곰곰히 생각했다.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데.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오빠. 그럼 혹시… 부모님 사고도….”우주의 얼굴에 핏기가 빠져나갔다.“아니야! 부모님 사고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야. 너랑은 상관 없어.”“이상하잖아.”“뭐가? 아니라니까?”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은하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이상한 감정이 차올랐다. 단어를 붙이자면 의심같은 것.“오빠 말대로라면, 같은 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잖아. 정확하게 내가 아홉 살이던 그 해에.”“은하야!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거 아니라니까.”부모님의 사고와 자신의 기억을 자꾸만 연결 짓는 모습.우주는 그런 은하의 손을 꼭 붙잡았다.“은하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부모님 사고는 네 사건과는 다른 일이야. 그리고, 앞으로 문득 문득 잊었던 기억이 떠오를 때, 그때는 당황하지 말고 ‘지금’을 인식해야 해. 지금은 과거가 아니라 안전한 현실이라는걸 스스로를 향해 자꾸 설득해야 해.”손등을 쓰다듬는 온기,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고 있었다.“그리고, 혼자서 해결하려 들지 마. 감정을 안에만 가두려고 하지도 말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함께 정리해 나가는 게 중요해.”“…응.”은하는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네가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직 모든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고, 모든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기억들이 불현듯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납득하고 있었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인생, 그 잃어버린 기억이 트라우마라는 이름으로 옥죄고 있는 현실. 만약 사라진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때는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까? 정답은 몰랐지만, 은하는 마음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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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충격적인 과거를 전부 들은 두 사람은,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고작 9살짜리 어린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공포, 혼란,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상실까지.“…부모님까지.”“그래. 은하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거야.”이현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동시에 그동안 봐았던 은하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무표정한 얼굴, 무덤덤 한 척하지만 때때로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모습, 필사적으로 감정을 누르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갑자기 돌변하듯 차가워지던 눈빛.그건 전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기제였던 거다.태하 역시 이제야 알 것 같았다.은하가 왜 그렇게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왜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는지, 왜 특정 순간에는 극도로 무너져 내렸는지.그때, 이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의문.“범인은요? 범인은 잡혔죠?”“응. 아직 수감 중이야.”“그런 새끼들은 사형이 답인데… 하.”이번에는 태하가 물었다.“출소가 언젠데요? 9살 때 일이면 벌써….”“내년.”?뭐? 내년? 당장 내년이라고?“미친, 말도 안되잖아요!”“현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어. 하필이면 은하의 기억도 조금씩 떠오르고 있고. 그래서 너희들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이현이 씹어 삼킬 듯 이를 갈았다.“씨발, 법 진짜 개같네.”“쉽게 찾아오진 못 할 거야. 이사도 많이 다녔고, 지금은 분노의 상대인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셨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은하야.”맞다. 그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조금씩 기억이 떠오르고 있는 은하였다. 은하가 조금씩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게 단순한 한 번의 떠올림으로 끝날지, 아니면 앞으로 숨겨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쏟아져 나올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는 순간은 잔인한 순간일 수 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현아, 태하야. 형이 부탁 하나만 할게.”“네. 형님.”“네. 말씀 하세요.”“지금까지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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